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9월|소설쓰는 이강] - <하룻밤 꿈처럼 잊지 마소서> 2화 -
나는 웃는 얼굴이 좋다. 다행히 새 가족은 웃는 얼굴이 많다. 나는 손찌검도 한번 없이 평온하게 지낼 수 있고 가족들의 웃는 얼굴과 쓰다듬는 손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단 한 사람이 웃지 않는다. 지난 시간 꽤나 오래 그에게 정을 주었으나, 그는 나에게 정을 주지 않는다. 아무도 일어나지 않은 이른 새벽 나는 그와 마주친다. 냉한 그의 표정에 꼬리가 사그라든다. 안 돼! 한 번만 더 반기자, 얼굴을 마주하고 같이 살아가는 나를 그에게 보여주자! 웃어요! 내가 웃고 있잖아요! 그리고 지금 시퍼런 새벽녘에 나와 당신밖에 없잖아요.. 물론, 한낮에도 그렇구요.. 우리 둘뿐이.. 그러나 내가 다가서기 무섭게 그의 치마폭이 휙 하고 돌아선다. 아, 차가운 바람에 웃음도 따스함도 식어버리는 듯 하다. 끙.. 꼬리가 사그라들게 내버려둔다.
지오가 덜컹 하고 나오자 서글퍼 흘러내린 마음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내 귀가 쫑긋하고 꼬리가 메트로놈이 되고, 동시에 그의 치마폭 온도도 달라진다. 아, 정말 그에게 세모난 귀와 꼬리가 있다면, 커다란 강아지 같았으리라. 방금 전까지 내 모습을 흉내 내는 저 치마폭.
-할머니, 물! 아니.. 찬 거. 얼음도 좀 줘. 아, 이 얼음 냄새나잖아! 싫어 안 먹어. 어, 강희야!! 우리 강희 잘 잤어? 에구구구... 오빠? 오빠도 잘 잤지.
아, 웃는 얼굴이다. 눈을 감고 그의 손을 느끼고 있다. 온 맘에 흘러들어가는 정을 느낀다. 문뜩 눈을 떠보니 옆에 치마폭이 사그라드는 것이 보인다. 지오의 사랑이 미안해진다. 마음 속에서 끙.. 소리가 새어나온다.
-왜? 강희 왜? 참! 할머니 내 부채 가지고 있지? 다들 만드는 거 뭐 자랑하고 그래..오늘까지 검사받아야 되니까 챙겨줘.
허둥지둥. 무얼 그렇게 찾는 걸까? 느릿한 걸음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빨라지고, 굽은 허리가 기역자를 넘어 바닥과 구석을 해집는다. 지오는 너무나 나쁘게 큰 소리를 내고, 또 내고.. 기역자 허리와 쭈굴쭈굴한 손이 구석에 살포시 멈추고 만다. 내쉬어지는 한숨 소리. 휴-
덜컹! 하고 지오와 엄마, 아빠 무리가 나간다. 적막이 흐른다.
끙..
나와 그가 남는다. 나는 그 앞에 가서 꼬리를 흔든다. 그의 치마폭이 돌아선다.
상처가 익숙한 눈을 바라본다. 그 치마폭 옆에 머리를 괴고 앉는다. 항상 그렇듯, 이제 우리 둘뿐이다.
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