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

[11년 7월 - 현장의 목소리] ‘강간, 방화, 폭행, 교통사고 유발....’

경산삼성병원분회 조합원 박 정 현

일 년하고도 두 달
고용보장합의서 이행을 촉구하는 우리의 투쟁이 일 년하고도 두 달 째를 넘기고 있다. 전(前) 경영진의 비리 경영으로 2010년 5월 말 병원이 끝내 문을 닫으면서 우리의 출근투쟁은 시작되었다. 전기도, 물도 끊긴 폐업한 병원엔 지독한 화장실 냄새만이 진동했다. 그러나 우리는 새로운 인수자가 나타나길 기다리며 끝까지 우리의 일터를 지켰다. 몇 달이 지나고 드디어 새로운 인수자가 나타났고 재고용을 희망하는 직원에 대해 전원 고용하겠다는 고용보장합의서를 부산법원과 채결했다.

우리는 기존 직원의 전원고용을 보장했으니 노동자의 대표인 노동조합과 고용에 관한 사항을 논의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만남을 요구했지만 인수단은 인수과정이 완전히 끝난 다음에 만남을 가지겠다고 알려왔다. 인수과정이 끝나고 병원 리모델링을 하는 즈음, 처음 만난 인수단은 주 1회 만나 교섭하자고 했고 약속이 지켜지는 듯 했다. 하지만 그 약속은 단 한차례의 만남도 이루어지지 않은 채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다. 인수단 측은 돌연 그런 약속을 한 적이 없다며 우리를 만날 이유가 없다고 했다. 본래 자본가들이란 참말보다 거짓말을 더 많이 하는 사람들이라 고 알고는 있었지만 그 사실을 또 한 번 확인하니 가진 것이 없는 우리는 더욱 뭉쳐야 함을 느꼈다.

채용면접이 시작되고
경상병원의 인수자는 울산 중앙병원의 이사장이다. 만나서 대화 좀 하자고 수 백 번 외쳤지만 끝내 만나주지 않으니 우리가 가는 수밖에 없었다. 매일 2시간을 달려 울산중앙병원으로 갔다. 만나 달라, 노조를 인정하라, 대화 좀 하자, 더운 여름 중앙병원 앞 뜨거운 아스팔트위에서 끼니를 때우며 농성하는 우리에게 온 답변은 ‘울산중앙병원의 업무방해 가처분 판결’. 게다가 개원준비중인 경산삼성병원 리모델링을 방해했으니 절대 고용하지 않겠다는 억지스런 주장뿐이었다.

우리는 철저히 제외된 채 사측의 채용면접이 진행되었다. 재고용을 희망했던 옛 직원들은 자존심에 상처를 받아가며 면접을 보았다. 하지만 이 또한 문제투성이 면접이었다. 인수단이 만든 이
력서 양식엔 노동조합가입 유무를 적는 난이 있는가 하면 KEC사태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같은 부서에 있던 그 직원은 왜 아직 투쟁하고 있느냐는 둥 사상검증을 위한 면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었다. 결국 합격자는 과거 비노조원이었거나 노조원이라 했을지라도 그들이 기준에 딱 맞는 몇몇 뿐이었다. 그리고 백여명의 고용희망대상자를 남겨둔 채 남은 필요 인원은 생판 처음 보는 신규들로 채워졌다. 결국 새로운 인수자는 싼값에 병원을 매입하기 위해 자기의 입맛에 맞는 옛 직원을 최소한만 고용할 계획으로 고용보장합의서를 썼을 뿐 실제로 고용보장합의서 내용을 이행할 생각 따윈 애초에 없었던 것이다!

경산삼성병원 개원하다
2011년 3월 1일, 끝내 이사장 얼굴한번 못보고 병원은 경산삼성병원이란 이름으로 개원했다. 주 1회 교섭하자는 약속은 온데간데없고 수십명의 용역깡패가 그들을 대신하듯 우리 앞에 서 있었다. 용역깡패는 방어집회신고를 내기 위해 경찰서에서 24시간 진을 치고 있었고, 우리는 집회신고의 방식과 우선순위 놓고 경찰과 2박 3일을 싸워 결국 밤 12시에 제비뽑기를 하자는 결론에 이르렀지만 개원 날은 사측에게 집회신고를 뺏기고 말았다. 그리하여 개원 날 각계인사들이 병원로비를 채우는 동안 우리는 병원 앞이 아닌 도로 건너편에서 비를 맞으며 집회를 할 수 밖에 없었다. 용역들에 의해 선별적으로만 병원출입이 허용된 탓에 우리는 물론이거니와 지역의 진보정당의 시의원조차 용역들에 의해 출입을 거부당하거나 끌려 나왔다. 우리가 십 년 넘게 일한직장이었는데 이젠 그 문 지나지도 못하는 신세... 그날의 기억을 우리는 절대로 잊을 수가 없다.
개원과 동시에 우리는 용역깡패들과의 몸싸움으로 하루를 시작하게 되었다. 깡패들은 출정식, 선전전 등 우리의 일정을 의도적으로 방해하며 오로지 욕설과 폭력으로 우리를 압박했다. 환자분들이 왜 이러는거냐고 물으면 그들은 일 못해서 잘린 놈들이 정신 못 차리고 저런다며 비아냥거린다. 화가 나고 비참한 마음마저 든다. 몸싸움이 시작되면 용역들이 먼저 경찰서에 신고를 했는데 경찰들은 부상자가 나오면 고소하라는 말만 하고는 가버렸다. 정말이지 내 옆의 동지들 말고는 어디 하나 기댈 곳이 없었다.

인간으로서 해서는 안 될 범죄행위
그런 날들이 계속되던 어느 날 우리를 충격과 경악에 빠뜨린 사건이 일어났다. 충청도 유성기업 파업현장에 투입된 용역깡패가 인도로 차를 몰고 돌진해 집회하던 조합원13명이 부상을 당한 사건이 있었는데 그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용역깡패의 고위간부의 수첩이 입수되었다. CJ시큐리티라는 용역경비업체 간부의 수첩 속엔 경상삼성병원과도 거래가 이루어진 것을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이 있었는데 충격적인 것은 여성 분회장과 간부 1명, 조합원 1명 총 3명의 처리방안이었다. 세 명의 실명을 거론하며 “강간, 성매매, 방화, 음주운전 유발, 폭행, 교통사고 유발”이라는 인간으로선 해서는 안 될 범죄행위가 적혀 있었다는 것이다. 이 문건은 미디어 충청에 의해 폭로되었고 사건은 일파만파 퍼졌다.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병원이란 곳에서 과연 이런 반인륜적인 행위들을 할 수 있는 것인가. 이것이 과연 2011년 대한민국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란 말인가! 노동조합을 한다는 게 이렇게 무섭고 끔찍한 일을 당하는 일이란 말인가? 도대체 이 범죄행위가 어디까지 진행되고 있었던 것인지... 만약에 이 문건이 발견되지 않았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우리는 너무 놀랐고 무서웠다. 또 너무 억울해서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그러나 우리는 또 일어나야 했다. 짓밟힌 마음과 빼앗긴 일자리를 되찾기 위해서 또 힘을 내야 했다. 우리는 이 사건에 대한 현수막을 걸고 각종언론, 시민 선전전, 야 4당과 거리연설을 하는 등 시민들에게 알리고 있다. 하지만 경산삼성병원은 이 모든 진실을 부정하고 있다. 이번 사건과 병원은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한다. 당연히 저들은 그렇게 나올 것이다. 일 년이 넘는 시간동안 병원측은 항상 거짓으로 일관하며 진실을 왜곡해왔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번 사건을 덮어버리기엔 너무 많은 정황들이 폭로되었다. 감추려 해도 그 꼬리가 너무 길어져서 도저히 감출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 같다. 이제 많은 지역시민들이 이 사건을 알고 있고 우리를 격려하여 준다.

경산삼성병원은 또 우리에게 경산삼성병원 업무방해가처분을 걸었고 그래서 우리는 현재 108배라는 새로운 형식의 투쟁을 하고 있다. 더운 여름, 쉽지 않은 투쟁방식이지만 우리는 민주노조 깃발을 들고 우리의 빼앗긴 일터를 찾을 수만 있다면 어떠한 투쟁도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반드시 승리하여 그래도 이 땅에 희망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몸소 보여줄 것이고 그런 희망으로 오늘도 값진 땀방울을 닦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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