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커의 예산수정안
워커의 예산수정안은 2월 25일에 위스콘신 주하원을 통과했고, 이제 주상원에서의 투표를 기다리고 있다. 이 예산수정안에 따르면 주와 지방정부에 고용된 (경찰, 소방관, 주경찰관을 제외한) 대부분의 노동자의 연금과 건강보험 비용 부담분이 각각 50%와 최소 12%씩으로 설정되어, 실질적으로 임금의 약 7%가 삭감된다. 또한 예산수정안은 임금인상을 소비자물가지수 이하로 한정하고, 계약을 일 년 주기로 제한하였다. 게다가 새 수정안은 주와 지방정부에 고용된 대부분 노동자가 수당이나 노동조건과 같은 쟁점으로 교섭하는 것을 금지하고, 물가인상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까지의 임금 협상만을 허용한다. 마지막으로 노동조합은 매년 투표를 통해 교섭대표로서의 증명을 갱신해야 하며, 급여에서 노동조합비를 공제하는 것이 금지된다. 이와 비슷하게 공공부문 노동자의 임금, 수당, 권리를 빼앗는 예산안들이 테네시, 인디애나, 오하이오, 메인, 플로리다, 미시간, 오클라호마를 포함한 여러 다른 주 의회에서 발표되었다.
공화당 의원들은 이러한 정책들이 막대한 주 재정적자를 처리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정당화한다. 주정부가 재정위기에 처했기 때문에 공공부문 노동자들이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희생을 치러야 한다는 것이다. 워커는 자신의 법안이 위스콘신의 현재 예산에서 1억 3800만 달러의 적자와 향후 2년간 예상되는 36억 달러의 부족분을 극복하고 수천 명의 공공부문 해고를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예산안에 격렬히 반대했던 노동조합들과 위스콘신주 민주당 의원들은 단체교섭권이 온전히 유지된다면 임금과 수당 삭감에 동의하겠다면서 주지사와 타협하려 노력했다. 하지만 워커 주지사는 이러한 절충안조차 받아들이지 않았다. 공공부문 노동조합의 협상력을 제한하지 않으면, 미래에 주 정부가 적자에 맞서기 위해 필요한 정책들을 취할 자유가 없어져 어려움에 처한다는 것이다. 공화당 의원들은 전국적으로 이와 비슷한 노선을 취하고 있으며, 모두가 고통 받고 있는 상황에서 공공부문 노동자들과 노동조합을 이기적으로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집단으로 묘사한다.
주 재정위기, 과연 얼마나 심각한가?
의심의 여지가 없이 미국은 상당한 규모의 재정위기에 직면해있다. 연방, 주, 지방 정부의 부채를 모두 합치면 올해 안으로 1946년을 제외하면 2차 세계대전 이후 최고치에 달할 것이다. 미국의 2011년 국가부채는 GDP 대비 100%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44개 주와 컬럼비아 특별구에서 대부분 2011년 7월 1일에 시작되는 2012년 회계연도 예산 부족이 예상된다. 이는 비단 올해에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지난 3년간 경제위기로 인해 늘 예산 부족에 시달렸다. 주정부 적자가 발생한 주 원인은 2009년 이후 세금 수입이 급격히 감소했기 때문이다. 이와 더불어 주정부들은 막대한 규모의 연금기금의 적자에 직면했다. 지난 몇 년간 주정부가 필수 항목 예산을 삭감하지 않도록 했던 연방정부의 보조금은 2011년 회계연도 말이 되자 거의 소진됐다.
미국의 우파들은 재정 문제의 책임을 공공부문 노동자와 이들에게 제공되는 복리후생 제도의 탓으로 돌린다. 이는 보수집단의 공통된 주문이다. 하지만 사실 주정부 적자의 근본적 원인은 금융자본의 무모한 투기행태와 그로 인해 촉발된 2008~2009년 경제위기에 있다. 지난 30년 간 월스트리트의 펀드매니저들은 연금기금 투자 포트폴리오를 유치하여 엄청난 수수료를 챙기는 한편, 이를 리스크가 높은 헤지펀드, 사모펀드, 부동산 투기와 부채담보부채권(CDO)에 투자하였다. 재정위기에 처하자, 109개 연금기금은 약 1년간 8,650억 달러의 손실을 입었다. 동시에 실업과 임금 하락으로 세수가 감소했다. 현재 주 세수는 위기 전에 비해 12%(인플레이션 반영) 감소했다. 이에 따라 주정부는 공공지출을 급격히 줄였지만, 여전히 커다란 예산 공백에 직면해있고 그것을 채울 세원을 찾느라 고심 중이다.
놀랍게도 재정위기로 인해 가장 타격을 입은 지역은 위스콘신, 인디애나, 오하이오와 같이 공공부문 노동자들이 투쟁하고 있는 지역들이 아니다. 캘리포니아주는 2011년 회계연도에 처리할 수 없었던 적자 82억 달러를 포함하여 회계연도 2012년에 254억 달러의 적자가 예상된다. 이는 2011년 회계연도 예산의 29.3%에 달한다. 일리노이는 2011년 회계연도 예산의 44.9%인 150억 달러의 적자가 예상된다. 이에 비해 오하이오의 2012년 회계연도 예산 적자는 예산의 11.0%인 30억 달러로, 비교적 낮을 것으로 예상된다. 인디애나는 한 해 예산의 2.0%인 2억 7천만 달러로 예상된다.
위스콘신의 2012년 회계연도 예산은 18억 달러의 적자를 예상하고 있다. 이는 현재 예산의 12.8%이다. 현재 주정부의 적자 예상분 1억 3700만 달러는 예산의 단 1%로, 위기라고 말할 수준은 아니다. 더욱이 위스콘신 적자 예산을 편성한 것은 워커 주지사 자신이다. 워커가 1월에 취임한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기업에 1억 4천만 달러의 감세를 허용한 것이다. 이로 인해 그가 지금 예산수정안을 피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근거가 되는 주 예산 문제가 야기된 것이다. 정부 지출 삭감을 강제하기 위해 감세를 이용하는 정책, 소위 “야수(정부) 굶기기”로 알려진 이러한 정책은 미국 보수주의자들이 점점 더 선호하는 방법이다. 워커 주지사는 그의 예산수정안이 일자리를 지킨다고 주장하는 반면, 비영리연구조직인 위스콘신 미래 연구소(Institute for Wisconsin’s Future)은 공공부문 노동자 임금의 감소는 민간부문에 파급효과를 일으켜 주 전체적으로 9,000에서 11,500개의 좋은 일자리가 없어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노동조합에 대한 공격과 민주당
분명히 미국의 재정위기는 주정부와 공공부문 노동자들 간 싸움의 배경을 이루지만, 그것이 유일한 쟁점은 아니다. 오히려 최근 여러 주에서 새롭게 등장하는 법안들은 기업 엘리트와 그들을 지지하는 우파적 정부 관료들이, 이미 줄어들고 있는 미국 노동조합의 힘을 완전히 무력화하기 위해 즐겨 사용하는 대표적 전략이다. 11월 중간선거에서의 성공과 자유지상주의 티파티 운동의 지지로 한껏 고무된 보수주의자들은 재정 문제를 민주당의 전통적 지지세력인 노동조합을 공격하는 구실로 활용하고 있다. 특히 노동조합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힘을 자랑하는 공공부문이 주 공격 대상이 되고 있다. 민간부문의 조직률이 7%로 떨어진 반면 공공부문 노동조합은 36%의 조직률을 유지할 수 있었다. 보수주의자들은 공공부문 노동조합의 단체교섭권을 제한하고, 조합비 납부를 어렵게 하고, 노동조합대표권승인을 위한 투표를 매년 실시하도록 함으로써, 노조 조직률을 낮추고 민주당의 지지 기반을 약화시키려 한다.
보수주의자들은 찰스 녹스, 데이비드 녹스와 같은 신자유주의 기업 엘리트로부터 강한 지지를 받고 있다. 그들은 지금 노동조합 반대를 선동하는 공화당의 선거운동에 수십만 달러를 퍼붓는다. 워커는 선거운동 당시 녹스 기업의 정치행동위원회로부터 4만3천 달러를 받았다. 녹스 형제는 워커의 민주당 반대 후보를 공격하는 데 340만 달러를 썼던 공화당 주지사 연합에도 1백만 달러를 기부했다. 데이비드 녹스와 티파티 운동 지지자들이 설립한 ‘번영을 위한 미국인’이라는 단체는 노동조합의 단체교섭권을 축소하려는 워커의 공약을 지지하는 캠페인 광고에 34만2천 달러를 사용했다.
민주당은 이러한 보수주의자들의 공세에 상당한 위협을 느끼고 있다. 그래서 민주당은 워커의 법안이 통과되지 않도록 통상적이지 않은 전술을 구사하고 있다. 위스콘신의 민주당 주 상원의원과 인디애나 하원의원들은 투표에 필요한 정족수에 미달하도록 회기 동안 일리노이에 ‘피신’하기도 했다. 노동조합도 평상시와 달리 매우 공세적인 전술을 시도했다. 미국 제1노총(AFL-CIO) 가맹 전미연방주지방정부노동자연맹(AFSCME) 및 전미교직원노조연맹(AFT) 산하 지부의 협의체인 중남부위스콘신노동자연맹에는 민간부문 노동조합도 포함되어 있는데, 이들은 현재 총파업을 준비하고 있다. 이는 미국에서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일이다. AFSCME의 전국 본부와 AFL-CIO는 위스콘신, 인디애나, 오하이오에서 투쟁을 적극 지원하고 전국적으로 연대 집회를 조직하고 있다.
노동계급에 대한 공격
물론 공공부문 노동조합에 대한 공격은 단지 민주당에 대한 공화당의 공격이 아니다. 신자유주의적 자본가들과 자유지상주의적 정치인들로 구성된 ‘역사적 블록’이 노동자들에게 자본주의의 위기의 책임을 전가하려는 시도인 것이다. 동시에 주와 연방 수준에서 자신의 정치적 의제를 밀어붙이기 위한 것이다. 달리 말하면, 그것은 전체 노동자계급에 대한 공격이다. 공공부문 노동조합은 이러한 공격에서 유일한 희생자가 아니며, 공화당 역시 유일한 가해자가 아니다. 민간부문 노동조합 역시 많은 곳에서 공격 대상이 되고 있다. 예를 들어, 한 사업장에서 조직대상 노동자의 과반수가 노동조합 결성에 찬성하여 노조가 단체교섭 대표권을 정상적으로 획득하더라도, 노동조합 가입을 의무 조건으로 노동자를 고용하거나 또는 종업원 전원이 노동조합비를 의무적으로 납부하는 것을 금지하는 노동조합관련법(Right to Work Act)이 현재 여러 주에서 추진되고 있다. 오바마 정부는 자신이 어느 편인지를 분명히 보여주었다. 오바마 정부는 작년 말 향후 2년간 연방정부 소속 노동자들의 임금을 동결하는 안에 이어 부자들에 대한 감세 연장안을 발표했다. 물론 이것은 실업, 저임금, 열악한 노동조건으로 고통 받는 민중을 위해서가 아니라 월스트리트의 긴급 구제에 수조 달러가 들어간다는 의미이다.
위스콘신에서의 투쟁과 전국 각지에서 펼쳐지고 있는 여러 투쟁은 민주당을 강화하기 때문에 중요한 것이 아니다. 미국에서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최초의 공세적인 대중운동이며, 노동자계급의 단결과 힘을 강화할 기회이며, 또 이러한 운동이 계급과 계급 투쟁에 대한 논의를 재개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에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미국 노동조합이 민주당과 밀접한 제휴 관계에 있고 좌파 전반이 이념적 대안을 결여하고 있기 때문에, 대다수의 노조 간부들과 진보적 지식인들은 계급이나 계급투쟁이라는 분석틀로 최근의 노동자투쟁을 바라보지 않는다. 대신 이들은 민주당이 대변한다고 흔히 여겨지는 열심히 일하는 대다수 ‘중간계급’ 미국인과 공화당과 티파티 운동, 그리고 이들을 지지하는 소수 부유층 간의 싸움으로 노동자투쟁을 설명하려고 한다. 이들이 이른바 ‘중산층 생황양식’을 보장하는 ‘진보적인’ 오바마 정부를 무력화하려고 하기 때문이라는 식이다. 이러한 인식은 대단히 심각한 문제를 지닌다. 장기적으로 노동자운동에 필요한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에 대한 심도 깊은 비판을 발전시키기 위한 잠재력을 제한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노동자 운동의 출발을 위하여
현재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노동자 투쟁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노동권을 쟁취하기 위해 미국 노동자들은 수적으로나 질적으로 대단히 강력한 투쟁을 펼치고 있다. 최근 미국 노동자 투쟁은 경제위기가 처음 발생했을 당시보다, 그리고 경제위기 발발 이전 상당 기간과 비교했을 때보다 훨씬 강력하다. 노동자 투쟁은 시민들로부터 광범위한 지지를 받고 있다. 그 사실은 지난주에 전국 각지에서 열린 연대집회의 규모만 봐도 알 수 있다. 이 정도 집회를 조직하기 위해서는 통상 수개월의 조직화와 수천 달러의 비용이 필요한데, 이번에는 불과 며칠 만에 달성될 수 있었다. 온라인 네트워크도 중요한 역할을 하긴 했지만, 위스콘신 투쟁의 영향을 받은 개인들의 적극적 참여가 더욱 중요한 역할을 했다. 반전 활동가들도 노동자운동과 연결고리를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반전평화 운동은 공공부문 노동조합에 대한 공격이 아닌 아프가니스탄 파병 철수와 국방비 감축을 통해 연방정부 예산 폭을 확대함으로써 국가 재정위기를 해결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위스콘신 투쟁은 미국에서 노동자운동이 아래로부터 다시 새롭게 부활하는 초석이 되고 있다. 위스콘신 투쟁을 통해 확고한 계급의식과 변혁적 대안을 제시하기에는 아직 이르지만, 어디로건 첫 발걸음은 띄어야 여정이 시작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