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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호 성폭력사건 그 후 3년, 내 이야기(3)

2차가해를 '인정'하느니 차라리 '도망'친, 2차가해자 김상복

글쓰기를 맘먹으며 쉽지 않으리라는 건 예상했다. 그러나 정말 쉽지 않다. 온갖 생각이 떠다녀 잠을 이루지 못하고 컴퓨터 앞에서 초코렛만 먹어댄다. 지하철 안에서 흐르는 눈물을 주체 못해 당황하기 일쑤고 두통에 시달린다. 가슴에 맺혔던 '분노'와 '한'이 솟구쳐 올라 눈물이 떨어진다. 이건 내 몫이다. 내가 살기 위해 감당할 몫이다.

김원호 성폭력사건이 보고된 중앙위에서 2차가해자 김상복은 이런 발언들을 했다.
"회피노력, 그런 상황은 양성이 다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에 대해서 피해자는 술에 취해 모른다는 것밖에 없는가? 3차(술집)를 가야할 특별한 이유는 없었는데, 회피노력은 3차부터이다. 이에 대해 피해자의 생각은 어떤지 궁금하고, 물어져야 한다고 본다.", "술에 취했다고 해도 판단이 물어져야 한다… 오히려 40대 30대 여성의 성적 에네르기의 자제함은 20대와 별 차이가 없다고 본다… 이런 점에서 오히려 더 단호하게 물어져야 한다.", "…회피의 노력에 대해서는 물어져야 한다고 본다…"
2차가해자 김상복은 '회피노력' 발언이 2차가해라는 제지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자기주장을 굽히지 않고 수 차례에 걸쳐 반복 발언했다. 서기록에 남겨줄 것을 확인까지 했다.

회피노력 했냐고? 그게 그렇게 궁금했나? 대답해주지. 아니. 못했다. 그 당시는 그럴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으니까. 난 만취해서 제대로 걷지도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할 수 있는 상태였다고 해도 안 했을 거다. 그게 궁금한 거겠지? 난 회피노력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무엇이 회피노력인지? 3차 술집에 가지 않는 거? 만취하지 않는 거? 여관에 가지 않는 거? 내가 왜 그런 노력을 해야 하는데? 당신들, 남성들이 성폭력 저지르지 않도록 노력(?)할 일이지 내가 왜 그런 노력 해야 하나? 내가 강제로 옷 벗기고 성기를 세워서 강간했나? 웃기지도 않는다. 그건 당신들 몫이지. 당신들이나 해라.
강간 상황에서 술을 깨고 저항하지 못한 게 회피노력이라면 못했다. 설마 그런 걸 묻는 건 아니겠지? 근데 그게 이 사건이 강간인 것과 무슨 상관인데? 그런 저항 못해서 강간이 아닌가? 웃겨 정말.

김상복은 왜 그리 회피노력에 열을 내는지?
2차가해자 김상복은 성폭력내부토론회 발제문을 통해 "조직 내 성폭력 발생의 문제는 우선 심대한 조직 파괴행위이다", (성폭력 가/피해 영역에서) "자기규율과 회피노력은 전제이며 출발이다"라고 밝히고 있다.
조직 사수를 위해 엄격한 규율로 통제하라고? 성폭력이 규율의 문제인가? 성폭력은 권력문제다. 철저히 권력관계에서 발생한다. 김원호는 신뢰라는 감정에 덧씌워진 권력관계를 철저히 이용했을 뿐이다. 운동에 대한 의지를 상실한 후배를 강간해놓고, 자신은 훌륭한 활동가란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유유히 사라져버렸다. "기억나지 않는다"는 김원호의 파렴치한 태도는 그자의 권력과 결부돼 수많은 2차가해를 만들어냈을 뿐이다.
자제력이 부족해서 발생했다고? 김원호는 내가 노힘 상근시절에도 술에 취해 다른 상근자들 앞에서 나에게 키스한, 또 다른 성폭력을 저지른 전력이 있다. 당신이 그걸 모를 리가 없을 텐데 그걸 말이라고 갖다 붙이나? 자제력이 부족해서 그 많은 사람들 앞에서 키스했다는 건가? 왜곡된 지배욕 때문이 아니고? 근데, 그 당시 나는 어떤 회피노력을 했어야 하는데?
성폭력이 권력관계에서 발생한다는 점은 2차가해자들의 태도에서도 드러난다. 그들은 훌륭한, 권력을 가진 활동가인 김원호를 지지했지 활동에서 누락된, 권력이 없는 최지영을 지지하지 않았다. 오히려 철저히 짓밟았다. 자신들의 권력을 이용해 짓밟았다. 사악한 것들. 김원호와 10년, 20년 신뢰관계 때문에 가해발언을 했다고? 웃기는 소리. 그럼 그 신뢰관계가 없는 수많은 노힘 회원의 김원호에 대한 동정론은 뭔데? 그리고 2차가해자 박장근을 대표로 세운 노힘의 태도는 뭔데?

자기규율과 회피노력을 주장하는 것은 성폭력의 발생 원인을 성욕이라고 보기 때문이겠지? 그러니까 '30대 여성의 성적 에네르기' 발언도 나올 수 있겠지. 지겨워.
김상복, 박장근 당신들이 하고 싶은 말은(침묵한 일부 조직원들을 대변한) 이런 거 아닌가?
만취한 최지영도 좋아서, 원해서 섹스 한 거 아냐? 술에 취해 얼결에 반응해놓고 술 깨놓고 딴 소리하는 거 아냐? 김원호가 너무 억울한 거 아냐? 너무 불리한 거 아냐? 당신들은 그렇게 생각하는 거 아닌가? 웃겨.
박장근의 '동의 하에', 김상복의 '30대 여성의 성적 에네르기' 발언은 다 그렇게 연결된다. 물론 난 '성적 에네르기가 있는 30대 여성'이지.
그러나 강간과 섹스는 구별할 줄 안다. 술에 취해도, 만취해도 강간과 섹스는 구별한다. 난 웃옷은 입은 채로 하의만 벗겨져 있었다. 난 만취했다고 팬티를 벗고 잠을 자지도 않고, 팬티만 벗고 섹스하지도 않는다. 강간 경험이 처음도 아니었고, 만취한 상태에서 섹스 해 본 경험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안다. 만취했지만 강간과 섹스는 구분할 줄 안다. 너네들이 그렇게 떠들어대지 않아도 내가 안다.
만약 김원호가 내가 '반응'했다고 말해도 난 당당하다. 성행위에 대해 내가 '선택'한 바 없고, 여성의 몸도 성행위에 생물학적으로 반응할 수 있으니까. 그건 즐긴 것도 아니고 '30대 여성의 성에네르기'도 아니다. '강간'일 뿐이다.

"3차 술집에 갈 특별한 이유가 없었다"고? 김상복 당신이 그렇게 말하는 건 참 가증스럽기 짝이 없다. 당신 역시 피해생존자가 최지영이란 사실을 '알고' 발언한 자니까. 어쩜 2차가해자는 하나같이 피해생존자가 최지영임을 '알고' 발언했을까? 2차가해자들은 대체 '누구'에게 '최지영'이 피해여성이라는 사실을 들었을까? 가증스러운 것들.

2차가해자 김상복은 내가 노동부장이었을 당시 노동위원장이었다. 나의 노힘 상근 시절 고통의 근원이었다. 난 다른 상근자들과 비교하는 그자의 시선이 견디기 힘들었고, 훈련이란 명목으로 진행되는 일과표 작성도 모멸스러웠다. 그자와 지낸 노힘 상근과정은 자존감이 철저히 짓밟히는 과정이었다. 그래서 도망치듯 정리했다. 그리고 그 날 술자리는 그 고통을 얘기하려고 만난 자리였다. 근데 3차 술집에 갈 '특별한' 이유가 없었다고? 당신이 그 사연을 못 들었을 리가 없을 텐데 그런 얘기가 나오나? '당신'이란 호칭도 김상복에겐 사치스럽다. 쓰레기 같은 놈.

김상복에 대해서도 노힘에 대해서도 나는 감정분리가 되지 않는다. 김원호 성폭력사건만 떼어놓고 정리되지 않는다. 노힘 상근과정의 고통과 연속선상이다. 노힘은 힘겨움을 토로하고 상근 정리한 나를 무단결근으로 규정하고, '규율'을 내세워 '해임'처리했다. 끔찍한 노힘.

김상복은 내가 피해여성이 아니었다 해도 마찬가지로 '회피노력'에 대해 물었을 거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래도 용서할 수 없다. 그자는 1년여 함께 지낸 나에 대한 걱정과 배려는 털끝만큼도 하지 않았고 오로지 규율과 통제를 내세워 나를 몰아붙였다. 나를 상근해임 처리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자가 내게 보인 적개심에 몇 배로 나는 그자에 대한 적개심을 갖는다.

2차가해자 김상복에 대해서도 박장근과 마찬가지로 '사과문' 제출이 요구됐다. 나에 대한 사과편지도 요구됐다. 김상복은 나에게 사과편지(?)를 썼다. 그리고 노힘엔 '입장문(?)'을 게시했다고 한다.
김상복의 편지엔 사과를 표현하는 사무적이고 형식적인 수식어만 가득 차 있었다. 사과를 표현했다는 자신의 '입장'만 있었다. '무엇이' 2차가해 발언이며, 자신이 '무엇을', '왜' 반성했는지, '무엇이' 미안한지 단 한 줄도 없었다. 모범답안 같이 건조하기 이를 데 없는, 감정도 없는 메일이었다. 내가 누군지도 알면서 나에 대한 걱정과 배려는 단 한마디도 없었다. 난 그자가 2차가해를 인정한다고 느낄 수 없었다. 난 감정적으로 더 상처받았고, "사과로 읽히지 않는다"고 말했다. 전혀. 그저 사과메일을 보냈다는 면피라고 느꼈다.
사과로 읽히지 않는다는 나의 말에 누군가는 이런 얘기를 했다. 김상복이 이런 메일을 보냈다는 것 자체가 그 자에겐 대단한 일이라고. 그래? 내가 그걸 존중해줘야 하나?
그자는 여전히 자신의 권위를 무너뜨리지 않은 채 도도하게 서 있었다. 타인의 상처는 전혀 배려하지 않는 그 오만함을 경멸한다. 역겹다.
그러나 나는 그자에게 다시 사과문을 요구하지 않았다. 어차피 똑같을 것이므로. 그렇게 사건은 끝났다.

05년 봄 악몽이 되살아났다. 민중언론 참세상 발기인 명단에 김상복(노동운동가!)이란 이름이 박혀있었다. 그 이름 석 자를 보는 순간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끔찍했다. 내가 정신차려보니 어느새 2차가해자 박장근은 노힘 대표가 돼있었고, 김상복은 잠수타버렸다. 그러나 난 김상복이 언젠간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운동에 복귀할 것이란 강한 혐의를 갖고 있었다. 드디어 그때가 온 것이다. 김상복은 '노동운동가'로 화려하게 컴백했다. 온 몸이 부들부들 떨려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었다. 그들은 여전히 '권력'을 갖고 있었고 난 무기력했다. 부당했다.

당시 노힘의 한 여성활동가가 김상복의 활동복귀에 대해 문제제기했다. 김상복의 2차가해 사건이 종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활동복귀는 문제라는 내용이었다. 노힘과 진보넷에 공개적으로 문제제기했다. 당시 노힘은 "내용을 떠나 김상복이 사과의 과정을 거쳤고, 대책위도(피해생존자도) 이에 대해 문제제기하지 않았기에 형식적으로 종결됐다"고 말했다. 동의한다. 당시에도 동의했다. 그래서 더욱 무력감을 느꼈고 분노했다. 형식적인 절차만 따지는 그들 앞에서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형식인지 묻고 싶었다. 그 형식의 수혜자는 누구인지.
이에 대해 진보넷은 "제안자 추천과 조직과정에서 이를 정확하게 확인하지 못한 것은 실행단의 과오라 생각한다"고 밝히고, 세 차례의 논의과정을 거쳐 "논란이 되고 있는 사건의 당사자는 창간제안자 및 발기인 명단에 함께 할 수 없는 결격 사유가 된다고 판단했으며, 이런 합의를 토대로 김상복을 창간제안자 및 발기인 명단에서 제외한다"고 밝혔다.

그자의 활동복귀 계획은 무산됐고 김상복은 또다시 잠수 탔다. 나로선 그자가 정말 운동을 청산한 것인지, 예전처럼 시간 때우기로 운동을 잠시 떠난 것인지, 밑바닥에서 자신의 지지자들과 소통하며 바닥정치를 하고 있는 것인지 확인할 길이 없다. 그러나 영구적이든 일시적이든 변한 건 없다. '진정한' 사과 요구에 김상복은 '인정'하지 않고 '도망'간 것뿐이니까. 내게 그자는 자신의 가해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거부'하고 '도망'친 가해자일 뿐이다.

누군가에겐 김상복은 존경스러운 선배로 기억되고 나에겐 끔찍하게 고통스럽고 경멸스러운 자로 기억된다. 각자에게 다양한 개인적 경험과 기억이 있을 수 있겠지. 나에게 그자는 끔찍한 개인적 경험과 기억만 주었을 뿐이다. 나에게 그 자는 인간쓰레기일 뿐이다.

내가 박장근, 김상복을 용서할 수 없고, 여전히 이자들에 대해 참을 수 없는 분노를 갖는 이유는 그자들의 가해발언이 심각해서만은 아니다. 그자들은 내가 피해여성임을 '알고' 나를 '공격'했기 때문이다. '너' 거짓말 하는 거 아냐, '네'가 조심했어야지라고.
당신들이 김원호에 대한 애정으로, 안타까움으로, 배신감으로 아무리 힘들었어도 내 몸에 '각인'된 '기억'만큼 고통스러울까. 너희들이 그걸 알까.

김원호가 "기억나지 않는다"며 징계의 일환인 가해자이수프로그램도 거부하고 도망친 것과, 박장근이 가증스런 발언을 내뱉고도 나에 대한 사과도 없이 뻔뻔스럽게 조직의 대표로 나올 생각을 한 것과, '진정한 사과' 요구에 잠수 타버린 김상복의 태도가 뭐가 다르지? 그들 모두는 '성폭력 가해자'임을 '거부'했다. 그들에게 성폭력 가해자 '인정'은 사과와 반성보다 끔찍한 모양이다.
이젠 내가 분명하게 '말'해주지. 네 놈들은 '사과'도 '반성'도 할 줄 모르는 쓰레기 같은 '성폭력 가해자'라고.
성폭력 가해자의 죄질의 수준은 다르다. 가해의 경중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에게 김원호, 박장근, 김상복은 똑같다. '똑같은' 수준의 가해자일 뿐이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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