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웅 ⎟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조합 위원장
인적사항 및 경과
성명 : 손창현
나이 : 37세
소속 : (주)한성이엔지(현대중공업 냉천공장) 경주시 외동읍 인원 130명
입사 : 1998년
재해발생일 : 2006년7월11일
최초진단일 : 2006년7월12일
상병명 : 요추부염좌(산재승인) 추간판탈출증(요추5번-천추1번간, 산재불승인)
승인여부 : 일부승인
의료기관명 : 21세기 좋은병원(회사지정병원)
산재신청일 : 2006년8월23일
사업주날인 : 있음
치료기간 : 2006년7월12일-2006년10월4일(통원)
산재결정일 : 2006년10월13일
산재종결일 : 2006년10월4일(2006년10월31일까지 요양 연기 되었다는 진술)
산재종결통보일 : 10월20일
산재요양연기신청일 : 2006년10월22~23
복직소견요청 : 2006년9월27일
21세기 좋은병원 : 2006년10월17일(요추염좌-완치 추간판탈출증 -완치안됨)
예스정형외과 : 요추염좌 완치소견 받음
가족 진술
2006년 7월 11일 통증호소
2006년 7월 12일~8월12일 허리 공상치료(업체에서 급여지급)
2006년 8월 13일 출근하여
2006년 8월 13일부터 31일까지 공상치료 연기요청
회사는 무급처리하고 치료비만 지원하겠다고 함
출입증 갱신해준다고 가져가서 출입통제
산재신청 하려 하자 “산재처리하면 퇴사하는 것으로 알겠다”
고 협박
2006년 9월 1일 출근 총무에게 “이런 몸으로 일을 할 수 있겠느냐”
“소견서를 끊어와라” “복직하려면 완치됐다는 담당의사 각서
를 받아와라”는 말을 들음.
2006년 10월 1일 한성이엔지 무재해 130만 시간 달성으로
현대중공업으로부터 포상 받음
2006년 10월 17일 21세기 좋은 병원에서 완치소견 못 받음
2006년 10월 22일~23일 경 휴업급여명세서에 사인한 줄 알았으나 퇴사동의서에 동의한 것 같다고 고모부에게 연락함.
여기다 싸인하라고 해서 싸인하고 왔는데 “퇴사 동의서 언
듯 본 것 같다” 총무가 보여주면서 퇴사됐다고 했다.
2006년 10월 26일 예스정형외과에서 요추부염좌 완치소견 받음
2006년 10월 27일 소견서를 가지고 회사에 갔지만 복직 거부됨
당일 아내와 두 딸을 부산 처갓집으로 보내고 이날 자정
목과 손목의 동맥을 절단하여 자결
현대중공업의 조직적인 폭력, 무재해 운동과 산재은폐 행위
현대중공업에서는 무재해 100만 시간 200만 시간 달성을 위해 원청 각 팀 반과 하청업체 간의 무재해 기록을 세우기 위한 경쟁들이 가속화되어 왔다. 이 무재해 운동은 하이파이브 운동, 골인500운동, 툴박스 미팅 등의 이름으로 진행되고 있다. 중대재해 예방을 위한 하이파이브 운동(추락, 압착, 감전, 가스질식, 폭발)은 형식적인 현장 특별안전점검, 사고 예방 교육, 안전체험교육장 견학 등으로 이뤄지는데, 현장에 대한 감시와 통제를 강화시켜 왔다.
“생산 공정을 준수해서 생산목표를 달성하자”(골인500운동)는 현대중공업 대표이사의 지침은 공정을 준수하기 위한 숨 막히는 경쟁과 육체의 한계를 넘어서는 노동강도 강화를 불러왔다. 현장은 생산목표 달성을 위해 완전히 전쟁터로 변해버렸다. 시업 시간 전후에 진행되는 작업장에서의 “툴박스 미팅”은 조기출근과 점심시간 통제, 호선 승하승 통제로 이어졌다. 직영과 하청노동자들의 휴식시간을 빼앗고 노동강도를 강화시켰다.
하이파이브운동, 골인500운동, 툴박스 미팅 등 현대중공업에서 진행되고 있는 무재해 운동의 목적은 “생산공정을 준수하고 생산목표 달성을 위한” 노동강도 강화, 현장통제의 강화이다. 생산목표 달성을 통한 이윤추구를 위해서 직영 하청 노동자들의 목숨은 몇 명이 죽어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 작업공정은 숨이 가쁠 정도로 빨라지고 있고 이에 따라 노동강도는 직영과 하청노동자들의 근육이 걸레가 될 정도로 강화되고 있다. 관리자들은 아침 조회 시간에 힘빨 받을 때의 최고도의 집중을 하루 종일 유지해야만 간신히 물량을 마칠 수 있는 오더를 준다.
하청노동자들은 관리자들의 눈 밖에 나면 언제든지 해고와 불이익을 당하기 때문에, 찍히지 않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검사시간을 준수해야 한다. 지킬 것 다 지키고 필요한 안전조치를 다하면 검사시간을 맞출 수가 없기 때문에 위험한 것 뻔히 알면서도 일할 수밖에 없다. 또한 하청업주들은 무슨 수를 쓰서라도 물량을 쳐 나감으로써만 폐업을 면할 수 있고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퇴출되기 때문에 하청노동자들을 사지로 내몰고 노동재해를 은폐하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
한 예로 현장 제보를 접수하고 울산대학병원 응급실로 달려가 오늘 현대중공업에서 앰블런스에 실려 온 하청노동자를 찾으면 “추락요, 아니면 압착, 가스질식, 뇌출혈 등”을 묻는다. 이렇게 앰블런스에 실려 온 현대중공업 직영 하청노동자들이 하루에도 6건이 넘어설 때도 있다. 일단 앰블런스에 실려 오면 죽지는 않아도 병신이 되는 일이 허다하다. 현장은 생산 공정 완수를 위한 전쟁터로 변해가고 있지만 하청조합원들과 직영 활동가들의 제보가 없는 한, 노동재해는 거의 100% 은폐되고 있다. 무법천지, 죽음의 공장에서 일하다가 하청노동자들은 그렇게 골병들고 죽어나가는 것이다.
근로복지공단의 반동적 행위들
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들은 아파도 아프다고 말할 수가 없다. 아픈 것이 죄가 된다. 목이나 허리 무릎과 손목 등의 인대가 늘어나도 자비로 부황을 뜨거나 침 몇 대 막고, 아니면 맨소래담 바르고 출근해야 한다. 통증이 심한 사람들은 뼈 주사를 맞는데 이것도 잠시다. 두달에서 한 달, 그리고 뼈 주사를 맞아도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경우에는 그렇게 소모품처럼 버려진다. 디스크가 파열되거나 인대가 끊어지거나 추락해서 골절 정도가 되어야 공상처리가 된다. 공상처리 기간도 마음 편하게 치료를 받을 수가 없다. 일 바쁘다고 기어코 불러내 일을 시킨다. 눈치가 보여 아픈 몸을 이끌고 일을 하다가 증세는 더욱 악화되고 결근 일수가 늘어나고 또 그렇게 눈치가 보여 회사를 그만두는 경우도 허다하다. 관리자들에 밉보이다가는 전산에 걸려(모든 이력이 전산으로 기록 된다) 다른 업체에 취업하기도 힘들기 때문이다.
하청노동자가 산재요양 신청을 하기 위해서는 현대중공업을 떠날 각오를 해야 한다. 업체 관리자들은 “너 하나 때문에 업체 문 닫게 할 것이냐”라고 협박하고 회유한다. 업체 관리자들의 회유와 협박을 견디며 투쟁하는 것 자체가 산재리스트가 된다. 다른 업체에 취업 서류를 넣으면 “인원이 다 찼다. 스스로가 잘 알 것이다”라는 말을 들으며 거절당한다.
현대중공업을 떠날 각오로 산재를 신청할 경우, 최소 2개월 이상이 걸리는 산재신청과 산재 승인 과정은 정말 피를 말리는 과정이다. 업체는 당연히 신청서에 날인을 거부하고 근로복지공단에서는 접수 7일 이내에 승인 여부를 알려줘야 함에도 불구하고 업체가 날인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업체에서 출석하지 않았다. 자료가 오지 않았다. 업무가 바쁘다” 등 산재승인 여부를 기본적으로 한 달을 넘긴다. 또한 업체에서는 업체 동료들의 진술서를 쓰지 못하도록 협박하고, 심지어 사건 경위를 조작해서 진술하게 함으로써 산재를 못 받도록 탄압한다. 산재신청을 결심한 대부분의 하청노동자들이 생계의 곤란, 인간에 대한 배신감, 산재불승인에 대한 불안감, 취업의 막막함 등 정말 피가 마르는 투쟁을 하고 있다.
요추염좌, 손목 인대, 무릎 인대 파열, 골절 등으로 산재 승인을 받았다 하더라도 요양기간이 턱 없이 짧고 또한 강제로 치료를 종결시키는 사례들이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다. 업체에서는 산재요양을 한 하청노동자가 눈에 가시이기 때문에 아예 해고시키는 경우가 다반사이고 항의해서 아픈 몸을 이끌고 업체에 복귀하더라도 탈의장에 대기시킨다. 이 악물고 일을 하더라도 증세는 악화되고 정해진 물량을 마무리하지 못하기 때문에 공개적인 자리에서 인간적인 모멸감을 주는 방식으로 스스로 업체를 나가게 만들고 있다. 어떠한 보상도 받지 못한 채 하청노동자들이 생존의 벼랑으로 내몰리고 있다.
고 손창현 동지 자결 투쟁의 성격
고 손창현 동지가 자결에 이르는 과정은 현대자본의 조직적이고 폭력적인 산재은폐 행위 그리고 고무줄처럼 늘나는 산재승인기간 연장과 산재불승인남발, 강제종결 등 근로복지공단의 반동적 행위를 편집된 사진처럼 선명하게 보여준다.
고 송창현 동지는 7월 11일 일을 하다가 허리를 다쳤고 요추염좌, 추간판탈출증 등의 진단을 받았다. 당연히 산재신청을 해야 함에도 공상처리 하였다. 하청노동자들에게 산재신청은 해고를 각오해야 했기 때문이다. 한 달이 지난 8월 12일 공상기간 연장을 요구하자 업체 총무는 곧바로 무급 처리하겠다고 협박했고 나아가 산재신청을 하게 되면 퇴직처리 하겠다고 협박했다. 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들이 일상적으로 당하는 폭력이다.
출입증을 갱신한다면서 달라고 했던 출입증은 돌려받지 못했고 곧바로 출입을 통제 당했다. 현장에 들어갈 수 없고 업체로 연락을 해도 연락을 받지 않는다. 그렇게 소모품처럼 거리로 버려지는 것이다. 한성ENG에서 근로복지공단에 제출한 7월급여명세서에서 손창현 동지의 소속은 “퇴사자”였다.
자신이 퇴사처리 되었다는 것도 모른 채 고 손창현 동지는 8월 23일 해고를 각오하고 산재요양신청을 했다. 산재요양신청 이후에 한성ENG에서는 한 통의 전화도 없었다. 고 손창현 동지는 산재결정이 될지, 아픈 몸은 완치할 수 있을지, 과연 복직할 수 있을지 불안하고 초조하게 하루하루를 보내야했다. 고 송창현 동지는 9월 1일 업체 총무를 찾아 가서 복직을 요구했다. 한성 총무는 “완치되었다는 주치의의 각서”를 받아올 것을 강요했다. 이것은 사실상 복직시키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허리디스크는 하루아침에 낫는 병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고 손창현 동지는 아픈 몸을 이끌고 통원 치료 받으면서 완치 소견서를 받으려고 9월 한 달을 그렇게 보냈다. 이 과정에서 한성ENG는 10월1일 현대중공업으로부터 130만 시간 무재해 포상을 받았다. 무재해 포상을 받기 위해서는 고 손창현 동지는 “퇴사자”로 처리되어야 했던 것이다.
고 손창현 동지는 산재 신청을 한지 50여일이 지나 근로복지공단 포상지사로부터 일부승인결정을 받았다. 그러나 병이 중한 추간판 탈출증은 불승인되었다. 10월20일에는 근로복지공단 울산지사로부터 “2006년 10월 4일자로 치료종결 하시기 바랍니다”는 통보를 받았다. 산재 승인여부를 알았을 때 이미 9일 전에 치료종결이 되었고 아직 낫지 않은 허리디스크는 불승인이 되었다는 사실을 접했을 때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픈 몸이라도 가족을 생계를 위해 복직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정병원이었던 21세기 좋은 병원에서는 완치소견서를 받지 못했다.
10월 22일경 고 손창현 동지는 회사 총무를 만나 휴업급여명세서에 싸인하라고 해서 여러 장 싸인을 했는데 언뜻 퇴사동의서가 보였다고 고모부에게 전화를 했다고 한다. 불안하고 절망스런 나날들, 고 손창현 동지는 10월26일 예스정형외과에서 요추부 염좌 완치 소견서를 받고 10월 27일 정말 실낱같은 희망을 들고 회사 총무를 찾아갔으나 일언지하에 복직을 거부당했다. 이날 고 손창현 동지는 아내와 자식들을 부산 처갓집으로 보내고 자신의 불 꺼진 방에서 자결했다. 보통 자결은 목을 매거나 손목 동맥을 절단한다. 그러나 고 손창현 동지는 목의 동맥을 절단하여 자결했다. 얼마나 절망스럽고 치떨리는 분노였겠는가? 고 손창현 동지가 자결하기 직전의 통장에는 10만원이 남아있었다.
고 손창현 동지를 자결에 이르게 한 데에는 현대중공업의 조직적인 산재은폐 행위뿐만 아니라 근로복지공단의 반동적 행위가 결합되어 있었다. 만약 근로복지공단이 빠르게 산재승인을 하고 휴업급여를 지급했다면 송창현 동지는 자결하지 않았을 것이다. 11월 2일 근로복지공단 포상지사 보상부장과의 면담과정은 공단의 반동적인 행위를 확인하는 자리였다. 50여일이 지나서 산재결정을 한 이유에 대해서 물어보니, “업무가 바빴다”고 한다. 다른 이유는 전혀 없었다. 또한 추간판 탈출증에 대한 불승인은 재해자 문답서(일을 하다가 다침), 추치의 소견(업무연관성 인정)을 전혀 반영하지 않고 현장 답사도 하지 않은 채 정보공개요청을 해도 끝까지 공개하지 않았던 사용자 문답서와 자본가의 이해를 대변하는 자문의 소견만을 토대로 불승인을 한 것이란다. 1주일이면 가능한 산재승인 판정을 업무가 바쁘다는 핑계로 50여일이나 질질 끌고 나아가 자문의 소견만으로 산재불승인을 남발하고 강제종결 시키는 근로복지공단의 반동적 행위가 고 손창현 동지를 자결로 몰아갔던 것이다.
손창현 동지의 자결은 현대자본과 노동부 근로복지공단이 합작한 사회적 타살일 뿐만 아니라 현대중공업 원청과 하청 노동자들에게 가해지는 현대자본의 구조적이고 조직적인 산재은폐, 폭력적인 탄압, 그리고 근로복지공단의 반동적 행위에 맞선 죽음으로서의 항거이다. 또한 11월 민주노총 총파업 투쟁의 4대 요구안 중의 하나인 산재보상보험법 개악에 맞선 핵심적인 투쟁 거점이었다.
울산지역 공동대책위원회의 투쟁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는 두 가지 방향에서의 투쟁을 조직하려 하였다. 하나는 금속노조 울산지부 중심의 지역 대책위를 구성하고 산재보상보험법 개악저지를 위한 투쟁 거점으로 강화하는 것, 둘째는 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들의 건강권 쟁취를 위한 현장 투쟁 공간을 여는 것이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두 가지 방향의 투쟁 모두 실패했다.
금속노조 울산지부 중심의 지역 대책위 구성 제안은 울산지부의 책임 회피로, 금속연맹 울산본부로 나아가 민주노총 울산본부 운영위로 이관되었다. 11월1일 민주노총 울산지역본부 운영위는 지역 대책위 참가를 “유보”했다. 유보의 이유는 “조직 대상의 문제, 대책위 참가 범위의 문제” 등이 거론되었다고 하지만 이것은 사실 이유가 되지 않는다. 고 손창현 동지는 현중 사내하청 지회의 규칙에 의거할 때 조직 대상이 되는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자이다. 또한 대책위 참가 범위의 문제는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대책위를 구성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다.
11월 1일 민주노총 울산본부 운영위원회는 고 손창현 동지 자결 투쟁에 발목이 잡힐까봐 전전긍긍하는 모습이었다. 이후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에서는 운영위 결정에 항의하고 재차 민주노총 중심의 대책위 구성을 제안했지만 민주노총 중심의 대책위는 구성되지 않았고 이미 자발적으로 구성되었던 지역 대책위에 단순히 참가하며 집행과 관련해서는 사무처 담당자에게 위임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고 손창현 동지 지역 대책위 활동 내내 민주노총 울산본부에서는 사무처 담당자 동지, 금속 울산지부에서는 노안위원장 개인 업무의 영역을 결코 벗어나지 못했다.
반면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를 비롯한 현대중공업, 현대미포 조선 현장조직들과 지역 노동단체들이 자발적으로 공대위를 구성하고 투쟁에 나섰다. 공대위 차원의 출근선전전과 총파업 지역 집회 선전전과 피켓팅, 포항지청과 포상지사, 울산지청과 울산지사 항의방문, 현대중공업 대표이사를 비롯한 책임자들에 대한 고소와 산재은폐 행위에 대한 공동현장조사단 구성 제안, 산재은폐 사례 접수와 조직화 사업 등 기본적인 대응 투쟁을 진행했다. 그러나 유족이 합의 없이 장례를 치루고 나서부터 지역 공대위의 활동은 고립되기 시작했고 현대중공업, 노동부와 근로복지공단의 반동적인 태도에 대한 타격투쟁으로 투쟁의 수위를 높이고 확대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배째라는 노동부와 근로복지공단의 배를 째기 위해서는 민주노총 차원의 집중적인 타격 투쟁이 필요했지만 “투쟁 동력”의 문제로 현대중공업 정문에서의 총파업 결의대회는 일정조차 잡혀지지 않았고 근로복지공단 타격 투쟁은 총연맹 지침에 따른 항의서한 전달로 축소되었다. 지역 대책위에서는 유족들을 다시 설득하고 현대중공업 각 정문 출근선전전과 출근 투쟁을 시작했다. 그리고 노동부와 근로복지공단의 직무유기와 관련한 감사원 진정, 현대중공업 대표이사 구속 처벌을 위한 서명 운동, 울산 동구지역 산재은폐 조사단 구성과 병원 직접 방문 조사 활동과 산재은폐 사례 수집, 현대중공업 각 정문에서의 촛불문화제 개최 등 고 손창현 동지의 자결 투쟁의 의미를 알려 내고 현장 하청노동자들의 노동자 건강권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 공간을 열기 위해 투쟁했다. 하지만 병영과 같은 통제 속에서 하청노동자들의 참여와 행동을 조직하는 일은 좀처럼 열리지 않았다.
고 손창현 동지의 자결 투쟁은 민주노총 총파업이 해체되는 과정과 궤를 같이 해서 고립되어 갔다. 그리고 고 손창현 동지 울산지역 대책위 활동의 결과는 다음과 같이 돌아왔다. 첫째, 살인행위와 관련하여 포항지청에 고소한 건과 관련해서는 2월 15일까지 조사기간을 연장한다는 것이었고 둘째, 노동부와 근로복지공단 직무유기와 관련한 감사원 진정은 대책위 견해와는 무관하게 감사원에서 노동부로 노동부에서 근로복지공단으로, 근로복지공단에서 포상지사와 울산지사로 이관되었고 포상지사와 울산지사에서는 “처리과정에서의 일체의 의혹이 없다”는 자기변명 공문을 보내왔다. 셋째, 유족이 낸 산재 신청은 산재요양기간이 아니었다는 점과 정신과 치료경력이 없다는 점 등을 들어 유족 보상과 장의비 부지급결정이 났다. 넷째, 현대중공업 각 정문 앞에서의 촛불문화제와 관련하여 대책위 대표자들에 대한 집시법 위반 출두요구서가 동부경찰서로부터 날아왔다. 울산지역 대책위는 유족 심사청구와 행정소송 준비, 포항지청과 포항지사, 울산동부서 항의 투쟁, 대책위 선전전 등의 일정을 잡아놓고 있다.
고 손창현 동지의 자결 투쟁은 어떠한 성과도 남기지 못한 채 그렇게 마감되는 것처럼 보인다. 죽음의 공장, 현대중공업에서는 2007년 1월, 벌써 또 한 명의 노동자가 추락으로 사망하고 간신히 목숨을 건진 두 건의 중대재해가 발생했다. 여전히 현대중공업에서는 조직적이고 폭력적인 산재은폐 행위, 살인행위가 지금도 자행되고 있고 노동부는 이에 협조하고 있다. 살인자들은 기고만장하고 있다. 살인행위에 대한 책임이 벌금 300만원, 하루 밤 술값 밖에는 안 된다.
그리고 근로복지공단은 산재기준 강화, 산재요양기간 단축, 휴업급여 축소 등 산재보상보험법을 개악하려 하고 있다. 죽음의 공장, 현대중공업의 현실이 “전국화”되려는 시점이다. 고 손창현 동지의 자결투쟁, 한 명의 목숨으로도 현실은 바뀌지 않았지만 이제는 두 명의 목숨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2명의 단결이, 2만 명의 하청노동자들의 단결이, 4만의 현대중공업 원하청 노동자들의 단결, 전국 노동자계급의 연대 투쟁이 필요한 시기이다.
전선을 후방에서 전방으로, 결과에 대한 투쟁이 아니라
원인에 대한 투쟁으로 전진 배치해야 한다
오늘 한 명의 하청노동자가 산재요양 승인을 받는 것도 더욱 힘들어지고 있지만 더욱 심각한 문제는 오늘 하루 수 십 명의 하청노동자가 노동재해로 죽거나 다치거나 골병들어 소모품처럼 현장 밖으로 버려진다는 것이다. 2005년 금속 중앙교섭 요구안을 확정할 때, “노동시간 단축과 노동자 건강권 쟁취”에 대한 요구가 삭제되었다. 한마디로 금속노조의 “실력”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실력이 되지 않아서 삭제시켰던 투쟁이 산재보상보험법 개악으로 우리에게 되돌아오고 있고 산재보상보험법 개악을 저지하기 위해 노동자건강권 실천단이 조직되어 있지만 근로복지공단 항의 방문과 선전전 이상을 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캠페인성 사업으로는 산재보상보험법 개악을 막아내지 못할 뿐만 아니라 하루에도 수 십 명씩 죽거나 다치고 골병들어 버려지는 하청노동자들의 권리를 쟁취할 수 없는 것은 자명하다.
가장 확실하고 유일한 방법은 직영과 하청노동자들이 맨아워와 생산공정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하며, 표준안전작업을 통해 노동시간을 단축하고 노동강도를 줄일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잔업 특근을 하지 않아도 생활임금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정말 꿈과 같은 이야기 같지만 이러한 권리들은 90년대 초중반 현대중공업과 금속사업장을 중심으로 단협으로 체결된 “작업중지권”의 이름으로 유지되어 왔다. 작업중지권 쟁취는 자본의 현장통제력 맞서 노동의 현장통제력을 유지하고 강화하는데 핵심적인 권리 중의 하나이며 노동자 생산통제를 위한 징검다리의 역할을 할 것이다. 직영·하청노동자들이 단협 상으로 작업중지권을 쟁취하고 현장에서 집행하는 것만으로도 중대재해를 현저하게 감소시킬 수 있고 다치지 않고 골병들지 않고 일하는 현장, 다치면 치료받을 수 있는 권리를 쟁취하는데 초석이 될 것이다.
따라서 이제 전선을 후방에서 전방으로, 결과에 대한 투쟁이 아니라 원인에 대한 투쟁으로 전진 배치시켜야 한다. 정규직,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건강권 쟁취의 출발점은 바로 노동3권의 완전한 쟁취이며 스스로 단결한 노동자들은 자신의 목숨을 스스로 지켜나갈 힘들, 다치면 치료받을 수 있는 권리, 위험작업에 대한 거부권과 작업중지권을 쟁취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15만 금속노조는 “원청 사용자성 쟁취” 투쟁과 함께 “작업중지권 쟁취”를 핵심적인 요구로 확정하고 자본에 맞선 전면전, 금속노동자 총파업을 조직해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