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교육희망] |
최근 서울의 모 초등학교 학교급식 노동자가 식기 애벌 세척을 위한 끓는 물에 빠져 화상을 입은 후 두 달여의 투병 끝에 사망한 사고가 발생했다. 또한 안양의 초등학교에서 10년간 일한 학교급식 노동자는 어깨회전근이 끊어져 뼈 속으로 말려들어가 산재로 치료를 받기도 하였다. 사실 이런 사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최근 공공운수노조 전회련학교비정규직본부가 국회토론회를 통해 학교급식 노동자들의 실태를 폭로하며 또다시 주목을 받았다.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투쟁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급식조리 현장의 노동조건 및 안전보건실태는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학교급식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조건과 건강문제, 특히 골병이라 부르는 근골격계질환에 대한 실태가 처음 알려진 것은 2004년이다. 이 연구에서 근골격계질환 의심자로 즉각적인 조치가 필요한 사람이 전체의 1/4로 조사되었고, 학교급식 노동자들은 가정에서 같은 가사 일을 하는 전업주부에 비해 근골격계질환 의증의 위험도가 5배 정도 더 높은 것으로 조사되었다(정최경희 등, 2004).
진보교육감 대거 당선을 계기로 학교 현장의 변화에 대한 기대가 증가했지만 정작 다치고, 병들고, 죽어가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현실은 아직도 그대로이다.
10명 중 9명이 고통을 호소하고 있어
학교급식 노동자들이 가장 고통스러워하는 부분은 일상적으로 근골격계질환에 시달리는 것이다. 학교급식 노동자를 대상으로 최근 진행한 대부분의 연구에서 90% 정도의 노동자들이 근골격계 증상을 호소하고 있다. 이런 증상자의 비율은 다른 직종 및 업종(지하철 정비, 보건업, 운수업, 자동차제조업, 자동차부품제조업, 식품제조업, 주물산업, 화학제품제조업, 교육서비스업 등)과 비교해 볼 때도 가장 심각한 수준이었다.
이런 결과는 우연이 아니다. 학교급식 노동자들은 골병을 만드는 다양한 유해요인에 반복적으로 노출되고 있다. 2012년 강원도 교육청의 의뢰로 시행한 <학교급식종사자 근로여건 개선을 위한 연구>에서 시행한 유해요인 평가에서도 식재료와 잔반, 음식물 쓰레기와 같은 중량물 취급, 부자연스런 반복 작업 등 근골격계질환 위험 요인이 지적되었다. 이러한 인간공학적 유해요인 뿐만 아니라, 식사 시간 앞뒤로 집중된 노동강도, 소음, 직무스트레스 등 근골격계질환의 위험을 높이는 다양한 유해요인에 동시에 노출되고 있었다.
급식 노동자의 노동강도는 특히 심각한 편이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의 <강원도 학교계약직 직원 처우 개선을 위한 근로실태 연구 (2012)>에 의하면, 학교계약직 중 조리종사원은 업무강도가 지나치게 크다고 응답한 비율이 70%를 넘어섰고 매우 크다고 응답한 비율도 27%였다. 전체적 평균이 43%, 가장 낮은 도서관 실무원의 경우는 10% 정도다.
학교급식의 전면화와 더불어 친환경 급식이 도입된 것도 급식 노동자의 노동강도 증가에 영향을 미쳤다. 친환경 급식을 위한 식재료 손질과 조미료가 안 들어간 맛있는 음식을 만들기 위해서는 손이 많이 갈 수밖에 없다. 친환경 급식 상황에 맞는 추가 인력 배치가 필요한 상황이지만, 인력과 예산에 대한 투자는 이뤄지지 않았다. 열악한 환경에서도 학교급식 노동자들은 안전하고 질 높은 학교급식 정착을 위해 스스로의 몸이 망가질 정도로 더 높은 노동 강도를 감내해 온 것이다.
너무나 부족한 인력
근골격계질환 예방을 위해서는 노동강도를 낮추고 작업의 속도와 양을 조절하는 것이 기본이다. 급식의 질과 안전을 고려하면 급식재료 및 식단 등을 조정하여 작업량을 줄이는 것은 제한적이다. 결국 작업량을 함께 나눌 인력의 수가 핵심이다. 충북지역 학교급식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를 보면 1인당 급식 인원 112.4명(1인당 급식 인원 중위값)이하의 그룹에 비해 1인당 급식 인원이 149.1명(현재 충북교육청의 인력배치기준은 150명 당 1명)이상인 그룹에서 근골격계질환 의증의 위험도가 8배 정도 더 높았다. 1인당 급식 인원이 많을수록 근골격계질환 위험도는 증가한 것이다. 현실을 반영한 인력배치기준 조정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오랜 기간 숙련된 인력이 필요한 영역이 급식실이고, 전체 학교 비정규직의 40-50% 정도를 차지할 정도로 규모도 크다. 하지만 돈에 맞춰서 사람을 채용하는 행태가 고착화되어, 서울, 인천, 충북 지역은 1인당 급식인원이 150명 이상인 실정이다. 그 기준은 교육청이 정하는데, 노동실태를 분석해서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기준을 정하는 것도 아니고 지역별로도 다르다. 식사준비에 더 많은 인력이 필요한 병원기관을 제외한 공공기관의 1인당 급식 인원 평균은 52.3명이다. 이와 비교해보면 수도권의 학교 급식실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3배 이상의 노동강도를 감내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근골격계질환을 포함하여 산업재해 해결에는 적정한 휴게시간과 휴가의 확보가 중요하다. 식사시간이나 휴게시간이 짧은 것도 문제지만 아파도 쉴 수가 없는 상황이다. 취업규칙이나 운영규칙으로 분명 병가가 보장되어 있지만 대체인력제도가 없는 지역의 경우는 아픈 당사자가 직접 대체인력을 구하지 않으면 병가를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강원도 등 일부지역에서는 대체인력제도가 도입되면서 시도 교육청 차원의 대체인력확보 노력이 있지만, 대부분의 지역은 인력도 부족하고 대체인력확보도 어려워 노동자들의 고통은 심각하다.
전면적인 근골격계 유해요인조사부터 시작해보자
학교급식 노동자들의 근골격계질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노동강도, 작업환경, 다양한 급식 환경(초·중·고 및 2·3식의 차이, 배식방법, 전처리 제품 사용 유무)등을 고려한 합리적인 인력 배치기준이 수립되어야 한다. 또한 대체인력제 도입과 질병휴가·휴직제도 개선, 적정한 휴게시간 확보도 시급하다.
제도적으로 보장된 권리부터 요구해서 싸우는 구체적인 전략이 필요하다. 우선, 사업주의 의무인 근골격계 유해요인조사를 전국적으로 실시해야 한다. 산업안전보건법은 유해요인 사업장의 사업주가 3년에 한 번 근골격계 유해요인조사를 실시하고 이 조사에 노동자 대표 또는 해당 작업 노동자를 참여시키는 것을 의무로 규정하고 있다. 이를 통해 은폐된 문제를 조기발견 및 치료하고, 제대로 치료받고 복귀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하고, 나아가 환자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현장을 바꾸자는 요구로 나아가야 한다. 또한 현장에서부터 산재 신청 및 보상 등 자신의 권리를 인식하고 노동조합을 통해 요구해야 한다.
시도 교육청은 예산과 배치 기준에 맞춘 행정 방식에서 탈피해 현장에서 발생하는 문제와 노동자들의 요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진보교육감 당선으로 더 기대가 커진 친환경 무상급식이 제대로 정착되기 위해서라도 인력에 대한 대책은 필수적이다. 학생들에게 질 좋고 안전한 음식을 제공하기 위해 재료를 꼼꼼히 씻고 손질해야 하는 사람은 학교급식 노동자다. 근골격계질환 해결에 있어 핵심인 인력 배치기준 문제는 현장의 요구와 목소리를 더욱 모아 조직적으로 투쟁 방침을 세워야 할 것이다. 지금 전국의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준비하고 있는 단결된 투쟁이 바로 그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