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호>
우리는 왜 일해도 가난한가?
김혜진(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집행위원장)
일해도 가난하다면 그것은 노동자 탓이 아니다. 사회적으로 노동자들의 임금을 낮게 책정해놓고, 희생을 강요하는 구조 때문에 노동자들이 일해도 가난한 현실이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2003년 자활사업의 평가와 개선방안]이라는 자료에 따르면 절대빈곤층 중에서 노동빈곤층 규모는 무려 38.4%가 되며, 이 중 42.6%가 비정규가구라고 한다. 그리고 중위소득의 50%를 버는 상대빈곤층의 경우에도 40% 정도는 노동빈곤층이며, 그 중에서도 46.5%가 비정규가구로 나타났다. 이와같이 어마어마하게 많은 노동자들이 일을 해도 가난하다. 그리고 그렇게 가난한 노동자들 대다수가 비정규직이다.
2004년에 조사한 김유선의 ‘비정규직 규모와 실태’에 의하면 OECD는 ‘상용직 풀타임 중위임금의 2/3 이하’를 저임금으로 정의하고 있다. 프랑스 등 OECD 국가는 이를 기준으로 법정 최저임금을 정하곤 한다. 이에 따라 ‘상용직 풀타임 중위임금(180만원)의 2/3’인 ‘월평균임금 120만 원 이하’를 저임금 계층으로 분류하면, 전체 노동자 1,458만 명 가운데 절반에 근접하는 699만 명(47.9%)이 저임금 계층으로, 정규직이 131만 명(20.4%), 비정규직이 568만 명(69.7%)이다. 정규직은 5명중 1명, 비정규직은 10명중 7명꼴로 저임금 계층인 것이다.([그림] 참조)
그렇다면 비정규직은 왜 가난한가? 우선적으로는 임금이 너무 낮고 각종 사회보장 제도에서 제외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비정규직이라는 고용형태 때문에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권리에 대해 말을 하지 못하고 주어진 현실을 수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1. 비정규직의 낮은 임금을 부추기는 제도들
(1) 비정규직이라는 존재 조건 자체가 낮은 임금의 원인
비정규직 노동자의 임금이 낮아야 할 객관적인 이유는 없다. 하지만 노동자들이 고용이 불안정한 상태에 있기 때문에 정규직에 비해서 더 약자의 지위에 놓여있고, 이런 지위를 이용하여 자본가들은 더 낮은 임금을 주려고 한다. 노동자들은 낮은 임금이라고 할지라도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또는 정규직으로 갈 수 없는 이상 이런 임금은 필연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낮은 임금을 수용하게 된다.
김유선의 ‘비정규직 규모와 실태’ 자료를 보면, 정규직 대비 비정규직의 월평균 임금총액은 2000년 53.7%, 2001년 52.6%, 2002년 52.7%, 2003년 51.0%로 그 격차가 확대되다가, 2004년에는 51.9%로 조금 줄어들었다. 그만큼 비정규직이라는 점이 저임금의 원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정부는 정규직의 고임금이 문제의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설령 정규직의 임금이 낮아지더라도 비정규직의 임금이 높아지지는 않는다. 실제로 자본가들은 임금 총량으로 지급될 돈이 부족해서 비정규직을 고용하는 게 아니라, 자신들이 지불할 수 있는 능력 여부와 무관하게 어떻게 해서라도 임금 수준을 낮추려는 시도로 비정규직화를 가속화시키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규직이 임금을 낮춘다 하여 그것이 비정규직의 임금인상으로 귀결될 어떤 근거도 없다.1)
게다가 특정한 업무를 비정규직으로 활용하면서 이 업무의 가치를 낮게 평가하는 사회적인 분위기도 저임금을 부추긴다. 자본가들은 90년대 중반 이후 소위 ‘비핵심업무’에서부터 외주화, 용역화, 아웃소싱을 하기 시작했다. 첫 번째로 희생이 된 것은 바로 ‘청소 업무’ 등이었다. 그러면서 청소업무 자체를 낮게 평가하고 저임금을 주어도 당연한 것처럼 이데올로기를 만들어냈고, 그 결과 청소업무는 마치 처음부터 저임금인 것처럼 생각되었다. 이 외에도 사무보조나 유통서비스 등 여성들이 많은 업무는 마치 그 업무의 성격 자체가 별로 중요하지 않거나 낮은 가치를 지닌 업무인 것처럼 간주되어 저임금이 정당화되었다.
하지만 ‘주요업무’ 또는 ‘주변업무’ 등의 개념은 철저하게 자의적이거나 자본가적인 발상이다. 어떤 업무든 그 업무를 수행하는 데에 드는 노동력은 같으며 누구나 그 노동력을 지불한 만큼 대가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도 자본가들은 노동에 멋대로 가치를 매기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노동자들이 그 기준을 따라야 할 필요는 전혀 없다.
또한 비정규직의 임금구조의 왜곡도 저임금을 부추기는 요인이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기본급 비중이 상대적으로 낮고 시간외 수당이나 상여금 등이 임금의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2) 불연속적인 노동과 임금체계의 왜곡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가난한 이유는 고용이 불안정하기 때문이다. 물론 고용계약을 반복하는 장기계약직 노동자들도 있지만, 업무의 연속성이 떨어지는 건설노동자 등 고용이 불안정한 노동자들은 당연히 가난할 수밖에 없다. 건설노동자들은 장마철과 같은 비수기인 경우, 또는 고용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시기에는 임금을 받지 못하므로 생활의 안정성이 떨어지게 된다.
학교 비정규직의 경우에는 퇴직금을 주지 않기 위해서 11개월 고용을 하는 경우가 있다. 아이들 방학을 이용하여 이 노동자들의 임금을 줄이려고 하는 것이다. 기간제 교사들의 경우에도 아이들 방학 때에는 임금이 지급되지 않는다.
영화노동자들의 경우에도 저임금 현상이 심각하다. 2004년도 조사결과에 따르면 영화 스탭들이 참여하는 연간 평균 작품 수는 1.24편이고, 작품 당 평균수입은 540만원으로 결국 평균 환산 연봉은 640만원 정도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작품당 평균 촬영기간이 3~5개월인 점을 고려하면 평균 월급 수준은 108만원에서 180만원 정도로 일반 비정규직 노동자의 임금수준과 유사하지만, 영화스탭들의 연간 고용기간이 4~6개월에 불과하기 때문에 일반 비정규직근로자보다 더욱 열악한 조건에 처해 있는 것이다.2)
또한 우리나라의 임금은 단지 기본급으로만 구성되지 않는 실정이기 때문에 실제 기본급 비율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간 차이가 없다 하더라도 기본급 외 각종 수당에 있어서의 정규직과 비정규직간 차별로 인해 저임금 현상이 발생하는 문제도 있다. 예를 들어 정규직의 77~93%가 퇴직금, 시간외수당, 상여금을 적용받고 있는데 비정규직은 10~14%만이 이들 근로조건을 적용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이병훈, 임유선, 2003)
게다가 비정규직의 경우 왜곡된 임금체계가 많이 나타나는데 예를 들어 포괄임금체계가 있다. 포괄임금체계란 노동시간을 규정하기 어려워서 일반적으로 기본임금을 정하지 않은 채 시간외 근로 등에 대한 제 수당을 합한 금액을 월급여액이나 일당임금으로 정하거나 매월 임금 일정액을 제 수당으로 지급하는 임금체계이다. 주로 감시 단속직에 사용되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청소, 경비, 식당, 용역 등 저임금 주변부 직종을 중심으로 광범위하게 활용되면서 결국 이러한 직종의 노동자 임금이 최저임금으로 고착되도록 하고 있다.
(3) 중간착취를 용인하는 간접고용
근로기준법에서는 중간착취를 금지하고 있다. 근로기준법 제8조에서는 “누구든지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영리로 타인의 취업에 개입하거나 중간인으로서 이익을 취득하지 못한다"라고 하여 노동자와 사용자 사이에 관여하여 이득을 얻는 중간착취를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파견법으로 인해서 이 원칙은 무너졌고 용역이라는 이름의 불법파견도 횡행하고 있다. 통계청 조사에 의하면 파견노동자들은 정규직의 63.0%, 용역노동자들은 정규직의 46.8%에 지나지 않은 임금을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것은 중간착취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간접고용이 저임금을 발생하게 하는 문제는 단지 중간착취만 이유가 되는 것은 아니다. 더 핵심적인 문제는 자본가들이 더 낮은 인건비를 위한 수단으로 이러한 용역·파견을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2002년 8월에 실시된 김승택의 연구를 보더라도 기업들이 파견노동자를 활용하는 첫 번째 이유로 기업의 32.7%가 비용절감을 꼽고 있다. 기업들이 파견노동을 사용하면서 비용을 절감하고 있는 부문을 살펴보면 임금이 57.3%로 가장 높게 나타났으며 복지비용이 28.2%로 다음을 차지하고 있다. 그 밖에 교육비용 6.0%, 사회보험 분담비율 5.1%로 나타났다. 이러한 결과 파견노동자들은 정규직 노동자에 비해 낮은 임금을 받게 되었으며 기업복지에서도 당연히 소외될 수밖에 없다.
또한 대부분의 회사에서 용역을 줄 때 경쟁 입찰을 선택하다보니 낮은 입찰가격을 써낸 곳이 용역업체로 선정된다. 그렇게 되면 용역업체는 자신들의 이익을 뽑아내기 위해서 노동자들을 해고하거나 노동강도를 강화시키거나 임금을 대폭 낮춘다. 그래서 최저임금이 최고임금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즉 간접고용 자체가 노동자들의 임금을 최저임금선으로 낮추는 조건인 셈이다.
물자 구매와 시설공사 계약, 관리를 담당하는 국가기관인 조달청이 해양대 용역회사 선정에서 법정최저임금에도 훨씬 못 미치는 임금으로 계약을 체결해왔다. 또한 조달청은 같은 계약서에서 나이, 성별 등 채용조건, 인력배치, 업무 등에 대해 구체적인 요구를 담아 분명 도급이 아닌 도급을 위장한 불법파견계약까지 맺어왔다.
이러한 ‘조달물자계약서’에 의해 노동자들은 인간이 아닌 물자로, 노동자에게 적용되는 최저임금법과 근로기준법 등 각종 노동법조차 무시된 원가개념도 없는 물건으로 취급받아왔다. 같은 곳에서 몇 년째 같은 일을 하면서도 매년 자신이 얼마에 팔려가는지도 모르게 팔려가는 노비에 불과했다. 조달청과 용역회사는 2002년 당시 최저임금법에 정해진 514,150원에도 훨씬 못 미치는 348,000원으로 계약을 맺고 불법파견근로를 시키고 용역회사는 그조차 제대로 지급하지 않고 임금을 중간착취하며 아무 역할 없이 이윤만 챙기고 작업지시와 근태는 해양대가 직접 관리하며 노동자들만 저임금에 열악한 근로조건으로 내몰아왔다.
파견회사나 용역회사들은 중간관리자에 불과하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노동조건 개선 요구를 들어줄 수 없다.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원청회사들은 아무런 법적 책임을 지지 않기 때문에 모르쇠로 일관한다. 2005년에 개정된 최저임금법에서 최저임금 위반사업장에 한해서 원청이 법적 책임의 일부를 갖도록 해놓기는 했으나 그런 극한적 상황을 제외하고 원청에서 전혀 노동조건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기 때문에 노동자들은 최저임금 선에 머물러 있으면서도 더 높은 임금과 노동조건을 요구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4) 기본급 없는 100% 성과급제와 경쟁 시스템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경우 ‘노동자’인데도 마치 노동자가 아닌 것처럼 위장 도급을 맺는 형태를 갖고 있다. 기본급이 책정되어 있지 않고 100% 성과급제로 임금체계가 구성되어 있고, 형편없이 단가가 낮기 때문에 노동자들은 살기 위해서 엄청난 장기노동을 해야 한다. 게다가 일을 하는데 들어가는 많은 비용을 노동자가 감내해야 한다.
예를 들어 덤프연대 노동자들의 경우 10~15시간의 살인적인 노동을 한다. 10년 동안 운반단가는 제자리걸음이거나 오히려 낮아지는데, 노동자가 감당해야 하는 경유가는 치솟고 있다. 평균부채가 3,800만원이나 되고, 월평균 100만원에 가까운 적자를 보고 있어서 이미 1/4이 신용불량자로 전락한 상태이다. 원청에서 몇 단계를 거치면서 운반단가는 50% 이상 깎이고 있으며, 운송단가가 맞지 않다고 해서 배차지시를 거부하기에도 어려운 상태이다. 게다가 운송료를 현금으로 줄 때도 있지만 한 달 반 정도가 지나고 어음을 할인하고 주는 경우도 있다.
운송료를 떼어먹히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노동자가 거부할 수 없는 상태로 과적을 시키는데 그로 인한 벌금도 누적된다. 이런 척박한 삶을 견디다 못해 2006년 3월 6일 전북도청 앞에서 덤프연대 전북지역의 이승대 부지회장은 자신의 몸을 불사르기도 했다.
학습지 노동자들도 마찬가지이다. 3만원 하는 교재의 원가는 회사 측이 밝혔듯이 200원에 불과하다. 그런데 그 교재가 3만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은 학습지 교사들의 노동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그런데 교사들이 받는 금액은 교재가격의 37%에 불과하다. 그러니 학습지 교사들은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서 과도하게 노동을 한다. 그런데 회사측에서 계속 실적경쟁을 시키기 때문에 노동자들은 유령회원을 만들어서라도 실적을 부풀리지 않으면 안 된다. 이로 인해서 노동자들은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2년 전 사망한 이정연 교사의 경우 과중한 실적강요를 견디다 못해 스트레스성 호흡곤란으로 쓰러져 사흘 만에 숨졌는데, 이정연 교사가 관리하던 회원 204과목이었다. 인수·인계 과정에서 134곳이 유령회원으로 밝혀졌고, 그 회비를 이정연 교사가 빚을 내어 입금시킨 것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기본급 없는 100% 성과급제, 노동자들에게 경쟁과 실적을 강요하는 시스템, 수요변동의 책임을 온전하게 노동자들에게 돌리고, 치솟는 기름값 등을 온전하게 노동자들이 감내하게 만들고, 4대보험조차도 들지 못하게 하는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현실 속에서 노동자들은 신용불량자가 되고, 과도하게 빚을 지고, 그리고 죽어간다.
(5) 형편 없는 사회보장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고용과 실업을 반복하게 된다. 그렇다보니 다른 노동자들에 비해서 사회보장이 더 절실하다. 하지만 고용이 안정화되어 있지 않아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사회보험에서 더 많이 제외되어 있다. 물론 우리나라 비정규 노동자들 중에서 법·제도적인 문제 때문에 사회보험에 가입하지 못한 규모는 대략 20% 정도로 추산된다. 그렇지만 사회보험 적용이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사실상 사회보험에 가입하지 않는 경우가 많이 있다.
민주노동당의 조사에 의하면 사회보험 가입률은 정규직은 79~95%인 반면, 비정규직은 22~25%로 파악되고 있다. 그리고 설령 고용보험에 가입을 했다 하더라도 안정적인 일자리를 얻을 수 없는 상황에서 고용보험의 지원비용이 너무 낮아 별 실효가 없기 때문에 노동자들이 회피를 하기도 한다. 즉 보험 자체의 문제점이 많아서 비정규노동자들은 고용불안으로 인한 삶의 불안정성을 보완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비정규노동자들에게 실업은 더 큰 공포가 된다.
또한 2004년 8월에 법정 최저임금 2,510원에 미달하는 낮은 임금을 받은 노동자들이 80만 명인데, 이중 비정규직은 76만8천명이다. 비정규노동자 10명 중 한 명 꼴이라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이러한 최저임금도 무척 낮아서 이것이 노동자들의 임금수준을 실질적으로 높이는 데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1994년부터 2001년에 이르기까지 최저임금 수준상승에 따른 영향률은 3%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즉 최저임금 인상이 저임금 노동자에게 아무런 영향을 못 미치고, 오히려 이것이 최대임금이 되고 있는 상황이다.
3. 저임금 근절을 위해서 어떻게 투쟁해야 하는가?
(1) 저임금을 양산하는 구조에 대한 전면적 투쟁
지금까지 노동자들의 임금인상은 주로 단위사업장에서의 임금인상 투쟁을 통해 이루어졌다. 하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경우에는 단위사업장의 임금인상투쟁을 넘어서서 저임금을 강제하는 각종 제도에 저항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할 수밖에 없다.
먼저 특수고용 노동자들을 삶의 구렁텅이로 내모는 100% 성과급 체계를 없애고 노동자성을 인정하도록 함으로써 기본적인 생존이 가능하도록 기본급 쟁취투쟁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은 상태로 단가인상 투쟁을 중심에 놓으면 지금과 같은 경쟁시스템을 극복하기 어렵다. 우리의 투쟁은 ‘노동자성 쟁취’라는 큰 투쟁과 더불어 진행되어야 하므로 기본급 쟁취 투쟁에 힘을 다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간접고용의 경우 경쟁 입찰이나 최저가낙찰제 등 필연적으로 노동자들의 저임금을 만들어내는 각종 제도에 대한 투쟁을 해야 한다. 특히 공공부문의 경우 기획예산처에서 인건비를 동결해놓고 최저낙찰을 유도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반대투쟁을 해야 한다. 사실상 용역업체들은 인건비 따먹기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 때문에 예산절감은 필연적으로 노동자들의 저임금과 삶의 고통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또한 최저임금이 전면적으로 인상되어야 한다. 최저임금이 저임금 노동자들의 임금을 높이는 기능을 하려면 지금처럼 최저임금위원회에서 노사정위원회 방식으로 책상머리에 앉아서 물가인상률을 감안한 교섭을 하는 방식이어서는 안 된다. 생계비의 개념을 명확하게 하고, 그러한 기본생계비 이하로 최저임금이 내려가지 않도록, 최저임금 결정기준과 방식에 대한 투쟁을 시작해야 한다. 그것으로서 최저임금이 의미있게 인상되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비정규노동자들의 사회보장 확대를 위한 투쟁도 중요하다. 하지만 설령 법적으로 사회보장이 확대되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실질적인 효과로 나타나지는 않는다. 자본과 정권이 노동법 개악의 후속대책으로서 비정규노동자들의 사회보장 방안을 내놓고 있는데 이것은 시혜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원래 노동자들의 당연한 권리였음을 확인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이 현장에서 관철될 수 있도록 하는 노동기본권 쟁취 투쟁이 중요하다는 점을 확인해야 한다. 그것이 없다면 사회보장은 허울뿐이다.
(2) 노동기본권 쟁취
자본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계속 시혜의 대상으로 만들려고 한다. 노동법 개악을 통해서 비정규직을 양산하려고 하는데 그것은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의 제도적 완성판이기도 하다. 자본과 정권은 계속 비정규직 ‘보호’를 이야기하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요구하는 ‘노동기본권’에 대해서는 탄압으로 일관하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저임금을 극복하는 것은 제도적인 투쟁과 동시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스스로 조직하면서 투쟁의 주체로 나설 수 있을 때 가능하다. 자신의 힘으로 투쟁하지 않는 이상 아무리 법과 제도가 개선된다 하더라도 투쟁의 성과는 현장에서 나타나지 않는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요구하고 있는 노동기본권 요구는 분명하다.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노동자성’을 인정해야 한다. 자본이 아무리 그들이 노동자가 아니라고 주장해도 이미 현실에서 노동조합을 만들고 투쟁하고 있는 역사를 기억해야 한다. ‘유사근로자’와 같은 형식으로 노동자들을 기만하여 노동기본권을 제한하려고 하는 시도를 분쇄하고 노동자성 완전 쟁취로 나아가야 한다.
또한 간접고용의 경우 실질적 사용자인 원청에게 사용자 책임을 물을 수 있어야 한다.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고 투쟁한다 하더라도 허수아비에 불과한 하청이나 용역업체를 통해서는 절대로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확보할 수 없다. 그런데 실질적인 사용자로서의 권한을 지닌 원청 자본이 법률적 책임을 지지 않기에 하청 노동자들에 대해 원청자본은 마음대로 부당노동행위를 자행하고 있다. 그런 자본에게 법적 책임을 지게 함으로써 노동조합을 사수하고, 노동자들이 실질적인 교섭을 할 수 있도록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3) 비정규직 철폐와 신자유주의 반대투쟁으로 나아가야 한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빈곤화는 자본에게는 필연적이다. 삶의 벼랑 끝에 내몰린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투쟁을 통해 자신의 권리를 쟁취해야 한다. 그런데 비정규직노동자들조차도 경쟁을 하면서 연대의 정신을 발휘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은 바로 생존의 위협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고용되어 있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 고용 자체를 파괴하는 신자유주의에서는 ‘고용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사실’ 그 자체가 무기가 되어 노동자들이 경쟁하도록 위협한다. 일자리에서 밀려나게 되면 친지의 보조로 생계를 유지하거나 더 열악한 조건의 일자리로 떠밀려 갈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생존의 위협과 고통 때문에 노동자들은 제살 깎아먹기 경쟁을 수용할 수밖에 없다. 신자유주의에서 빈곤화는 자본의 주요한 전략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이 열악해지고 계속 바닥을 향한 경쟁으로 치달아가는 것도 바로 빈곤화가 노동유연화 시대에서 노동자 통제를 가능하게 만드는 자본의 무기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정말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빈곤에 저항하고 실질적인 삶을 쟁취하기 위해서는 비정규직이라는 고용형태 자체에 대한 반대를 해야 한다. 그것은 비정규직 철폐 투쟁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비정규직 철폐투쟁이라 함은 단지 고용형태를 정규직화 하는 것을 넘어서서 노동자들에게 불안정한 노동과 빈곤을 강요하고 있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저지를 말하는 것이다. 노동하는 자들의 인간다운 삶을 쟁취하기 위해 비정규직을 철폐하고 신자유주의를 파탄내기 위한 투쟁에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