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9월|새세상열기] 재소자 인권,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글 싣는 순서
(1) 청소년 - 청소년이 노동인권과 만나면? (2월호)
(2) 여성 - 여성의 몸에 대한 건강권과 자기결정권,
당사자가 아닌 누가 결정하려 하는가? (3월호)
(3) 성소수자 - 성소수자 노동자 이야기 (5월호)
(4) 장애 - 서른 아홉에 시작한 자립생활 (6월호)
(5) 난민 - 벽을 넘을 사람들 (7월호)
(6) 반전평화 - 양심적 병역 거부 (8월호)
(7) 재소자인권,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9월호)
이광열(구속노동자후원회 사무국장)
‘인권 운동’한답시고 감옥을 왔다 갔다 한 지도 10년이 넘은 것 같다. 그 동안 재소자에게도 당연히 보장받아야 할 인권이 있고, 열악한 감옥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고 핏대를 세웠지만, 노력한 결과 무엇이 바뀌었는지 되돌아보면 허탈해진다.
지금 이 순간에도 감옥 안에서 바깥이라면 누구나, 당연히 누릴 수 있는 사소한(?)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희생하며 투쟁하고 있는 양심수와 의식 있는 재소자들이 있다. 감옥 안에서 이런 투쟁이 벌어질 때 그들의 투쟁 못지않게 중요한 건 바깥의 연대다. 언론에 이런 사실을 알리고, 감옥으로 달려가 문제점을 개선하라고 촉구하면서 항의 투쟁을 벌여야 한다. 안팎의 연대 투쟁이 제대로 이루어지면 교정 당국은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다.
개별 감옥에서 벌어지는 이러한 투쟁들이 쌓여서 변화의 흐름을 형성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투쟁 주체들이 감옥에서 나가고, 개선을 약속했던 소장이 다른 곳으로 가버리면 ‘말짱 도루목’이 되는 경우도 많았다.
무엇보다 정치적인 변화가 ‘교정 행정’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그러기에 감옥 인권을 개선하기 위한 투쟁은 재소자 인권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확대하면서, 제도와 환경을 근본적으로 바꿔낼 수 있는, 폭 넓은 투쟁으로 나아가야 한다.
재소자 인권? 그게 뭐야?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재소자 인권에 대해 잘 모르거나 부정적이다. 감옥에 갇혀 있는 재소자라고 하면 ‘연쇄 살인범’이나 ‘성 폭력범’을 먼저 떠올린다. “그런 놈들에게 무슨 인권이냐? 죄를 지었으면 죄 값을 치루 게 해야 한다”고 볼멘 소리를 해대는 사람들도 많다. 교정 당국은 이런 주장을 일반적인 ‘국민 정서’라고 우기며 후진적인 감옥 인권 상황을 정당화 한다.
한번 생각해 보자. 전국 47개 감옥에 하루 평균 5만여 명의 재소자들이 수감생활을 한다. 그들 가운데 흔히들 생각하는 ‘흉악 범죄자’는 채 1%도 안 된다. 빈곤과 잘못된 법, 제도 때문에 범죄의 나락으로 떨어진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사회 정의를 위해 싸우다 억울하게 구속된 양심수들도 있다. 설사 ‘흉악 범죄자’들이라 할지라도 그들에게 죄 값을 물리는 건, 사회로부터 격리해서 자유를 박탈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CCTV가 설치된 독방 안에 24시간 가둬 놓고, 남들은 다 보는 TV도 못 보게 하면서 몸이 아픈 데 제대로 치료조차 안 해 준다면 이것은 구금 이외에 불필요한 고통을 강요하는 것이므로 명백한 인권침해다.
이 말에 동의가 잘 안된다면 보다 근본적인 문제로 돌아 가보자. 국가가 개인의 신체적 자유를 박탈하는 구금형을 집행하는 목적은 어디에 있는가? 궁극적으로는 사회를 범죄로부터 보호하는 데 있다. 1957년에 제정된 “UN 피구금자 처우에 관한 최저기준규칙”(이하 최저기준규칙)을 비롯한 국제인권규범들은 이런 목적을 달성하려면 구금기간을 잘 활용해서 범죄자가 사회에 복귀한 뒤 스스로 법을 지키고 새로운 삶을 살아 나갈 수 있는 능력을 키워 줄 때 가능하다고 본다. 결국 범죄와 인간을 바라보는 철학과 직결된다. ‘교정·교화’ 이론은 이러한 철학에서 나왔다. 범죄의 발생 원인을 개인의 문제로만 보지 않고, 사회 구조적인 문제로 바라보면서 문제 해결을 위해 국가와 사회 구성원들이 함께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 그러기 위해선 재소자를 사회와 동떨어진 존재로 바라볼 게 아니라 우리와 똑같이 사회를 구성하는 일부로 인식하면서 구금시설 내부 환경이 바깥의 생활 환경과 큰 차이가 없도록 유지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극단적인 신자유주의 신봉자,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면서 ‘민주화’ 이후 조금씩 힘을 얻어가던 원칙적인 의미에서의 ‘교정 행정’ 이론은 설 자리를 잃게 되었다. ‘교정·교화’는 말 뿐이고 권위적이고 폐쇄적인 구태 행정으로 되돌아갔다. 범죄의 원인을 철저하게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면서 ‘흉악범죄’ 사건이 터질 때마다 새로운 ‘악마’를 부각시키면서 형벌을 강화하는 논거로 삼았다. 국가가 마땅히 책임져야 할 행형 비용을 재소자 개인에게 떠넘기는 작태가 만연돼 있다. 한국 감옥의 인권 문제를 지적하자면 너무나 많지만, 가장 중요하면서도 낙후돼 있는 분야가 바로 재소자 건강권 문제다.
치료는 자비로?
지난 8월 29일부터 4박 5일 동안 나는 여러 노동, 인권 단체 활동가들과 함께 전국의 감옥을 돌며 양심수들을 면회하고 감옥의 인권 상황을 파악하는 시간을 가졌다. 양심수들은 그나마 사회적 여론 때문에 일반 재소자들에 비해 처우가 나은 편인데도 가장 기본적인 건강권조차도 보장받지 못한 채 고통스런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유성기업 파업으로 구속돼 천안교도소에 수감 중인 최희찬 동지는 집회에 참석하려다 사복 경찰에게 붙잡혀 집단 폭행을 당했다. 갈비뼈 2대가 부러지고 왼쪽 발목 인대와 무릎 십자인대가 파열된 상태였지만, 검찰은 ‘공무집행을 방해’했다는 이유로 두 차례 영장 청구 끝에 구속시켰다. 그는 옆에서 다른 재소자가 도와주지 않으면 샤워도, 식사도 자기 힘으로 할 수 없다. 몸이 아파 잠도 제대로 못 이루고 식욕마저 잃어버렸다. 한쪽다리로 계속 걷다보니 허리까지 문제가 생겼고, 거동을 제대로 못하다보니 치질까지 걸렸다. 이렇게 심각한 중증 환자를 무리하게 구속시킨 판사와 검사들이 도무지 인간으로 보이지 않는다. 교도소는 환자의 증세가 더 악화되지 않도록 신경을 쓰고 있다지만, 그럴만한 환경을 전혀 갖춰놓지 못했다. 그는 당장 무릎 십자인대 수술부터 받아야 한다. 하지만 수술을 받고난 후가 더 걱정이다. 제대로 걸을 수 있으려면 6개월가량 물리치료를 받아야 하는 데, 교도소 안에는 그런 시설도 인력도 없다. 조금만 참으면 재판부가 보석 결정을 내릴 거라 예상하며 차일피일 수술을 미루다보니 두 달이 흘렀다. 더욱 어처구니없는 건 그가 자기 증세가 뭔지 정확히 알아보기 위해 MRI 촬영을 신청했는데 소장은 꼭 필요한 치료가 아니라며 외부진료를 허가하지 않았다. 참다못해 자비로 찍어보겠다고 요청하자, 그제 서야 얼른 허가를 내주었다.
천안교도소장은 재소자의 건강과 위생을 책임져야 할 의무가 있는 데도, 불비한 환경과 예산을 핑계 삼아 최희찬 동지와 같은 중증환자를 사실상 방치하면서 치료비용마저 개인에게 부담시킨 것이다. 이런 상황은 천안교도소 뿐 아니라 전국 곳곳에서 벌어진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자료에 따르면 47개 교정시설에 의사 84명, 약사 3명, 간호사 71명, 의료기사(방사선사, 임상병리사) 14명, 일반직원 254명, 정원외 공중보건의사 76명을 포함 총 502명이 배치되어 있다.(2008년 2월 21일 현원 기준) 이들이 5만 명에 이르는 재소자들의 건강을 관리한다. ‘최저기준규칙’에는 구금시설마다 1명의 정신과 의사를 필히 상주시켜야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한국의 감옥에는 단 한 명도 없다.
교도소 의료과에선 고작 투약 정도밖에 할 수 없는데, 운동 부족과 영양 부족, 구금에 따른 정신적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재소자들로선 여간 불안한 게 아니다. 그러다 보니 외부병원 진료를 많이 요구하게 된다. 그 결과 외부진료에 따른 국비 부담액이 2006년 50억원에서 2007년부터 125억원으로 늘어나면서, 책정된 예산(약 105억원)을 초과해 버리자, 법무부는 신청자들 가운데 ‘가짜 환자들이 많다’며 “수용자 의료관리 지침”(예규)을 바꿔, 자비 부담을 확대했다.
하지만 지난 해 국민 1인당 진료비용이 89만3천원인 걸 감안하면 5만여 명의 재소자들의 외부 진료를 위해 책정한 100억원대의 예산 자체가 너무나 비현실적이다. 게다가 외부 진료 비용 증가의 원인은 건강보험제도가 약화되면서 병원들이 앞 다퉈 진료비용을 올린 탓이 크다. 따지고 보면 모두가 정부의 잘못에서 비롯되었는데 애꿎은 재소자들에게 그 책임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건강보험법에 따라 구속된 재소자들은 자동적으로 의료보험 수급 대상에서 제외된다. 이것은 국가가 재소자들의 건강을 책임지고 의료서비스를 무상으로 제공하겠다는 약속을 한 것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외부 진료를 받고자 하는 재소자들에게 자비 부담을 확대한다면, 돈 없는 재소자들은 웬만큼 아프지 않고선 외부 진료 나갈 엄두조차 못 낼 것이다. 그러다 점점 병을 키우게 되고, 급기야 생명을 위협 받는 상황까지 가게 될지도 모른다.
재소자 인권에 많은 관심과 지지를
지난해 국정감사 자료(한나라당 박준선 의원실)에 따르면 2006년부터 2010년 7월말까지 전국 감옥에서 사망한 재소자는 모두 132명에 이른다. 이 가운데 65명이 자살을 했고, 30명이 형기를 1년 남겨둔 시점에서 사망했다. 자살자 수는 2004년부터 연간 두 자리 수를 기록하면서 급증하고 있다. 한 때의 실수로 잘못을 저질러 감옥에 가긴 했지만, 부디 새 사람이 되어 건강하게 돌아와 주기를 바랬던 가족들의 입장에서 이 보다 더 뼈에 사무치는 참극이 어디에 있을까?
얼마 전 자살을 기도한 ‘탈옥수’ 신창원 씨의 사례가 보여주듯이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감옥에서는 새로운 희망을 찾을 수 없고, 사회에 나간다 해도 전과자의 낙인 때문에 평생을 이방인처럼 살아가야 하는 사회 현실이 계속된다면 ‘범죄로부터 안전하고 행복한 사회’는 요원할지도 모른다. 재소자 인권에 대한 더 많은 이들의 관심과 지지를 호소한다.
일터
글 싣는 순서
(1) 청소년 - 청소년이 노동인권과 만나면? (2월호)
(2) 여성 - 여성의 몸에 대한 건강권과 자기결정권,
당사자가 아닌 누가 결정하려 하는가? (3월호)
(3) 성소수자 - 성소수자 노동자 이야기 (5월호)
(4) 장애 - 서른 아홉에 시작한 자립생활 (6월호)
(5) 난민 - 벽을 넘을 사람들 (7월호)
(6) 반전평화 - 양심적 병역 거부 (8월호)
(7) 재소자인권,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9월호)
이광열(구속노동자후원회 사무국장)
‘인권 운동’한답시고 감옥을 왔다 갔다 한 지도 10년이 넘은 것 같다. 그 동안 재소자에게도 당연히 보장받아야 할 인권이 있고, 열악한 감옥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고 핏대를 세웠지만, 노력한 결과 무엇이 바뀌었는지 되돌아보면 허탈해진다.
지금 이 순간에도 감옥 안에서 바깥이라면 누구나, 당연히 누릴 수 있는 사소한(?)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희생하며 투쟁하고 있는 양심수와 의식 있는 재소자들이 있다. 감옥 안에서 이런 투쟁이 벌어질 때 그들의 투쟁 못지않게 중요한 건 바깥의 연대다. 언론에 이런 사실을 알리고, 감옥으로 달려가 문제점을 개선하라고 촉구하면서 항의 투쟁을 벌여야 한다. 안팎의 연대 투쟁이 제대로 이루어지면 교정 당국은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다.
개별 감옥에서 벌어지는 이러한 투쟁들이 쌓여서 변화의 흐름을 형성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투쟁 주체들이 감옥에서 나가고, 개선을 약속했던 소장이 다른 곳으로 가버리면 ‘말짱 도루목’이 되는 경우도 많았다.
무엇보다 정치적인 변화가 ‘교정 행정’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그러기에 감옥 인권을 개선하기 위한 투쟁은 재소자 인권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확대하면서, 제도와 환경을 근본적으로 바꿔낼 수 있는, 폭 넓은 투쟁으로 나아가야 한다.
재소자 인권? 그게 뭐야?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재소자 인권에 대해 잘 모르거나 부정적이다. 감옥에 갇혀 있는 재소자라고 하면 ‘연쇄 살인범’이나 ‘성 폭력범’을 먼저 떠올린다. “그런 놈들에게 무슨 인권이냐? 죄를 지었으면 죄 값을 치루 게 해야 한다”고 볼멘 소리를 해대는 사람들도 많다. 교정 당국은 이런 주장을 일반적인 ‘국민 정서’라고 우기며 후진적인 감옥 인권 상황을 정당화 한다.
한번 생각해 보자. 전국 47개 감옥에 하루 평균 5만여 명의 재소자들이 수감생활을 한다. 그들 가운데 흔히들 생각하는 ‘흉악 범죄자’는 채 1%도 안 된다. 빈곤과 잘못된 법, 제도 때문에 범죄의 나락으로 떨어진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사회 정의를 위해 싸우다 억울하게 구속된 양심수들도 있다. 설사 ‘흉악 범죄자’들이라 할지라도 그들에게 죄 값을 물리는 건, 사회로부터 격리해서 자유를 박탈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CCTV가 설치된 독방 안에 24시간 가둬 놓고, 남들은 다 보는 TV도 못 보게 하면서 몸이 아픈 데 제대로 치료조차 안 해 준다면 이것은 구금 이외에 불필요한 고통을 강요하는 것이므로 명백한 인권침해다.
이 말에 동의가 잘 안된다면 보다 근본적인 문제로 돌아 가보자. 국가가 개인의 신체적 자유를 박탈하는 구금형을 집행하는 목적은 어디에 있는가? 궁극적으로는 사회를 범죄로부터 보호하는 데 있다. 1957년에 제정된 “UN 피구금자 처우에 관한 최저기준규칙”(이하 최저기준규칙)을 비롯한 국제인권규범들은 이런 목적을 달성하려면 구금기간을 잘 활용해서 범죄자가 사회에 복귀한 뒤 스스로 법을 지키고 새로운 삶을 살아 나갈 수 있는 능력을 키워 줄 때 가능하다고 본다. 결국 범죄와 인간을 바라보는 철학과 직결된다. ‘교정·교화’ 이론은 이러한 철학에서 나왔다. 범죄의 발생 원인을 개인의 문제로만 보지 않고, 사회 구조적인 문제로 바라보면서 문제 해결을 위해 국가와 사회 구성원들이 함께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 그러기 위해선 재소자를 사회와 동떨어진 존재로 바라볼 게 아니라 우리와 똑같이 사회를 구성하는 일부로 인식하면서 구금시설 내부 환경이 바깥의 생활 환경과 큰 차이가 없도록 유지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극단적인 신자유주의 신봉자,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면서 ‘민주화’ 이후 조금씩 힘을 얻어가던 원칙적인 의미에서의 ‘교정 행정’ 이론은 설 자리를 잃게 되었다. ‘교정·교화’는 말 뿐이고 권위적이고 폐쇄적인 구태 행정으로 되돌아갔다. 범죄의 원인을 철저하게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면서 ‘흉악범죄’ 사건이 터질 때마다 새로운 ‘악마’를 부각시키면서 형벌을 강화하는 논거로 삼았다. 국가가 마땅히 책임져야 할 행형 비용을 재소자 개인에게 떠넘기는 작태가 만연돼 있다. 한국 감옥의 인권 문제를 지적하자면 너무나 많지만, 가장 중요하면서도 낙후돼 있는 분야가 바로 재소자 건강권 문제다.
치료는 자비로?
지난 8월 29일부터 4박 5일 동안 나는 여러 노동, 인권 단체 활동가들과 함께 전국의 감옥을 돌며 양심수들을 면회하고 감옥의 인권 상황을 파악하는 시간을 가졌다. 양심수들은 그나마 사회적 여론 때문에 일반 재소자들에 비해 처우가 나은 편인데도 가장 기본적인 건강권조차도 보장받지 못한 채 고통스런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유성기업 파업으로 구속돼 천안교도소에 수감 중인 최희찬 동지는 집회에 참석하려다 사복 경찰에게 붙잡혀 집단 폭행을 당했다. 갈비뼈 2대가 부러지고 왼쪽 발목 인대와 무릎 십자인대가 파열된 상태였지만, 검찰은 ‘공무집행을 방해’했다는 이유로 두 차례 영장 청구 끝에 구속시켰다. 그는 옆에서 다른 재소자가 도와주지 않으면 샤워도, 식사도 자기 힘으로 할 수 없다. 몸이 아파 잠도 제대로 못 이루고 식욕마저 잃어버렸다. 한쪽다리로 계속 걷다보니 허리까지 문제가 생겼고, 거동을 제대로 못하다보니 치질까지 걸렸다. 이렇게 심각한 중증 환자를 무리하게 구속시킨 판사와 검사들이 도무지 인간으로 보이지 않는다. 교도소는 환자의 증세가 더 악화되지 않도록 신경을 쓰고 있다지만, 그럴만한 환경을 전혀 갖춰놓지 못했다. 그는 당장 무릎 십자인대 수술부터 받아야 한다. 하지만 수술을 받고난 후가 더 걱정이다. 제대로 걸을 수 있으려면 6개월가량 물리치료를 받아야 하는 데, 교도소 안에는 그런 시설도 인력도 없다. 조금만 참으면 재판부가 보석 결정을 내릴 거라 예상하며 차일피일 수술을 미루다보니 두 달이 흘렀다. 더욱 어처구니없는 건 그가 자기 증세가 뭔지 정확히 알아보기 위해 MRI 촬영을 신청했는데 소장은 꼭 필요한 치료가 아니라며 외부진료를 허가하지 않았다. 참다못해 자비로 찍어보겠다고 요청하자, 그제 서야 얼른 허가를 내주었다.
천안교도소장은 재소자의 건강과 위생을 책임져야 할 의무가 있는 데도, 불비한 환경과 예산을 핑계 삼아 최희찬 동지와 같은 중증환자를 사실상 방치하면서 치료비용마저 개인에게 부담시킨 것이다. 이런 상황은 천안교도소 뿐 아니라 전국 곳곳에서 벌어진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자료에 따르면 47개 교정시설에 의사 84명, 약사 3명, 간호사 71명, 의료기사(방사선사, 임상병리사) 14명, 일반직원 254명, 정원외 공중보건의사 76명을 포함 총 502명이 배치되어 있다.(2008년 2월 21일 현원 기준) 이들이 5만 명에 이르는 재소자들의 건강을 관리한다. ‘최저기준규칙’에는 구금시설마다 1명의 정신과 의사를 필히 상주시켜야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한국의 감옥에는 단 한 명도 없다.
교도소 의료과에선 고작 투약 정도밖에 할 수 없는데, 운동 부족과 영양 부족, 구금에 따른 정신적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재소자들로선 여간 불안한 게 아니다. 그러다 보니 외부병원 진료를 많이 요구하게 된다. 그 결과 외부진료에 따른 국비 부담액이 2006년 50억원에서 2007년부터 125억원으로 늘어나면서, 책정된 예산(약 105억원)을 초과해 버리자, 법무부는 신청자들 가운데 ‘가짜 환자들이 많다’며 “수용자 의료관리 지침”(예규)을 바꿔, 자비 부담을 확대했다.
하지만 지난 해 국민 1인당 진료비용이 89만3천원인 걸 감안하면 5만여 명의 재소자들의 외부 진료를 위해 책정한 100억원대의 예산 자체가 너무나 비현실적이다. 게다가 외부 진료 비용 증가의 원인은 건강보험제도가 약화되면서 병원들이 앞 다퉈 진료비용을 올린 탓이 크다. 따지고 보면 모두가 정부의 잘못에서 비롯되었는데 애꿎은 재소자들에게 그 책임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건강보험법에 따라 구속된 재소자들은 자동적으로 의료보험 수급 대상에서 제외된다. 이것은 국가가 재소자들의 건강을 책임지고 의료서비스를 무상으로 제공하겠다는 약속을 한 것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외부 진료를 받고자 하는 재소자들에게 자비 부담을 확대한다면, 돈 없는 재소자들은 웬만큼 아프지 않고선 외부 진료 나갈 엄두조차 못 낼 것이다. 그러다 점점 병을 키우게 되고, 급기야 생명을 위협 받는 상황까지 가게 될지도 모른다.
재소자 인권에 많은 관심과 지지를
지난해 국정감사 자료(한나라당 박준선 의원실)에 따르면 2006년부터 2010년 7월말까지 전국 감옥에서 사망한 재소자는 모두 132명에 이른다. 이 가운데 65명이 자살을 했고, 30명이 형기를 1년 남겨둔 시점에서 사망했다. 자살자 수는 2004년부터 연간 두 자리 수를 기록하면서 급증하고 있다. 한 때의 실수로 잘못을 저질러 감옥에 가긴 했지만, 부디 새 사람이 되어 건강하게 돌아와 주기를 바랬던 가족들의 입장에서 이 보다 더 뼈에 사무치는 참극이 어디에 있을까?
얼마 전 자살을 기도한 ‘탈옥수’ 신창원 씨의 사례가 보여주듯이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감옥에서는 새로운 희망을 찾을 수 없고, 사회에 나간다 해도 전과자의 낙인 때문에 평생을 이방인처럼 살아가야 하는 사회 현실이 계속된다면 ‘범죄로부터 안전하고 행복한 사회’는 요원할지도 모른다. 재소자 인권에 대한 더 많은 이들의 관심과 지지를 호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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