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호>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을 정당화하는 정부의 노동법 개악안
최하은 / 불안정노동철폐연대 정책부장
차별시정 효과 미비를 인정한 노동부 연구보고서의 실제 목적은 ‘사용자 안심시키기’였다. 그리고 비정규노동법이 실은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을 정당화하기 위한 법’이라는 점이 그 용역보고서를 통해서 드러났다. 노동부는 지난해 7월 ‘비정규법의 시행효과’에 대한 연구용역을 추진했다. 이 결과는 지난 해 말에 노동부에 최종 보고 되었지만, 정작 노동부는 이 보고서의 존재를 감추다가 올 2월말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비정규법안이 날치기 되고 나서야 슬그머니 홈페이지에 보고서의 결과를 공개했다.
보고서의 결과는 한마디로 ‘비정규법이 시행되더라도 차별시정 효과는 거의 없다’는 것이다.
현재 비정규직의 임금은 정규직의 절반 수준이다. 정부법안이 시행되더라도 늘어나는 임금은 7만 1천 원 정도 증가하는 것에 불과하다. 열린우리당은 “비정규보호법이 시행되면 비정규직의 임금수준이 정규직 대비 80% 정도가 될 것”이라고 선전해왔지만, 노동부가 의뢰해서 작성된 이 보고서에 따르면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격차는 3.2% 정도 줄어들 뿐이다. 그리고 차별시정을 위해서는 개별노동자가 노동위원회에 차별구제신청을 해야 하는 등 각종 단계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이 미미한 효과조차 실제에서는 기대하기 어려울 것은 자명하다.
또한 비정규법이 시행되더라도 정규직 전환 효과는 0.12%에 불과하다. 반면 법이 시행되면 1.05%의 기업들이 오히려 고용을 줄이겠다고 답변했다. 결국 설문조사에 응한 사용자의 응답이 모두 지켜진다고 가정한다 해도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비율보다 이 법 시행에 따른 계약해지 비율이 더 높은 것이다.
민주노동당에서는 노동법으로 인한 보호 효과가 없다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서 노동부가 이 용역보고서를 은폐했다고 공격했고, 노동부에서는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고 변명했다. 우리는 이 용역보고서가 아니더라도 비정규노동법 개악안이 차별시정 효과는 전혀 없고 오히려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불안을 부추길 것이라고 계속 주장해왔다. 그러하기에 이 같은 결론이 새삼스러울 것은 전혀 없다.
그러나 이 보고서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그러한 ‘결론’이 아니다. 정작 문제가 되는 것은 이 보고서가 작성된 ‘목적’이다. 보고서는 시종 비정규법이 시행될 경우 ‘사용자가 지불해야 할 부담’을 기준으로 서술되고 있다. 차별시정을 위한 임금격차의 경우, ‘5인 이상 사업장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6~6.9%의 임금상승이 필요하다’고 분석하고 ‘그러나 실제 상승분은 7만 1천 원 정도’라고 분석해놓았다. 또 ‘기존의 연구들이 취하는 접근법과 마찬가지로 비정규직노동자들에 대해 동일임금을 지급한다면 20조원에 육박하는 임금비용이 추가로 소요될 것으로 추정되지만, 입법안에 따르면 차별처우 금지로 추가로 발생하는 비용은 최대 4.7조원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즉, “겉으로 포장하기에는 엄청난 비용이 소요되는 것 같고 엄청난 시정효과가 있는 것처럼 선전되었지만, 실제 사용자 부담은 별로 없으며 당신들의 의지대로 적용해 갈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이 보고서의 목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 보고서의 내용을 보고 ‘혹시 기대를 했더니 역시 차별시정의 효과가 없군’이라고만 생각하면 안 된다. 이 보고서에서 말하는 바는, 비정규노동법 개악 안에 ‘차별시정’이라는 점이 들어있어서 사실상 이것이 비정규노동자들을 위한 조치 중 하나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하지만, 실제로 ‘차별시정 조치’라는 것이 허울 뿐이고, 실제 목적은 다른 데 있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 법안에서 ‘차별시정 조치’는 효과가 적어서 문제인 것이 아니다. 이것이 다른 효과를 노리고 있다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그 다른 효과란 바로 ‘차별을 정당화하는 것’이다. 정부에서는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에 관한 특별법을 만들고, 파견근로자보호등에 관한 법률을 개정하면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양산하고자 했다. 그렇게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이유는 첫 번째가 고용유연화를 위한 것이고, 두 번째가 노동권을 박탈하면서 노동조건을 떨어뜨리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노동자들이 계속 노동조합을 만들고 투쟁을 하고 있다.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에 저항하고 있다. 그러기에 그들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차별이 정당하다는 것을 확인해야 한다. 그 차별의 정당성이란 ‘업무의 성격이 다르다’는 것, ‘부수적 업무라는 것’, 그리고 ‘근속년수’ 등 객관적 차이(?)를 빌미로 다양하게 제출될 것이다. 이미 노동부에서는 비정규법안의 후속조치로 ‘무엇을 차별로 볼 것인지’를 7월 말까지 정리하겠다고 한다. 아마도 이 때 차별이라고 보지 않을 무수히 많은 기준들이 제출될 것이다.
과연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차별에 ‘객관적 근거’라는 것이 있을 수 있는가? 주요업무와 부수적 업무를 구분하는 것은 자본의 자의성이고, 업무의 성격이 다르다고 하지만 특정한 업무에 대해 더 낮은 임금을 지급하는 근거는 설명하지 않을 것이다. 비정규직이라는 고용형태 자체로 인해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많은 문제들을 근거로 그들은 차별의 정당성을 설명하려고 할 것이다. 이것은 모두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기준’이라는 그럴싸한 포장으로 나타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낮은 임금을 정당화하게 될 것이다.
이제는 완전히 정규직과 동일한 업무를 하는 일부 노동자들을 제외하고는 모든 임금차별이 정당화되는 방향으로 갈 것이다. 노동부의 용역보고서는 “그렇게 만들어서 절대로 자본가들이 더 많은 임금을 지출하는 일이 없도록 할 터이니 안심하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혼자 착각하여 이 ‘차별시정 조치’가 실은 노동자들을 보호하려는 의도가 약간이라고 있기는 한데, 그 효과가 미미하니 문제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애초에 차별을 시정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차별을 ‘당연한 것’으로 만들려고 했을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한다. 저들의 노동법 개악안에서는 단 한 개도 건질 것이 없다고. 차별시정이라고 주장한 것조차도 비정규직을 억압하는 수단이었다고. 이것이 탄로날까 두려워 그들은 용역보고서를 숨겼던 것이다.
‘효과가 미미하다’는 말로 보고서의 진실을 흐리지 말고, ‘차별의 정당화’라는 정권과 자본의 의도를 명백하게 들여다봐야 한다. 그리고 노동법 개악안에 대해 한 치의 양보도 없이 투쟁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