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정부의 해명과 달리 이번 기초연금 계획은 손해를 보는 사람이 분명히 있으며, OECD 국가 중 가장 심각한 노인빈곤 문제에 대해 국가의 책임을 회피한 명백한 복지 후퇴 계획이다.
“나는 얼마를 받게 되는 거지?”
이번에 발표된 기초연금 도입계획의 핵심은 간단하다. 우선 지급 대상은 ‘모든 65세 이상에게’ 라는 공약과 달리 소득 하위 70%인 65세 이상 노인들로 현행과 변함이 없다. 소득 상위 30%는 기초연금을 받지 못한다. 급여 역시 ‘모든 대상자에게 20만원’ 이라는 공약에서 후퇴하여 국민연금 가입기간에 따라 10만 원에서 20만 원 사이의 금액을 받는다.
기초연금 급여는 국민연금 가입기간이 길어질수록 약속된 20만 원에서 차감되며, 2014년 기준으로 국민연금 가입기간이 20년 이상이면 현재 받고 있는 10만 원만 받아 인상 효과가 전혀 없다. 국민연금 가입기간에 따라 차등지급을 함으로써 아무리 소득이 적어도 국민연금에 오래 가입했다면 더 적은 기초연금을 받게 되는 것이다. 국민연금 가입자를 차별하는 것이고 국민연금 가입자에게 불리한 제도다.
복지부 장관도 설득하지 못하는 국민연금 연계방식
진영 보건복지부 장관은 국민연금 연계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표명하며 사퇴를 했다. 도저히 이 계획을 가지고 국민을 설득하지 못하겠다고 한다. 반면 박근혜 대통령은 ‘손해 보는 사람’이 없다고 주장한다. 무엇이 문제일까? 국민연금에 오래 가입을 했어도 현행 기초노령연금에서 지급한 금액인 10만 원 가량을 지급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통령의 해명은 거짓말이다. 현재 50세 이하 세대들은 손해를 본다. 왜냐하면 기초노령연금이 도입될 당시, 국민연금의 급여를 2028년까지 점진적으로 축소하는 대신 2028년까지 기초노령연금의 급여액을 현행 A값(대략 전체 가입자의 평균 소득)의 5%(약 10만 원)에서 A값의 10%(약 20만 원)로 인상하기로 약속했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기초노령연금법 부칙으로 정해져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은 원래 계획되어 있던 인상 시기를 자신의 임기 내인 2017년 내로 단축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의의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공약을 파기하고 오히려 현행 계획보다 더 개악된 기초연금 계획을 제출했다. 2028년에 65세가 되는 50세 이하 세대들은 원래 누구나 현재 가치로 20만 원을 받을 수 있었는데, 현재 기초연금 계획에 따르면 국민연금 가입 기간에 따라 최대 10만 원까지 급여가 삭감되는 것이다.
이번 방안은 이렇게 복지를 삭감하는 조치일 뿐만 아니라 국민연금이라는 공적 노후소득보장제도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조치라는 점에서 더욱 문제다. 국민연금 가입기간이 길수록 기초연금을 적게 지급하려는 계획은 인수위 때부터 시작되었다. 게다가 인수위 당시 기초노령연금 재원을 국민연금기금을 사용할 수도 있다는 출처 없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지금도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개인의 생애평균소득 대비 연금액의 비율)이 낮아지고 있는데, 기초연금마저 삭감당한다면 노후에 제대로 된 연금을 받을 수 있을지 더욱 불안할 수밖에 없다. 인수위 출범 이후 지금까지 2만 명의 국민연금 임의가입자가 탈퇴했다. ‘6개월 만에 말 바꾸는데 30년 뒤를 어떻게 믿느냐’는 말이 나오는 배경이다.
민간보험 배불리고, 빈곤책임 개인 전가
한국의 노인 빈곤율은 2011년 기준 45.1%다. OECD 평균인 13.5%의 3배가 넘고, 2번째로 높은 아일랜드(30.6%)보다도 월등히 높다. 노인들의 소득 중 공적 이전소득(연금이나 공공부조를 통한 급여)이 차지하는 비중은 15.7%로 OECD 평균 60%에 비해 매우 낮은 편이다. 공적 이전 소득이 많아질수록 소득불평등도 완화된다. 그러나 지금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은 매년 낮아지고 있고, 기초연금마저 현행 기초노령연금보다 개악될 위기에 처해있다. 게다가 빈곤을 방지하는 최후의 보루인 기초생활보장법 역시 부양의무자 기준, 낮은 현금 급여 수준으로 인해 많은 사각지대를 만들고 있다.
“나이가 들어 기초연금을 받게 되면 인생을 잘못 사신 것입니다”
새누리당의 연금 정책을 기초했다고 평가받는, 올해 국민연금재정추계위원장이었던 김용하 교수의 발언은 박근혜 정부의 연금 정책의 성격을 잘 드러내고 있다. 기초연금과 국민연금이 부실해지면 개별 노동자들은 자산을 모으고, 사적 연금에 가입하는 등 투자자로서 적절히 행동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노후를 보장받을 수 없다. 실제로 금융회사가 운영하는 퇴직연금, 연금저축의 규모는 점점 커져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사적 연금은 공적 연금에 비해 가입자가 되돌려 받는 금액이 적을 뿐만 아니라 소득불평등을 완화할 수 없다. 결과적으로 노후소득보장에 대한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하고 금융자본만 배불리는 셈이다.
안전한 노후의 권리가 필요하다
공안탄압으로 어수선한 분위기를 타고 자신의 핵심 공약을 폐기한 박근혜 대통령은 진영 복지부 장관의 사퇴라는 ‘측근의 배신’에 많이 당황한 기색이다. 그러나 정말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공약을 믿고 투표를 한 노인들의 분노이고, 불안한 노후를 홀로 감당해야 하는 노동자 민중들의 고통이다.
우선 정부는 기초연금 계획을 토대로 만들어 질 기초연금 개악법을 폐기하고 최소한 대통령 자신이 공약했던 수준이라도 제대로 이행해야 한다. 또한 노인빈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초법의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하고, 국민연금의 보장성 강화와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적극적 계획을 제시해야 한다.
정부의 노후소득보장체계는 빈곤층에게는 기초생활보장과 기초연금, 그보다 소득이 높으면 국민연금과 사적연금을 통한 보장을 권하는 방식으로 민중을 분할하고 불평등을 확대시키고 있다. 또 미래세대에게 불리한 제도 설계로 세대 간 갈등을 만들고 있다. 현재 노인세대와 미래의 노인세대가 될 청장년 노동자 모두에게 노후를 위한 적절한 수준의 소득이 보장될 수 있도록 함께 싸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