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

[11년 7월 - 이러쿵저러쿵] 3박 4일 동안의 기억들...

# 7월 7일 : 울산에서 만나거나 겪은 일
참으로 오래 간만에 울산에 갔다. 유성기업 지회 노동자들의 투쟁으로 사회의 관심사가 된 ‘심야노동철폐를 위한 노동강도 평가사업’을 한지 거의 6년만이다. 이유야 어떻든 참으로 무심했다. 노동자들이 건강하고 안전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밤에는 자고 골병들지 않고 일하기 위해 쉬엄쉬엄 일해야 한다는 나름의 결론이 있었다. 모두들 숙명처럼 여겨왔던 심야노동을 안 하기 위한 현장노동자들의 절박한 요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요구는 지금도 변하지 않았으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측은 임금보전을 빌미로 물량을 절대선으로 삼는 성과(?)를 내고, 부족물량은 추가노동시간 확보, UPH UP 등을 통해 해결할 심산인 듯하다. 대의원활동을 하고 있는 이는 현장상황을 “노동조합의 투쟁전술중 하나인 잔업특근 거부가 사측에 의해 악용되고 있고, 그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지경이 되었다.”고 이야기했다.

우여곡절은 여전히 진행 중인 듯하다. 장시간 노동 특히 하루 2시간 잔업과 특근역시 기본인 현장노동자들의 요구는 그리 절박해 보이지 않는다고도 하고 절박하다고도 했다. 심야노동을 밥 먹듯이 해온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은 밤엔 자기 위해 오랫동안 공을 많이 들였고, 들이고 있다. 노사 교섭과정에서 의견접근 내용 중 여러 가지 쟁점이 있겠지만, 2조의 퇴근시간을 보면서 이걸 왜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밤에는 자기 위한 주간연속2교대제이건만, 숙면을 취하기 위해서는 새벽 1시 이전에 잠을 청해야 할텐데 말이다. 누군가는 ‘선도입 후보완’이라는 논리를 설파하기도 한다지만, 근골격계 집단요양투쟁처럼 수면장애 집단요양투쟁이라도 해야 하는 건 아닌지...... 이런저런 궁리를 하다 노동강도평가사업 때 가끔씩 잤었던 호성장이란 여관에서 잤는데, 겉은 리모델링을 했지만 속은 예전보다 더 후졌다. 내 기대 혹은 필요가 높아져선가?

# 7월 8일 : 부산서 만난 그 그리고 짧지만 좋았던 사진전
그도 참 오랜만이었다. 그가 술에 쩔어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주사를 부리듯 걸어온, 몇 차례의 전화통화 말고는. 술과 고기 그리고 장황했던 것 같기도 하고, 넋두리 같기도 하고, 절제된 분노 혹은 뒤틀어진 억울함 등을 담은 수다를 떨었다. 술도 얼마 안 먹은 것 같은데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 잘 생각이 안 난다. 내가 불편해서인지 기억하기 싫어선지... 그는 어떻게 기억할까 궁금하다. 자기는 쿠~울하다지만, 어찌보면 안쓰럽다는 생각도 든다. 나도 그렇지만 사람이 변하는 것은 참 쉽지 않은 일인 듯하다. 근데 그는 변했다 아니 변화하려 나름 애를 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튼 한 배에 탔었던 기존 관계를 엎고 좀 더 거리두기를 하는 것이 좋겠다는 것을 공감하고 헤어졌다. 앞으로 맺어나갈 그와의 관계가 흥미진진했으면 좋겠다. 거의 불가능에 가깝겠지만, 0.001%의 가능성이 현실로 되길...

사실 그와의 수다보다 더 생각나는 것은 ‘화덕헌’ 작가의 사진전 감상이었다. 그 날은 사진전은 마감했고 쫑파티를 하는 날이었는데, 마무리 직전에 운 좋은 시간을 가졌다. 허름한 단독주택의 2층을 빌려 마련한 전시장은 화환사절용 ‘꽃 사진’으로 나를 맞았다. 사진전의 주제는 천국이었다. 소재는 전국에서 여러 사람들이 찍어 보내온 김밥천국 가게사진이었는데, 작가의 설명이 흥미진진하다. 천국이라는 이름으로 너스레가 판을 치는 ‘천국부족국가’의 실태를 함께 나누고 싶었단다. 4개쯤의 계단-일층의 김밥천국 가게-이층의 Angel in Us Coffee 가게를 한 컷에 담은 대표작은 희망은 어떻게 일그러질 수 있고 일상을 파고드는 가를 보여주는 듯 했다. 참 좋은 만남이었다.

# 7월 9일부터 10일 : 2차 희망버스
7월 4일 저녁에 있었던 경기노동사회월례포럼에서 깔깔깔 기획단 카스토로님의 이야기를 듣고 한 참석자가 던진 이야기가 귓가를 맴돌았다. “희망버스는 희망인가 아님 신기루인가.”
7월 9일 18시에 도착한 부산역. 억수로 쏟아지는 빗속에도 모여 함께하는 이들의 모습은 멋졌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몇 명 못 왔다고 했지만, 몇몇 완성차 지부들의 깃발이 유난히 선명하게 보였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잘 드러나지 않았고 그저 함께 했을 따름이다. 희망은 곳곳의 많은 사람에게 있었고, 드러내고 공유하기 어려웠을 뿐이었다는 걸 느꼈다. 그 열정은 도대체 무엇일까. 희망은 바로 함께 한 이들, 오지는 못했지만 같은 마음을 가진 이들 그 자체이지 않을까. 희망버스는 신기루가 아니었다. 누군가는 희망이 아니라 절망이라고도 했다지만, 저항하는 사람이 희망이다.
사람들. 그들이 삶 곳곳에서 희망의 꽃씨를 뿌리고 가꿔 만들어갈 좋은 꽃밭은 꽃향기와 사람냄새가 물씬 났으면 싶다. 모든 것들과 더불어 흐드러지게 어울릴 수 있으면 좋겠다. 희망을 나누고 절망에 저항하는 산 사람, 말처럼 쉽지 않겠지만 2차 희망버스 마무리 행사 때 참여자들 모두가 공감했듯이 3차 희망버스, 꼭 간다. 계속 간다. 더 많은 이들과 함께. 차수가 필요 없는 희망나누기가 일상이 될 수 있도록 삶의 터전 가꾸기에 애를 쓰는 이들이 하나 둘 늘어갈 때, 천국은 바로 이곳이 될 터이니.
힘들었지만, 하룻밤을 꼬박세울 수 있는 체력을 확인한 것도 좋은 뽀나스.

# 그리고 지나친 그 무엇......
수없이 스쳐 지나친 사람들, 노동들, 일상들, 관계들 그리고 나. 영화 대사였던 것 같은데 기억이 정확하지 않다. 누군가 “사는 게 뭐냐”고 하니까, 누군가 “이야기가 남는다”고 했던 것이 생각난다. 글쎄 어떻게, 누구에 의해, 어떤 방법으로 남을까? 다 다르겠지 뭐. 아니 같을 수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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