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호>
기간제 특별법 무엇이 문제인가?
김혜진 ⎟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집행위원장
2004년 9월에 노동부에서 제출한 ‘기간제및단시간근로에관한특별법’은 말 그대로 특별법이다. 모든 노동자들은 근로기준법과 노동조합법에 의해 자신의 권리를 보장받는다. 그런데 정부에서는 ‘특별법’의 형태로 노동자들의 고용형태를 왜곡시키고 비정규직을 양산하려고 해왔다. 그런 점에서 특별법 자체에 대한 반대도 중요하다. 그 특별법은 필연적으로 많은 문제를 낳는다. 명분은 비정규보호라고 할지라도 그것을 근로기준법이 아닌 방향으로 만들 때에야 당연히 자본의 의도에 부응하는 바가 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그 점을 분명하게 살펴보아야 한다.
◯ 기간제 법안 무엇이 문제인가?
(1) 기간제법은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법이다.
이번 정부의 기간제법은 노동자에게 미치는 해악이 너무 크다. 그 해악의 핵심은 기간제 노동자들을 양산한다는 점이다. 물론 지금도 기간제 노동자들은 매우 많다. 공공부문에서도 70%의 노동자들이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 기간제 노동자들은 대분분 상시인력이다. 원래 당연히 정규직을 써야 할 자리에 임시·간헐적 업무에만 사용할 수 있는 기간제 노동자들을 쓰고 있는 것이다. 자본가들은 구조조정이라는 이유로 상시 업무에 기간제를 늘려왔다. 대표적으로 은행이나 병원, 사무 등에서는 정규직을 기간제로 대체해왔다. 이미 그렇게 기간제를 확산해놓고는 이것을 법으로 제도화하려고 하는 것이 지금 기간제법이다.
기간제법에 의하면 기간제 노동자들을 아무런 사유제한 없이 쓸 수 있다. 계약을 한 후 2년이 지나면 정규직으로 간주된다는 것만이 유일한 ‘보호(?)’ 조치로 주장될 뿐이다. 지금까지는 기간제에 대해서 임시·간헐적인 업무에만 사용하도록 묵시적으로 되어 있었고 상시적 업무에 기간제를 써서 반복적으로 계약이 갱신된 경우 정규직으로 간주한다는 판례도 남아있었다. 연세대어학당 강사에 대해 재계약을 거부한 사건에 대해 대법원에서 낸 판례에 의하면 “기간을 정하여 채용된 근로자라고 할지라도 장기간에 걸쳐서 그 기간의 갱신이 반복되어 그 정한 기간이 단지 형식에 불과하게 된 경우에는 사실상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자의 경우와 다를 바가 없게 되는 것이고, 그 경우에 사용자가 정당한 사유 없이 갱신계약의 체결을 거절하는 것은 해고와 마찬가지로 무효이다.”라고 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런 판례들이 이제는 의미가 없어지고 모든 기간제 노동자들은 그 자체로 당연하고도 일반적인 고용형태가 되는 것이다. 즉 특별하고 예외적인 경우에만 사용해왔던 기간제를 일반적 고용형태로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이 법안은 필연적으로 기간제를 양산할 수밖에 없다.
(2) 기간제 법안은 기간제 노동자들의 고용불안을 조장하는 법이다.
기간제 법안에 의하면 2년이 지난 노동자들은 정규직으로 간주하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이 말은 2년이 지나면 정규직이 된다는 뜻이 아니라 2년이 되기 전에 노동자들이 짤린다는 의미이다. 이미 파견법 시행 8년을 통해서 우리가 확인할 수 있었던 것처럼 자본가들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 2년이 되기 전에 해고통보를 남발했다. 2년에 한 번씩 부평초처럼 떠돌아다니는 인생이 되는 것이다.
자본가들로서도 이렇게 2년에 한번씩 노동자들을 해고하고 새로 채용하려면 여러 가지로 귀찮은 일이 생긴다. 그래서 기간제 노동자들만을 전문적으로 파견하는 업체를 만들고, 그곳에서 노동자들을 교체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게 할 것이다. 파견법에서도 2년이 넘으면 직접고용의 의무가 생기므로 자본가들은 파견2년에 3개월 계약직 등 다양한 고용형태의 노동자를 번갈아가면서 사용할 수 있다. 이미 상시적 업무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을 비정규직으로 쓰는 것도 모자라서 정규직 간주 조항을 피하기 위해서 해고하는 이런 악법이 인정되어서는 안 된다.
(3) 영원히 계약직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노동자들도 있다.
기간제법에 의하면 영원히 계약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노동자도 있다. 전문적 지식과 기술의 사회적 활용이 필요한 경우나 수련과정에 있는 인력을 사용하는 경우, 고령자와 정부의 실업대책으로 인한 일자리 제공으로 사용하는 경우 등이다. 이 경우는 2년마다 교체사용하지 않고 계속 비정규직으로 쓸 수 있다는 말이다. 이 말은 아이러니하게도 고용이 안정되어 있다는 말로 들리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계속 계약직으로 쓸 수 있다는 말일 뿐이지 해고할 수 없다는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노동자들은 자본이 원할 때에는 언제라도 해고될 수 있고 해고되지 않기 위해서 숨죽이고 일을 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노동자들에게 더 이상의 정규직 전환이란 없다. 평생을 계약직으로 사용해도 되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폭넓게 예외를 인정하기 시작하면 이제 기간제 노동자들의 사용은 더욱 광범위해져서 일부의 노동자들은 평생 기간제로, 나머지 노동자들은 2년에 한 번씩 교체되는 기간제로 사용될 것이다.
◯ 우리의 요구는 무엇인가?
(1) 근로기준법 안에 사유제한이 반드시 명시되어야 한다.
우리는 기간제 특별법에 반대한다. 기간제 특별법은 비정규직 양산을 합법화하는 제도이고 계약직이라는 고용형태를 일반적이고 정상적인 고용형태로 간주하는 제도이므로 절대로 인정할 수 없다. 반드시 기간제는 ‘사유제한’이 명시되어야 한다. 사유제한이 명시된다는 말은 기간제의 활용이 엄격하게 규제되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데 사유제한을 명시한다고 해서 사유제한 자체를 폭넓게 해버리면 아무 의미가 없다. 민주노동당은 2005년 말 ‘기간제 사유제한' 항목을 당초 4개이던 것에서 10개로 확대한 수정안을 발표했다. 민주노동당에서 최초로 제출한 비정규 권리보장입법안에 들어가 있었던 사유제한의 항목은 정규직이 일을 하다가 산재나 학업 등의 사유로 인해서 그 자리가 잠시 비게 될 경우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정규직이 돌아올 때까지의 임시적 일자리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확대된 내용은 신규채용 자체를 임시직으로 할 수 있게 한 것이었으므로 기간제 사유제한의 문제의식이 처음과는 달라진 것이다. 예를 들어서 확대조항 중 하나인 계절에 따른 수요변동이 있는 업무의 경우 ’만도기계‘ 등 에어컨을 만드는 회사의 노동자들은 기간제로 신규채용이 가능해진다. 아무도 특정한 노동자들에 대해서 기간제로 채용되어도 좋다고 말할 권리를 갖고 있지 않다.
최근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에서 공동투쟁본부를 만들어서 ‘재수정’ 논의를 한다고 한다. 그 내용은 ‘기간제 사유제한’을 포함할 것이라고 하는데 아무리 '사유제한‘을 넣는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근로기준법 안에 사유제한을 하는 것이 아니라, 특별법을 인정하는 사유제한이라고 한다면 실효는 없다. 대통령령이나 시행령에 의해서 언제라도 사유는 확대될 수 있기 때문이다. 파견법이 만들어질 97년 당시 26개 업종에 한해서 허용을 했더니 2004년에 와서 파견 허용대상을 자유롭게 하는 법 개정안을 정부에서 제출하고 있지 않은가. ‘사유제한’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특별법’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의 애초 요구는 ‘근로기준법 상의 사유제한’이었다는 점을 절대로 잊어버리면 안 된다. 특별법 인정은 그 자체가 비정규직 양산을 인정하는 것이므로 반드시 근로기준법 안에 사유제한이 명시되어야 한다.
(2) 지금까지 계약이 반복 갱신된 기간제 노동자들은 정규직이 되어야 한다.
지금까지 많은 노동자들이 기간제로 일해왔다. 이들은 당연하게 정규직이 되어야 할 상시적 일자리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면서 정규직에 비해서 심한 차별을 당해왔다. 그러므로 반복적으로 계약이 갱신된 노동자들은 당연히 정규직이 되어야 하고 그 동안의 고통과 손해에 대해 보상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자본가들은 엉뚱하게 기간제 노동자들에 대한 해고를 시작하고 있다. 기간제 법안이 통과되면 장기계약직들을 정규직으로 간주하게 될 것 같으니 먼저 해고조치를 하고 있는 것이다. 노동부에서는 기간제 법안이 장기계약직들을 보호하는 법이라고 주장했으나 결국 그로 인해서 노동자들은 2년마다 한번씩 짤리게 된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 셈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고용이 어느 정도 보장되었던 장기계약직 노동자들도 불안정한 고용형태로 내몰게 된다는 점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것이다. 이 노동자들이 얼마나 심각한 고용불안 상태에 놓여있는가는 이 글 뒤에 실리는 ‘기간제 노동자의 고용불안 사례’를 통해서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비정규법안의 허구성에 대한 폭로만이 아니라, 정부의 기간제 법안으로 인해서 고용불안의 고툥을 당하고 있는 기간제 노동자들의 고용을 보장하고 정규직화 쟁취를 위한 투쟁에 나서야 한다.
(3) 차별을 영속화하는 금융권과 공공부문 비정규 대책에 맞서 투쟁하자.
정부에서는 기간제를 합법화하는 대신 차별을 해소해주면 될 것 아니냐고 말한다. 하지만 그 역시 허구적이다. 그들은 차별시정위원회를 만들겠다고 했지만 어떤 기간제 노동자 개인이 자본가들에게 차별을 당했다고 시정조치를 요구할 수 있을 것인가? 게다가 더 핵심적인 문제는 이 법안이 ‘합리적 차별’을 용인하는 방향으로 간다는 점이다. 사실상 합리적 차별이란 없다. 하지만 이 법안에 의하면 ‘동일직종’에서 ‘동일업무’를 할 경우에만 비합리적 차별이 되므로 업무를 조금만 구분을 해도 차별의 합리적 근거가 생기는 것이다. 즉 기간제 노동자들의 임금과 비교할 동일 업무의 정규직이 없는 경우 모든 차별은 합리화된다. 자본과 정부가 바로 그렇게 하고 있다.
먼저 은행권에서는 고용은 안정시켜주는 대신 차별만 일정하게 허용하는 독립직군제를 만들겠다고 말한다. 그들로서도 2년마다 노동자들을 해고하는 것이 부담스러웠던지, 먼저 2년동안 기간제로 일하게 하고, 2년이 지난 뒤 평가를 해서 일부를 탈락시키고 일부만 고용을 보장하되 차별은 유지하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계속 짤리지 않는 상태가 아니라 자본이 원할 때에는 언제라도 해고할 수 있는 고용형태이다. 다만 고용의 지속성이 보장된다는 의미일 뿐이다. 공공부문에서도 비정규직 대책을 발표하면서 일부는 ‘무기계약근로’를 하지만 공무원이 아닌 특수한 신분을 유지하도록 하되 임금과 노동조건은 크게 변화가 없는 상태를 만들겠다고 한다. 그리고 나서 나머지는 외주화를 한다고 한다.
‘독립직군’ 혹은 ‘무기계약 노동자’라는 이상한 고용형태를 만들어서 차별을 정당화하고, 나머지 노동자들은 외주화·용역화하고, 그리고 또 나머지 노동자들은 2년마다 한번씩 교체 사용하겠다는 정부와 자본의 치졸한 의도에 굴하지 말고 기간제 노동자들의 정규직화를 위해 투쟁하자. 그리고 이렇게 기간제 노동자들을 고통으로 내모는 정부의 기간제법을 폐기하고 근로기준법에 ‘사유제한’을 명시하도록 하기 위해서 힘있게 투쟁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