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저임금 인상이 됐을 때 상상을 일기로 구성한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 1
“안녕하십니까. 일터 9시 뉴스입니다. 최저임금 1만원이 시행된 지 어느 덧 6개월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이를 지키지 않는 사업주들이 많아 고용노동부에 체불임금 진정 사건이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정부는 이에 대한 대책으로 오는 7월 1일부터 최저임금을 지키지 않은 사업주의 사업자 등록을 폐기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자세한 소식을 사회부 김평등 기자가 전합니다.”
# 2
예전 최저임금 시급이 6,030원 일 때는 하루 8시간을 꼬박 일해도 먹고 살기 빠듯했다. 그래서 하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 만나고 싶은 이들도 참으며 살았다. 그러다 최저임금이 1만원으로 오르니까 숨통이 좀 트이는 건 사실이다. 사실 처음엔 민주노총이 최저임금 1만원 인상 투쟁을 한다고 하고 캠페인도 하고 서명해달라고 했을때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반신반의했었는데 이제 현실이 됐다.
# 3
나는 직원이 5명 밖에 없는 안산시화반월 공단에 있는 조그마한 공장에 다닌다. 공단에 있는 사업장들 임금 수준은 다 비슷해서 잔업과 특근이 많은곳을 찾다보니 여기를 다니게 되었다. 어느날인가 점심시간에 사장님이 전 직원을 불렀다. 이제 곧 시급이 1만원이 되니까 잔업이나 특근이 없을 거라고 한다. 그래서 8시간 내 기존에 빼던 물량을 다 빼야 한다고 엄포를 놓는다. 안 그래도 바쁜데 더 바빠지겠구나 걱정도 되고 찜찜하지만, 그래도 이제 8시간만 일해도 월급이 많아진다니 마음은 편하다.
# 4
해가 바뀌고 분기에 1번 씩 모이는 고교 동창모임에 참석하게 되었다. 그동안 모임을 계속하고 있는 친구에게 나오라는 연락을 받았지만 시간도 없었을 뿐더러 다달이 들어가는 회비에, 오가는 차비를 포함해 하루에 5~6만원이 들어가는데 부담스러워 애써 참았다. 하지만 월급이 오르고 나서 제일 먼저 결심했다. 허물없이 지낼 수 있는 친구들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살아가는 힘이 생긴다.
# 5
지난 금요일 저녁엔 취직이 어렵다는 국문과를 졸업하고 3년 째 구직활동 중이던 첫째 아이가 아르바이트하다가 정식으로 입사하게 된 일터 출판사에 행사가 있다고 해서 다녀왔다. 넉넉지 않은 살림에 학자금 대출도 갚아야 하고 용돈도 벌어야 해서 알바를 쉴 수 없었던 아이에게 늘 미안했었다. 일터 출판사에서 이전에 교정 알바를 했었는데 최저임금이 오르니까 정규직과 임금 차이도 크지 않은데다 출판사 입장에서 안정적인 업무수행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정식으로 입사시키기로 했다고 한다. 사원 증을 목에 걸고 당당하게 출근하는 모습이 대견해서 눈물이 나 혼났다.
# 6
올 가을엔 큰 조카가 장가를 간단다. 5살에 처음 봤는데 어느 덧 자라서 여자 친구가 있다는 얘기를 들은 지 몇 해 되었다. 서른이 훌쩍 넘었지만 웬일인지 결혼할 생각을 하지 않길래, 요즘 젊은이들은 혼자 사는 사람이 많다고 하니 그런가 보다했다. 그런데 얼마 전 형님과 통화해보니 월에 250만 원은 넘게 받아야 맞벌이를 하더라도 아이를 키우며 살림을 꾸릴 수 있는데 큰 조카 월급이 그보다 훨씬 못미치니, 여자 친구와 집안에서 결혼을 꺼렸던 모양이다. 그런데 이제 최소한에 생활비 정도는 되니까 맞벌이 할 계획으로 결혼을 결심했다고 한다. 왠지 짠한 마음이 들지만 그래도 한편으로 다행이다. 알콩달콩 잘 살라고 축하해주러 가야겠다.
# 7
오늘 저녁은 아이들과 오랜만에 외식으로 ○○○ 피자를 먹으로 갈 생각이다. 배달 알바 노동자들 인건비가 올라가면서 배달 음식 가격이 그 전보다 20~30% 올랐다. 매장에서 직접 사먹는 것이 저렴하니 기분도 낼 겸 직접 찾아가서 사먹는 사람들이 전보다 늘고 있다. 나 또한 돈도 돈이지만 일하는 시간이 줄어들어서 가능한 일이다.
# 8
조만간 점심시간에 가까운 은행에 가서 노후보장 적금 통장을 만들 생각이다. 그동안 먹고 살기 바빠서 저축은 꿈도 못 꿨는데 이젠 수입의 20%는 앞날을 위해 아껴두려고 한다. 시급 1만원! 어떤 이에게는 하찮은 돈일지 모르지만, 나처럼 최저임금 받으며 현재를 견뎌내는 사람에게는 삶이 바뀌고 미래를 기약할 수도 있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