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언처럼 남긴 기록
살아계실 때는 산재 신청할 생각이 없었다. 대신 아버지는 자기가 잘못되면, 반올림에 전화하라며 이종란 노무사, 공유정옥 의사 전화번호를 알려줬다. 복직 후 아버지는 자기가 왜 백혈병에 걸렸는지 파헤치기 시작했다. 작업환경과 관련한 업무 메일을 비공개로 운영한 가족 카페에 옮겨놓았다. 때가 되면 공장을 들락날락하는 화학물질 수거차량 사진을 찍어뒀고, 유해물질 배출함 사진을 몰래 찍어 보관했다. 한국안전환경평가원이 제출한 ‘화학물질 사용실태 통보’라는 제목의 보고서 역시 카페에 게시했다. 카페에 유언처럼 남겨놓은 기록들을 토대로 근로복지공단에 산재신청을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질병판정위원회에 총 세 차례 출석했다. 노무사는 이례적인 일이라고 했다. 실낱같은 희망을 걸었다. 그러나 역시 불승인이었다.
사람냄새 없는 공장
아버지는 9남매 가운데 7번째다. 형제들 가운데 가장 먼저 세상을 떠났다. 2013년 작고하신 할아버지 보다 더 일찍 생을 마감했다. 아버지는 여름엔 마라톤, 겨울엔 스키를 타는 스포츠맨이었다. 그 병에 걸릴 별다른 이유가 없었다. 아버지는 새벽 5시 50분이면 집을 나섰다. 3교대하는 직원들의 얼굴을 다 봐야 한다며 때 이른 출근을 하셨다. 안개가 자욱하게 내리깔린 5층 높이의 반도체 생산 공장 사이를 걷다보면 항상 퀘퀘한 냄새가 난다고 했다. 사람냄새 없는 공장의 영업 비밀은 바로 이 불쾌한 냄새였다. 아버지를 비롯해 이 냄새를 맡으며 일하던 노동자들이 아팠다. 아프다가 세상을 떠났다. 그런데 기업은 상처받은 노동자들과 자신들은 무관하다며 오리발을 내밀었다. 국민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는 국가 역시 이들을 외면했다.
스트레스, 안 받으면 그만 아닌가?
2012년 초, 아버지의 병이 재발했다. 직전 해에 받은 스트레스가 원인이었다고 본다. 아버지는 정리해고를 해야 했다. 유지보수 업무를 원청인 삼성의 노동자들이 일정 부분 맡기 시작하면서 협력업체에 불똥이 튀었다. 지각이나 무단결근을 비롯한 기록이 남아 있는 사원 위주로 퇴사시켰다고 한다. 다른 협력업체 관리소장에게 수심 가득한 얼굴로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단다. 이 얘기를 들으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자기가 잘리는 것도 아니면서 왜 스트레스를 받으셨을까’ 아마도 그건 자기가 채용한 직원들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미안함에서 온 스트레스였던 것 같다. 그렇게 아버지는 또 다시 고얀 병을 온몸으로 맞았다. 최근 만난 주치의는 스트레스와 백혈병은 무관하다고 확언했다. ‘만병의 근원, 스트레스’라는 말은 틀린 말인가 보다.
문고리 붙잡고 서 있기로…
기댈 곳이 없었다. 돌아가신 아버지는 말이 없었다. 근로복지공단도, 회사도 다 아버지 탓을 했다. 병난 것도, 숨 쉬기를 그만한 것도 다 아버지 탓이란다. 그런데 반올림은 아니었다. 삼성 공장 노동자들이 향후 일하다 또 아프거나 죽지 않도록 작업환경을 개선하라고 외쳤다. 합당하고 배제 없는 사과, 보상을 하라고 요구했다. 당사자 가족 개개인은 절대 할 수 없는 일을 11년간이나 지속하고 있다. 우리 가족은 해결로 가는 문이 조금 열려있는 와중에 반올림에 발을 내딛었다. 반올림은 해결하려는 의지가 없는 삼성을 각성하게 했다. 닫힌 문을 열었다. 삼성의 막무가내 보상위원회에 아버지 이름이 적힌 서류를 들이밀기가 죽기보다 싫었다. 기껏 열어놓은 문을 내가 나서서 닫는 짓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나중에 병 다 나으면 반올림 사무국장을 하실 거라고 했었다. 결국 그 꿈은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셨지만, 우리 가족은 아버지의 그 약속을 기억한다. 그래서 문고리를 꼭 붙잡고 서 있기로 했다. 같은 아픔을 겪고 있는 사람들과 손잡고 다함께 이기는 그 날을 기대하며 불안해도 버티고 서 있기로 했다. 아버지, 나 잘하고 있는 거 맞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