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9월|노안활동가에게듣는다] “나의 모든 혼과 열정으로 당신을 포옹합니다!”
▴부산울산경남 권역 노동자 건강권 대책위 권용수 집행위원장 인터뷰
▴정리 _ 선전위원 타래
풍채 좋고, 인상 좋고, 넉살도 좋아 보이는 경상도 남자. 그의 첫 인상은 그랬다. 부산울산 경남 노동자 건강권 권역대책위 활동을 하면서 집행위원장인 그와 함께 문턱이 닳도록 노동부에 쳐들어갔다가 마침내 공무원들이 살을 떨며 기피하는 대상이 돼 버린 지금, 문득 공무원들끼리 그를 지칭하여 부르는 별명 같은 게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바위처럼 앉아서 쉼표 하나 없이 일목요연하게 속사포로 쏟아져 나오는 항의와 요구들. 어찌 피하고 싶지 않겠는가? 찰나를 포착한 베테랑 공무원이 그의 말을 끊을라치면 “아니, 이보세요!”라는 외마디 외침에 속사포 같은 반박이 이어지고 그 민첩한 공무원은 더욱 처지가 되고 만다. 그의 첫인상에서 발견하지 못한 이런 모습. 그의 무기는 따로 있었다.
취조실 같은 좁은 회의실. 덜덜거리며 돌아가는 선풍기 앞에서 그의 삶을 물었다. 1998년 민주노총 울산본부에서 일을 하다 2002년도 금속연맹에서 일을 하게 되었고 2005년부터 노안활동 시작. 미조직비정규사업으로 현대자동차비정규직 사업을 전담하면서 어떨결에 노안 활동을 하게 되었다는, 역시나 쉼표하나 없이 촘촘하게 읊는 그의 말을 끊고 한 숨을 내쉬었다. 뭔가 드라마틱한 걸 기대했을까. 할 말만 하는 그를 제지했고, 필자가 공무원이 아닌 이상 그도 마지못해 쉼표를 꾹 찍고 잠시 생각에 잠긴다. 천천히 웃음도 섞어가며 처음으로 편안한 대화를 나눴다.
“1990년 전노협이 탄생하고, 3당 합당으로 민자당이 만들어지게 되는데 당시에 ‘파쇼 대야합 분쇄와 전노협 사수를 위한 학생 투쟁결사대’ 소속으로 대구시 경찰청을 점거하고 타격하다가 구속되어 1년 살게 되었어요. 만기 출소하고 학교를 그만두고 현대 자동차 3차 공장으로 들어갔다가 해고되고 울산으로 오게 되었어요.”
피 끓던, 그러나 조금은 말랑했던 젊은이는 공공건조물 방화와 함께 딸려오는 이런저런 혐의를 줄줄이 달고 감방에서 1년간 단단하게 굳어갔다. 젊은이는 죄(?)를 뉘우치지 않았고, 비슷한 죄(?)를 조금씩 더 저지르며 당시 내린 결론대로 지금까지 살고 있다.
노안활동을 하게 된 계기와 활동을 하면서 갖게 된 생각은
금속노조 조직 2부장으로서 여러 가지 일을 맡다보니 노안활동도 하게 되었다. 그런데 하다 보니 이게 굉장히 노동자에게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을 했다. 이 일을 하면서 느꼈던 게 노동 안전문제가 경제문제 그러니까 고용, 임금 같은 생존권과 이어지는 경제의 상승과 하락의 문제에 얽매이게 되는데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주장하는 건강권에 대한 문제가 설득력이 약하고, 풀어내기 쉽지가 않다는 것이다. 일반 건강의 문제에 대해서는 민감하게 반응하지만 노동 건강에 대해서는 그러한 감수성이 없다. 같은 석면에 대해서도 그 차이가 극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예컨데 현장 밖의 석면에는 거부감과 혐오감을 드러내면서 현장에 널려있는 가스켓에는 무감각하다. 경제 위기에 속박될 수밖에 없는 구조에서 열악한 일터로 내몰려 건강권 문제에 대해 냉소적이게 된다. 때문에 노안사업이 현장에서나 노조전체에서나 중심 사업이 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그러나 여전히 조선업에서의 추락, 협착, 전도 같은 사고가 빈번하고, 예전에는 과로사의 문제가 쟁점이 되지 않았는데, 이제는 과로사나 뇌심혈관계 질환이 주요한 쟁점이 되고 있고, 이러한 것을 보면서 우리 노동운동에 노안운동이 핵심적으로 되어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한다.
부울경 권역 노동자 건강권 대책위에 대해 소개하자면
2007년 산재법이 개악 되고 산재법 개악을 저지하기 위한 지금의 권역 대책위의 전신이라고 볼 수 있는 영남공대위가 구성이 되었다. 질병판정위원회(이하 질판위)가 권역별로 만들어졌기에 거기에 대응하기 위해 우리도 권역별로 구성되게 된 것이다. 이후 영남권에서 산재 개악 문제에 대해 지속적으로 문제제기를 하며 투쟁을 전개하게 되는데, 전국적인 권역별 대책위의 구성을 제안하게 되었고, 이후 민주노총의 사업으로써 2010년, 부울경 권역 대책위로 출범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전개하고 있는 활동은 근로복지공단이나 노동청이나 질판위를 상대로 한 항의 투쟁과 더불어 우리의 내용을 채우기 위한 현안문제에 대한 토론과 학습을 많이 해왔다. 산재보험 개혁과제와 산재보험 공공성 강화의 문제, 4대 보험 통합에 관한 문제로 정부자료를 분석하고, 우리의 내용을 만들어 가는 심도 깊은 토론회를 여러 차례 개최했다.
전신이었던 영남공대위의 활동과의 차이점이 있다면?
영남공대위의 경우, 중앙과 전국적 투쟁의 흐름으로 만들어 내지 못한 지역적 한계가 있었지만 질판위에 대한 조직적 대응과 독소조항에 대한 인식을 높여 내고, 권역별 대응의 계기를 마련한 부분은 의미가 있다. 권역대책위는 노동 산재보험에 대한 문제뿐만이 아니라, 사회적 건강권으로서의 노동자 건강권, 즉 건강권에 대한 일반화된 담론으로서 고민의 폭이 확장 되었다고 본다. 또, ‘4월 투쟁’같이 시기를 못 박고 하는 연례 투쟁이 아니라 일상적이고 지속적인 투쟁을 위해 그 틀로써 상호 호흡을 맞출 수 있는 지역대책위를 구성하여 지역대책위의 활성화 속에서 유기적이고 긴밀한 대응이 용의하도록 했다.
사회적 건강권으로서의 노동자 건강권이란
모든 노동자는 업무와 연관이 있든 없든 보험혜택을 받아야 한다. 혹자는 노동자 이기주의가 아니냐고 하는데 절대로 그렇지 않다. 사회보험의 공공성을 강화하면 가능한 것 아닌가? 몸 하나로 임노동을 통해 살아가는 노동자는 사회적으로 건강권을 보장 받는 건 당연한 것이다. 현재 질병의 경우 입증 책임이 노동자에게 있는데 그걸 꼭 입증해야 하나? 노동과정에 있는 사람의 손상된 건강 문제는 노동자라는 지위가 명백한 이유고 이에 대한 보상을 위해 산재보험이 있는 것이다.
영남공대위라는 전신을 거쳐 권역 대책위로 거듭나기까지 많은 변화가 있었고 진전된 활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해오고 있는데 우려 되는 점은 활동주체의 변화가 없는 것 같다. 새로운 주체 발굴 없이 권역 대책위가 지속 가능할까
활동 주체 형성에 관해서라면 예전에는 소위 ‘재생산’이 잘 되었다. 현장에도 적극적으로 들어가고 그랬는데 요즘엔 그런 게 없어졌다. 사회시스템에 대한 구조와 내용들 속에서 활동가들이 배출되는 것이 어려워지지 않는가라고 본다. 그런 어려움을 뚫고 지속되도록 해야 한다. 노안단체 같은 경우와는 달리 노조라는 공조직에선 사람은 바뀔 수가 있다. 이런 말이 있지 않는가. ‘물이 고이면 썩는다.’ 하지만 한편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노동안전 문제가 실제로 단 한 번에 떨어지는 문제가 아니라 전문화되어 있는 업무 중에 하나라고 보기 때문에 노조활동 속에서 전문화되어 체계적으로 자리 잡아 지속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사실 주체에 대한 고민이 많다. 예전엔 헌신성과 투쟁성과 계급성을 가지고 활동가로서 위치와 규정들을 계급 속에서 통찰 해내려는 의지로 활동을 해왔는데 지금은 직장인이라는 개념의 행태로 가고 있지 않나 하는 안타까움이 있다. 끊임없는 투쟁과 이론을 겸비해 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일터독자에게 하고 싶은 말
일터 독자들은 노동자 건강권에 대한 인식과 내용이 있다고 본다. 여러 사람이 함께 공감할 수 있도록 나눠 보고, 좋은 내용을 전파할 수 있는 전달자가 되었으면 좋겠다. 하나의 행동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토대가 되고 실천을 통해서만이 해답을 찾을 수 있다.
“나의 모든 혼과 열정으로 당신을 포옹합니다!” 젊은 날을 회상하며 어렴풋이 기억해낸, 그가 즐겨 쓰던 말이다. 아직 총각인 그가 외롭지 않은 이유가 아닐까.
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