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회에서 발간하는
「인권-사람답게 사는 세상 이야기」라는 잡지에 실린 이야기이다.
노무법인 필 노무사 유 상 철
nextstep1@hanmail.net
# “일어나서 외쳐라” 현실의 판결
올해 서울가정법원 소년법정 부장판사의 판결에 관한 이야기다. 지난해 가을부터 14건의 절도, 폭행을 저질러 이미 한차례 소년법정에 섰던 전력이 있던 소녀는 또다시 오토바이 절도혐의로 판사 앞에 서게 되었다. 과거 전력에 의하면 ‘소년보호시설 감호위탁’ 처분을 받을 수 있었던 상황, 그러나 판사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하며 소녀에게 일어나서 판사의 말을 따라 외치도록 하였다.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라. 자, 날 따라서 힘차게 외쳐라. 나는 세상에서 가장 멋지게 생겼다.” 소녀는 “나는 세상에서...”라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내 말을 크게 따라 하라. 나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나는 이 세상에 두려울 게 없다. 이 세상은 나 혼자가 아니다” 소녀는 “이 세상은 나 혼자가 아니다”라고 외칠 때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판사는 “이 아이는 가해자로 재판에 왔다. 그러나 이렇게 삶이 망가진 것을 알면 누가 가해자라고 쉽사리 말하겠는가? 아이의 잘못이 있다면 자존감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러니 스스로 자존감을 찾게 하는 처분을 내려야 한다.”고 말하며 불처분 결정을 했다고 한다. 소녀는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반에서 상위권 성적을 유지하며 간호사를 꿈꾸던 발랄한 학생이었다. 그러나 여러 남학생들에게 끌려가 집단 폭행을 당하고 나서 모든 삶이 바뀌었던 것이다. 폭행을 당한 후유증으로 병원 치료를 받았으나 충격을 받은 소녀의 어머니는 신체 일부가 마비되었고 죄책감까지 겹쳐 괴로워하던 소녀는 결국 범행을 저지르기 시작했던 것이다.
판사는 “세상에서 누가 제일 소중하지? 그건 바로 너다”라는 말을 하며 소녀의 손을 꼭 잡았다. “마음 같아선 꼭 안아주고 싶지만 우리 사이에 법대(法臺)가 가로막고 있어 이 정도 밖에 못 해주겠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 상상속의 판결 - “일어나서 외쳐봐”
앞 이야기를 떠올리며 상상의 나래를 펼쳐 본다. 수많은 노동자, 민중들이 모여 있고 그 앞에는 제법 이름이 알려진 기업 경영자들이 나란히 무릎을 꿇고 앉아 있다. 부당해고, 부당노동행위, 산재은폐, 임금착취 등 잔혹한 노동탄압을 일삼았던 이들이었다. 누군가 이들을 불러 일으켜 세웠다.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라. 자, 말해봐라. 왜 이렇게 살았는지.” 그 중 한 명이 말한다. “위에서 시켜서....” “다시 말해봐라. 네가 우리에게 무엇을 행했는지. 너는 뭐든 할 수 있었지 않은가? 너는 세상에서 두려울 게 없었지 않은가.” 또 다른 이가 말한다. “나 혼자 한 것이 아닌데...”
이들은 노동탄압의 당사자로 노동자, 민중 앞에 불려왔다. 숱한 노동탄압을 자행하면서 노동자, 민중의 삶을 망가뜨린 것이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한다. 동물과 인간을 구분하지 못하고 약육강식, 경쟁만을 강요했던 시장경제, 동시에 맹목적인 충성과 복종을 강요했던 배타적인 조직문화, 이들을 옹호하고 지원하며 교활함으로 세상을 가득하게 만든 자본과 정권 탓으로 돌리고 있다. 차라리 “알아서 죄 값을 치르겠다”고 했다면 위의 판사와 같은 온정이라도 베풀었을텐데...
사실 처음에는 멋지게 용서해 주는 상상을 해 보았는데... 용서가 안 된다. 요즘 사는 게 빡빡하다보니 더욱 그렇다. 저들의 파렴치에 몸서리가 쳐지니 용서라는 것은 온정이라는 것은 사치스러울뿐이다. 속 시원하게 이들에게 죄값을 치르게 할 수 좋은 방법이 있을까! (가슴 찡한 사연을 접하고 순간적으로 이런 황당한 상상을 해 보네요. 헐~~~~~)
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