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

[11년|10월|이러쿵저러쿵] 1박 2일 유치장 경험

한노보연 회원 청


5차 희망버스에 갔다 연행되는 바람에 꼼작 없이 유치장에서 36시간 넘게 갇혀 있다 나오게 됐다. 내가 의지 박약형 인간이라, 주변 상황이 나를 꽁꽁 매면 그걸 혼자 힘으로 풀지 못하고 내 의지로 어찌할 수 없는 감옥 같은 곳에 들어가 있으면 좀 나을까 철없는 생각을 하곤 했다. 하지만 경험해보니 육신이 묶인다는 건 너무 괴롭고 우울했다.
조서를 쓰고 유치장으로 옮겨졌는데, 모포 6개를 깔면 발 딛을 곳이 없어지는 공간에 6명을 채워 넣었다. 몸을 뒤척일 공간도 없어 누워있거나 앉아있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거리가 하나도 없어서 누워 공상에 들거나, 잠자거나, 먹기만 했다. 외부와 연락은 단절된 채 1초, 1초 시간이 지나는 걸 하염없이 헤아리고 있으려니 막막했다. 자유를 뺏은 채 주어지는 시간은 어떻게 해도 여유가 되지 못하고 그 자체로 형벌이 되어 다가왔다.

78세 할아버지도 함께 연행되어 같은 유치장에 있었다. 이 분은 평소 심근경색, 뇌혈관장애가 있어서 계속 약을 복용하셔야 했다. 이런 사정을 경찰에게 설명했지만, 경찰이 취한 조치는 아스피린 한 알씩을 지급한 것 밖에 없다. 그마저도 없으니 기다려 보라는 것을 유치장 안에 있는 사람들이 강하게 항의하자 그제서야 밖에 나가서 사와서 지급했다.
밥과 반찬도 부실했지만 김치, 단무지에 반찬 가지 수에 대한 불평은 배부른 투정이 되지 싶다. 하지만 한 번은 국에 밥을 말아서 끓여 나왔다. 뭔가 찜찜한 마음에 숟가락을 뒤적이는데 여기저기서 덩어리진 밥이 나왔다며 이거 버린 밥 끓인 거 아니냐는 소리가 터져 나왔고 밥을 먹지 않겠다고 거부했다. 설마설마 하면서도 매 끼니 국과 밥이 따로 나왔었는데 석방될 시간이 가까워지자 이런 밥이 나왔다는 게 미심쩍었다. 진실 여부를 떠나 경찰들의 대응이 가관이었다. 자기들도 유치장 수용인과 똑같은 밥을 먹는다며 방금 그대로 먹고 왔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소란이 가라앉은 다음 뒤늦게 들어와 상황을 잘 모르는 의경에게 점심에 무얼 먹었느냐고 살며시 물어봤다. 국과 밥은 당연히 따로 나왔다고 한다.

유치장에서 경찰들의 대응은 사사건건 이런 식이었다. 상황만 넘기고 보자는 식으로 되는대로 성의없이 말하고, 대부분 대답이 잘 모르겠다, 조금만 기다려달라 였다. 우리가 밥을 먹지 않겠다고 했을 때 소장이라는 사람은 “배고프면 먹으니까 그냥 둬”라고 소리 지르며 나갔다. 우리가 짐승인가? 유치장에 갇혀 있는 사람들은 그 이들에게 사람이 아니라 자기들 손에 쥐어진 관리할 골치 덩어리 쯤 이었다. 그런 태도가 몸에 배어있는 게, 어차피 죄를 짓고 온 사람들은 인간이하의 존재이니 큰 문제만 안 생기게 적당히 대하면 된다는 생각 때문이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도 그 시간들이 나쁘기만 한 건 아니었다. 시간이 많으니 함께 유치장에 갇혀있던 이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5차 희망버스 하루 전 나왔던 권고안이 긴가민가 의심스러웠는데, 이런 느자구 없는 연행과 폭력을 겪고 보니 권고안의 성격이 분명하게 드러났다. 모두가 이건 권고안을 ‘권고’하려는 움직임의 일부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렇게 강권하는 권고안이 한진노동자들을 호랑이 입에 앉혀 놓기 위한 것임은 자명하다. 이야기 속에서 여러 정세들과 상황을 명확히 정리해갈 수 있었다. 이러쿵저러쿵에 어떤 글을 써야하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유치장 덕분에 이렇게 쓸거리도 하나 생겼고 말이다.

간혹 범죄에 대한 기사에 형량이 너무 가볍다는 댓글이 달려있는 걸 보곤 한다. 교도소 인권에 대한 이야기에 죄를 지어서 갇혀 있는데 무슨 인권타령이냐는 비아냥도 쉽게 접한다. 하지만 육신의 자유가 제한되는 것 자체가 얼마나 큰 형벌인지를 쉽게 간과하는 것 같다. 그리고 이런 형벌기구 안에서는 죄수라는 낙인을 찍고 인간을 인간 이하로 대하는 일이 비일비재 할 텐데 이 자체가 커다란 폭력이다. 짧은 유치장 체험이었지만 인간답다는 것의 조건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게 한다. 누구나 자유로울 권리와 더불어 노동의 권리, 생존의 권리를 함께 보장받아야 한다. 하루 아침에 노동할 권리를 빼앗겨 생존의 밑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을 막아보겠다고 자신을 좁은 크레인에 감금하고 있는 김진숙씨의 위치가 이런 권리들이 분리될 수 없음을 보여주는 것 같아 가슴이 아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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