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아는 얘기일지 모른다. A는 세칭(世稱) 일등 외고와 일등 법대를 나왔다. 재학 중에 사법고시에 합격했고, 사법연수원에서도 최상위 성적을 받았다. 그 모든 것을 스스로의 실력과 노력으로 당당히 얻어냈다고, A는 생각했다.
연수원 졸업 후, A는 어디든 갈 수 있었고 무엇이건 될 수 있었다. 법원은 따분할 것 같았고 검찰은 조직문화가 맘에 들지 않았다. 돈을 벌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마침 세칭 일등 로펌으로 부터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아무나 받을 수 있는 연락이 아니었기에 기꺼이 나갔다. 세칭 일등 변호사들과 함께 식사를 하며, 그들 중 하나가 되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했다. 어색하지 않았다. 도리어 그것이 자연스런 수순이라고, A는 또 생각했다.
그래서 A는 세칭 일등 펌(firm)의 변호사가 되었다. 도제식 교육이 시작되었다. A의 스승은 B. 소위 ‘전관’ 변호사다. 이 바닥에서 ‘먹어주는’ 경력을 갖추었다. 회사 안에서 꽤 무게감 있는 구성원이기도 하다. 당장은 B의 인정을 받는 것과 이 회사의 ‘원만한’ 구성원이 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아니 어쩌면 그게 전부라고, A는 또 생각했다.
A가 할 일은 B가 던져주는 기록을 읽고 법원에 제출할 서면을 쓰는 일이었다. 법정에 나가 변론도 해야 했다. 사건의 수임여부와 변론의 방향은 A가 고민할 문제가 아니다. 의견을 제시할 수는 있지만 결정은 B가 한다. 가끔은 소소한 의견 제시도 외람된 일이 되어 버린다.
일등 펌은 수임료도 일등이다. 그 정도 대가를 지불 할 수 있어야 일등 서비스를 받을 수 있고, 그 정도 대가를 감수하면서 까지 변호사를 필요로 하는 일 중에는 불법 혹은 탈법적인 일들이 많기 마련이다. A는 그저 의뢰인에게 가장 유익한 결과를 뽑아내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 그 모든 게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A는 생각했다.
A도 그런 상황이 마냥 즐겁지 만은 않았다. 가끔은 이런 일하려고 그 고생을 했나, 라는 회의감도 들었다. A에게도 정의감이라는 게 없지 않았다. 뉴스에 등장하는 성폭력, 아동 학대에는 누구보다 분개하는 A였다. 변호사법과 대법원 판례가 강조하는 변호사 직무의 공공성과 윤리성, 변호사법 제1조가 명시한 변호사의 사명(“기본적 인권을 옹호하고 사회 정의를 실현함”)을, A도 모를 리 없었다.
하지만 그러저러한 원칙들은 어느 직종에나 있었다. 의사, 기자, 선생, 공무원 등등이 각각 어떠해야 하는지를 가르치는 뻔한 말들이 여기저기 있었다. 그들이 다 그러한 원칙에 충실하다면 세상은 왜 이 모양 인가. 이미 이렇게 된 세상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그리고 그러한 직업윤리가 다 제대로 지켜진다면 변호사는 무슨 일을 하며 먹고 살 수 있겠는가. 적당한 불법과 탈법은 도리어 사회를 원만하게 유지하는데 기여하지 않는가, 라고 A는 또 생각했다.
그리고 나쁜 사람 혹은 나쁜 기업의 변호사로서 그들의 불법이 적법하다고 주장하는 것, 나아가 그들의 불법이 적법하게 보이도록 꾸미는 것이 불법인가. 어차피 변호사도 서비스직 아닌가. 나쁜 사람이라도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는 있는 것 아닌가. 라고 A는 또 생각했다.
또한, 그런 추상적인 규범들을 일일이 따질 여유가 없을 만큼 A는 바빴다. A가 대리하고 있는 사건들 각각이 사회적으로 어떤 해악을 끼치건, A에게는 쌓여있는 일들 중 하나일 뿐이었다. 그리고 A의 머릿속에는 변호사의 사명이니 사회정의니 하는 추상적인 규범들 보다 훨씬 중요하고 구체적이며 A의 처지에 훨씬 더 가까운, 그래서 더욱 중요한, 규범들이 있었다. 당장 B의 신뢰를 저버려서는 안 되고, 자신이 속한 조직의 사회적 지위, 명망에 해를 끼쳐서는 안 된다. 당장 내 주변 사람들을 불편하게 해서는 안 된다. 그것 또한 규범이고 윤리다, 라고 A는 생각했다.
무엇보다 A는 지금의 자리에 머무는 것이 중요했다. 과거에는 이곳에 오는 것이 성공이었지만, 지금은 이곳에 머무는 것이 성공이다. 물론 이곳에서 경력을 쌓고 독립할 수 있는 경험과 관계를 만들고 나면, 그 때는 스스로 나갈 수 있다. 그 때가 언제쯤일지는 모르지만 지금은 아니다. 지금 나가는 것은 낙오하는 것이고, 낙오는 곧 실패다. 실패자로 낙인되는 것이 무엇보다 두렵다, 고 A는 또 생각했다.
따지고 보면 A는 나쁜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평범한 사람이다. 세칭 최고로 꼽히는 직업, 자리에 있는 사람들 중 그저 그 자리에 ‘머물고자’, 그 안에서 ‘원만해지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A는 그 중 하나일 뿐이다.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비극은 평범하고 원만한 사람들이 곳곳에 너무 많다는데 있을지 모른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 문제로 시민단체가 김앤장 사무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했다는 소식을 듣고, 난 A를 떠올렸다. A가 이 사건과 관련이 있지는 않겠지만, 설령 관련이 있다 하더라도 놀라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얼마 전 젊은 검사 한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과중한 업무에 따른 스트레스를 이겨내지 못했다고 한다. 그가 남긴 유서에는 “그만둔다고 하면 영원히 실패자로 낙인찍혀 살아야 겠지. 탈출구는 어디에 있을까"라는 말이 적혀 있다. 세상이 만든 성공과 실패의 도식, 어느 조직에서건 원만한 것이 최고 미덕이 되는 문화. 그것이 사회와 개인 모두를 병들게 하고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