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노보연 선전위원회
산업재해보상보험은 가장 일차적으로는 재해를 당한 노동자에게 적절한 치료와 보상을 제공하는 기능을 수행하지만, 산업재해와 직업병 발생을 예방하는 기능도 가지고 있다. 민간 보험과 달리 사회보험으로서 역할 중 하나가 산재 예방을 위한 다양한 활동에 직, 간접적으로 참여하는 것이다. 그래서 산재은폐를 넘고 산재보험으로 노동자가 제대로 치료받을 수 있는 제도로 만드는 것은 노동자 건강에 큰 의미를 가진다.
현장에서의 다양한 실천
산재은폐를 넘어서기 위한 다양한 실천은 이미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다.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지회의 산재은폐 실태 조사와 고발, 산재 신청이 대표적이다. 근골격계질환 산재 은폐와 공상이 만연한 현실에 대해 조합원 연대 기금을 만들어 산재 신청을 하는 조합원들의 생계를 지원하고 불안감을 덜어준 대림비앤코 노동조합 사례도 있다. 금속노조 경기지부 SJM 지회에서는 산업안전보건위원회를 통해 일체의 공상을 없애고, 모든 업무상 재해는 산재보험으로 처리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조합원들과의 토론과 설득 노력은 당연하다.
개별실적요율제 폐지
산재은폐를 조장하는 제도를 바로잡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대표적인 것이 개별실적요율제다. 개별실적요율제는 산재 발생이 많은 사업자에게 산재보험료 부담을 높여 산재 발생을 억제하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현실에서 개별실적요율제는 “실제 위험을 생산하는 자는 보험요율이 낮고 힘이 없어서 위험을 떠안는 자는 보험요율이 높은 매우 불공평한 제도” (임준, 산재보험 개혁 방향과 정책방안, 2014)로 기능하고 있다. 대기업들이 산재보험 특례요율제도를 매년 1조가 넘는 보험료를 감면받고 있다. 대표적인 산재 은폐 산실인 현대중공업은 최근 5년간 955억 원의 보험료를 할인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개별실적요율제는 산재 은폐를 부추기는 제도로 폐지되어야 한다
노동안전 관리감독 강화
전반적인 노동안전 관리감독 강화도 중요한 과제다. 지금처럼 평소에는 관리 감독이 부실하다가, 산재가 발생한 사업장만 대상으로 뒤늦게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의 감독만이 이루어지는 경우, 산재는 그 사건 하나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표적 감독과 징계, 범칙금으로 이어질 수 있다. 사업주들이 보험료 증가보다 산재 발생 후 맞닥뜨리게 되는 ‘귀찮은’ 상황이 싫어 산재를 은폐한다는 증언들이 이를 뒷받침한다. 일상적인 관리 강화, 산재 은폐를 근절하기 위한 목적의식적인 감독이 필요하다.
불이익은 안전의 진짜 책임자에게
현대중공업의 한 하청업체 대표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산재 처리 했을 경우 (원청) 부서장으로부터 유무언의 압력을 받고, 재계약에서도 불이익을 받기” 때문에 산재를 숨길 수밖에 없다고 했다.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 정동석 노안부장 역시 “중대재해 발생 시 하청업체 퇴출제도는 원청의 책임은 묻지 않고, 하청업체와 재해자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방안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벌점이나 불이익을 부과한다면, 사고와 안전에 실제 책임이 있는 원청 사용자에게 책임을 묻는 방식이 되어야, 산재 벌칙 강화가 노동자 안전 보장으로 이어질 것이다.
산재 은폐, 솜방망이 처벌을 바꾸자
현행 산업안전보건법 10조에서는 사망자가 발생하거나 3일 이상의 휴업이 필요한 부상을 입거나 질병에 걸린 사람이 발생한 경우 사업주는 그 발생 개요·원인 및 재발방지 계획 등을 고용노동부장관에게 보고해야 한다. 이를 위반한 경우 1천만 원 이하의 과태료에 처해진다. 이 중에서도 처음 발생한 건에 대해서는 300만 원으로 과태료를 감면해 준다. 산재은폐를 형벌로 처벌하던 종전의 규정을 개정해 과태료로 전환한 것이다. 심상정 의원실이 2014년 국정감사에서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그나마 과태료 징수조차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2012년에는 1,242건 중 821건, 2013년에는 192건 중 55건이 경고조치를 받았다. 2011년 이후 산재은폐에 따른 사법조치 건수는 없었다. 이러니 일단 산재 은폐를 하고, 걸리면 때운다는 인식이 팽배할 수밖에 없다. 강력한 처벌이 능사는 아니지만, 법을 지키도록 강제할 수 있는 정도의 처벌은 필요하다.
치료받을 권리를 보장하는 산재보험으로
산재 은폐의 고리를 끊으려면, 무엇보다 산재보험이 노동자의 치료받을 권리를 충분히 보장할 수 있어야 한다. 노동자가 직접 근로복지공단에 신청하고, 업무관련성을 입증하는 체계는 산재 은폐의 여지도 키운다. 산재 승인률이 낮고, 업무상 질병 판정의 정당성에 대한 노동자들의 신뢰가 없는 상황 역시 산재 은폐의 온상이 된다. 처음 진료하는 의사가 산재 여부를 판단하고 적절한 보험으로 처리하는 ‘선보장 후평가 체계' 를 도입하고, 대신 건강보험의 보장성도 확대된 조건 아래서 산재 은폐는 설 자리를 잃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