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난민이 있다고 하면 놀라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난민하면 아프리카 난민캠프를 상상하거나 보트피플을 떠올리기 때문일 것입니다. 난민을 알고 있는 분들도 난민들에 대한 생각은 우리가 떠안아야할 부담스러운 존재이거나 불법체류자 또는 이주노동자와 동일시하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합니다. 그러나 난민은 벽 안의 폭력을 견디기만 하는 대신 두려움 너머의 삶을 찾아 국경을 넘은 용감한 이들입니다.
▲ 6월 19일, 서울역사-청계천광장-대학로에 연달아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나타나 춤을 추고 사라졌다.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함께한 이 플래쉬몹의 메세지는 이렇다 “난민, 우리는 하나입니다” (사진=난민인권센터 홈페이지) |
인권은 국가를 통해 보장받아야 하지만, 자국민의 인권을 보호하는 데 실패하는 국가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민족과 민족이, 나라와 나라가 대적하며 대량 학살을 자행하고, 지진과 기근처럼 국가의 보호 능력을 초월하는 상황도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자국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타국에 도움을 요청하는 난민은 계속 늘고 있습니다. 시민이 국가에 주권을 양도하고 인권을 보장받는 근대의 틀에서 보면 난민의 존재는 국가의 역할과 한계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있습니다.
난민문제 해결을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
국제사회는 박해를 피해 자국 영토에 들어온 난민이 도움을 요청하면 국가가 이들을 보호한다는 내용의 『난민의 지위에 관한 협약』을 만들었고 한국은 1992년에 가입했습니다.
난민협약이 정의하는 난민
① 인종, 종교, 국적 또는 특정 사회 집단의 구성원 신분 또는 정치적 의견을 이유로 ② 박해를 받을 우려가 있다는 충분한 이유가 있는 공포로 인하여 ③ 국적국 밖에 있는 자로서 ④ 그 국적국의 보호를 받을 수 없거나 또는 그러한 공포로 인하여 그 국적국의 보호를 받는 것을 원하지 아니하는 자 및 이들 사건의 결과로서 상주국가 밖에 있는 무국적자로서 종전의 상주국가로 돌아갈 수 없거나 또는 그러한 공포로 인하여 종전의 상주국가로 돌아가는 것을 원하지 아니하는 자 (『난민의 지위에 관한 협약』제1조 “난민”이라는 용어의 정의 A.(2) )
첫째는 반드시 자기 나라 국경을 넘어 다른 나라에 있어야 합니다. 이는 기본적으로 국가가 자국민을 보호해야할 책임이 있기 때문에 난민은 자기 나라의 보호를 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 국제사회가 그 국가를 대신해 보호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둘째는 “박해를 받을 우려가 있는 충분한 이유가 있는 공포”가 있어야 합니다. 특정 사건의 결과로 박해를 받았거나 앞으로 받을 가능성이 있어야 하고, 이런 박해에 대한 공포를 느끼고 있어야 합니다. 난민은 객관적인 상황과 함께 본인의 주관적인 심리상태가 중요합니다.
• 인종은 피부색에 따른 인종, 민족, 종족을 이유로 발생하는 인종청소, 종족분쟁 등입니다.
• 종교는 자신이 믿는 특정종교를 이유로 차별받거나 종교행위의 금지, 강제행위 등입니다.
• 국적은 단순히 특정 국가의 시민권(citizenship)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민족, 종교, 문화 혹은 언어 집단의 구성원 신분을 모두 포함합니다.
• 특정사회집단의 구성원 신분은 다양한 형태의 사회적 차별과 박해(여성할례, 명예살인, 성소수자, 양심적 병역거부)등을 말합니다.
• 정치적 의견은 정부, 정당 등에 대한 의견이나 의사표현을 이유로 받는 박해를 말합니다.
넷째는 자신의 국적국의 보호를 받을 수 없거나 받기를 원치 않아야 합니다.
▲ 콩고민주공화국 출신 부부는 모국 정부의 정치적 박해를 피해 2006년과 2010년에 각각 한국에 와 난민지우 인정을 신청했다. 그리고 올해 3월 아들을 낳았다. 그러나 이 아이는 국적도, 공식적인 출생기록도 없다. 아이의 아버지는 “민주국가라고 해서 한국으로 왔는데 난민의 아이라고 출생 등록조차 받아주지 않았다. 그러고도 어떻게 민주국가라고 할 수 있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2010년 법무부 조사에 따르면 난민(신청자) 395명을 조사해보니 난민(신청자) 자녀의 75.6%가 출생기록자체가 없었다. (사진,글=한겨레) |
1994년부터 난민신청을 받기 시작한 후 2011년 6월 말까지 난민신청자 수는 3,301명이며 이중 난민으로 인정받은 수는 250명뿐입니다. 신청자 대비 약 7%의 인정률을 기록하고 있어 미국 33%, 캐나다 40%에 비하면 한국정부의 난민보호에 대한 무관심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OECD 30개 회원국 중에서 인구대비 난민 비율은 인구 1,000명당 스웨덴이 8명, 독일이 7명. 영국은 4명이고 일본은 인구 100,000명당 1명이지만 한국은 인구 200,000명당 1명으로 꼴찌입니다.
낮은 인정률 외에 한국정부의 가장 큰 문제는 지나치게 긴 심사기간과 이 기간 동안 생계를 이어갈 수단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난민을 신청하고 7년이 지나서야 결과가 나온 케이스도 있으며 보통 2-3년이 걸리는 심사기간동안 체류는 허락하지만 생계의 어려움 때문에 일을 하면 체류자격외 활동으로 잡아가는 실정입니다. 최근 시민사회의 문제제기로 난민신청 후 1년 내에 결과가 나오지 않을 경우 취업을 허가하고 있지만 이런 사실이 잘 알려져 있지도 않고, G-1비자 신분인 난민신청자를 고용하려는 회사도 거의 없어 어렵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난민심사기간의 장기화는 또 다른 문제를 발생시키고 있습니다. 이 기간 동안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결혼하거나 동거를 통해 아이를 출산하게 되어 무국적자가 증가하고 있으며, 장기간 체류 후 난민불인정으로 한국에서 강제출국 시 새로운 정착의 문제, 생계의 어려움으로 인한 인간의 자존감 상실, 완전히 나락으로 떨어진 상태에서 난민인정 받아도 한국사회에서 자립하는데 어려움 초래, 불안정한 신분과 생계의 어려움이 고국에서 받은 박해보다 더 큰 압박으로 작용하는 등의 어려움이 있습니다.
난민으로 인정받으면 취업을 할 수 있지만 고국에서의 학력과 경력을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에 결국 공장노동자로 떠돌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한국사회에서 난민에 대한 불신의 원인은 불법체류자나 산업연수생이 체류연장을 위해 난민제도를 악용한다는, 그리고 돈을 벌려고 왔다는 오해입니다. 하지만 앞서 설명했듯이 난민은 정치색, 종교, 성적취향이 다르다는 이유로 혹은 여성이라는 이유, 소수 민족이라는 이유로 힘을 가진 인간이 쌓은 높다란 벽과 절망을 넘어 세계의 이웃들에게 손을 내민 사람들입니다. 상처입고 한국에 손을 내민 난민들이 우리와 당당히 어울리고 건강한 인간으로 회복될 수 있도록 한국사회의 난민에 대한 무관심과 부정적 인식 그리고 한국정부의 부족한 난민 보호 제도가 개선되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