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페미니즘 학교 김 도 균
10월 21일 새벽 다섯 시에 반동의 호리즌 호텔 프론트로 나갔다. 거기서 대절한 버스를 타고 약 세 시간을 달려 인도네시아 수도인 자카르타 공항에 도착하여 바탐으로 가는 비행기를 기다렸다. 일행은 홍콩 AMRC(Asia Monitor Resourse Centre)멤버들을 포함한 아홉 명. 고작 한 시간 비행 거리인데 비행기가 두 시간 정도 연착을 했다. 나와 다른 일행은 음악을 듣거나 독서를 하며 시간을 보냈는데 유일한 인도네시아인 동행자인 울란은 평소의 항상 웃고 다니는 얼굴과 달리 초조해하는 듯, 짜증나는 듯 자꾸 비행기가 언제 오는지 알아보고 다녔다.
싱가폴의 남쪽에 붙어있는 자그만 섬 바탐에 간다는 것은 지도를 보니 많은 의의가 있었다. 지난 17일 인도네시아라는 나라에 처음 오면서 ‘난생 처음 적도를 넘어 지구의 남반구에 가본다.’는 기분에 야릇한 생각이 들었다. 근데 많은 섬으로 되어있는 넓은 나라 인도네시아에서 바탐으로 간다는 것은 다시 적도를 넘어 북반구로 가야 하는 것이다. 비록 남반구인 자카르타에서 북반구인 바탐까지 한 시간 거리지만 말이다.
바탐에 도착하여 아담한 호텔에 숙소를 잡고 잠시 쉬는 시간을 가졌다. 소위 선진국 이라는 싱가폴과 무척 가까운 곳 이라는 것을 실감하게 만드는 듯 호텔에 붙어있는 가격표는 자국의 돈 단위 루피아(Rp)가 아닌 싱가폴달러(S$)로 붙어있었다.
호텔 정문에서 바람을 쐬고 있는데 어느 사내가 나에게 손짓 하며 말을 걸었다. “Hey, Fucking Ladies!", "What?", "Fucking Indonesia Ladies, Cheap and Good!", "How Much?"(건전한 내용이 아니므로 해석은 생략합니다) 계산기에 찍어준 돈은 40,000루피아 한국 돈으로 고작 5,000원도 안 되는 액수였다. 반둥에 나흘간 머물렀을 때 워낙에 무슬림의 나라라 술도 잘 안 마시는 인도네시아인을 보고 신기한 생각이 들었는데, 반둥에 도착하자마자 성매매 권유를 받다니.
나중에 한국에 돌아와서야 알았다. 스웨덴의 모 감독이 만든 <B.A.T.A.M>이라는 독립영화는 바탐에 사는 노동자, 특히 여성 노동자의 삶을 그리고 있는데 대규모 공업단지가 형성되면서 대규모의 집창촌이 따라서 증가하고 3,000명 밖에 안 되던 인구가 700,000명으로 늘었다한다. 혹은 싱가폴이라는 나라는 워낙에 부유한 국가이고 법은 까다롭기로 유명한데, 싱가폴의 기성세대는 그런 상태를 좋아 하지만 젊은 세대는 숨이 막힐 지경이라고. 따라서 인근 말레이시아나 인도네시아로 와서 돈을 쓰며 향락에 빠지는 경우가 많은 모양이다. 싱가폴에서 가까운 인도네시아. 바로 이 곳 바탐이다.
푸삿호텔에서 FSPMI(Federals Serikat Pekerija Metal Indonesia: 인도네시아 금속노조)와 AMRC의 Electric Meeting이 일곱 시에야 시작되었다. 우리의 비행기 연착으로 많이 기다린 듯하지만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30명이 넘는 FSPMI 노조간부와 조합원이 참가했는데 두 시간이 넘도록 모두 각자 자기소개를 하고, 우리 일행 아홉 명도 스스로 각자 소개를 하고 나서야 본격 회의가 시작되는 모습이 한국의 그것과 차이가 없어 보였다. 더군다나 순박한 눈빛 사이로 성실함과 강한 의지가 읽히는 모습. 아마 전세계 노동자 운동을 하는 활동가들의 공통적인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동행 울란의 인도네시아어-영어 순차 통역에 의한 회의가 진행 되면서 공유정옥 동지의 발제는 많은 주목을 받았다. 삼성반도체에서 노동자들이 아무 보호 장비 없이 유해물질을 다루는 부분에 한 인도네시아 여성 노동자가 “어, 우리도 똑같은데...”라고 말해서 가슴 아팠다. 한국에 ‘이주노조’가 있다는 사실을 매우 큰 관심을 보이기도 하였다.
여성 노동자들과 포즈를 잡고회의를 참가 전후해서 내 눈에 가장 들어온 사람들은 참가한 여성 노동자들 이었다. 사회자가 여성부문을 따로 소개할 정도로 노조 내에서 여성의 위치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대부분의 여성이 히잡(이슬람교 여성의 전통 복장으로 노출부위를 줄이는 의상류의 총칭.)을 착용하는 이슬람국가인 인도네시아 이고, 노조의 여성들도 히잡을 착용하고 있었지만 그 태도들은 당당하기 그지없었다. 사실 대도시 위주로 다닌 이번 전체 일정 중 이런 여성 노동자들의 모습은 어디서나 만날 수 있었고, 작은 체구에 전통적인 히잡을 쓰고도 전문적이고 ‘현대적인’일을 척척 해내는 모습은 믿음직스럽기 그지없었다. 회의가 끝나자 우리 쪽 참가자들과 ‘자신들이 원하는’ 포즈로 기념사진을 찍기를 ‘강요’ 받아야 했고, 나는 그 강요에 의해 기꺼이 여러 포즈로 모델이 되어야 했다. 귀국 후 역시 그녀들의 강요로 어느 네트워크 사이트로 인연을 맺으며 우리의 관계는 유지되고 있다. 그녀들이 나에게 항상 묻는 말은 “너 언제 바탐에 다시 돌아오니?(When You Come Back to Batam?)”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