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비정규직 투쟁 평가[34호|특집1]

1. 2005년 각각의 투쟁 평가


(1)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원청 사용자 책임 요구 투쟁

□□□ 상반기 폭발적인 불법파견 투쟁 속에 나타난 한계

05년 상반기 불법파견 투쟁은 현대자동차를 시작으로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으나, 이후 대중투쟁으로 이어지지 못하였고, 사내하청 노조에 대한 엄청난 탄압과 투쟁의 장기화 양상을 보였다. 대표적으로 현대자동차, 하이닉스 등의 사업장에서 불법파견 진정과 함께 투쟁이 이루어졌고, 기아자동차 화성공장이나 GM 대우 창원 공장 등에서도 부분적으로 불법파견 판정이 났다. 또 이러한 사내하청 사업장 외에도 기륭전자, 인터콘티넨탈 호텔, 경마진흥노조 등이 불법파견 진정에서부터 투쟁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투쟁 양상을 살펴보면 그나마 현대자동차 정도에서 불법파견 투쟁을 전면적으로 내걸었을 뿐, 나머지 노동조합에서는 노조인정을 투쟁의 중심에 둘 수밖에 없는 현실이 존재했다. 또한 현대자동차 비정규직노조나 하이닉스 투쟁에서 알 수 있듯이 비정규직노조에 대한 탄압이 거세어지고 투쟁 상황이 열악해지면서 불법파견 투쟁은 단위사업장 차원의 투쟁으로 국한될 수밖에 없었고, 그러다 보니 정작 중요한 불법파견 주체들 간의 공동투쟁은 진행되지 못했다. 또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실질적 연대도 이루어지지 못한 채 투쟁 주체들이 분리되었다.

불법파견 투쟁이 '정규직화'를 위한 현실성 있는 방안인 것처럼 인식된 것도 한계이다. 사내하청 노동조합을 유지하고 투쟁의 방향을 설정하는 데 있어서 "불법파견 인정으로 정규직화!"라는 등식이 만들어졌다. 그런데 파견법 개악이 시도되고, 자본도 불법파견을 오히려 구조조정을 용이하게 하기 위한 계기로 활용하게 되면서 이런 등식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불법파견 진정 이후 현장에 나타난 현실이 이를 잘 보여준다. 현대자동차의 개선계획서에서 볼 수 있듯이, 자본은 '불법파견'이므로 이것을 시정하기 위해서 노동자들을 '진성도급'으로 만들겠다고 주장한다. 사실상의 사용자가 원청이므로 진성도급일 수 없지만, 그들은 하청업체에 관리자를 두거나 혼용작업에서 분리작업으로 변형시키는 등 몇 가지 시도를 통해서 형식적으로 진성도급과 유사한 외양을 갖추어 또다시 불법파견 및 사용자 책임을 은폐하려고 하는 것이다. 불법파견 투쟁은 결국 구조조정저지 투쟁이 되었다.

원청 사용자 책임 요구 투쟁의 의미를 더욱 폭넓게 하면서 이것을 사회적으로 쟁점화 하는 공동투쟁을 만들었을 때 사내하청 투쟁의 의미는 더욱 살아났을 것이다. 그런데 원청 사용자 책임 요구는 뒤로 밀리고, '불법파견-정규직화' 중심의 투쟁을 함으로써 사내하청 투쟁을 단위사업장 내부로 가두었고, 불법파견에 대한 협소한 인식이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함께 구조조정에 대항하는 전면적 투쟁으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투쟁의 과제를 소홀히 하게 만든 것이다.

2005년에 불법파견 문제가 정세적으로 중요한 투쟁의 매개 고리로 자리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투쟁이 그 중요성만큼 만들어지지는 못했다. 각 주체들마다 투쟁의 목표지점이 달랐던 것도 이 투쟁이 전국적으로 사회화되지 못한 이유 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금속연맹(노조)은 불법파견 문제를 가지고 (사내하청) 노조인정 등의 문제를 끌어내려는 의도를 갖고 있었고, 단위노조 주체들은 불법파견을 통해 정규직화 쟁취에 매몰되는 괴리가 있었다. 즉 불법파견 투쟁을 통해서 무엇을 쟁취할 것인지, 목표지점이 명확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불법파견 투쟁은 연맹이나 정규직 노조의 공동과제로 제기되지 않았고 단위사업장 비정규직들의 문제로 국한되었다. 그러면서 불법파견 투쟁은 단위 사업장을 넘어 전 사회적인 문제로 확산되기에는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 이는 정규직-비정규직 공동투쟁은커녕 서로의 불신과 분열만 야기했고, 단위 비정규노조의 열악한 투쟁 현실을 더욱 왜곡했다.

□□□ 지역 차원의 투쟁의 의미와 한계

투쟁 자체는 실패일지 몰라도 하이닉스, 하이스코 사내하청 투쟁을 통해 지역연대투쟁이 만들어졌다. 지역 파업 투쟁을 복원했다는 것은 그 자체로 큰 성과이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이것은 한 사업장의 투쟁에 대한 연대투쟁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지, 지역 차원의 공통의 정치적인 과제로 제기되는 투쟁은 아니었다. 다시 말해 불법파견 또는 원청의 사용자 책임 문제를 지역의 쟁점으로 만들고 전체의 과제로 제기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다보니 지역차원의 연대투쟁이 오히려 단위사업장 문제 '해결'에만 집중되게 되고, 그렇게 해서 '해결'에 가까이 간 듯 보였던 것도 다시 사업장 안에서 어떻게 관철시킬 것인지의 문제로 왜곡되었다. 이 투쟁의 의미가 전체의 과제로 제출되지 못함으로 인한 것이다. 예를 들어 하이닉스와 하이스코 뿐 아니라 울산플랜트 투쟁의 과정에서도 볼 수 있듯이 교섭 국면에서 다자간 교섭은 파업 투쟁을 통해 요구했던 노조인정 요구를 사실상 무력화하는 방식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교섭을 했다고 할지라도 교섭결과 불이행과 각종 불이익이 드러나는 등 그 폐해가 많다.

'노동조합 인정과 대화'를 요구하며 열흘간 순천공장을 점거했던 현대하이스코 비정규직노조는 노동부의 중재로 11월 3일 '확약서'를 체결했지만, '노동조합 인정'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확약서마저 이행되지 않고 오히려 두 곳의 하청업체를 폐업하는 등 사태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울산 플랜트도 다자간 협상으로 76일간의 파업을 정리했지만, 합의가 현장에서 관철되지 않고 파업에 참가한 조합원들이 취업이 되지 않는 등 여러 가지 문제를 드러내었다.

이는 지역연대투쟁을 통한 단위사업장 문제 해결의 방식이 아니라, 단위사업장의 문제를 지역 전체의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쟁점으로 부각시켜서 투쟁을 만들어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원청사용자 책임 인정이라는 요구가 사회화되고 그것을 중심으로 투쟁이 이루어졌다면 이 투쟁의 성과는 단지 하이닉스나 하이스코에만 머물지는 않게 될 것이다.

□□□ 울산 플랜트 건설 노동자들의 투쟁

2005년 상반기를 뜨겁게 달구었던 울산플랜트 투쟁을 살펴보자. 울산건설플랜트 노동조합은 05년 3월 18일 '1일 8시간 노동보장과 유급휴일 보장, 탈의실 샤워실과 중식 및 휴게시설 확보, 죽지 않고 다치지 않고 일할 수 있는 산업안전 보장 등'을 요구하며 파업에 들어갔다. 요구안 자체는 지극히 현안 문제 중심이었지만, 이 투쟁은 정권의 무자비한 탄압에 대한 저항, 불법 다단계 하도급에 대한 문제제기 뿐 아니라 원청 사용자성 쟁취의 요구와 의미를 널리 알리는 데에 일조하기도 하였다. 또한 사측이 교섭거부의 논리로 들이대고 있는 조합원 존재 유무, 조합원과의 고용관계 계속 여부, 교섭방식 등의 쟁점은 건설일용노동자의 문제이면서 초기업단위노조 일반이 직면한 문제를 건드리는 것이었다.

그러하기에 울산건설플랜트 노동자들의 투쟁은 2005년 상반기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 쟁취라는 문제의식을 담은 대리전적 성격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자본과 정권이 무자비한 탄압으로 일관했던 것이다. 하지만 울산 건설플랜트 노동자들의 투쟁 과정에서 전국의 노동자 동지들이 연대하고 함께할 계기가 많지 않았다. 그러면서 결국 불완전한 타결이 되었고, 그 결과조차도 현장에서는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2) 특수고용노동자들의 투쟁

□□□ 특수고용 입법 논의 및 이에 대한 대응

2003년 이후에 특수고용 노동자성에 대한 쟁점과 논의가 지속되지는 못했다. 기간제와 파견법 관련한 정부의 노동법개악 논의가 늘어지면서 특수고용 입법 논의 역시 자연히 지연되었고,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3권을 입법화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노사정위원회-특수형태근로종사자특별위원회' 역시 2년 6개월 동안 시간 끌기로 일관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노사정위원회의 공익위원안이 사실상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요구를 반영하지 않은 상태로 제출되었다는 점이 확인되면서 특수고용 노동자성에 대한 쟁점이 하반기에 고개를 들었다.

이후 노사정위원회 특수고용 특위의 안은 계속적으로 노동자성은 부인하고 경제법상으로 몇몇 시혜적인 조치들을 개선하는 방식으로 제출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얼마나 현실성 있게 입법 논의를 할 것인가에 매몰되지 말고, '노동자성 쟁취'라는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당연한 요구를 어떻게 사회화하고 투쟁으로 만들 것인가에 주력해야 한다.

□□□ 특수고용 농성의 의미와 한계

2005년 하반기에 특수고용 노조들은 국회 앞에 천막을 치고 공동투쟁을 전개하였다. 10월 4일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자성 인정, 노동3권 쟁취, 대표자 무기한 단식농성'을 시작으로 하반기 특수고용노동자 투쟁의 포문을 열고 이후 덤프연대, 화물연대, 건설운송노조의 총파업 투쟁으로 이어가기 위한 투쟁 계획이 제출되었다. 이는 특수고용대책회의가 나름대로 안정적으로 운영되면서 공동투쟁을 기획할 수 있었던 것의 결과물이다.

이 농성과 58일간의 대표자들의 단식으로 특수고용 대책회의를 구성하고 있는 특수고용 노조들의 참여와 공동투쟁의 가능성이 만들어졌다. 이는 지난 몇 년간의 특수고용 공동투쟁의 노력보다 진일보 한 것이었으며 이후의 공동투쟁의 가능성을 열어 놓은 투쟁이었다.

그러나 하반기 특수고용대책회의는 단지 농성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특수고용 노동자의 공동투쟁과 특수고용 문제를 노동운동 진영에 사회화하기 위해 '특수고용 투쟁본부'를 건설하기로 했던 계획을 현실화하지 못했다. 투쟁본부는 만들어지기는 했으나 각 연맹이나 총연맹의 집중적인 투쟁을 조직하지 못하고 여전히 특수고용 대책회의의 다른 이름일 뿐이었다. 특수고용 문제를 노동운동 진영의 중요한 과제로 인식시키기 위해서는 더 면밀하고 체계적인 투쟁의 배치가 필요함이 드러났다.

□□□ 특수고용 각각의 투쟁

특수고용 개별 투쟁을 보면, 덤프연대의 세 차례 파업과 레미콘, 학습지, 골프장, 서의노 등 투쟁의 흐름이 있었다. 덤프연대는 5월과 10월, 11월에 세 차례 총파업을 벌였다. 파업의 주요 요구로 과적 관련법 개정, 유가보조, 다단계 하도급 근절, 특수고용 노동자성 쟁취 등을 내걸었으며, 2004년 9월 덤프연대의 결성과 함께 특수고용노동자들의 처지를 사회적으로 알리는 계기가 됐다. 세 번의 파업으로 조합원들의 수는 확장되고 있는데, 아직까지 현안 문제 해결에 많은 부분이 맞춰져 있어서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동자성 쟁취라는 요구를 향해가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한편, 화물연대는 9월 김동윤 열사의 분신으로 '유류가 보조, 도로비 인하' 등 경제적 요구를 기반으로 본격화된 투쟁이 필요했으나 투쟁의 파장을 그리지 못했고, 덤프연대와 건설운송노조의 파업에도 불구하고 10월 말 예고된 파업을 접으면서 특수고용 공동투쟁을 기대하고 조직해왔던 다른 특수고용 단위들의 투쟁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레미콘과 학습지의 경우 지부별 투쟁이 많이 있었다. 행운레미콘, 한일 레미콘, 서해 태안레미콘 등 레미콘 노동자들의 투쟁은 계속 진행되었고, 학습지노동자들도 산별 건설 움직임을 만들며 투쟁을 지속해 나갔다. 특히 9월에는 서해 태안 레미콘 노동자들에게 '업무방해금지가처분'이 내려지고, 부산일반노조 한솔학습지 지부에게 단체행동금지 가처분이 내려지고, 학습지노조 웅진씽크빅 학습지교사에게 대법원에서는 노동자성을 부인하는 판결을 내리면서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노동자성이 법원에서 부인되는 상황이 지속되었다.

이외에 한원CC, 여주CC, 익산CC 등 골프장 경기보조원 노동자들의 투쟁도 계속되었고, 특수고용화를 저지하기 위한 서울의류업노조 3사 공동투쟁, 서울일반노조 학원차량분회 등에 이르기까지 특수고용노동자들의 투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3) 기간제 투쟁

□□□ 기간제 각각의 투쟁

2005년 상반기에는 새마을호 승무원, 기아 사무계약직 등 주로 여성 계약직 투쟁이 많았다. 정부의 노동법개악이 발표되면서 이에 대한 사전조치로 특히 여성 기간제 노동자에 대한 계약해지 사례가 늘어난 것 때문이었다. 하반기에는 KTX 승무원 투쟁, 산업인력공단 비정규노조, 대전 정비창 비정규직의 투쟁 등 공공부문의 투쟁이 대다수를 차지하였다. 특히 산업인력공단 비정규노조의 경우 상시사용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쟁취라는 의미와 요구로 더욱 투쟁의 중요성을 가진다. 뿐만 아니라 결국 제대로 투쟁이 조직되지는 않았지만, 산업인력공단 비정규노조를 비롯하여 노동부 산하 비정규노조를 묶어 공동투쟁본부를 만들려는 시도는 그간 공동투쟁의 전형을 만들지 못했던 공공부문(기간제) 비정규직 투쟁에 있어서 큰 의미를 갖는다.

□□□ 공공부문 기간제 투쟁의 문제점

이처럼 기간제 노동자 투쟁의 경우 대다수가 공공부문으로 나타나는데, 공공부문의 경우 정규직화 쟁취가 어렵지는 않으나, 정규직화 요구가 받아들여지는 과정에서 특채나 시험을 요구하고, 그 과정에서 노동조합이 조직력을 잃고 조합원이 흩어지는 경험을 많이 하였다. 특채라는 자본의 이데올로기를 넘지 못하는 이상 투쟁했던 노동자들도 계속 분열하고 경쟁하게 된다. 이는 새마을호 승무원, 산업인력공단비정규노조, 근로복지공단비정규노조, 집배원 등의 사례에서 알 수 있는데, 공공부문 기간제 투쟁에서 투쟁을 통한 정규직화의 조건을 마련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특채' 형식의 정규직화로 변질되는 문제는 이후 극복해야 할 중요한 과제이다.

□□□ 노동법개악 투쟁과 접목되지 못했다.

기간제 노동자의 투쟁은 정부의 노동법개악 국면과 접목되지 못했다. 정부의 개악안 논의가 진행되면서 기간제 문제에 상대적으로 무척 많이 집중되었지만, 산업인력공단비정규노조의 투쟁 정도를 제외하고는 여타의 투쟁이 정부의 기간제 법안의 문제점을 알려내는 것에는 부족하였고, 각각 투쟁의 배치에 있어서도 정부 개악안 문제와 연결이 되지 못했다.

이는 기간제노동자의 공동투쟁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 부분과도 연결되는데, 상대적으로 다른 업종의 노동자들에 비해 기간제 노동자들의 경우 노조 인정 및 유지의 절박함이 없다보니 자기 단위사업장의 문제로만 집중하는 경향이 나타나게 되고, 이로 인해서 노동법 개악 저지라는 사회적인 문제로까지 나아가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후 정부의 노동법 개악안이 통과되면 '차별금지' 부분이 현실화될 것이다. 이에 상시 업무 기간제노동자의 현실을 폭로하고, 공동투쟁의 전형을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4) 노동법 개악 저지 투쟁

2년째 미뤄지고 있는 노동법개악 저지와 권리입법쟁취를 위한 투쟁에서, 비정규노조들의 대중투쟁은 잘 조직되지 않았다. 권리입법안의 핵심인 기간제 사유제한, 파견법 철폐 및 불법파견 정규직화, 원청 사용자책임 인정, 특수고용 노동자성 인정은 지난 7년여의 비정규직 투쟁 과정에서 정리된 요구인데도, 이에 대한 비정규노조들의 인지도는 매우 낮았다.

특수고용대책회의의 농성투쟁, 화물연대-건설운송노조 등 주요 노조의 시기집중 투쟁 조직, 사내하청노조의 공동실천 조직 등을 통해 벌어지고 있는 비정규직 투쟁의 요구를 분명히 하고 이것을 권리입법 쟁취투쟁과 연결시키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하였지만, 사실상 전국비정규노조연대회의의 대표자를 중심으로 상징적 실천이 전개되었고, 대부분의 비정규노조는 현안 투쟁에 매몰되면서 투쟁이 확산되지는 못했다.

뿐만 아니라 민주노조 운동 진영 내부에서도 노동법개악을 자신의 과제로 하지 못했다. 2005년에는 현장투쟁단과 공동투쟁본부가 만들어져서 예전보다 더 많은 동지들이 노동법 개악 투쟁에 동참했지만 대중파업 투쟁으로 전면화되지 못하고 문제의식을 가진 활동가들의 투쟁으로 좁혀졌다. 이는 민주노조 운동 진영이 정부의 노동법 개악 공세 국면에 대한 인식이 불충분하였을 뿐 아니라 노동운동 스스로도 '노동기본권 쟁취'에 대한 이해가 없는 것에 기인한다.



2. 2005년 비정규 투쟁 총평

현대자동차 비정규노조의 불법파견 투쟁, 울산플랜트 파업, 덤프연대 파업, 하이닉스 사내하청노조 투쟁, 특수고용 노조 농성투쟁, 산업인력공단 비정규노조 파업 등 05년에도 굵직굵직한 비정규 투쟁이 많았다. 물론 열거하지 않더라도 곳곳에서 진행된 작지만 소중한 비정규직 투쟁도 있었다. 2005년 한해 진행되었던 비정규 노동자들의 투쟁은 비정규직문제를 사회적 화두로 확실하게 등장시켰고, 그만큼 비정규노조 단사에 가해진 탄압도 엄청났다. 하이닉스, 울산플랜트, 하이스코 등 비정규노동자의 투쟁을 엄호하기 위한 (지역)총파업이 조직되는 등 노동운동 진영에서도 비정규직 문제가 사회화되었다. 그러나 몇 년간 지속된 비정규투쟁이 규모화 되기는 했으나 아직도 부족한 부분이 많다. 그 부족한 부분은 크게 다음과 같다.

첫째, 비정규 투쟁은 활발하였으나 비정규직 주체들 간의 연대투쟁은 약화되었다.

비록 품앗이 투쟁일지라도 비정규투쟁이 이루어지던 초기에는 비정규주체들 간의 연대투쟁이 많이 이루어졌었다. 그러나 현실의 열악함과 공동문제로 인식하지 못하는 현실적 한계 때문에 2005년에는 비정규직 주체들 간의 연대가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 특수고용 노조들의 경우 그나마 하반기 농성투쟁으로 이러한 공동투쟁의 가능성을 열기는 했으나 다른 영역에서는 연대투쟁이 오히려 약화되었다.

최소한 영역별, 지역별 공동투쟁이라도 활발하게 이루어지면서 집중점을 만들었어야 했음에도 비정규 노조들은 울타리를 뛰어넘지 못하는 단사별 투쟁으로 고립되었다. 특히 사내하청 투쟁이 이러한 모습을 드러냈는데, 비정규직 투쟁 주체들 간의 연대보다는 상급단체(연맹), 민주노총, 정규직과의 연대를 더 중시하고 의존하는 경향도 함께 드러났다.

둘째, 비정규 운동 양적 발전은 있었으나 질적 발전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비정규노동자들의 투쟁은 생존권 문제로부터 시작된다. 이렇게 분출된 투쟁을 성과 있게 만들기 위해서는 전체 비정규노동자의 요구를 받아 안고 투쟁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아직도 비정규노동자들의 투쟁이 사회적 정당성 속에서 당당히 권리를 찾는 방식이 아니라 시혜적 요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다분히 실리주의적인 경향으로 가기도 한다.

이런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서는 '단위사업장에서의 정규직화'라는 협소한 틀이 아니라 '노동기본권 쟁취'라는 측면에서 '원청 사용자성 쟁취,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기본권 쟁취'와 같은 비정규직 노동자의 공동의 요구를 내걸고 투쟁을 배치하고 자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라도 비정규노동자 투쟁을 거친 비정규직 활동가들이 더 많아져야 하고, 더 많은 내용을 갖추어야 한다.

셋째, 2005년 정세에서 열사투쟁을 의미 있는 투쟁으로 만들지 못했다.

2005년 하반기에만 해도 현대자동차 비정규노조 류기혁 열사, 화물연대 김동윤 열사의 항거가 있었음에도, 지난해 이용석 열사와 박일수 열사 투쟁만큼의 투쟁의 진정성과 의미를 살리지 못했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열악한 현실에서 나타난 노동자들의 분신과 자결이라는 항거가 단사의 현안으로 끝나버리고 전체 비정규직 노동자의 현실을 폭로하는 투쟁으로 나아가지 못하였다.

이는 비정규직 투쟁이 이제 사회적인 문제로 나아가고 있는데도, 현실에 대한 분노와 울분으로만 표현되고, 노동운동 진영의 관성화된 투쟁에 갇혀버린 현실을 반영한다. 어느 순간 운동진영이 열사 투쟁을, 매뉴얼에 갇혀 사건 처리하듯 진행하는 현실에 놓여 있는 것이다. 올해 나타난 이와 같은 현실은 지난 6년간 비정규직 투쟁이 활발해지면서 투쟁의 형식적 완결성은 높아지고 여전히 치열하기는 하지만 비정규노동자 투쟁 역시 관성화되고 제도화되는 기로에 놓여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또한 어느 순간에 정규직 노조와 비정규직 노조를 분할하고 정규직 노조에 책임을 전가하면서 노조활동에 도덕적 흠집을 내는 정권의 노조 말살 이데올로기에 우리도 젖어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심각하게 생각해보아야 한다.

필자|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사무처장 정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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