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세 미만, 주야 맞교대, 근무 월 250만 원 이상 지급.'
직장 근처 인력 파견 업체의 네온사인에 이렇게 쓰여 있다. 이 인력 파견업체에서 광고하는 곳에서 일하고 250만 원을 월급으로 받으려면 일주일에 몇 시간을 일해야 할까? 대부분의 경우, 법정 노동시간인 40시간을 일해서 250만 원이 월급이 노동자들에게는 주어지지 않는다. 250만 원의 월급을 받으려면 보통 주 6일 하루 12시간의 노동을 해야 한다. 일주일은 주간에 12시간 일해야 하고 다른 일주일은 밤에 12시간을 일해야 250만 원의 임금이 노동자들에게 주어진다. 결국 250만 원의 돈은 최저 임금에 해당하는 기본급에, 연장 노동에 대한 가산, 야간 노동에 대해 가산을 해야만 받을 수 있는 금액이다. 한국에선 많은 노동자가 저임금의 노동을 보충하기 위해서 극단적으로 노동시간을 늘리고 거기에 심야 근무까지 하는 현실이다. 그런데 주당 72시간에 달하는 장시간 노동은 법에 맞는 내용일까?
노동시간 관련 근로기준법 조항, 얼마나 지켜질까
국제노동기구에 의하면 한국은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을 지킬 법적 기준이 존재하지만 실제로는 잘 준수되지 않아서 노동자들의 건강과 안전이 보장되지 못하는 나라에 해당한다. 물론 근로기준법이나 산업안전보건법과 같은 형식적인 법조차도 없는 나라들보다는 낫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이 같은 법이 거의 있으나 마나 한 상태이다. 산업안전보건법이 있지만 한 해에만 산업재해와 업무상 질병으로 한 해에 2000명의 노동자가 죽어 나가는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그렇다면 노동시간에 대한 근로기준법 조항을 살펴보자. 근로기준법 50조와 53조가 노동시간과 직접 관련된 조항이고 59조는 예외 조항이다. 이 법 조항들을 보면 한국의 정규 노동시간은 40시간을 초과할 수 없으며, 근로자 대표와 서면 합의를 할 경우에는 52시간까지 연장 노동을 할 수 있다. 앞에서 언급하였던 인력사무소의 광고 내용 '주야 맞교대, 월 250만 원'은 근로기준법 위반을 조장하는 광고인 셈이다.
한편 평소 노동부에서 정기적으로 사업장에서 노동시간에 대한 근로감독을 정기적으로 실시하는지, 특례 업종이 아닌 산업에서 근로시간이 52시간을 초과한 경우 처벌을 하는지, 만약 처벌을 한다면 어떠한 처벌을 하는지 잘 알려진 바가 없다. 실제로 언론 기사나 노동자들의 경험을 살펴본다면, 노동 시간에 대한 근로감독을 시행한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아마도 드물 것이다. 또 사업주가 노동자에게 장시간 노동을 시켜서 어떤 처벌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어 본 사람도 많지 않을 것이다. 어느 정도의 사업장이 노동시간과 관련한 근로기준법을 위반했는지에 대해서도 현실적으로 알기 어렵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노동부에서 2012년에 발표한 자료를 겨우 찾을 수 있었다. 표는 2012년도 일부 사업장에 대해 노동시간과 관련해서 수시로 감독한 결과이다. 140개 사업장 중에서 124개의 사업장에서 노동시간 관련 근로기준법을 지키지 않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감독 결과에서 80%가 넘는 사업장이 근로기준법을 위반한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근로기준법을 위반한 사업장에는 대부분 가벼운 벌금조차도 부과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처럼 한국에서의 근로기준법 적용은 선명한 법 조항에도 불구하고, 다른 산업안전보건과 관련한 법 조항이 있으나 마나 한 것처럼 대부분 사업장에서 무시하고 지키지 않고 있다.
▲ <업종별 근로기준법 53조 위반 사업장 비율> (2012년 수시감독 결과) |
그렇다면 한국 사회에 만연한 장시간 노동의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그중에서 가장 심각한 것이 저임금 체계라고 본다. 2012년을 기준으로 우리나라 노동자 중 저임금 노동자(전일제 노동자 중위임금 3분의 2 이하) 비율은 25.1%로 OECD 평균은 16.3%인 훨씬 높은 비율이고 이는 OECD 국가에서 2위에 해당한다. 또 최저 임금도 매우 낮은 수준이다. 만일 2015년도의 최저임금인 5580원으로 주 40시간 일하고, 하루의 유급 휴일을 받는다고 가정해서 주 6일의 임금을 받는다고 계산하면 월 107만 원 정도의 매우 낮은 소득으로 살아야 한다. 만일 부부가 맞벌이한다고 하더라도 215만 원 내외의 낮은 소득으로 생활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또 많은 노동자가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을 받는 상황에서 연장근무 추가 50% 가산, 야간노동 50% 가산은 노동자들에게 매우 큰 유혹이 될 수밖에 없다. 물질적 생활을 유지하기 위하여 표준노동 시간의 거의 두 배에 달하는 72시간의 주야 맞교대 노동을 감내해야만 하는 현실이 한국사회 저임금 노동자들의 비극이다. 그러면서 장시간·야간 노동으로 노동자의 건강은 지속해서 손상당하고 있다. 건강해지려면 적절한 소득을 가져야 한다. 왜냐하면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영양을 섭취해야 하고, 적절한 주거 공간에서 거주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계절에 따른 여러 종류의 의복도 필요하고, 적당한 강도의 운동도 해야 한다. 적절하게 여가를 보내야 하고, 경조사를 비롯한 사회적 활동에도 참여해야 하는데, 이 같은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이상의 소득이 필요하다.
이처럼 모든 사람이 건강할 수 있도록 사회가 최저 소득을 보장하자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이러한 개념을 '건강 최저소득'이라고 하는데, '건강 최저 소득'을 개념을 주장한 사람은 영국의 의사이자 보건학자인 '제리 모리스'이다. 한국에서도 이 개념에 따라 건강생활을 위한 최저 생계비가 계산된 바 있다. 계산된 금액은 2009년을 기준으로, 건강한 생활을 유지하려면 한 가구에 최소 약 250만 원의 돈이 매달 필요하다고 조사되었다. 2009년에 조사된 결과이므로 그간의 물가를 상승을 반영하면 2015년 현재는 조금 더 많은 돈이 필요할 거로 판단된다. 6년간의 물가 상승률이 10%라면, 건강을 유지하려면 최소한 한 가족의 월 275만 원 정도의 돈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 사회가 사회 구성원들의 건강을 보장하려면, 최저 임금으로 표준 노동시간인 주 40시간 이상 일했을 때 '건강 최저 소득' 이상의 소득을 받도록 해야 한다. 이는 매우 시급한 과제라고 할 수 있다.
▲ '올려야 한다. 최저임금 1만원! 살려야 한다. 경제민주화!" 노동자, 중소상공인, 청년, 학생, 시민사회 공동 기자회견 [출처: 참여연대] |
2013년 멕시코에 빼앗긴 'OECD 국가 중 평균 노동시간 1위'를 2014년에 다시 되찾았다는 반갑지 않은 기사를 보았다. 또 유럽의 여러 국가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 논문에서는 주당 노동시간이 길어질수록 뇌졸중이 증가하며, 주당 노동시간이 55시간이 넘을 경우 뇌졸중의 위협이 30% 이상 증가하는 것으로 발표되었다(이 연구는 한국 사회와는 좀 맥락이 다른 면이 존재한다. 서유럽과 북유럽 국가의 노동자들이 주된 연구 집단인데 서유럽은 장시간 노동을 하는 사람들은 저임금 노동자보다는 전문직이나 고위직의 사람들이 성과를 높이고자 장시간 노동을 하는 경우가 더 많고, 근로 감독의 수준도 한국보다는 양호한 편이다). 또 근로기준법을 강화해서 장시간 노동을 금지하면 많은 일자리가 생길 수 있다는 보고서도 한국노동사회 연구소에서 발간되었다. 한국 사회의 장시간 노동은 저임금 체계, 부실한 근로감독 시스템과 맞물려 노동자들의 건강을 계속 위협하고 있다. 노동자들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는 장시간 노동·저임금 체계·제 역할을 못 하는 근로감독 체계가 맞물린 문제를 동시에 해결해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이런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노동자를 비롯한 대중의 정치·사회적 요구와 투쟁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