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노보연 소장 김 정 수
창립 이전부터 지금까지 연구소 동지들, 지역과 현장의 동지들과 함께 해 온 수많은 활동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을 꼽으라면 단연 근골격계 투쟁이다. 그 투쟁이 당시 상황에서 가지고 있었던 정치적, 사회적 의미와 노동안전보건운동에서의 역사적 의미에 대해 여기서 자세히 설명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질병의 원인을 개인적인 요인보다 직업과 환경적인 요인에서 찾고 싶어서 산업의학(현재는 ‘직업환경의학’으로 공식명칭을 바꾸었다)을 전공으로 선택한 2년차 초짜 의사였던 나에게 ‘노동자들의 근골격계 질환이 인간공학적 위험요인과 더불어 과도한 노동강도, 장시간 노동, 불충분한 휴식으로 인해 발생한다’는 사실을 밝히고 알리기 위한 연구와 활동은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었다. 열심히 했고 많은 것을 배웠다.
그런데 한 가지 아쉬운 것이 있었다. 우리의 주장이 “근골격계 질환의 예방을 위해서 노동강도가 강화되어서는 안 되고, 이미 강화된 노동강도는 완화되어야 한다.”는 것으로 발전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미 수십 년간 뼈 빠지게 일해서 이미 골병이 들어있는 노동자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 우리는 정부(노동부, 근로복지공단)에서 이를 업무관련성 질환으로 인정해서 산업재해 승인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실제로 많은 노동자들이 개인적으로 혹은 집단적으로 산재를 인정받았다(물론 이보다 훨씬 많은 노동자들이 산재를 인정받지 못해 치료를 받지 못하거나 개인적으로 치료를 받아야 했지만). 산재를 인정받아 요양을 하면서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노동자들은 다 나았을까? 산재를 인정받지 못해 치료를 받지 못하거나 개인적으로 치료를 받아야 했던 노동자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아쉽게도 이런 질문들은 당시 근골격계 투쟁에 열심이었던 많은 동지들 사이에서 그닥 주목을 받지 못했다. 치료는 개인적으로 해결해야 할, 개별적인 문제라고 생각해서 그랬을까? 아니면 의학적인, 전문적인 영역이라고 생각해서 그랬을까? 나 역시 교육과 상담을 하면서 치료와 관련된 질문들을 수없이 많이 받았지만, “아프면 쉬세요. 더 아프면 병원(약, 물리치료, 침, 수술 등)에 가세요.”라는 말 이외에 다른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아쉬움은 있었지만 나 역시 그 문제에 대한 고민과 경험이 일천했기 때문이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결정적으로 나 역시 “아프면 병원에 가야 한다.”는 것을 진리처럼 받들고 있었기 때문에 더 이상 해 줄 말이 없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정말 아프면 병원에 가야 하는 것일까? 병원이, 의료인들이 노동자들의 근골격계 질환을 치료해 줄 수 있을까? 최근 우연한 계기에 읽게 된 일본의 면역학자 아보 도오루 교수의 [면역혁명, 부광]을 읽으면서 이 문제에 대해 보다 깊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인간은 단세포 생물에서부터 시작해 현재에 이르기까지 수십억년의 진화과정을 거치는 동안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면역기능을 발달시켜왔다. 어떤 이유에 의해서건 이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질병이 발생한다. 한편 인간은 신체 내부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생명활동(호흡, 순환, 소화 등등)을 조율하기 위한 시스템을 발달시켜 왔는데 그것이 바로 자율신경이다. 자율신경은 인체가 활동을 하거나 위험상황(혹은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상황)에 직면했을 때 활성화되는 교감신경과 휴식을 하는 동안 활성화되는 부교감신경으로 이루어진다. 이런 자율신경계가 교란되었을 때 역시 질병이 발생한다. 면역학자로서 저자가 주장하는 핵심은 인간의 면역기능이 자율신경의 지배를 받는다는 것이다. 일상생활 중 교감신경의 우위가 지속될 경우, 즉 늘 스트레스를 받아 긴장하고 있는 경우 백혈구의 일종인 과립구가 늘어나서 각종 염증을 유발시키고 나중에는 신체 조직이 파괴된다. 이 과정에서 위궤양, 궤양성 대장염과 같은 점막 염증성 질환, 고혈압, 당뇨와 같은 각종 만성 질환, 암 등이 발생한다. 현대사회에서 각종 암과 만성질환이 성인의 사망원인 1, 2위를 다투게 된 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설명한다. 한편 일상생활 중 부교감신경의 우위가 지속될 경우, 즉 늘 긴장이 풀려 늘어져 있는 경우 백혈구의 일종인 림프구가 늘어나서 인체에 특별한 해를 미치지 않는 물질에 대해서도 과도한 면역 반응을 일으키게 된다. 이 과정에서 알레르기성 비염, 천식, 아토피성 피부염 등 각종 알레르기성 질환이 발생한다. 현대사회에서 실내에서 주로 생활하고 활동량이 부족한 아이들에게 각종 알레르기성 질환이 급증하는 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설명한다.
면역과 자율신경의 기능, 그리고 각각의 기능에 이상이 생겼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질병에 대해서는 의과대학에서도 어느 정도 배운 바 있다. 하지만 면역기능이 자율신경의 지배를 받는다는 것과 자율신경계 불균형으로 인한 면역기능의 저하가 상당히 많은 질병의 직접적인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은 다소 생소한 개념이었다. 하지만 수십년간 면역학을 연구해 온 학자로서 저자가 제시한 과학적인 추론과 근거를 함께 살펴보았을 때 상당한 설득력이 있었다. 아직 둘 사이의 관련을 증명할 만한 직접적인 연구결과가 많지 않다 하더라도, 신체 내부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생명활동을 인간의 의지와 무관하게 조율하고 있는 자율신경이 생명활동에 필수적인 면역기능에 어떤 식으로라도 영향을 미치리라는 것은 논리적으로 너무 당연하다. 또한 자율신경의 교란 혹은 면역기능의 저하가 인체의 질병 발생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것도 자명하다. 이러한 관점은 (연구소에서 관심을 가지고 연구해 오고 있는) 교대노동으로 인한 각종 건강문제의 근본 원인을 생체리듬의 교란, 그로 인한 자율신경계의 교란으로 파악하고 있는 것과도 궤를 같이 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더 나아가 저자는 현대인이 일상생활 중 교감신경 우위 상태에 놓이게 될 수 밖에 없는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단연 현대인의 장시간 노동, 과로를 지목한다. 이는 저자가 일본인이라는 사실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일본인들보다 더 오랜 시간동안, 더 많은 일을 우리나라 사람들은? 두말할 필요가 없어 보인다. 저자의 이런 관점은 기존의 건강관련 서적들이 질병의 다양한 원인 중 하나로 스트레스, 스트레스의 여러 가지 원인 중 하나로 업무상 스트레스를 언급한 것과는 차원을 달리한다. 저자는 현대인의 교감신경을 자극하는 스트레스 중 가장 직접적이고 실제적으로 중요한 것이 바로 노동이라고 얘기한다. 그러므로 현대인이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보다 훨씬 적게 노동하는 것이다. 식습관, 운동, 흡연과 음주 등의 생활 습관은 그 다음 문제다.
여기서 좀 더 나아가 저자는 기존의 서양의학의 질병 중심, 증상 중심, 약물 중심의 치료 방식에 대해 맹공을 퍼붓는다. 기존의 서양의학에서는 대부분의 질병에 대하여 증상 중심의 약물 치료를 하기 때문에 오히려 질병을 키운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예를 든 것이 진통제와 각종 암 치료법에 관한 것이다. 진통제의 경우 통증이 극심한 급성기에 단기간 사용하는 것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으나 만성적인 통증에 대해 장기간 복용하거나 상습적으로 복용할 경우, 해당 부위로 가는 혈류를 저하시켜 면역기능에 의한 인체의 자연스러운 회복을 오히려 방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암 치료에 있어서는 국소 부위를 절제하는 수술의 경우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으나, 림프절을 포함하여 광범위하게 절제하는 수술이나 항암 치료, 방사선 치료는 암에 대항할 수 있는 인체의 면역기능을 현저하게 저하시켜 궁극적으로 암의 치료를 방해하고 재발 가능성도 훨씬 높인다는 것이다. 고혈압이나 당뇨와 같은 만성 질환 역시 마찬가지다. 혈압, 혈당을 올리는 근본 원인에 대해서는 등한시 하고 혈압, 혈당 자체를 약물을 사용해서 강제로 낮춤으로 인해서 약물에 의존하게 만들고, 사용하는 약물이 장기적으로는 몸에 스트레스로 작용하여 더욱 혈압, 혈당을 올림으로써 약물에 의하지 않고는 조절할 수 없는 악순환의 고리가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이반 일리히의 [병원이 병을 만든다, 미토]를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이반 일리히도 ‘병원이 병을 만드다’는 말을 일부 의원병(iatrogenic disease, 어떤 병을 고치기 위하여 사용한 약 또는 치료가 원인이 되어 새로 생겨난 병)을 지목하거나 상징적인 의미로 사용한 것이 아니었다. 저자 역시 이 책 뿐만 아니라 또 다른 책[약을 끊어야 병이 낫는다, 부광]을 통해 현대 서양의학의 약물 중심의 대증치료가 실제로 다른 질병을 유발하고 있다고 역설하고 있다. 그럼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 자세한 얘기는 직접 책을 읽어보시길...
연구소 활동을 하면서 지금까지 근골격계 질환으로 고통받는 노동자들에게 “아프면 쉬세요.”, “일을 줄이세요.”라고 얘기했던 것은 분명 옳았다. 그런데 “심하게 아프면 병원(약, 물리치료, 침, 수술 등)에 가세요.”라는 말 하는 것은 과연 옳았을까? 혹시 치료로서 ‘휴식’과 ‘적정 노동’의 효과보다 ‘병원’의 효과가 더 강력한 것이라고 생각하게 함으로써 노동자들이 병원에 의존하는 경향을 강화시킨 것은 아닐까? 우리들 역시 질병중심, 증상중심, 약물중심의 서양의학의 도그마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함으로써 그것이 강화되는데 일조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것이 정말 노동자들이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일까? 한 번쯤 생각해 볼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