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호] 계급적 단결을 위한 민주노조운동 혁신(06년 10월호)

계급적 단결을 위한 민주노조운동 혁신


김혜진 ⎟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집행위원장


1. 왜 민주노조운동 혁신에서 비정규직 문제가 중요한가?

민주노총 조직혁신안이 통과되지는 않았지만, 조직혁신은 중요하다. 하지만 민주노총에서 제출한 혁신안은 혁신의 기본과제가 포함되지 않고 있으며 특히 비정규직 문제가 쟁점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계급적 단결을 가능하게 하기 위한 고민들이 제출되지 않고 있다.
지금까지 민주노조운동은 아무리 자신의 이해를 위해 투쟁하더라도 그 자체가 전체 민중의 이해·요구에서 벗어나지 않는 계급적 선두에 선 투쟁이었다. 그리고 그 투쟁의 성과는 전체 민중의 성과로 귀결되었다. 하지만 신자유주의 정책이 시작되면서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을 분할하기 시작했다. 물론 분할이야 자본가들의 주요 정책이기는 했다. 민주노조운동은 ‘단결투쟁’을 자신의 슬로건으로 하면서 그러한 분할을 극복해왔다. 그런데 신자유주의 이후 그 분할은 매우 세부적이고 위계화되어 있을 뿐 아니라, 그러한 위계를 강제하는 고용불안정과 생존의 위기가 강제되었다. 그러다보니 노동자들은 이제 자발적으로 그 분할에 편승하여 살아남기 위한 경쟁을 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민주노조운동의 투쟁조차도 이제는 분할 경쟁에서 이기는 사람들을 위한 것으로만 국한되어버리고 있다.
이런 상황이 바로 우리에게 혁신을 요구하는 것이다. 신자유주의적인 분할 전략을 넘어서서, 내부의 경쟁과 위계를 넘어서서 어떻게 민주노조운동이 전체 민중들의 희망이 될 것인지를 고민하기 위해서는 계급적 단결의 가능성을 만드는 것을 혁신의 첫 번째 과제로 삼아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도덕적 측면이 아니라 신자유주의적인 삶의 불안과 고통을 해결해나가는 유일한 길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것이다. 그래서 민주노조운동 혁신에서 비정규직 문제가 관건이다.

2. 계급적 단결을 위한 혁신의 과제

(1) 비정규직 과제를 전체의 과제로 승인하는 것

- 비정규노동자들의 노조 가입을 위한 규약개정
- 단체협약의 동일적용을 위한 투쟁
- 위계를 승인하거나 비정규직을 배제한 협약의 무효화
- 민주노총의 강령에 위배되는 행위에 대한 적절한 제재 조치

계급적 단결을 이야기하려면 비정규직의 문제를 전체 민주노조운동의 과제로 승인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비정규직 문제가 중요한 의제가 되기는 했으나 여전히 비정규직 문제는 ‘비정규직만의 문제’이자, 대리하여 해결해주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비정규직 문제는 ‘그들’의 문제가 아닌 ‘모두’의 문제라는 점을 인식하도록 해야 한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그런 체계를 만드는 것의 첫 번째는 비정규직을 조직하면서 주체로 나서게 하는 것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조에 가입할 수 있도록 범위를 열어야 한다. 그리고 단체협약의 동일적용을 위한 투쟁에 나서야 한다. 물론 이것을 민주노총에서 강제하기는 쉽지 않겠지만 지금부터라도 적극적인 방안으로 제출하고, 그것을 잘 하는 곳을 발굴하여 선전하고, 그렇게 하지 못하는 조건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을 마련하는 등 구체적인 사업을 만들어나가야 한다.
두번째로 ‘원청을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사용자로 인정하지 않는’ 협약을 맺는다거나 건설노조에서처럼 이주노동자들을 배제한 ‘조합원 우선채용 조항’을 요구로 내건다거나 비정규노동자들을 배제하는 협약을 맺거나 할 경우 명백한 비판과 합당한 제재 조치가 필요하다. 물론 이렇게 할 수밖에 없는 조건은 있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지만 민주노조운동 안에서도 이러한 위계를 인정하는 순간 민주노조운동의 실리주의는 가속화된다. 이것을 민주노총의 규약에 명시하고, 단위사업장에서 이런 협약을 맺지 못하도록 긴장을 걸어야 한다.
노동조합의 활동에서 실리위주의 관행이 정착되어 있다. 그러다보니 비정규직 문제는 당장의 실리에 보탬이 되는 수준에서만 관철이 된다. 비정규직 문제를 선동할 때에도 ‘비정규직과 함께 해야 우리가 손해를 보지 않는다’는 방식으로 이야기한다. 왜곡된 선동의 방식이 난무해도 민주노조운동에서는 그것을 용인하고 넘어간다. 그런 점에서 ‘민주노총의 강령’에 의거하여 왜곡된 활동과 관행에 대해서 제대로 문제제기 할 수 있는 기풍이 정착되어야 한다.
비정규직 과제라는 것이 단지 현재 비정규직인 노동자들의 요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노동자 전체를 비정규직으로 만들고자 하는 자본의 노동법 개악, 그리고 비정규직을 ‘위해서’ 임금인상을 하는 듯하면서 저임금 구조를 영속화하는 최저임금위원회에서의 최저임금 결정구조 등의 문제에 대해 본질적인 문제제기를 통해서 투쟁을 만들어야 한다. 비정규직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당장의 실리적 요구로 비정규직이나 전체 노동자들을 내몰아가는 순간 위계는 가속화된다.

(2) 위계를 넘어서기 위한 의사결정 구조

- 대의원 배정에서 현재 조직되어 있는 숫자 중심이 아닌 조직을 해야 할 대상을 고려
- 작은 노조라고 하더라도 대의원이 나올 수 있도록 하는 구조
- 숫자가 아닌 집행책임에 근거한 대의원 배정 문제
- 대의원 숫자에서 하후상박의 원칙에 대한 고려도 필요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많이 조직되는 것도 중요하다.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자기 조직을 통해서 자신들의 목소리와 발언력을 높일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조직되기 어려운 조건에 놓여있다는 점이다. 자본이 만들어놓은 비정규직이라는 조건이 조직을 어렵게 만들고, 그렇게 되니까 민주노조운동 안에서도 발언력이 낮아지고 그러면서 더욱 힘있게 조직하고 투쟁에 함께하도록 추동해야 할 시기에 그렇게 하지 못하게 된다. 그러므로 의사결정구조에서는 조직력만으로 접근을 해서는 안 된다. 중요한 것은 ‘현재의 조직력’이 아니라 현재 미조직노동자들을 포함하여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을 대표하고자 노력하고 있는가로 접근해야 한다. 예를 들어 이주노동자들은 조합원이 천명도 안 될지라도 이미 한국에 들어와있는 40만 이주노동자들을 대표하여 발언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주노동자들은 민주노조운동의 의사결정구조 안에서도 그 정도의 의미를 갖고 조직 내에서 발언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
또한 다수의 논리가 작동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심지어는 비정규노조에서도 숫자가 많고 힘이 센 조직이 발언력을 얻고 있다. 하지만 민주노조운동의 전통은 수의 논리가 아니었다. 예를 들어 대의원배정 과정에서도 500명당 한명인가, 1000명당 한명인가가 아니라, 숫자가 아무리 적더라도 독립적인 의사결정구조를 갖고 있는 단위에서는 반드시 대의원이 배정되도록 하는 등의 고민이 필요하다.
단위사업장의 사정이 항상 앞서기 때문에 사회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중요한 과제에 대해서도 단위사업장의 힘이 되는가 안 되는가가 결정의 집행에서 우선고려 대상이 된다. 결정은 하지만 단위사업장의 상황에 따라 집행하지 않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그렇게 결정이 힘이 실리지 않으니 투쟁에서도 계속 밀리고, 그래서 결국 다시 결정을 반복하는 일이 생긴다. 노동법 개악 저지투쟁에서도 파업을 이야기하지만 힘이 실리지 않으면서 대기상태를 반복하게 된다. 단위사업장의 문제를 넘어서서 당장은 손해를 보더라도 결정에 힘을 싣는 기풍이 필요하다. 결정된 사항에 대한 집행 여부를 확인하고 이것이 다음 결정이나 논의에서 다시 확인되어야 한다. 그리고 민주노조운동의 발언력도 집행에 대한 책임성 중심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3) 사회적 합의주의를 넘어서는 현장의 힘의 강화

- 비공식 운동의 활성화와 그것을 인정하는 시스템
- 체결권이 집중되지 않도록 현장의 협상과 투쟁을 인정하는 것
- 직권조인에 대한 대응 방안 마련

정부와 자본은 ‘합의’의 외형을 통해서 노동자들을 통제하고 관리하려고 한다. 신자유주의 시대 사회적 합의란 노조운동의 상층에 일정한 협의의 가능성을 열어주고, 그 상층이 노동운동 내부를 통제한다는 가정 아래 협의를 하는 것이다. 투쟁을 통해서 승리할 가능성이 없거나 힘들 때 노동운동은 쉽게 사회적 합의에 매달리게 되고, 그것만이 유일한 성과를 가져온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오히려 투쟁하자는 현장의 주장을 의미 없는 것을 치부하거나, 공식적 질서 안에서 만들어지지 않은 운동을 무시하는 경향이 생기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합의라는 것은 노동자들에게 당장은 뭔가가 있는 것 같지만 결국은 노동자들에게 독이 되는 내용들이다. 이런 상태가 현재 민주노조운동에서는 가장 심각한 문제 중의 하나이다.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비공식 운동이 많이 활성화되어야 한다. 노동조합을 통하지 않더라도 현장에서 다양한 투쟁들이 만들어져야 하고, 투쟁하는 당사자들 간의 횡적 종적 만남들이 활성화되어야 한다. 공식적으로 승인된 투쟁이 아니면 지원을 하지 않는 방식이 아니라, 오히려 투쟁이 활성화되면 그것을 추후에라도 적극적으로 받아안도록 하는 구조가 필요하다.
또한 체결권이 과도하게 집중되면 현장의 힘을 통해서 작은 사안이라도 만들어내는 대신 사회적 협약에 의존하게 된다. 노동자들의 투쟁도 보여주기식이거나 압력 행사용으로 대체된다. 이런 상황에서 성과에 집착하는 것은 필연이다. 때로는 투쟁에서 실리적으로 큰 성과를 얻지 못하더라도 투쟁 자체가 큰 의미를 지닐 때가 있는 법이다. 그런 점에서 현장의 다양한 투쟁을 인정하고 체결권이 과도하게 집중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특히 ‘직권조인'에 대해서는 민주노조운동의 전통에 따라 강력한 제재조치가 필요하다. 직권조인의 전력이 있는 사람들은 민주노조 임원 등으로 출마하지 못하게 할 수도 있다.

3. 마치며

민주노조운동의 혁신은 구조를 변화시키는 것에서 나오지는 않는다. 현장의 실리주의를 어떻게 변화시키고 ‘노동해방’의 전망을 어떻게 의미 있게 세울 것인지를 고민하는 것에 있다. 그것은 끝없는 학습과 원칙을 지닌 투쟁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며, 그것을 몸으로 실천하는 간부들이 있을 때 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앞서서 제기한 많은 문제들은 비정규노조들에도 여전히 답습되고 있다. 비정규노조들은 노조 생존의 문제가 더욱 심각하기 때문에 더 쉽게 실리주의에 빠지게 되고, 바람직한 투쟁의 전형을 보지 못했으므로 민주노조운동이 봉착한 문제들에 더욱 쉽게 빠진다. 숫자의 논리도 여전하고, 왜곡된 결정도 많이 하지만 그것이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합리화되기 때문에, 그런 결정 자체가 문제라는 것도 인식하지 못하거나 문제를 인식했어도 쉽게 수용해버리고 만다.
그런 점에서 민주노조운동의 혁신 문제는 지금 치열하게 투쟁하고 있는 비정규직 노조들이 어떻게 스스로를 변화시킬 것인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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