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기
설레는 마음으로 수학여행을 떠났던 학생들, 그들을 인솔한 교사들, 배에서 조리 일을 하거나 아르바이트를 하던 사람들, 저마다의 이유로 제주를 향했던 사람들, 화물을 실어나르던 사람들……. 예고 없이 찾아온 세월호 참사로 인해 발생한 희생자들의 죽음을 마주한 4월이 다시 다가오고 있다. 벌써 2주기이다. 2년 전 4월 16일 진도 앞바다에서 304인의 안타까운 죽음을 가져온 세월호 참사는, 그것을 지켜본 많은 이들에게 고통으로 각인됐다. 살아남은 자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세월호 참사 이전과 달라져야 한다고 말했다. 희생자들 앞에서 ‘미안합니다’라며 고개를 떨궜고, ‘잊지않겠습니다’라고 되뇌였다. ‘존엄과 안전에 관한 4.16인권선언’ (이하416인권선언)은 세월호 참사를 경험한 우리들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권리를 빼앗기고, 인간의 존엄성과 인권이 파괴당하는 현실을 마주한 사람들이 세월호 참사 이후의 ‘안전사회’를 바라며 꺼내놓은 말들이다.
달라져야 한다는 호소에서 시작된 운동
‘4.16인권선언’은 참사가 발행한 2014년 12월 10일 ‘세계인권선언의 날’에 416인권선언제정운동의 필요성을 제안한 세월호 유가족 당사자들의 호소로부터 출발했다. 그들 곁에는 제안자로 삼성반도체 백혈병 피해자가, 마우나리조트 붕괴, 태안 해병대 캠프 사고, 대구지하철 사고, 씨랜드화재, 인천인현동호프집 화재 희생자 유가족이 구성한 재난가족협의회가 함께 했다. 이들의 제안에 함께 하겠다는 전국의 수많은 노동시민사회 성원들이 모여, 인권선언추진단을 구성하고, 몇 차례의 전국추진단 전체회의 등을 진행하며, 당사자들의 호소에 가장 먼저 손을 내밀었다.
풀뿌리 토론을 통해 세월호 참사에 대해 입을 떼기 시작하다
416인권선언제정운동은 전국 각지에서 진행된 풀뿌리토론으로 번졌다. 1,100여명이 각자의 공간에서 진행한 풀뿌리토론은 각자가 마주한 세월호 참사의 경험을 각자의 말로, 생각으로 표현하는 시간이었다. 그동안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던 말, 머릿속에서만 맴돌던 세월호 참사에 대한 이야기를 용기내어 말할 수 있는 자리였다. 토론을 시작하면서 이내 울음을 터트리는 토론참여자들도 있었다.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참사의 무게가 각자를 짓눌러 왔기 때문이다. 풀뿌리 토론은 그 무게를 내려놓는 과정이기도 했다. 그 시간을 함께 겪으며 그동안 어디에서도 쉽게 말하지 못했던 세월호 참사가 남겨 놓은 상흔을 서로 보듬고, 같이 아파하고, 눈물을 닦아주는 시간이었다.
흩어져 있던 권리가 선언으로 구성되다
그렇게 각자의 공간에서 꺼내놓은 이야기가 쌓이고, 쌓였다. 전국 100여개의 공간에서 풀뿌리 토론이 진행되었고, 860여개의 권리들이 제출되었다. ‘재난과 참사를 막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권리가 무엇일까요?’라는 질문에 답하기 어려워하는 참가자들이 상당했다. 그들은 “이제껏 살면서, 내가 ‘권리’를 가진 사람으로 불려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라고 말하며, 풀뿌리토론의 소중함을 다시금 강조했다.
그렇게 모아진 860여개의 권리가 선언문으로 구성되었다. 풀뿌리토론 과정에서 존엄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권리로 제출된 것에는 ‘노란리본을 달고 학교에 갈 권리’, ‘유가족이 혐오와 조롱을 받지 않을 권리’ 같은 내용이 있다. “아직도 세월호냐? 지겹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에 의해 ‘애도’ 조차 억압되는 현실이 여실히 확인되는 대목이다. 존엄과 안전이 저절로 주어지거나, 보장되지 않는 지금의 사회에서 이를 스스로 쟁취하고 지켜내기 위해‘연대할 권리’, ‘저항할 권리’처럼 권리침해에 맞선 행동과 연대가 진행되어야 한다는 의견들도 상당했다. 이렇게 제기된 권리의 낱말들이 모여 문장이 되었고, 지금 형태의 선언으로 재탄생했다. 선언문은 전문-13개의 권리항목-후문으로 구성되었다.
선언에 숨을 불어넣자
4.16인권선언은 다가오는 세월호 2주기 추모가 진행되는 전국의 곳곳에서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행동으로, 연대로 번져나갈 것이다. 단지 종잇장 위에 쓰여진 권리가 아니라, 선언이 살아숨쉬기 위해서는 연대로, 행동으로 숨을 불어넣는 과정이 무엇보다. 절실하다. 인간의 존엄과 안전이 보장되기를 바라는 절절한 호소이기도 한 선언문의 마지막 문장을 이제 우리가 행동으로 옮기자.
“이 선언은 선언문으로 완결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우리가 다시 말하고 외치고 행동하는 과정 속에서 완성되어 갈 것이다. 함께 손을 잡자. 함께 행동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