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법인 필 노무사 유 상 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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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TV에 흠뻑 빠져 뒹굴거리고 있을 무렵 딸아이가 “엄마! 아빠가 계속 누워서 텔레비전만 봐요”라고 타박을 주었다. 그러면서 책을 꺼내들고 보란듯이 소리내어 읽기 시작한다. 곧 어떠한 탄압이 닥쳐올지 예측되었다. 반사적으로 TV를 끄고 책 한권을 잡아 들었다.
「저스트 어 모멘트(이경화 지음, 출판 탐)」라는 책이었다. 고등학교를 다니는 ‘시은’이의 아빠는 학원을 운영했다. 그러나 야간에도 불법으로 운영하던 학원은 파파라치의 신고로 문을 닫게 된다. 용돈이 없어 친구들과 제대로 어울리지 못했던 시은이는 방학기간 동안 아르바이트를 하기로 결심한다. 경험 부족으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던 중 ‘저스트 어 모멘트’라는 식당에서 11시부터 19시까지 일을 하게 되었다.
면접을 보면서 “임금은 얼마냐?”고 물었지만 “알아서 잘 주니 걱정말라”는 답을 들었다. 그리고 그 날부터 식당 일을 시작한다. 밀려드는 손님에 비해 인력이 부족하였던 식당에서는 홀서빙을 담당하는 2명이 있었지만 새롭게 사람을 구하지 않으면 “그만두겠다”는 일종의 태업을 하고 있었다. 시은이는 첫날부터 낯설고 힘겨운 식당일에 지쳐 쓰러진다.
소설에는 여러 등장인물이 나온다. 그저 사장의 눈치만 보면서 어떠한 부당함도 모두 감내하는 주방아주머니들, 20대의 나이에 자신이 원하는 노동시장에 진입하지 못한 채 식당에서 몇 년이나 서빙을 하면서 살아가는 젊은 여성노동자, 소녀 알바생은 가정문제로 가출을 하였고 타인으로부터 따뜻한 말 한마디 제대로 듣지 못하며 살아가고 있다. 25살에 식당 지배인으로 일하는 청년은 사장이 운영하는 식당과 노래방을 오가며 임금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사장의 ‘머슴’으로 살아가고 있다. 노래방이 잘 되면 “너한테 다 줄 것”이라는 그 한마디에 희망을 품은 채 사장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손님은 밀려들고 인력은 부족한 상황에서 ‘정운’이라는 청년이 알바생으로 합류한다. 면접부터 “최저임금은 주죠”라고 묻는 당찬 정운이는 1주일 후 주급을 받자 큰 결심을 한다. 최저임금에 미달하는 임금을 받고 사장과 언쟁을 벌인 후 다음날부터 식당 앞에서 1인 시위를 시작한다. 손님들은 “학생들에게 최저임금은 주어야죠!”라며 사장에게 한마디씩 던진다. 사장은 시급히 노동자들을 모아 “누가 묻거든 최저임금을 받는다”라고 답하라고 시킨다. 시은이는 혹시나 일자리마저 잘릴까봐 사장의 부당한 지시에 따르기로 한다. 결국 청년은 최저임금 차액을 제대로 받고 식당을 떠난다. 그러나 남은 이들에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복잡한 마음에 시은이는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알바를 하는 친구를 찾아간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는 반갑게 웃을 수조차 없었다. 근무시간 중 친구와 노닥거리면 사장에서 혼나기 때문이다. 시은이 친구가 근무하는 아이스크림 가게의 천장에는 알바생을 감시하는 CCTV가 설치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정운이가 한바탕 소란을 피운 후 손님들이 최저임금에 대해 자주 묻자 사장은 시은이에게 문구점에서 펜과 종이를 사오라고 시킨다. 그리고 “청소년에서 최저임금을 지급하는 식당입니다”라는 문구를 써서 식당 앞에 붙이라고 한다. 최저임금도 받지 못했지만 항의조차 하지 못한 시은이, 누가 물으면 최저임금을 받는다고 거짓말까지 했던 시은이에게. 밝게 빛나는 태양을 바라보며 시은이는 인생에 한 획을 긋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청소년에서 최저임금을 ‘안’지급하는 식당입니다”라고 한 글자를 덧붙여 식당 앞에 섰다. 정운이에게 전화를 한다. 정운에게 자신을 보러 오라고 한다. 정운은 힘차게 “저스트 어 모멘트”를 외치며 내달린다.
거칠거나 극단적이지 않지만 소설은 청소년의 노동실태 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적인 노동현실을 투영하고 있었다. 최저임금 위반, 블랙리스트, 노동통제감시, 노동착취, 상시적인 고용불안, 취업사기, 직장내 성희롱, 가정의 해체, 사회적 무관심, 친사용자적 노동행정 등 모든 문제를 말하고 있다. 근본적인 이유는 노동하며 살아가는 노동자가 ‘사람’으로 인식되지 못하는 현실이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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