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2008년 9월 미국 4위 투자은행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면서 세계경제는 한치 앞을 모르는 암흑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1930년대 세계대불황 이후 최대의 금융위기”라는 말이 공공연해졌다. 2007년 부동산 시장 침체에서 시작된 금융위기는 결국 세계적인 경제위기로 이어졌다.
그러나 위기의 진원지였던 미국경제를 비롯하여 대부분의 각국경제는 1년 반 정도의 마이너스 성장을 한 뒤, 2009년 3/4분기부터 성장률이 플러스로 돌아섰다. 경제지표상으로는 경제위기가 종료된 것이다. “세계대공황 이후 최대의 금융위기”가 사실을 벗어난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경제위기의 심도나 기간을 보면 이번 경제위기는 1930년대 대공황에 견줄 정도는 아니었다. (세계대공황 당시 미국에서는 4년 내내 마이너스 성장을 했고 첫 세 해는 10% 내외의 마이너스 성장을 했다. 그 이후 경제가 성장하다가 4년 뒤에 또 마이너스 성장을 해 결국 2차 대전에 정부의 막대한 군비지출을 통해 완전히 불황에서 탈피하였던 것이다. 물론 라트비아 등 발트 3국과 아일랜드 경우 1930년대 대공황에 근접하는 위기를 경험하고 있다.)
이런 상황의 호전은 위기의 진원지인 미국에서 전형적으로 취해진 금리인하 및 수량완화 같은 통화정책과 대규모 경기부양 같은 케인스주의 정책, 금융부문의 구조조정, G20으로 상징되는 국제적인 공조 등이 일정하게 효과를 발휘해서 가능했을 것이다. 또한 중국, 인도 등 거대 개도국들의 강력한 성장세가 불황기간을 단축시키는 데 상당한 역할을 하였다. 특히 중국의 경우 위기가 한창인 시기에도 마이너스 성장을 하지 않았고, 회복 시에는 수입 증대를 통해 동아시아, 심지어는 독일과 미국의 회복에도 일정한 영향을 주었다.
개선되지 않는 고용 상황
그러면 이제 “세계대공황 이후 최대의 금융위기”는 종료되었고 세계경제도 안정적인 성장을 구가할 수 있을 것인가? 여러 가지를 따져보아야 하겠지만 답은 부정적이다. 미국의 성장세는 대폭 하락하여 더블딥 가능성이 이야기될 정도이고, 그리스로 대표되는 남유럽 몇 나라와 아일랜드의 국가부채는 여전히 현안으로 등장해 있어 해결난망의 과제를 던지고 있다. 이에 미국경제를 중심으로 이후 세계경제의 향방을 전망해 보기로 하자.
미국경제 현황부터 보기로 하자. 미국경제는 2009년 3/4분기에 성장률이 플러스로 돌아선 뒤 2009년 4/4분기 성장률은 5.0%에까지 이르렀다. 그런데 2010년 1/4분기 성장률은 3.7%로 둔화되었고, 2/4분기에는 1.6%로 더욱 낮아졌다. 거의 정체상태에 돌입한 것이다.
‘고용 없는 성장’이라는 표현에서 적절히 드러나듯이 1년여의 플러스 성장 뒤에도 고용상황은 매우 심각하다. 지난 8월 실업률은 9.6%로 2009년 10월에 기록한 직전 최고치 10.1%에 비해서는 약간 낮아졌지만, 5월에서 8월 사이 실업률은 9.5%에서 9.7% 사이로 별다른 변화를 보이지 않고 있다. 즉 최근 들어 실업률이 낮아지거나 고용사정이 호전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미미한 성장으로 인해 신규 고용 창출이 거의 되지 않고 있다. 이런 실업률은 위기 이전 4-5% 실업률에 비춰보면 매우 높은 것이고, 장기실업자 비율 등 여러 고용상황을 보여주는 지표를 보건대 전후 최악의 고용상황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면 이후 미국경제는 어떤 모습을 띨까? 우선 간단히 지적할 사안은 하반기부터 경기부양 규모가 감소할 예정이라는 것과 지난 1년 동안의 성장 중 재고변화의 기여도가 약 60%에 달한다는 점이다. 즉 경기부양 감소 그 자체로만 보면 성장률은 마이너스를 나타낼 것이고, 재고증가로 인한 성장률 제고 효과가 별로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부동산-주택 부문의 불안한 게걸음 행보
더욱 중요한 몇 가지 문제를 살펴보자. 이번 위기의 진원지였던 주택부문은 약간 호전되다가 다시 악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주택판매량은 금융기관 차압주택 판매가 반을 차지할 정도로 극히 부진하고, 주택가격은 약간 상승한 후 게걸음을 하다가, 7월부터 다시 하락을 하고 있다는 보도다(<그림 1> 참조). 신규주택 구입 시 제공되던 8,000달러 세제혜택 조치가 4월로 종료되고 난 뒤의 일이다. 물론 케이스-쉴러 지수로 33-34%가 하락했던 1차 하락 때와 같은 급격한 하락이 발생할 가능성은 거의 없기는 하지만, 추가적으로 5-10%가 하락한다 하더라도 이는 많은 문제를 야기할 것이다. 원리금 상환 연체 및 유질처분은 늘어날 것이고, 주택담보대출에 기초하여 발행된 각종 유사채권들의 가격은 다시 하락할 것이며, 아직 이런 채권들을 보유하고 있는 금융기관들은 다시 부실해 질 것이다. 또한 지금도 상환해야 할 주택담보대출금보다 주택가격이 낮은 일명 ‘깡통주택’(마이너스 에쿼티)을 보유하고 있는 가구수가 주택담보대출 이용가구의 약 23% 정도에 이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비율은 더욱 늘어날 것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이들 가계의 소비가 더욱 움츠러들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사실 이들은 ‘생산수단을 전혀 소유하지 못하고 자신의 노동력만 소유한’ 노동자가 아니라, '깡통주택'이라는 마이너스 자산까지 소유하고 있어서 노동자의 지위에도 미달한 일종의 주택노예라 칭할 만하다. 실제로 이들은 실업을 당했어도 노숙을 무릅쓰지 않고는 멀리 다른 곳에서는 일자리를 구할 수도 없다. 뉴욕타임즈에 정기 칼럼을 쓰고 있는 크루그만 교수는 미국에서 신규 채용공고가 꽤 늘고 있는데도 실업률이 잘 떨어지지 않는 이유 중의 하나로 ‘깡통주택’에 긴박되어 있는 노동자가계를 지목하기도 한다). 문제가 심각한 것은 이런 주택부문 침체가 단기에 해소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 <그림 1> CoreLogic 주택가격 지수, 2010년 7월(2000년 1월 = 100) [출처: http://www.calculatedriskblog.com/] |
위안화 문제의 교착
둘째, 대외 조건을 살펴보자. 우리가 보기엔 미국경제가 유로화나 엔화, 위안화의 대폭적인 절상을 통해서 수출을 늘려 성장률을 끌어올리는 것도 만만치 않아 보인다. 유럽은 단기간에 쉽게 해결할 수 없는 국가부채 문제를 안고 있어서 유로화가치가 더 떨어지지 않으면 다행이고, 엔화가치도 더 이상 상승할 수 없는 수준에 도달해 있다.
문제는 위안화절상 여부이다. 중국은 막대한 무역수지 흑자를 구가하고 있어 위안화 절상 여력은 꽤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경제위기 기간에 위안화가치를 달러에 고정시켜 놓았던 중국당국은 관리변동환율제로 복귀하여 위안화가치가 일정하게는 다시 시장에서 결정되도록 하였다. 그러나 몇 달 동안 위안화 가치 상승은 1% 정도에 그쳐 미국의 기대에는 현저히 못 미쳤다. 크루그만 교수 같은 이는 중국의 이런 환율관리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며 미 정부가 중국에 대해 상당한 정도의 수입관세 부과 등 단호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중국 자금이 미국에서 철수하여 달러가치가 하락할 것을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된다면 미국의 수출을 늘릴 수 있어 미국에 오히려 좋은 일이라고까지 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의 환율관리가 '부자 몸 사리기' 측면이 없지는 않고 이것이 세계경제나 미국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해도, 개도국에서의 대폭적인 평가절상-거품형성-경상수지 악화-거품붕괴-초민족자본 철수-경제위기의 싸이클이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마당에 위안화의 대폭적인 절상을 회피하려는 중국의 처신을 비난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결국 중국을 설득하고 강제해낼 수 있는 수단이 없다면 위안화 절상을 통한 대 중국 수출 증가도 여의치 않아 보인다.
쉽지 않은 추가 경기부양
다음으로는 추가적인 경기부양 가능성을 살펴보자. 이후 현재의 저성장과 고실업을 상당부분 해결할 정도의 추가적인 경기부양 가능성은 있는가? 이도 부정적이다. 성장률이 지지부진하고 높은 실업률이 지속되면서 오바마와 민주당의 지지는 하락하고 있어 국민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공화당을 견제하면서 상당 규모의 추가적인 경기부양안을 제출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더구나 정부부채 규모가 커지고 있어서 소소한 규모면 몰라도 현재의 실업률을 대폭 낮출 정도의 대규모 추가부양책은 오바마와 민주당마저도 쉽게 꺼낼 수 있는 카드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11월로 예정되어 있는 중간선거는 그야말로 경제위기 책임 떠넘기기 양상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매우 농후해 보인다.
이상을 종합하면, 미국경제의 성장률은 하반기 들어 더욱 악화되고 실업률은 거의 개선되지 않을 것으로 보이며, 10% 내외의 실업률은 상당기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경제위기를 비교적 정확하게 예측한 루비니 교수는 하반기 미국경제의 성장률이 1% 이하에 머물 것이며, 더블딥과 디플레이션의 위험도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 <그림 2> 미국 비금융법인자본 수익률(1960-2009) [출처: 자료: http://www.bea.gov] |
이윤율 반등의 가능성 크지 않아
이윤율 대용으로 비금융법인자본 세전수익률(=영업이익/(순자본스톡+재고))을 이용하여 좀 더 장기적인 관점에서 미국 자본주의의 향방을 이야기해 보자. 주지하다시피 1960년대 중반 전후 최고치에 오른 미국의 이윤율은 추세적으로 하락한다. 시기를 보다 세분해보면 1980년대 초반까지 추세적으로 하락한 이윤율은 초민족적 거대자본들이 IT혁명과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를 통해 노동자와 개도국에 대한 착취를 강화하면서 1980년대 중반에서 1990년대 말까지 미약하나마 추세적으로 상승한다. 1990년대 말-2000년 초반 IT 거품형성과 붕괴로 이런 기조는 꺾이고, 2007년 부동산-주택 부분의 거품형성과 붕괴는 이를 다시 확인한다. 즉 80년대 중반부터 1997년까지의 상승추세가 그 뒤에는 이어지지 않고 있다. 그리고 미국의 자본생산성(=국민소득/유형고정자산) 추이도 1980년대 중반부터 2000년까지는 상승하다가 그 이후에는 하락한다(<그림 3> 참조).
▲ <그림 3> 미국의 자본생산성(1929-2009 |
이후 이윤율과 자본생산성의 추세는 어떻게 될까? 이윤율(=자본생산성×이윤분배율)에 규정적인 것은 사실 자본생산성이므로 자본생산성의 추이를 예상해보는 것이 우선이다. 자본생산성의 상승은 새로운 기술이나 혁신의 도입이 이루어져야 하고 이는 새로운 대규모의 자본축적을 전제한다. 그런데 현재와 같은 수요부족의 상황에서는 작아진 이윤량으로 인해 새로운 대규모의 자본축적이 이루어질 수가 없고, 고용인구의 감소 혹은 정체로 분업 협업의 확대를 통한 생산성제고의 가능성도 거의 없다. 결국 2000년 이후 지속되고 있는 자본생산성의 후퇴 내지 정체상태는 쉽게 바뀌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사실 2000년대 중반 주택부문에서의 거대한 거품형성 및 붕괴는 미국자본주의의 후퇴를 상징한다고 하겠다. 1990년대 말 IT 거품은 생산성증대의 결과냐 아니냐를 논란해볼 여지라도 있었으나 주택부문 활성화에서 투자은행 등 거대 금융기관들이 얻은 막대한 이익은 순전한 금융조작의 결과였을 뿐이다).
이윤율은 근로조건의 하락이나 상승, 가동률의 증감, 달러가치의 하락 또는 상승으로 인한 해외투자자산의 소득 증감 등으로 약간의 부침을 겪겠지만 1997년의 수준을 넘어설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이런 가운데 미 주택부문의 추가적인 악화, 그리스에 이어 아일랜드, 포르투갈, 스페인에 이르는 남유럽 상황의 현저한 악화, 중국의 저성장 궤도로의 진입 등 예상치 못한 내외부 변수와 만나게 된다면 이윤율은 2001년이나 2009년 수준 이하로 내려갈 가능성도 없지 않아 보인다.
계속되는 위기의 가능성
자본생산성과 이윤율 운동이 이런 궤적을 그린다고 한다면 미국자본주의는 기본적으로는 상당기간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면서 지루한 불황의 모습을 보일 것이고, 앞에서 언급한 부정적인 요인들이 겹친다면 심각한 위기를 또다시 겪을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중국 등 몇 나라는 미국 및 유럽과는 다른 양상을 보일 수 있지만, 이들도 자본주의 중심국의 위기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할 것이다. 각국별로 양상이 차별적이겠지만 세계 경제위기는 아직 완전히 끝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위기에 대한 구체적 분석과 체제적 대안 마련, 이를 위한 운동의 모색은 여전히 유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