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비정규직 노동법개악 저지투쟁 평가[34호|특집2]

- 우리는 무엇을 위해 투쟁했을까?

정부 비정규직 법안의 본질 - 비정규직 양산과 기본권 제한

2004년 9월, 마침내 노동부가 비정규직 관련 법률 제·개정안을 입법예고하였다. 2000년 4월 노사정위원회 경제사회소위원회에서의 비정규직 관련 논의를 시작으로, 2000년 10월 노동부의 [비정형근로자 보호대책] 발표, 2002년 5월 노사정위원회 비정규직특별위원회의 [비정규근로자 대책 노사정 합의문] 발표, 2003년 노동부의 [노사관계법·제도 선진화방안] 발표 등으로 이어진 비정규직 관련 법 개악안의 완성본이 발표된 것이다.

2000년 발표된 노동부의 '보호대책'에서부터 비정규직 법 개정안의 성격이 분명히 드러났는데,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동자성을 부인하고 '근로자에 준하는 자'로서 '보호'하겠다는 방안은 이후 진행될 비정규직 노동기본권 제한의 신호탄이었다. 2000년부터 2004년까지(특수고용 문제의 경우 2005년까지) 정부는 노사정위원회라는 외피를 쓰고 법 개악안의 방향을 구체화시켜나갔다. 2002년 5월 [노사정 합의문]은 장기근속계약직과 특수고용 노동자를 '비정규직'의 범위에서 제외하는 취지를 담고 있다. 2003년 5월에 공개된 노사정위 비정규특위 '공익위원안'은 기간제 고용에 관한 사유제한의 포기와 기간제한 설정, 유사근로자 특별법 제정 등 이후 정부 법안의 골격이 되는 내용들을 담고 있다. 또한 2003년 11월에는 경제자유구역법이 통과되면서 경제자유구역 내에서 파견허용 업무 및 허용 기간에 대한 규정이 적용되지 않게 되었다.

그리하여 2004년 9월 발표된 정부안은 이제까지의 논의 속에서 가장 후퇴한 입장을 담았을 뿐 아니라, 비정규직을 정상적 고용형태로 간주하여 이에 맞춰 법제도를 정비하겠다는 구상을 분명히 한 것이었다. 기간제와 파견제를 무제한적으로 허용하여 비정규직의 양산뿐 아니라 정규직 일자리의 비정규직 고용으로의 대체를 정당화시키는 것이었다. 특수고용 문제는 당시 노사정위 특수고용특위에서 논의 중이라는 명분으로 피해갔으나, 속내는 특수고용 문제를 비정규직 고용의 문제, 즉 '노동'의 문제로 다루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비정규직 권리보장입법의 핵심 - 비정규직 투쟁요구의 결집

한편 노동운동진영 또한 1999년 이후 비정규직의 조직화·투쟁이 분출하면서 비정규직 노동자의 권리보장을 위한 입법요구를 계속해왔다. [파견·용역노동자 노동권 쟁취와 간접고용 철폐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파견철폐공대위)는 2000년 8월, 근로자파견법 철폐 및 직업안정법 강화를 위한 간접고용 근절입법방안을 발표했다. 민주노총은 2000년 10월 [비정규노동자 기본권보장과 차별철폐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비정규공대위) 명의로 기간제 및 단시간 노동자, 특수고용 노동자에 대한 입법청원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2000년에 만들어진 비정규직 입법안은 이후 약간의 손질을 거쳐 2004년 8월, 민주노동당의 입법발의안 1호로 제출되었다.

노동운동진영의 권리입법안의 핵심은 비정규직의 사용사유를 제한하고 간접고용을 금지함으로써 상시고용·직접고용의 원칙을 확립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동시에 상시적으로 사용된 기간제 노동자를 정규직화하고, 불법적 간접고용 노동자에 대한 직접고용 책임을 사용사업주에게 명확히 지우는 것이었다. 또한 노동법상 '근로자' 및 '사용자'의 개념을 현실에 맞게 확장하여 노동기본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자는 것이었다.

따라서 정부안과 노동운동진영의 요구는 완전히 대립하는 것이었고 그 사이에서 수정안을 고민한다는 것은 사실상 어느 한쪽의 입장을 따르는 것에 다름 아니었다. 그렇지만 노동계 내부에서도 입장의 차이들이 존재했는데, 일례로 비정규공대위에서는 파견법 철폐에 대한 동의가 이루어지지 않아 2000년 입법청원안에 이 부분을 담지 않았고, 노사정위원회에 참여하였던 한국노총과 전국여성노조는 '유사근로자 특별법' 안에 대해 모호한 입장을 취하였다. 노동계 내부의 이러한 견해 차이는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중요한 관점 차이를 내포한 것이었으나 민주노총 주도로 그때그때마다 봉합되었고, 2004년 정부안이 발표되면서부터는 '법 개악안 저지'의 공동전선 속에 수면 아래로 잠복하게 되었다.

2004년 발표된 정부안은 이제까지 논의과정에서 가장 후퇴한 입장이었을 뿐 아니라 그동안 분출해온 비정규직 조직화·투쟁의 성과들을 무력화하기 위한 것이었다. 기간제 사용을 3년까지 자유화하고 3년 이상 일한 기간제 노동자에 대해서도 정규직화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이제까지 온갖 악조건 속에서도 단협을 통해 또는 법적 투쟁을 통해 상시사용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쟁취해온 성과를 무력화하는 것이었다. 또한 파견제를 자유화하고 불법파견 노동자를 직접고용해야 할 사용사업주의 책임을 덜어줌으로써 간접고용 노동자 투쟁에 재갈을 물리는 것이었다.

정부의 입법예고 직후 곧바로 전국비정규직노조대표자연대회의(준)가 열린우리당 점거농성에 돌입했던 것은 바로 이러한 지점에 대한 분노의 표현이었다. 기간제 사유제한 및 상시고용 비정규직 정규직화, 파견법 철폐와 불법파견 노동자 정규직화, 특수고용 노동자성 인정, 원청의 사용자성 인정, 이주노동자 노동허가제 쟁취라는 전비연(준)의 5대 입법요구는 그동안 비정규직 투쟁 과정에서 부딪쳐 왔던 쟁점에 대한 분명한 입장 표명이자 비정규직 투쟁주체들의 요구의 결집이었다.

비정규직 법안을 둘러싼 운동진영의 동요

그렇지만 2005년 투쟁 과정에서 이러한 비정규직 투쟁주체들의 요구는 희석되었다. 4월에 열린 '노사정대표자교섭'에서 양노총이 수정안을 제출하면서부터 동요는 본격화되었다. 기간제 고용에서 사유제한원칙을 포기하고, 파견법 철폐가 아닌 현행 파견법 유지를 골자로 하는 이른바 '노동계 단일안'이 교섭석상에서 제안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전국비정규연대회의(준)는 민주노총 비정규실장과의 간담회에서 분명한 문제제기를 하였다. 그러나 경총의 견해 번복 및 정부의 강경입장으로 4월 교섭 자체가 파탄나면서 이 문제는 분명한 매듭을 짓지 못한 채 수면 아래로 가라앉게 되었다.

해결되지 못한 쟁점은 11월 노사대표자교섭이 재개되면서 다시 떠오르게 되었는데, 민주노총이 이른바 '4월 교섭내용'에 기초하여 교섭할 것을 주장하면서이다. 4월 교섭당시 제기하였다가 교섭결렬로 사라졌다던 수정안이 노동계의 공식요구로 재등장하였던 것이다. 전국비정규노조연대회의 및 국회 앞에서 농성투쟁을 전개하고 있던 단위들이 이러저러한 통로를 통해 민주노총(비대위)에 문제를 제기하였으나 역시 분명한 해결을 보지 못했다. 나중에 11월 교섭이 파국에 이르고 한국노총이 일방적인 양보안을 발표하면서야 비로소 민주노총은 원래의 권리입법요구가 민주노총의 입장임을 선언하였다. 그러나 이미 논의구도는 굳어져 있었고 이목희 의원과 한국노총이 민주노총의 '비겁함'을 질타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게다가 12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법안심사소위 논의가 진행되면서 민주노동당이 기간제 사용사유를 대폭 확대한 수정안을 제출했다. 비정규직 주체들을 중심으로 민주노동당 수정안에 대한 문제제기가 계속되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12월 8일 법안심사소위 논의까지를 거치면서 정부·여당의 법안은 '몇 가지 쟁점'을 제외하고는 사실상 통과되었다.

2005년 비정규직 법안 관련 교섭과 투쟁을 돌아보면, 정부와 자본은 물론이거니와 민주노총·민주노동당에게조차 '비정규직 권리입법요구'는 그저 '법안'에 불과한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현재의 역관계에서 비정규직 권리입법의 관철이 가능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을 인정하더라도, 권리입법요구는 사실상 제대로 견지된 바도 없다. "지금시기 파견법 철폐는 불가하다"는 노동운동진영의 자기검열 속에 처음부터 '현행 파견법 유지'가 주장되었고, "지금 특수고용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교섭 틀을 깨자는 것"이라는 주장 속에 특수고용 노동기본권 문제는 교섭의 의제로 오를 수조차 없었다. 그리고 나서도 가장 논란이 되었던 기간제 사유제한 문제와 불법파견 시 직접고용의제 문제에서조차도 양 노총과 민주노동당은 양보안을 제출하였다. 이처럼 운동진영 스스로가 포기할 의사를 내비쳤던 권리입법요구에 대해 정부가 무시하고 사회적 쟁점이 형성되지 않았던 것은 자연스런 귀결이었다.

운동진영의 노동기본권 보장에 대한 인식 부족

이것을 "불리한 역관계 속에서 교섭과 투쟁을 병행하자면 생기게 되는 불가피한 현상"이라고는 보지 않는다. 문제의 진정한 원인은 비정규직 권리입법요구에 대한 몰이해, 비정규직 노동기본권 보장에 대한 인식부족에 있다.

철폐연대는 비정규직 권리입법안 마련에 처음부터 함께 했는데, 권리입법안은 단순한 법률제·개정안이 아니었다. 그동안의 비정규직 조직화·투쟁의 과정에서 제기되었던 요구들을 입법안의 형식으로 정리한 것이다. 한국통신계약직노조의 처절한 투쟁, 이용석 열사의 외침이 기간제 사용사유·기간제한 및 정규직화 조항으로 정리되었다. 방송사비정규노조·SK인사이트코리아노조의 외롭고도 질긴 투쟁을 시발로 하여 분출되어 온 사내하청, 불법파견 노동자들의 절규가 파견법 철폐 및 직접고용 요구로 표현되었다. "하청 노동자도 인간이다"라는 박일수 열사의 절규가, 노조를 만들었다는 이유로 폐업·집단해고를 당해 1년이 넘게 싸우고 있는 하이닉스-매그나칩 사내하청지회, 하이스코 비정규직지회, 울산플랜트노조의 피맺힌 투쟁요구가 '원청 사용자책임 인정'으로 집약되었다. 정부·검찰·법원·자본의 포위공격 속에 노동자로서의 생존권을 확보하기 위해 투쟁하고 있는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특수고용 노동자성 인정'으로 모아졌다.

요컨대 권리입법요구는 그동안 자본과 정권,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투쟁 속에 맞붙었던 지점들에 대한 우리의 요구를 표현한 것이었고, 지금도 힘겹게 싸우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조합의 투쟁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었다. 권리입법을 주장한다는 것은 '노사정간에 합의될 수 있는 어떤 지점'을 모색하는 것이 아니라, 비정규직 노동자의 요구를 분명히 드러내고 이를 제기하는 주체들의 투쟁이 왜 정당한가를, 이를 탄압하는 정부와 자본의 논리가 왜 기만적인가를 고발하는 것이어야 한다.

여기서 질문을 던지고 싶다. 애초 비정규직 권리입법을 제출하면서 우리는 무엇을 목표로 했던 것인가? 2004년 12월 2월 총파업 집회에서의 민주노총 위원장의 선언대로, 정말로 국면이 '법 개악 저지에서 권리입법쟁취로 전환되었다'고 판단했던 것인가?
만약 그랬다면 이것은 정세판단의 오류이자 주체의 상태에 대한 잘못된 진단이었다고 생각한다. 비정규직 관련 정부법안은 비정규직 고용형태를 정상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이를 중심으로 하는 노동시장·노동력관리·법제도의 틀을 정비하겠다는 구상의 표현이었다. 게다가 분출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조직화·투쟁의 성과를 무화시키고 비정규직 노동자의 기본권을 제한하기 위한 것이었다. 말하자면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노동기본권을 제한하기 위한 '로드맵'의 일환이자, 전략적으로 사활을 건 공세인 셈이다. 자본과 특히 정부가 사활을 걸고 달려들었던 것에 비해 노동운동진영의 인식과 대응은 안일하기 그지없었다. 정부·여당의 '비정규직 보호입법'이라는 이데올로기를 파탄내지도 못하면서 제기한 '연내 입법쟁취' 구호는 쟁점을 희석시켰다. "법 개악안을 효과적으로 저지했다"라고 평가하기에는, 정규직노조 중심의 민주노조운동에서 비정규직 법안 문제는 여전히도 '비정규직들만의 문제'였고, 심지어 운동의 지도부조차도 권리입법의 핵심에 대한 이해가 일천하였다.

대중의 역동성을 끌어 올리지 못하는 투쟁

어떤 사람들은 '법개악 저지'는 수세적인 요구이고 '권리입법 쟁취'가 공세적인 요구라고 말한다. 그러나 요구가 공세적이라고 해서 공세적 투쟁이 담보되는 것은 아니다. 05년 한 해 동안 비정규직 법안의 문제는 국회가 열리는 기간 동안, 교섭의 대상 이상이 되지 못했다. 05년 한 해만 해도 하이닉스-매그나칩 사내하청 투쟁, 울산플랜트노조의 투쟁, 완성차 사내하청노조들의 투쟁, 덤프연대의 투쟁 등 비정규직 노동자 투쟁이 폭발하였으나 이것과 권리입법 쟁취투쟁이 결합되지 못했다.
보다 정직하게 말하자면 민주노총 조합원의 다수를 차지하는 정규직들을 교육·선동하여 총파업 투쟁으로 조직해내고, 각개 투쟁하는 비정규직 노동자 투쟁을 권리입법 투쟁전선으로 엮어 내려는 노력이 극히 부족했다.

민주노총의 총파업이라고 하지만 실상은 금속연맹을 바라보고, 더 들어가 보면 결국 현대차, 기아차 노조의 결단을 촉구하는 것을 '총파업'이라고 할 수 있을까? 다른 산별연맹이 정말로 총파업에 참여하기 어렵다면 산하 노조에 권리입법요구의 의미를 교육·선전하는 활동은 과연 얼마나 진행되었을까? 짧게 잡아도 04년 9월 정부 법안이 발표되고 나서 1년이 넘는 시간이 있었고, 그 속에서 정부 법안이 결국은 노동자대중 전체의 일자리를 위협하고 노동기본권을 제한하려는 것이라는 점을 교육·선전하면서 조합원의 의식과 실천을 끌어 올릴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총파업을 조직한다는 것이 그러한 교육·선전·조직에 노동운동 전체의 조직적 역량을 가동해 보면서 역동적인 실천을 만드는 것이 아닐까? 그랬다면 설령 60만 조합원 중에 10만 이하로 참여하더라도 이 투쟁을 거치면서 더 큰 투쟁을 준비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민주노총의 '총파업'은 국회 일정과 노사정교섭에 맞춰 '선언'하고 '동원'하는 것이었고, 참여 규모면에서 뿐 아니라 투쟁의 분위기에 있어서도 고무적이지 못했다.

비정규직 노동조합들은 전국비정규연대회의의 선도적 투쟁을 통해 정부 법안이 '개악안'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비정규직 당사자 스스로가 이를 분쇄하기 위해 투쟁한다는 점을 대내외적으로 분명히 하였다. 그러나 비정규직 노조조차도 권리입법 투쟁에 매진하였다고 볼 수는 없다. 비정규직노조 대표자 수준에서는 정세에 대한 공유나 어느 정도의 실천이 이루어졌으나, 대표자를 넘어 해당 노조에까지 긴장감이 형성되지는 못했다. 단위 사업장의 현안을 놓고서는 그야말로 치열한 투쟁을 전개하였으나, 권리입법투쟁에 있어서는 적극적으로 임하지 않았다. 물론 노동조합 유지 자체가 어렵고 사용할 수 있는 전술이 극히 제한되어 있는 비정규직노조의 조건을 감안해야 하겠지만, 비정규직 노조마저도 자신의 현안과 권리입법을 별개의 것으로 바라보았던 점은 분명히 평가해야만 한다.

결국 정규직·비정규직 모두 비정규직 법안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것이다. 정부·여당이 노리고 있는 것은 '비정규직 보호'라는 명분을 가져가면서 비정규직 사용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것이다. 동시에 비정규직이 자본의 선의와 노동위원회·법원의 판단에 의존하도록 만들고, 노동3권 행사를 구조적으로 어렵게 만드는 것이다. 만약 정부·여당 법안이 통과된다면, 비정규직은 2∼3년마다 주기적인 고용불안을 경험하게 되고 노동조합을 통한 집단적 문제해결보다는 개인적인 경쟁력 확보와 관리자에게 줄서기로 나설 수밖에 없을 것이다. '차별 시정'이라는 명목으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업무가 더욱 분화될 것이고 이는 다시 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을 묵인하도록 만들 것이다. 민주노조운동 스스로가 비정규직을 '보호의 대상'으로 보는 관점을 넘어서지 못하고, 비정규직 법안 문제를 노동기본권의 문제가 아니라 노동시장정책의 일환으로 접근하는 사고를 극복하지 못했다. 이것이 가장 극적으로 드러난 것이 한국노총과 시민단체들의 양보안 발표였지만, 민주노총도 이런 평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지난 7년여 간 비정규직의 조직화·투쟁이 분출하면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또는 차별철폐는 많이 공론화되었다. 그렇지만 비정규직의 노동기본권 문제는 운동진영 내부에서조차(심지어 비정규직 주체들 사이에서조차)도 여전히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예를 들면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투쟁은 자체적인 파업 투쟁을 통해 생산을 중단시킬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하였으나, 실질적 사용자인 원청을 상대로 하는 노동3권 쟁취는 여전히 답보 상태이다. 뜨거운 쟁점이었던 정규직-비정규직 연대의 문제에 있어서도 원청을 상대로 비정규직의 노동기본권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점은 다루어지지 못했다. 특수고용의 예를 들면 자체적인 투쟁을 통해 산업에 타격을 주고 이 힘을 바탕으로 정부와의 교섭이 가능할 정도로 성장하였으나, 노동기본권 문제는 아직도 '중장기적 투쟁 과제'에서 실천의 영역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05년 한 해 동안만 해도 비정규직 노조들은 92명의 구속자, 1362명의 해고자(계약만료 통보로 인한 해고 제외), 1498억 원의 손해배상·가압류(하이스코의 72억 원 제외) 등 무자비한 탄압을 받았으나, 비정규직 노동기본권 문제를 쟁점으로 만들고 권리입법투쟁과 연결시키지 못했다.

또다시 정부·여당이 2월 국회에서 비정규직 법안 처리를 시도하려 한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노무현 정부 입장에서도 더 이상 처리를 미룰 수 없는 문제이고, 노동운동진영의 입장에서도 최선을 다해 저지해야 하는 만큼 또다시 한 판 격돌이 불가피하다. 그렇지만 어찌어찌하여 2월 처리를 넘긴다 해도 현재와 같은 운동의 상태라면 승리라고 볼 수 없고 시간을 벌었다고도 할 수 없다. 비정규직 권리입법요구를 바라보는 관점이, 투쟁에 부여하는 의미가 바뀌어야만 한다. 올해에는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기본권 문제를 둘러싼 투쟁을 피할 수 없고, 전체 노동자의 노동기본권을 약화시키려는 노사관계로드맵을 둘러싼 격돌도 예고되고 있다. 비정규직-특수고용-노사관계로드맵을 둘러싼 투쟁에서 공통적인 쟁점은, 노동기본권을 헌법전에 쓰여진 공문구로 위축시킬 것인가, 아니면 전체 노동자의 실질적 권리로 확장시킬 것인가라는 문제이다. 06년 싸움의 양상에 따라 이후 민주노조운동의 기반 자체가 변화를 맞게 될 것이다.

지금 노동운동 내에서도 비정규직 법안의 문제는 비정규직 노동자만의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특수고용 문제에 대한 노사정위의 해법은 특수고용 노동자를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으면서, 업종을 찢어 개별적으로 경제적 이해관계집단이 되라는 것이다. 07년 사업장단위 복수노조 허용을 앞두고 각 노조는 자신의 입장에서 수지타산을 계산해 보는듯하다. 비정규직의 노동기본권 보장이 곧 전체 노동자의 노동기본권을 실질적으로 확장시키는 과정이라는 인식 위에 올해 투쟁을 전략적으로 배치해야만 한다. '노동기본권'이 조직된 노동조합의 기득권을 방어하는 것이 아니라 90%의 미조직 노동자의 권리를 옹호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관점 위에서 1400만 노동자를 대변하는 투쟁에 자기 역량을 투여하지 않으면 안 된다. 민주노조운동이 전체 노동자대중의 이해를 대변하는 길을 갈 것인지 정규직-조직노동자의 기득권을 주장하는 길로 갈 것인지의 기로에 우리는 서 있다.


필자|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정책국장 윤애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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