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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정 일자리 협약, 노동자를 기만한 고용정책

박근혜 정부 고용정책에 대한 노동자의 대안과 투쟁이 필요하다

지난 5월 30일, 문진국 한국노총 위원장, 이희범 한국경총 회장과 방하남 고용노동부 장관은 ‘고용률 70% 달성을 위한 노사정 일자리협약’을 체결했다. 한 달 전부터 ‘노사정 대표자회의’를 구성해 고용률 제고방안을 논의한 결과다. 이어 정부는 6월4일, 관계부처 합동으로 ‘고용률 70% 로드맵’을 발표하였다.
고용노동부는 이번 협약에 대해, 일자리 문제에 대한 노사정의 공동인식을 확인한 것은 물론, 향후 일자리 로드맵 추진에 있어 상당한 추진동력이 확보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자평하였다. 그러나 이번 협약은 형식적으로도 ‘사회적 합의’로 볼 수 없으며, 고용정책 자체 측면에서도 심각한 문제가 있다.


노동자를 배제한 ‘사회적 합의’

이번 일자리 협약은 노사정 협약의 형식은 띠고 있지만, 사회적 공론화조차 전혀 거치지 않고 밀실에서 논의된 결과물이다. 민주노총을 배제한 것은 물론, 한국노총은 심지어 내부 구성원들과 논의도 없이 협약을 체결했다. 금융노조 등 한국노총 소속 일부 산별들은 이번 합의를 인정할 수 없다고 강하게 반발하기도 했다. 합의문 내용도 이미 노동부가 준비하고 있던 정책을 협약서의 형태를 빌어서 발표한 것에 불과하다.
이해관계 주체들의 협의라는 최소한의 외양마저 갖추지 못했다는 점에서 이번 협약서는 ‘야합’이라 부를 수밖에 없다. 협약서 첫머리에서부터 “기업의 성장과 투자 활성화가 양질의 일자리 확대, 근로자의 삶의 질 개선을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며, 현재 노동자들의 생존권 위기를 완전히 왜곡하는 진단에서 시작한다.
그 결과 정리해고 문제를 다루되 쌍용차, 한진중공업과 같은 정리해고 노동자는 배제되었다. 비정규직 문제를 다루지만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는 탄압하고, 특수고용노동자 문제를 다루지만 건설노조나 화물연대에는 의견조차 묻지 않았다. 노동조합의 입장에서 기본적으로 반영해야할 노동기본권 보장 등 집단적 노사관계도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정작 대화를 요구하는 노동자들을 배제하면서 나온 고용정책의 내용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만병통치약이 된 시간제 일자리

박근혜 대통령은 이번 일자리 협약과 고용률 로드맵 발표 전부터 시간제 일자리에 대해 언급하는 등 고용 정책을 강조해왔다. 심지어 (다른 경제지표에 앞서) ‘고용률 70%, 중산층 70%’ 달성을 박근혜정부의 국정 최우선 과제로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실제로 한국의 고용률(15세 이상)은 2012년 59.4%에 지나지 않아 OECD 가입국 중에서도 매우 낮은 형편이다.
과거 고용정책에서 실업률을 낮추는 것이 목표였다면, 최근에 고용률이 강조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이른바 ‘고용없는 성장’ 과정에서 일자리를 구하는 것을 포기한 실망실업자가 크게 늘어나 실업률이 고용지표로서 의미를 상실해갔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고용률 기준이 되는 경제활동인구 중 취업자는 반드시 전일제로 일하는 노동자일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기존 일자리를 쪼갠 것에 불과한 시간제 일자리는 고용률 수치를 높이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고용률을 5년 만에 10% 높이겠다는 정책의 실현가능성도 문제이지만, 그 방법은 더욱 문제다.
시간제 일자리가 ‘나쁜 일자리’라는 비판에 직면하자, 정부는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라는 개념을 제시하였다. “고용이 안정되고 불합리한 차별이 없으며 기본적 근로조건이 보장”되는 시간제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와 같은 조건의 정규직 일자리 영역에서는 사용자가 시간제 일자리를 만들 유인이 없는 반면, 저임금·비숙련 영역에서는 시간제 일자리를 도입할 유인이 확대된다. ‘알바 일자리’만 확대되는 셈이다. 일자리 협약은 고임금 전문직종에서도 시간제 일자리를 확대하겠다고 하지만, 노동생산성과 임금 측면에서 사용자와 노동자 모두 이를 수용할 유인은 낮다.

기업규제 완화로 고용률 상승?

한편, 일단 고용률부터 높이고 보자는 정부 정책은 출산율과 생산가능인구 변화를 배경으로 한다. 한국은 급격한 출산율 저하와 인구 고령화로 인해 2017년부터 생산가능인구가 감소세로 전환된다. 절대적인 생산가능인구가 감소되는 상황에서 고용률마저 악화된다면 노동력 투입이 급감하게 되어 임금은 상승하고 성장률도 저하될 수 있다. 이를 선제적으로 예방하기 위한 정책이 노동시장에 진입해있는 인구를 미리 확대하는 것이다. 최근 개정된 ‘고령자고용촉진법’을 통한 정년연장 법제화도 이러한 맥락이다.
출산율 저하는 주로 비정규직노동자를 중심으로 실질 가계소득이 저하되는 가운데 높은 자녀 양육, 교육 비용을 부담할 수 없기 때문에 발생한다. 그렇다면 저임금노동자의 가계소득을 보장하고 양육과 교육 비용을 사회적으로 부담하거나 낮출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 고용률 저하는, 굳이 노동시장에 나설 의지를 갖기도 힘들 정도로 임금과 고용이 열악한 일자리만 존재하는 노동시장 조건 탓이다. 그렇다면 저임금 노동자의 임금과 고용을 보장할 수 있는 방안이 당연히 필요하다.
그러나 정부는 출산율과 고용률이 동시에 저하되는 문제의 원인을 외면한다. 일자리 협약과 정부의 고용률 70% 로드맵은, 오히려 기업에 고용관련 규제를 풀어주면 일자리가 늘어난다고 진단한다. 그 동안 재벌기업은 사내유보와 금융투자를 늘이면서도 생산적 투자는 더욱 축소해왔다. 그나마 필요한 영역은 비정규직을 사용하거나 외주화해왔다. 이미 이런 상황에서 고용관련 규제를 더 풀어준다고 일자리 공급이 늘어나지 않는다. 애초에 고용률에 진짜 관심이 있기는 한 것인지, 진짜 의도는 기업에 노동법 상 규제완화를 선물하기 위한 포장에 불과한 것이 아닌지조차 의심스럽다.

정부의 일자리 정책은, 노사정 일자리 협약이라는 기만적인 형태만큼이나, 고용문제에 대한 진단과 대책에 있어 자본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노동자운동이 기만적인 노사정 협약을 인정할 수 없는 것은 물론이다. 더 나아가, 정부와 자본의 전면적인 고용정책 변화 공세에 대응하기 위한 요구를 수립하고 전체 노동자들의 투쟁을 모아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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