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노보연 소장 김 정 수
얼마 전 [일터]에 글을 써보겠다고 자청했다. 글쓰기에 특별한 재주가 있다거나 글쓰기에 애정이 넘쳐서 그런 것은 결코 아니다. 연구소 창립 이래로 거의 매달 빠짐없이 [일터]를 발간해오고 있는 위대한(^^) 선전위원 동지들의 노고와 필자를 확보하기 위한 고군분투에 작게나마 일조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긴 했으나, 그 역시 주는 아니었다. ‘글을 써보고 싶다’는 욕구가 주된 이유였다. Writing-phobia(글쓰기 공포증) 수준은 아니었지만, ‘글을 써보고 싶다’는 욕구는 살면서 몇 번 경험해 보지 못한 낯선 것이었다. 이 낯선 욕구가 ‘책을 읽고 싶다’는 욕구의 뒤를 이어 최근에 나를 찾아왔다.
책읽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작년 8월 말쯤이었다. 아기가 태어나고 정신없이 3개월이 지나간 어느 날 문득, 가슴 한 구석이 텅 빈 듯한 느낌이 들었다. 군대 마치고, 직장 구하고, 이사하고, 결혼하고, 와이프 임신하고, 출산하고, 아기 뒷바라지 하고, 그 사이 직장도 한 번 옮기고……. 1년 반이라는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일생의 중대사 몇 개를 몰아서 치르고 났더니 진이 빠진 느낌이랄까.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임했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 걸까? 나는 어디에 있는 걸까?’ 하는 의문이 가슴속에 몽글몽글 피어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가슴 속 가득 의문을 담은 채 답답함을 달래고자 우연히 한 권의 책을 집어 들었다. 아니, 꼭 우연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평소 서점가는 걸 좋아하고, 잘 읽지 않아도 책에 대한 소유욕은 남달랐으니까.ㅎㅎ 그 책도 그 얼마 전에 전공 관련 책을 찾아보려고 서점에 갔다가 우연히 구입하게 된 책이다. 우연과 필연의 절묘한 만남.^^
그 책(독서의 즐거움, 교양인의 행복한 책읽기, 정제원, 베이직북스)을 통해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내가 놓치고 있었던 것은 바로 그 질문 자체가 아니었나 싶었다. 질문이 없으니 사색이 없고, 사색이 없으니 그때그때의 상황에 즉자적으로 반응하면서 이리저리 휩쓸려 다녔던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이 나에게, 내가 지금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를 물어봐 줄 수 있는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침 태어난 아이를 위해 내가 해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이 뭘까 하는 고민도 있었다. 내가 꾸준히 책을 읽어 아이가 책 읽는 습관을 가지게 된다면 그것만큼 좋은 선물도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본격적인 책읽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앞서 얘기한 책에서 소개한 요령(예를 들어, 같은 작가의 다른 책을 읽는다, 같은 테마의 책을 읽는다, 같은 번역자의 책을 읽는다. 등등)에 따라 그 책에서 소개한 책부터 읽기 시작했다. 한 번 시작한 책 읽기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한 권의 책을 읽을 때마다 읽고 싶은 책이 3-4권씩 생기면서 어떤 책을 먼저 읽어야 할까 행복한 고민에 빠지기도 했다. 그렇게 시작해서 지금까지 90여권 정도 읽었다. 한비야씨의 제안대로 1년에 100권 읽기를 목표로 하고 있는데(그래봐야 죽기 전까지 5000권 읽기 힘들다.ㅠ.ㅠ), 이번 달까지 무난하게 목표를 달성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의욕적으로 시작했지만 습관이 되어 있지 않은지라 몇 번의 위기가 있었다. 그 때마다 편하게 생각했다. 읽기 싫으면 읽지 말자. ‘누가 나에게 이 책을 읽으라 하지 않았네.’(^^) 내가 좋아서 시작한 것이고 잠시 중단한다고 해서 뭔 일 나거나 누가뭐라고 하는 것도 아니니까……. 이렇게 마음을 비우고 있다 보면 어느덧 다시 책을 보고 싶은 순간이 찾아오곤 했다. 흐름이 끊긴 상태라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지 모를 때는 처음으로 돌아가서 지금까지 읽은 책들을 훑어보았다. 그러면 읽고 싶었는데 다른 책에 밀려 놓쳤던 책들이 있게 마련이고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했다.
책 읽기를 재미있게 즐기면서 계속 할 수 있었던 데는 또 한 권의 책(책 열권을 동시에 읽어라, 나루케 마코토, 뜨인돌)의 도움도 꽤 컸다. 동시에 10권 책 읽기, 초병렬 독서법(거실, 침실, 화장실, 사무실, 가방 등 일상생활하면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모든 공간에 책을 놓아두고 보일 때마다, 시간 날 때마다 읽기. 즉 책과 함께 살기), 모든 책을 완독할 필요는 없다, 독서도 일종의 놀이다, 돈을 주고라도 책 읽을 시간 사기 등이 이 책에서 제안한 책 읽는 방법이다. 전임 일본마이크로소프트 사장이 샐러리맨을 위해 쓴 일종의 자기계발서로 동의하기 힘든 부분도 있었지만 그가 제안한 방법은 신선했다. 나는 요즘 TV를 거의 보지 않는다(프로야구와 CSI를 제외하고^^). 출퇴근은 가급적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있다. 책이 내 삶의 패턴을 조금씩 바꾸고 있다.
물론 책 읽기가 마냥 재미있고 즐거웠던 것만은 아니다. 책에 너무 심취해 해야 할 일을 뒤로 미뤄놓고 닥쳐서 하느라 괴로웠던 적도 있고, 밤늦게까지 책을 읽다보니 수면시간이 부족해지고 쉽게 잠에 들지 못해 괴로웠던 적도 있었다.(그래서 요즘은 할 일은 하고 책을 읽고자 노력하고 있고, 밤늦게까지 책을 읽은 경우에는 자기 전에 30여분 정도 꼭 명상을 한다. 바로 눕는 것보다 수면의 질이 훨씬 좋아진다.^^)
꼭 일독하고 싶은데 너무 어려운 책을 만나면 정말 괴로워진다.(나루토 마코토씨의 제안에 따르면 당장 집어 던져버려야겠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일독을 해야겠다 싶은 책이 있게 마련이다.) 상식을 뒤집는 책을 읽는 것도 정말 불편한 일이다. 전복의 통쾌함과 상상력을 자극하는 즐거움이 있긴 하지만, 그 상식이 나의 일상과 밀접한 것 일 때는 마냥 즐거울 수만은 없다.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아무 의심 없이 살아왔는데 그게 아닐 수도 있다니…….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혜택, 특권은 그 상식에 기반을 둔 것인데……. 내가 그 생각을 진정으로 받아들이려면 내가 누리고 있는 혜택, 특권을 포기해야 하는 건데……. 이반 일리히의 책들(학교없는 사회, 생각의 나무 등)이 딱 그런 책이다.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이런 불편함은 없었을 텐데…….ㅠ.ㅠ
또 하나의 괴로움은 공감에 대한 욕구다. 인상 깊은 책을 읽고 나면 책에 관한 얘기를 누군가와 나누고 싶어진다. 물론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에서 그 책을 읽은 사람들을 찾아서 그들과 공감할 수도 있겠지만, 워낙 아날로그적 인간인지라 가까운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마음이 훨씬 크다. 함께 사는 짝꿍과 얘기하고 싶은데 학교 일정이 워낙 바빠서 얘기할 수 있는 기회를 내기가 쉽지 않아 괴롭다. 얼마 전 친한 친구들을 초대해 집들이를 했는데, 대화의 핵심 주제는 야구였다. (물론 나도 야구를 무척 좋아하기는 하지만) 나는 책 얘기를 하고 싶었는데 할 수가 없었다. 참 슬펐다.ㅠ.ㅠ ‘글을 쓰고 싶다’는 욕구는 공감에 대한 욕구이다. 소위 ‘사서 고생’을 하게 된 것이다.
얼마 전, 내가 책을 읽는 이유, 책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 등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책을 발견했다.(연구소 상임 활동가 동지가 추천해 준 책이라고 생각하고 너무 재미있게 잘 읽었다고 감사의 문자까지 보냈는데, 알고 봤더니 그 동지가 추천해 준 책은 같은 시리즈의 다른 책이었다는 거~~.ㅋㅋ) [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 고미숙, 그린비]가 그 책이다. 너무 반갑고, 기쁘고, 즐겁고, 고마웠다. (너무 과한가?ㅋㅋ) 수다쟁이 아줌마 고미숙씨가 제안한 대로 공부의 달인이 되고자 스승과 도반 찾기를 시작할까 한다. 그리고 이 즐거운 고행의 과정에서 나를 웃기고 울리는 책들을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