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당신의 의자는 앉을 수 있나요?
부산 의자 캠페인단 시즌 2 출범하다
한노보연 선전위원 타래
2008년부터 시작된 ‘서서 일하는 서비스 노동자에게 의자를’ 캠페인 이후 대부분의 대형 마트에 계산원을 중심으로 의자가 놓여졌다. 이는 사실상 사문화됐던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에 “사업주는 지속적으로 서서 일하는 근로자가 작업 중 때때로 앉을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해당 근로자가 이용할 수 있도록 의자를 갖추어 두어야 한다.”는 규정에 근거한 것이었다.
그러나 캠페인이 있은 지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지속적으로 서서 일하는’ 서비스 노동자들의 건강권과 노동환경은 여전히 열악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 하루 종일 서서 일하는 노동자라 할지라도 계산원이 아니면 의자가 제공되지 않을뿐더러, 계산대에 비치된 의자조차도 등받이나 발받침대가 없는 불편한 의자가 대부분이었다. 또 회사로부터 끊임없이 ‘손님이 왕’이라는 정서가 주입되고 있는 조건에서 눈치를 보느라 앉아서 계산해 본적이 거의 없이 무용지물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365일, 24시간 잠들지 않는 대형마트, 연장영업 경쟁하는 백화점
부산에는 모두 31곳의 대형마트가 입점해 있으며 이 중 이마트와 홈플러스는 절반 이상이 24시간 영업을 하고 있으며 나머지 매장도 새벽 1시까지 영업을 하고 있다. 마트 한 곳당 근무하는 서비스 종사자는 400~500명 선이며 상당수가 비정규직 노동자들인 이들은 파트타임으로 근무하고 있다.
백화점의 경우도 사정은 비슷하다. 부산지역의 백화점 간 경쟁이 격화되면서 오전 9시30분부터 오후 7시30분까지였던 영업시간이 오후 8시 30분까지 늘어났고, 심할 때는 주말에 오후 9시까지 근무시간이 연장됐다.
이처럼 열악한 노동 환경 탓에 백화점이나 대형마트 종사자들은 두 명 중 한 명 꼴로 하지정맥류, 방광염, 산부인과 질환에 걸리고 심야노동에 시달리는 등 엄연히 정당한 권리인 휴식권과 건강권을 심각하게 침해받고 있는 실정이다.
끝나지 않은 의자 캠페인, 서비스 노동자의 건강권 쟁취를 위해 더 크게 눈뜨기
2008년 의자 캠페인은 서서 일하는 서비스 노동자들에 대한 건강권과 휴식권에 대한 사회적 지지와 관심을 모아냈으며 이전에 없었던 의자들이 비치되는 성과를 얻어냈다. 하지만 사회적 요구에 못이긴 척 비치된 의자와 근본적 해결없이 침해되고 있는 서비스 노동자의 노동인권과 건강권의 쟁취는 아직도 과제로 남아있다.
이에 지난 10월 5일, ‘부산의자 캠페인단’은 홈플러스 아시아드점 기자회견을 개최해 “의자캠페인단 시즌 2” 활동을 선포했다. 이날 발족식에는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부산여성회, 전국여성노동조합,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민주노동당 부산시당, 서비스연맹이 참가했으며 ‘의자캠페인 감시단’을 가동하여 할인점내에 의자가 놓여져 있는지의 확인과 의자의 실효성 여부를 매장 방문시마다 감시단 활동을 전개할 예정이다. 또 대형마트의 24시간 영업과 백화점의 연장영업 반대 캠페인을 지속해 나갈 예정이다.
일터
2. 도금공장을 바꾸다
「녹산 노동자 희망 찾기」가 만난 노동자
한노보연 선전위원 타래
‘녹산노동자 희망찾기’가 운영하는 토요 무료진료소에 어느 날, 표정이 어두운 두 버마 노동자가 찾아왔다. 물론 아프지 않고 답답하지 않은 사람이 진료소를 찾아오지는 않는다. 그들의 몸 상태를 보니 코 안은 염증으로 헐어 있었고, 손과 팔 여기저기에는 궤양과 고름으로 덮여 있었다. 한 명이 아니라 두 명이나 같은 증상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직업성 질환을 예감했다. 아니나 다를까, 둘은 같은 도금공장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였다. 두 버마 청년은 올해 한국에 들어왔고, 지금의 도금공장이 처음으로 일하게 된 곳이었다. 그러나 일을 시작한 지 채 두 달도 안 되어 피부병으로 고생하다 진료소를 찾아 온 것이다.
두 명이 전한 도금공장의 노동환경은 경악스러웠다. 그들이 해온 업무는 크롬도금과 세척, 건조 작업이 끝난 제품표면의 이물질 제거, 그리고 제품 모서리를 수동 그라인더로 깎아내는 일이었다. 문제는 위험한 공정이 사람의 손으로 직접 행해지고, 더군다나 이런 일들이 제대로 된 보호구, 최소의 안전교육도 없이 행해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회사가 지급하는 것은 유해물질에 대한 방호기능이 사실상 없다고 볼 수 있는 목장갑과 면마스크가 전부였다. 때문에 일하는 와중에 피부에 튀는 약품과 입과 코로 흡입되는 유해물질, 쇳가루 등에 일상적으로 노출돼 있었고, 이런 일들을 배기가 불량해 약품냄새로 숨쉬기조차 힘든 작업장에서 하루 12시간씩 주야 맞교대로 해내야 했다.
※ 크롬 : 크롬은 1급 발암성(폐암, 호흡기계 암) 물질이다. 흡입에 의한 노출로 호흡기계(폐, 비강, 부비동) 암이 발생될 수 있다. 자극성 접촉 피부염과 알레르기성 접촉 피부염을 유발할 수 있으며 천식 및 기타 호흡기계 기능저하(만성기관지염)가 나타난다. 특히 도금작업자에서는 비중격천공을 유발시킨다.
더군다나 이런 열악한 작업장 환경만이 문제의 전부가 아니었다. 캘수록 주렁주렁 얽혀 나오는 감자덩쿨 마냥 임금체불과 열악한 숙소, 산재은폐, 비인간적 대우의 문제까지 겪고 있었다. 그 사업주는 이주노동자에게 공동샤워실에 붙어 있는 두 평도 안 되는 탈의공간을 숙소라고 제공했다. 늘 땀과 이물질로 범벅이 되는 도금공장의 성격상 직원들이 수시로 샤워실을 드나들었고, 이 때문에 두 버마 청년은 단 하루도 숙면을 취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작동 중인 기계에서 제품을 빼내다가 손가락이
도금공장 노동자들이 사용한 목장갑들. 크롬 같은 유해물질에 절어있다.
끼는 사고가 발생했는데도 불구하고 회사는 병원조차 가지 못하게 막았다. 손가락 통증이 너무 심해 일을 할 수 없다고 호소하면 돌아오는 것은 구박과 욕설이었다.
이들과 상담하고 먼저 한 일은 항의방문이었다. 공장에 들어서자마자 잠시만 둘러보아도 현저한 법 위반사항들이 발견될 정도였다. 그러나 관리자의 태도는 오히려 당당하기 그지없었다. 전혀 문제가 없다며 강변함은 물론 자신이 직접 작업 시범을 보여주기까지 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약품에 손 담근 채로 침을 튀어가며 설명하는 그 사람의 모습에 그 몸이 약품 속으로 썩어 들어가는 모습이 겹쳐 보였다.
결국 버마 노동자들은 ‘녹산노동자 희망찾기’ 활동가들과의 상담 끝에 부산지방고용노동청에 진정서를 제출하기로 했다. 진정서 내용은 ‘보호구 문제’와 ‘안전교육 미실시’, ‘작업 중 발생한 부상과 질환에 대한 치료문제 및 산재은폐문제’, ‘유해한 작업환경에 대한 조사요구’, 그리고 ‘숙소문제와 임금체불 및 비인간적 대우’의 다섯 가지였다. 진정서를 제출하기 전까지 도리어 이주노동자들이 문제라는 식의 뻔뻔하고 고압적인 자세로 시종 일관했던 사장도 근로감독관의 현장조사가 실시되자 그때서야 태도를 바꾸어 이주노동자들에게 진정서만은 취하해달라고 빌었다. 그러나 버마 청년들은 “여기에 남아 있는 사람들과 이다음에 일하게 될 사람들이 우리와 같은 피해를 당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진정서 취하를 거부했다. 결국 그 도금공장은 위법사항들에 과태료와 시정지시를 부과 받았다. 이들의 용기와 행동이 악마의 연기를 뿜어내던 도금공장을 바꿔낸 것이다.
이들 이외에도 녹산 무료진료소에는 역시 크롬도금공장에서 일하다 부비동염으로 찾아온 베트남 출신의 이주노동자도 있었다. 그가 일했던 도금공장의 노동환경 역시 위의 도금공장과 별 다를 바가 없이 사람의 몸을 좀먹고 있는 곳이었다. 녹산공단의 도금공장들은 눈앞의 돈벌이에만 혈안이 되어 법과 노동자 건강권을 무시하며 아무런 방비 없이 유해물질들을 취급해온 것이다. 이처럼 노동자 건강을 담보로 한 돈벌이는 도금공장만의 현실은 아닐 것이다.
노동자가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들을 빼앗긴 상태가 절망이라면, 희망은 그 권리들을 노동자 스스로 움켜지는 것이다. 우리가 찾고자 하는 희망은 빼앗긴 권리를 스스로 되찾고자 하는 노동자들 자신의 싸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