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앞서 새누리당은 국정원 대선개입 논란에 NLL 대화록 공개라는 ‘비상계획’으로 대응했다가 김무성∙권영세 녹취록 공개로 거센 역풍을 맞은 상황이다. 민주주의를 유린한 국정원과 집권여당에 대한 비판 여론이 들끓었고, 지난 28일에는 2,000명이 넘는 시민들이 촛불집회에 모여들었다.
보수세력의 분주한 대응
분주해진 보수세력은 시급히 퇴로를 찾기 시작했다. 청와대는 무조건 침묵을 유지하고, 김무성 의원과 권영세 주중대사는 관련 사실을 일체 부인하며, 새누리당은 민주당을 불법 도청 전문 정당이라 몰아세웠다. 보수언론들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사실상’ NLL을 포기한 발언을 했고 회담에 임하는 태도가 비굴했다며 역공을 펴는 한편, 지지율 하락에 대응해 한중 정상회담 성과를 과대포장한 기사를 대방출했다.
8월 15일까지 진행될 국정조사에서도 보수세력은 물타기에 전력을 기울일 것이다.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구성, 공개 여부, 조사 대상, 증인 채택 등 모든 세부쟁점마다 새누리당은 사사건건 시비를 걸 것이다. 무엇보다 새누리당은 국정조사의 목적인 진상규명 자체를 방해하는데 온 힘을 쏟을 것이다. 특히 민주당이 김용판 전 청장의 배후를 들춰내낼 경우 정부가 정당성과 도덕성에 치명상을 입게 되므로 새누리당은 모든 수단을 동원해 이를 저지하려 할 것이다.
물타기로 일관하는 보수세력
NLL 대화록 원본과 부속자료가 국회에 제출되면 여야 간 정쟁은 더욱 깊은 수렁에 빠져들 것이다. 지난 6월 국정원의 자체 대화록 공개는 물타기를 위한 것이지만, 북한 3차 핵실험 이후 군사적 대결과 6월 남북당국자회담 무산 등 남북관계가 경색된 상황에서 북한을 더욱 강하게 압박하려는 시도로 풀이할 수 있다. 이후 NLL 대화록을 둘러싼 논쟁이 촉발되었지만 그 초점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진의에 맞춰지면서 의미없는 논란만 반복하고 말았다. 여야가 공유하는 ‘NLL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 서해에서의 군사적 충돌을 빚어내는 원인이라는 핵심이 논쟁에서 철저히 배제되었기 때문이다. 향후 국회에서 NLL 회담록 원본을 열람하게 되면 다시 한번 노무현 전 대통령 발언의 진의를 둘러싼 지루한 논란이 반복될 것이다.
국정원 사태에 대한 대중의 관심도가 떨어질 때까지 물타기와 폭로전을 반복하면서 이슈 자체에 대한 피로감을 누적시키는 것이 새누리당의 의도다. 이렇게 되면 국정조사는 국정원 사태를 초래한 원인과 이에 대한 사회적 성찰을 이끌어내지 못한 채, 꼬리자르기식 책임자 문책과 형식적인 국정원 개혁으로 마무리될 가능성이 높다.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 규탄 투쟁으로
6월 중하순 이후 시작된 촛불집회는 국정원 대선개입에 대한 공분을 모아내는 역할을 하고 있다. 촛불집회 참가자들은 진상 규명, 책임자 처벌, 국정원의 전면적 개혁을 주장하고 있다. 여야 간 국정조사 합의 직후에 열린 대규모 촛불집회에서는 새누리당이 진상규명을 방해할 가능성이 높다는 인식 하에 ‘제대로 된 국정조사’를 요구하며 장외 촛불집회를 통해 장내를 감시하고 압박하자는 주장이 여러 차례 제기되었다. 27일 시민단체를 주축으로 일부 민중운동 단체가 함께 결합한 ‘국정원 대선개입과 정치개입 규탄 및 축소은폐 의혹 규명을 위한 시민사회단체 긴급 시국회의’ 역시 △제대로 된 국정조사 실시 △공범자 처벌 △정치개입 근절을 위한 국정원 전면 개혁을 요구사항으로 제시했다.
그런데 앞서 지적했듯, 45일 간의 국정조사 기간은 추가 폭로와 물타기가 지속되는 국면이고, 보수세력의 총공세 속에서 의미 있는 국정조사 결과를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 또한 이번 국면이 ‘박근혜 대 노무현’ 이라는 구도로 표상할 가능성도 크다. 따라서 민중운동은 이번 사태에 대응하는 분명한 자기목표를 설정하고 그것을 향해 힘을 집중해야 한다.
이미 국정원과 집권여당이 공모하여 정치에 개입해왔다는 사실이 폭로된 마당에 국정조사를 철저히 감시하는 것으로 향후 투쟁의 목표를 한정할 필요는 없다. 이미 모든 정황은 국정원 정치개입의 배후로 박근혜 대통령을 가리키고 있다. 정치공작에 의해 권력을 유지해 온 보수세력의 실체를 폭로하고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에 의한 민주주의 유린을 강력하게 규탄해야 한다. 또한 ‘제대로 된 국정조사’를 촉구하는 촛불집회 참여에 국한되지 않는 다양한 방식의 투쟁을 벌여내야 한다.
국정원은 해체되어야 한다
이번 사태는 국정원이 넘지 말아야 할 선을 침범해 ‘좁은 의미의 정치’, 즉 선거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면서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하지만 국정원은 정부에 대한 비판세력, 사회의 근본적 변화를 추구하는 사회운동을 감시하고 억압해왔다는 점에서 ‘넓은 의미의 정치’, 즉 계급투쟁에 항상 개입해왔다. 일례로 이번 논란의 와중에 범민련 소속 활동가가 공안당국에 의해 구속되는 일도 있었다.
이명박 정부 시절동안 국정원은 4대강 사업에 대한 비판여론을 잠재우고 반값등록금 투쟁 확산을 차단하려 했고, KEC∙발레오만도∙상신브레이크∙유성기업 등 금속노조 핵심사업장에 대한 노조파괴 시나리오에도 개입해왔다. 국정원 내부 게시판에는 ‘종북세력 척결과 관련, 북한과 싸우는 것보다 민노총, 전교조 등 국가 내부의 적과 싸우는 것이 더욱 어려우므로 [...] 지부장들이 유관기관장에게 직접 업무를 협조하라”는 ‘원장님 지시·강조 말씀’이 버젓이 게시되어 있었다.
이처럼 국정원은 체제 내부의 모순을 드러내는 사회운동을 (외부의 적과 연계된) 내부의 적으로 간주해 억압하는 것을 그 본질로 한다. 5.16 쿠테타를 ‘혁명’이라 부른 박정희가 중앙정보부를 설립했던 목표 역시도 ‘반혁명 세력에 대한 효과적 대처’였다. 중정에서 안기부로, 안기부에서 국정원으로 그 이름을 달리했지만, 대통령 직속기관으로 정보를 수집하고 수사할 권리를 부여받은 국정원이 정치적 중립을 지킨다는 것은 애초에 어불성설이다. ‘넓은 의미의 정치’와 ‘좁은 의미의 정치’ 간의 경계는 항상 모호하기 때문에 선거개입과 같은 문제 역시 언제든 반복될 수 있다. 국정조사 결과와 정치권의 국정원 개혁논의를 지켜볼 때가 아니다. 국정원은 즉각 해체되어야 한다.
대정부 투쟁 강화의 계기로
민주주의를 유린한 정부와 새누리당을 강력히 규탄하고 반민중적 억압기구인 국정원 해체를 주장하며 투쟁을 벌여나가자. 아울러 현 사태에서 드러난 박근혜 정부의 비민주성, 반민중성을 적극 폭로하면서 현재 제기되는 민영화 반대투쟁, 공공부문 노동기본권 쟁취투쟁 등 대정부 투쟁을 강화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