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건강한 비정규직 노동자
비정규직 확대는 그 자체로 노동자 건강에 적신호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정규직 노동자에 비해 건강하지 못하리라는 것은 수많은 연구에서 이미 드러난 바다. 국내 연구만 봐도,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는 정규직 여성 노동자보다 우울증 위험과 자살생각 위험이 각각 1.6배 가량 높다. 남성의 경우, 우울증은 더 많지 않았지만 자살 생각 위험은 비정규직이 1.3배 정도 높았다. (Kim IH et al., Social Science and Medicine, 2006;63(3):566)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주관적으로 생각하는 건강상태도 정규직 노동자에 비해 뚜렷하게 나빴다. (손신영, 한국산업간호학회지, 2011;20(3), 346)
비정규직 노동자의 건강이 나쁜 이유는 매우 다양하다. 비정규직의 낮은 소득과 고용 불안정은 비정규직 노동자의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원인이다. 비정규직 근로자들은 일상적으로 노출되어 있는 고용상의 불안 때문에 위험과 불건강을 감수하고서라도 노동해야 하는 경우가 많고, 정규직 노동자에 비해 상대적인 저임금 노동 때문에 위험 수당 등 경제적 유인 때문에 위험한 노동을 감수하는 경우도 많다. 저임금 노동은 장시간 노동의 강력한 원인이 되기도 한다. 장시간 노동과 불규칙하고 비정상적인 노동시간 역시 건강에 악영향을 미친다. 업무 재량권은 낮고, 노력에 비해 보상이 적어 직무스트레스가 높다. 그 외에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정규직 노동자에 비해 전반적인 물리, 화학, 생물학적 작업 환경이 열악해 소음, 유해광선, 감염 위험 등 다양한 위험에 더 많이 노출되는 것으로 보인다.
▲ j.Benach et al, Annu Rev. Public Health 2014, 35:29-53 |
폭넓은 그림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비정규직 노동자의 건강 문제를 더 넓은 시각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비정규직이 증가하는 사회는 이와 함께 노동자의 정치적 영향력도 줄어들고, 노동시장 정책 전반이 노동안전 문제에 대한 규제는 완화하고, 친자본적인 경제정책을 취하게 된다. 복지는 하향되는 경향이 있다. 이런 사회적 배경 속에 비정규직 노동자, 불안정 노동자가 증가하며 이 노동자들은 실업과 비공식 경제활동의 경계에 존재하게 된다. 이런 취약 노동자들은 모든 측면에서 더 유해한 작업 환경에 노출되고, 수입이나, 거주 환경 등 물질적인 측면에서의 박탈을 경험하게 되어 건강과 삶의 질이 나빠진다는 것이다. 한국사회에서도 비정규직 증가라는 현상 뿐 아니라, 이번 노사정 야합과 노동개악 드라이브를 가능하게 하는 정치적, 사회적, 정책적 힘의 변화 방향이 불안정 노동을 증가시키고, 전체적인 노동자들의 건강과 삶의 질을 하락시키는 방향으로 향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이 더욱 우려스러운 점이다.
생명·안전 업무는 정규직 고용?
이번에 기간제 법을 개정하면서, 정부와 새누리당은 국민의 생명·안전과 밀접하게 관련된 업무에는 정규직을 고용하겠다고 선심쓰듯 선언했다. 그러면서, 선박, 철도, 항공기, 자동차를 이용하여 여객을 운송하는 사업 중 생명·안전과 밀접하게 관련된 업무에 기간제근로자 사용을 제한한다고 한다. 그러나 하루 15만명을 수송하는 KTX 승무원도 비정규직이라고 주장하기 위해, '안전업무를 하고 있지 않다, 안전업무는 철도공사 정직원인 팀장만 할뿐’이라고 주장하는 한국철도공사와, 결국 이런 어깃장에 손을 들어준 대법원 판결이 있었다. 승무원들에게 생명 안전에 관련된 사항을 가르치기는 커녕, 정규직 고용을 회피하기 위해서는 하던 안전 교육마저 미루고 숨기는 버젓한 공기업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현실 뒤꽁무니도 좇아가지 못 하는 생색내기에 불과해 보인다. 끼워팔기로 내놓은 선심성 개정안은 실효성이 없어 보이고, 고용 불안 증대와 노동자의 물질적 박탈은 확실해 보이는 정부의 비정규직 정책에서 노동자 건강의 지옥문을 보는 것은 필자만이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