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고용 노동자들의 권리확장과 보호에 관한 논의들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는 현재, 나는 보다 새로운 목표를 세워야 한다고 주장하려고 한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현재까지 비정규투쟁이 기존에 “차별 없는 노동”과 “치명적이고 빈곤한 비정규직 정책 개악 반대”에 집중되어 투쟁해 왔다면, 이제는 비정규노동자들의 실질적인 단결권·교섭권·행동권 보장을 위한 투쟁을 전개하고 실질적 확보를 이루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노동조건 개선 투쟁이 무용하다고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매우 중요한 투쟁이고, 앞으로도 주체들에 의해 더욱 확산되고 강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비정규노동조합들이 실질적인 노동3권을 확보하지 못한 채 벌어지는 투쟁은 결정적인 요소가 결핍된 투쟁이 될 것이며, 안정적인 교두보 없이 그 때마다 다른 투쟁을 연속적으로 벌이는 결과로 나타나게 된다.
해외의 비정규투쟁 사례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진정한 노동3권’의 확보가 왜 우리에게 중요한지는 한국 노동조합운동의 구조적 특징으로부터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한국의 노동조합은 압도적으로 기업별노동조합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일부 노동조합들이 산업별 노동조합의 형식을 취하고 있거나 이전하려고 하고 있지만 여전히 그 질서는 기업별 노동조합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해외의 비정규노동자들이 단결의 형태를 고민하지 않고 실질적 영향력을 보유한 초기업단위 노동조합에 가입하여 사용자 단체와 교섭을 전개하고 국가를 상대로 투쟁을 전개할 수 있는 조건과는 다른 것이다. 따라서 기업별로 노동조합이 구성되거나 사실상 교섭이 이루어지게 되는 한국의 특징이 비정규노동자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었나를 보아야 한다.
이에 대해서는 다양한 검토가 있을 수 있겠지만 간접고용에 있어서 기업별 조직구성의 한계는 매우 치명적이다.
하청기업의 소속 노동자들이나 파견업체 소속 노동자들로 구성된 노동조합의 교섭이 의미가 있으려면 먼저 실권을 가진 사용자와 교섭할 수 있어야 한다. 여기서 실권을 가진 사용자는 바로 ‘원청’ 또는 ‘사용사업주’에 해당하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한국에서 간접고용이 나타나는 가장 큰 특징은 원청사의 결정에 의하여 인력공급만을 목적으로 하는 영세한 하청회사가 만들어지거나 사실상 경영된다는 점인데, 그래서 교섭에 나서는 형식적 사용자인 하청회사들은 어떠한 재량권도 가지지 못한 채 불필요하게 교섭을 지연하는 역할만 할 뿐이다.(심지어 일부 회사들은 노동조합에게 자신들은 어떤 결정권도 없다고 하소연하기도 한다) 이렇게 되면 비정규직노동조합은 원청사업주를 교섭의 상대방으로 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는데 여기서 바로 ‘원청 사업주가 노조법상 사용자인가’하는 문제가 튀어나오게 된다. 여기서 원청사업주는 간접고용된 노동자들의 형식상의 사용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교섭시도는 불발이 되고 비정규노동조합은 허울뿐인 교섭을 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에 의해 결론적으로 간접고용노동자들은 노동3권을 실현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
지난 몇 해 동안 필자는 많은 부당노동행위구제신청을 내면서 이러한 문제를 집중적으로 거론하면서 논쟁을 붙이고자 했으나, “근로계약이 부수되지 않은 교섭상대방 의제는 불가능하다”(근로계약을 직접 체결한 상대만이 교섭의 대상이 된다)는 논리가 상식으로 받아들여지는 상황에서 대부분의 부당노동행위구제신청은 ‘각하’되었다.(인사이트코리아 사건을 시작으로 대한송유관공사사건, 대성산소사건 등등)
그런데 최근 현대중공업 부당해고 및 부당노동행위구제신청사건(2004부노68·2004부해292 및 2004.부노94·2004부노99·2004부해430·2004부해449 병합사건)이 중앙노동위원회에서 진행되고, 이 사건에 대해 중앙노동위원회가 초심 부산지방노동위원회의 결정을 뒤집으면서 ‘원청사업주와 하청사업주가 노조법상 사용자 지위를 병존하여 보유한다’는 판정을 내 놓으면서 기존에 “상식”으로 받아들여지던 논리는 해체되기 시작하였다.
2. 현대중공업 사건의 경과
지난 2003년 8월 30일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동조합이 관할 울산 동구청에 설립신고를 하였다. 행정관청에 제출하는 설립신고서에는 노동조합의 위원장, 회계감사 등의 실명을 제출하도록 하고 있는데 이 내용을 입수한 현대중공업 및 소속 사내하청회사들은 노동조합 설립신고서에 실명이 기록된 조합원들을 해고하기 위해 이들이 속한 하청회사들을 동시에 폐업시키는 방법을 사용했다. 이 방법은 원천적으로 노동조합활동을 불가능하게 할 뿐만 아니라 해고된 조합원들이 복직할 회사를 없애버림으로써 법률적으로 다툴 실익 자체를 제거하는 매우 치명적인 공격이었다.
이러한 일이 발생하자 노동조합은 “이는 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 상의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는 주장과 함께 “현대중공업이 사실상의 사용자다.”라는 취지로 부산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및 부당노동행위구제신청을 접수하였다. 부산지방노동위원회는 이 신청에 대해 ‘현대중공업과 사내하청노동조합의 조합원들 간에는 직접적인 고용관계가 성립되지 않았으므로 이를 “각하”한다.’는 결정을 내렸고, 일부 위장폐업이 인정되는 회사들을 제외한 나머지 조합원들에게도 부당해고구제신청을 각하하는 결정을 내렸다.
노동조합은 부산지방노동위원회의 결정에 불복하여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을 신청하였고, 오랜 공방 끝에 중앙노동위원회는 2005년 4월 1일 현대중공업과 현대중공업사내하청노동조합(위원장 조성웅)에게 각각 재심판정을 송달하면서 초심 부산지노위의 결정을 취소하는 결정을 내렸다. 중앙노동위원회 판정문의 주문은 아래와 같다.
1. 본 건 초심명령 중 현대중공업(주)에 대한 부당노동행위(지배·개입)각하부분은 이를 취소한다.
2. 본 건 현대중공업(주)에 대한 지배·개입의 부당노동행위구제신청은 이를 인정한다.
3. 현대중공업(주)는 사내하청기업들에 대한 실질적인 영향력과 지배력을 행사하여 사업폐지를 유도하는 행위와 이로 인하여 현대중공업사내하청노동조합활동이 위축 또는 침해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3. 판정서의 내용 요약
중앙노동위원회는 판정서에서,
“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이하 ‘노조법’이라 한다) 제81조 이하의 부당노동행위구제명령제도는 법률상 권리의무관계를 명확히 하는 것이 아니고, 장래에 향하여 노사가 대등한 입장에서 근로조건을 교섭하고 결정하여 노사관계의 기반을 확립하는데 그 주된 목적이 있다. 또한 부당노동행위는 근로계약상 위법행위가 아니라 집단적 노동관계법에 따른 특유한 위법행위이기 때문에, 현실적인 근로계약의 당사자인가 여부로서 사용자개념의 기준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근로계약상의 제 이익에 대해 실질적인 영향력 내지 지배력을 가질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인지로 결정해야 한다. 따라서 본 사건에 있어서 현대중공업이 신청인들에 대해 부당노동행위의 주체가 될 수 있는지 여부는, 현대중공업과 하청기업 및 그에게 고용된 근로자 사이에, 이러한 영향력 또는 지배력을 가지고 있었는지에 따라서 결정될 것이다.”
라고 전제하여 원청회사가 ‘실질적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는지 여부에 따라 부당노동행위에 수규주체인 사용자를 획정(劃定)하여야 한다고 판시하였다.
나아가 중앙노동위원회는 현대중공업과 하청회사와의 관계를 살피면서 ①150여개의 하청회사들은 현대중공업의 협력회사선정위원회를 통해 선정되고 도급계약의 형식으로 ‘기본계약’과 ‘개별계약’을 체결하는데 도급비 산정방식은 인원의 투입량과 시간(man/hour)의 양으로 결정되는 점, ②하청기업들은 현대중공업 내에 사무실을 가지고 있으며, 특별한 장비 등 물적 시설을 보유하지 않고 현대중공업으로부터 장비를 대여 받아 작업을 수행하며, 주로 현대중공업과 체결한 도급기본계약과 개별계약을 이행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된 사업체라는 점, ③현대중공업 해양사업본부가 2003년 5월 16일에 작성하여 각 관리부서와 협력업체에 보낸 ‘사내협력회사 생산직사원 채용기준 세칙’의 ‘협력업체 신규직원 입사절차’에 의하면 채용희망자가 하청기업에 입사서류를 접수하면 서류심사와 면접 그리고 채용여부는 하청기업과 현대중공업의 인력운영지원부로 구성된 신규인력채용심의위원회에서 담당하도록 되어 있는 점, ④또한 서류심사와 면접을 통한 근로자 채용시 평가실시방법, 평가기준, 최종인성검사 및 신체검사 기준 등은 주로 현대중공업의 인력운영지원부에서 작성하여 하청기업에 통보, 협조를 구하는 정도이며, 하청회사들은 인적 물적 여건상 이러한 기준을 작성할 이유와 능력도 부족하여 채용상의 사용자로서의 독자성을 인정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따른다는 점, ⑤현대중공업은 공정별 부서별 편제에 따라 하청기업들을 사내협력사로 배속시켜 업무를 수행하도록 하고 운영지원부를 통해 하청기업의 근로자들을 통합적으로 관리하는 등 작업인원의 수급조절에 있어서 하청기업의 사업적 계획과 재량이 개입될 여지는 없다는 점, ⑥하청기업은 매일 작업에 투입된 인원과 시간 등을 확인받기 위해 관련사항을 기재한 출면일보를 작성하여 현대중공업의 담당 관리과의 확인결재를 받은 후 운영과로 통보하는 등 하청기업의 근로자들에 대한 인사와 노무관리상의 독립성은 인정하기는 어렵다는 점, 등을 들면서
“현대중공업과 하청기업이 외부적으로는 통상적인 도급계약관계를 맺고 있으나 근로자들의 채용, 근태관리, 후생복지 등에 직접적·간접적으로 관여하는 등 실질적인 지배력을 행사하여 왔기 때문에 하청기업들의 법인격 또는 사업적 독립성은 일정부분 형해화되어 이들에게 노조법상의 사용자책임을 전적으로 부담시키기 어렵다 할 것이므로 실질적으로 신청인을 비롯한 하청기업 근로자들을 지휘하여 온 것으로 인정되는 현대중공업도 하청기업과 병존하여 노조법상의 사용자의 지위에 있다고 파악하는 것이 타당하다.”라고 하였다.
중앙노동위원회는 현대중공업의 노동조합활동 침해행위에 대해,
“현대중공업의 하청기업에 대한 실질적인 영향력과 지배력에 의해 정당한 사유가 없는 물량변동으로 인한 하청기업의 사업 폐지, 그것으로 인한 해고 등 불이익 처분과 노동조합활동의 위축 또는 침해 사이에 인과관계를 추정할 수 있다. 따라서 현대중공업의 이러한 조치는 근로자들의 정당한 노동조합활동의 지배 내지 개입에 해당하므로 이를 노조법 제81조 제4호 위반의 부당노동행위로 인정한다.”라고 판정하였다.
4. 이 사건 판정의 의의와 한계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기간 비정규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결성하여 조합 활동을 하는 경우, 사용자가 원청과 하청으로 분리되어 있고, 하청사업주는 노동조건에 대한 어떠한 결정권도 없는 반면 실질적인 결정권이 원청 사업주에게 있는 상황에서 노동조합이 누구를 사용자로 하여 단체교섭을 요청하고 단체행동권을 행사하여야 하는지 논란이 되어 왔다. 이러한 논란에 대해 노동위원회는 물론 법원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하청회사’와 직접적인 근로계약을 체결하고 있고 ‘원청회사’와는 어떠한 근로계약도 체결한 적이 없으므로 근로기준법 상으로는 물론 노조법상 사용자도 오직 ‘하청회사’이며 원청회사의 사용자성은 인정될 수 없다는 입장이 일관되게 지지되고 있었다.
이러한 견해는 비정규노동자(하청노동자)에 대해 사실상 모든 결정권이 원청사용자에게 있다는 현실을 무시한 것이었다. 그리고 노동조합이 단결권을 중심으로 하는 실질적인 교섭권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노동조합법상의 사용자 범위가 넓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는 현실을 무시하는 것이었다. 일례로 현대자동차비정규직노동조합에 대해 사용자가 법원에 신청한 각종 ‘가처분’에 대해 법원이 특별한 검토 없이 이를 인정하는 바람에 비정규직노동조합의 쟁의행위가 불법행위로 치장되어 버렸고, 결정권을 가진 사용자가 비정규직 노동조합의 교섭요청을 거부하거나 해태하여도 어떠한 제재조치를 취할 수 없게 되는 현실을 낳고 있다.
이 사건에 대한 이번 중앙노동위원회의 결정은 그동안 사내하청노동조합들에게 부여되지 못했던 노동3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한 것이다. 원청이 사실상의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데도 하청회사들과 근로계약을 체결했다는 이유만으로 원청을 사용자로 인정하지 않아서 원청이 교섭을 거부해도 법률적으로 구제를 구할 수 없거나 원청을 상대로 하는 쟁위행위를 하는 경우 전부 불법행위로 처벌받던 관행에 쐐기를 박는 결정이라 할 수 있다. 나아가 이번의 결정으로 인해 앞으로 현대중공업사내하청노동조합은 물론 다른 하청노동조합들도 원청을 직접 상대로 하는 교섭권행사와 단체행동권 행사가 보장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으로 판단된다.
하지만 노동위원회가 원청사업주가 ‘노조법상의 사용자’로 인정되기 위해서 전제한 ‘지배력’과 ‘영향력’의 수준을 너무 높게 설정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견도 있다. 현재 대부분의 사내하청노동조합의 조직형식이 원청사업주의 관리범위를 대상으로 하는 ‘지역노동조합’의 형식을 취하고 있고, 이들의 노동조건은 원청의 도급단가 결정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으며 사실상 복지후생과 관련한 조치들을 원청이 일방적으로 결정하고 있는 현실을 생각해볼 때, 원청의 사용자성을 폭넓게 인정해야 한다. 그런데 이번 결정은 현대중공업과 같은 높은 수준의 지배력을 조건으로 노조법상 사용자 지위를 인정하는 것이라는 점이 한계로 지적될 수 있다. 나아가 현대중공업이 노동조합 결성 자체를 방해한 행위는 불이익취급의 부당노동행위(노조법 제81조제1호)요건에 해당됨에도 이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유감이다.
5.마치며
앞으로 이 사건과 관련한 공방이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 과정에서 비정규직 노동조합들이 요구하는 ‘정규직화 요구’는 보다 높은 수준으로 전환될 필요가 있다. 그러한 결과로서 실질적 노동3권의 확보가 가능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첨언하여, 본인은 이 사건의 결정문을 받아보면서 앞으로 첩첩이 놓여있는 법리공방의 산을 어떻게 넘어야 하는지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그 순간 지금까지 싸워 온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동조합 동지들의 투쟁이 없었다면(만일 그들이 중도에 포기라도 했다면 이와 같은 결정을 받아낼 수는 없었을 것이다) 오늘 이만큼의 승리감도 함께 나눌 수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에 사뭇 그 동지들에 대한 존경이 밀려 왔다. 더불어 비정규노동자들의 한을 안고 먼저 가신 박일수 열사 앞에 이 작은 기쁨을 바치고 싶다.
필자|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법률위원장 김철희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알고싶어요. (1)
Q : "노동의 불안정화"란 무엇이고 어떤 투쟁을 해야 합니까?
A : 불안정노동자란 이전부터 상대적으로 불안정했으며, 그러한 불안정한 특징으로 인해 최근 드러나고 있는 불안정화 경향에 더욱 심한 타격을 입는 노동자 집단으로 장애, 이주, 여성, 실업, 비정규노동자들을 말합니다.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이 지속되자 이와 같은 불안정 노동자들의 투쟁도 확산되고 있으며 운동진영에서 이에 대한 대응도 다양화되고 있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자본은 노동자들의 권리를 박탈하고 무력화하고 노동자들의 단결을 해칩니다. 그러므로 노동의 불안정화는 비정규직의 문제만이 아니라 전체 노동자의 핵심적인 문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