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법 개악 폐기를 선언하고 투쟁을 조직하자!
김혜진 |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집행위원장
1. 개악된 노동법의 성격
개악된 노동법의 성격은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것이다. 정부에서는 그동안 노동유연화를 끈질기게 추진해왔다. 90년대 중반부터 현장에서 추진되었던 외주화와 아웃소싱, 그리고 98년의 정리해고와 근로자파견제, 그리고 2006년 노동법 개악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은 모두 모든 노동자들을 비정규직으로 만들고, 위계화하여 통제하고자 하는 정부와 자본의 공격적 대응이었다. 그래서 이번 개악안도 기간제에 대한 자유로운 사용, 파견법 허용대상의 확대가 주 내용이었던 것이다.
물론 이번 노동법 개악은 또 다른 한 측면도 갖고 있는데 그것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투쟁하면서 요구했던 노동기본권 쟁취의 요구를 왜곡하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불법파견 정규직화 등 그것의 일부를 수용하는 듯하면서도 실질적으로 무력화하고, 차별금지를 이야기하면서 합리적 차별의 가능성을 만들고, 외주화를 확장하는 등 비정규직에 대한 새로운 통제장치를 마련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비정규직 노동법 개악은 제도화의 완성태는 아니다. 자본과 정권이 구상하는 비정규직 제도화의 완성태는 ‘직무-고용형태-임금’을 연동하여 노동자 전체를 위계화 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그들이 이야기하는)전문·상시업무는 정규직이고 연봉제를 활용하며, 상시업무이지만 전문적이지 않은 업무는 기간제-성과급제로 바꾸는 등 세 가지를 연계한 후 노동자들 사이에 세세한 위계를 형성하는 것이다. 비정규직이 일반화되고 고용의 유연성이 높아진 후, 그것이 직무와 임금과 연동되면 자본의 입장에서는 효율적인 노동자 통제와 노동자 내부 경쟁을 통한 이윤창출, 그리고 저임금화가 다 가능해진다고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후에는 이러한 위계화 및 직무·고용형태·임금을 연동시키기 위한 자본 진영의 논리와 연구가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한 대응도 필요하다.
그런데 노동운동진영은 이 법안이 제출된 이후 제대로 투쟁을 조직하지 못했다. 전체 노동자들의 유연화라는 측면이 부각되기보다는 ‘비정규직 문제’로 인식되면서 이 투쟁을 전체의 투쟁으로 조직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큰 한계는 이 법안의 문제를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한 채 이 법안의 일부를 수정하는 방식으로 접근하려고 했던 태도에 있다. 국가보안법이 아무리 수정을 해도 악법인 것처럼 비정규법안도 그 자체로 폐기해야 할 악법이었다. 그리고 비정규직 권리 보장은 다른 틀로, 다른 방식으로 제출되어야 했던 것이다.
그런데 비정규 권리보장을 해야 한다는 이유로 법안에 대한 수용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법안에 대한 수정안을 중심으로 논의가 되었고 이것이 결국 투쟁의 힘을 더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았다. 제대로 된 투쟁을 조직하지도 못한 채 2006년 말 비정규법안은 통과되어버리고 말았다.
2. 노동법 개악 이후 정부와 기업의 대응
노동법 개악이 발표되고 나서 경총에서는 재빠르게 비정규직 법안에 대응하는 지침을 만들어서 회원사들에게 배포하고 있다. 그 지침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정규직과 완전 동일한 업무를 하는 경우라 하더라도 정규직 전환 숫자는 최대한 줄이도록 이야기한다. 정규직화 대신 분리직군의 방식, 파견과 기간제를 번갈아가면서 사용하는 방식, 아웃소싱, 임금유연성 확보 등을 적극적인 대안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특히 아웃소싱의 경우 불법파견을 회피하기 위한 방안으로 적극 제시되고 있으며, 이것은 기간제법이나 차별시정에 관한 법률에 대한 대응만이 아니라 적극적인 구조조정 방침으로 이야기되고 있다. 경총의 지침은 이 법안의 성격을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이다.
정부에서는 공공부문 비정규대책을 발표하면서 노동법 개악안을 현실에 관철시키려고 했다. 처음에 각 기관들에게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기관별 대책을 내라고 지시했다가 각 기관에서 혼란을 일으키고 사실상 대책을 내놓지 못하면서, 산업인력공단, 건설기술연구원, 과천시, 경북대, 양평군 등의 기관을 시범적으로 선정해서 시범적으로 대안을 마련하겠다고 한다.
이 때의 대안이라는 것은 ‘무기근로계약으로의 전환 대상자 선정 기준’과 ‘합리적인 외주화 기준’ 둘을 말하는 것으로서, 이 기관들이 두 가지를 모두 제출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정부에서는 내용을 전혀 내놓지 않고 있다. 그리고 이에 근거하여 각 기관별로 4월까지 대책을 내놓고 5월에는 시행을 하겠다고 이야기한다. 결국 정규직화 아닌 무기근로계약화, 그리고 외주화만을 촉진시키는 결과인 것이다.
지금의 상황을 놓고 보자면 자본은 최대한 법안을 이용하여 고용을 불안정하게 만들면서도 이익은 그대로 유지하는 방안을 찾을 것이고, 그것은 노동자들에게 해고나 전환배치나 계약형태 변경이나 외주화 등 극악한 고통을 주게 될 것이다. 정부의 입장에서는 그런 상태가 되면 법안의 허점과 문제를 적나라하게 드러나기 때문에 공공부문에서라도 일정하게 ‘좋은 점’이 있다는 것을 알리거나 아니면 이데올로기적 상징이라고 만들려고 애를 쓸 것이다. 그리고 기업들이 조장하는 구조조정에 대해 어느 정도라도 제재를 해보려고 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정부의 통제력이 기업에 먹히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고통은 극에 달하고, 몇 개의 상징적 사례만 노동법의 효과를 선전하는 도구로 활용될 것이다.
그런 혼란의 와중에 있기 때문에 비정규 법안 실시 이후 2년간은 이것이 어떤 방식으로 활용될 것인가에 따라서 투쟁의 가능성을 만들 수도 있고, 아니면 이 법안이 안착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도 있다. 그러므로 공공부문 대책의 허구성, 정부가 이데올로기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몇 가지 상징적인 사례에 대한 폭로, 그리고 현실에서 고통받고 있는 노동자들과 함께 하는 투쟁을 만들어내야 비정규법안에 대한 우리의 폐기 투쟁 전선이 유지되고, 다시 투쟁의 전열을 가다듬을 수 있다.
3. 어떻게 투쟁할 것인가?
(1) 노동법 개악안 폐기 전선을 복원하자!
노동법 개악안 폐기는 선언적 의미에서가 아니라 구체적인 전술로 현실화되어야 한다. 그런데 무너진 전선을 재설치하기 위해서는 기본 투쟁대오를 형성하거나, 아니면 여론적으로 유리하거나, 피해를 당하는 주체들이 강고하게 밀어붙이거나 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조건은 하나도 갖추지 못했다. 여론에서도 이데올로기적으로 밀리고, 피해를 당하는 주체들도 아직 조직되지 못하고 개별화되어 있으며, 노동법 개악 저지투쟁을 열심히 했던 주체들도 지쳐서 더 이상의 전망을 내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전체 전선의 설치는 사실상 당분간은 어렵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다만 명백하게 폐기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점을 인정하고 선언하게 해야 하는 것이다.
당장 전선이 재설치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투쟁했던 주체들이 다시 결집하고 의지를 다지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투쟁의 후유증으로 지쳐있는 동지들이 다시 일어서 끈질기게 조직하고 투쟁해야 한다. 당장은 그것이 대중적 전선으로 만들어지지 않더라도 민주노조운동 진영이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예전 ‘파견법 철폐를 위한 수요집회’처럼 투쟁은 끈질기게 유지되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민주노총이 법안 재개정 투쟁(폐기 선언도 아니었다)을 선언하고도 여전히 시행령에 매달려 있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이다. 전체 전선이 설치되지 않은 상태에서 벌어지는 시행령 개입 논의는 필연적으로 법안을 고착화하고 인정하는 효과를 낳는다.
한국노총에서는 ‘시행령과 파견허용업종’에 대한 개입을 명백하게 선언했는데 이들은 ‘기간제 법안 자체는 좋은 취지가 있는데, 그 취지를 위배하는 내용이 들어있으므로 입법취지에 맞게 시행령에 개입해서 고치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특별근로감독 및 행정지도 방안을 요구’하고 불합리한 아웃소싱 등의 사례에 대한 노사정 공동실태조사를 요구했으며, 정규직 전환 사업장에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방식, 그리고 비정규직 권리 침해 센타를 만드는 것 등으로 안으로 결의했다. 한국노총으로서는 이것이 자신들이 합의한 법안을 안착시키는 방법이라고 보고 있기 때문에 당연한 행보를 하는 것이다.
민주노총에서는 시행령에 개입해야 한다는 내부 방침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법안에 대한 재개정 투쟁을 선언한 가운데 시행령에 개입하겠다고 하는 방침의 모순 때문에 어쩌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정부에서는 세 가지 부분에서 민주노총과 논의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데 파견과 도급의 기준, 기간제 예외조항, 그리고 파견허용업무 선정이다.
파견과 도급의 기준은 아무리 정확하게 명시한다 해도 자본이 그것을 피해갈 길을 다 알고 있으므로 명확한 명시가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즉 여기에 개입해서 대단히 엄격하게 파견과 도급의 기준을 명시해도, 현실에서 불법파견 인정을 받게 만드는 것은 어렵기에 실효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기간제 예외조항의 경우 모법인 기간제 자체가 노동자들을 2년마다 계약해지 하는 것인데, 그 예외조항이 문제라고 주장할 것인가? 또한 파견허용업무 선정의 경우 민주노조운동이 개입하게 되면 98년 파견법 통과 당시에 조직되지 않고 투쟁하기 어려운 조건에 있는 노동자들만을 다시 파견허용 업무로 내모는 일을 다시 반복하게 될 것이다.
시행령에 대한 민주노총의 이런 혼란과 동요는 결국 정권의 노동법 개악을 인정하는 효과를 낳으며 마치 하나라도 건질 것이 있는 것처럼 생각하게 만든다. 특히 이런 혼란은 노동법 개악 폐기투쟁의 전선이 만들어지지 않음으로써 각론적으로 실용적으로 대응하게 되는 사태에 기인한 바가 크다. 그런 점에서 공식적으로 노동법 개악 폐기를 선언하고, 그로 인해서 나타나는 각종 사안들에 대해 집중적인 투쟁을 만드는 것이 우리에게는 필요한 일이다.
(2) 무기근로계약 따위가 아닌 정규직화 쟁취의 사례를 만들자!
96년 노동법 개악안 날치기 통과 이후 노동자들은 총파업으로 맞섰다. 그러나 그 투쟁이 제대로 마무리되지 못하면서 98년 결국 정리해고제와 근로자파견법이 통과되었다. 그런데 통과된 노동법 개악이 바로 현장으로 관철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특정한 주체들의 대리 투쟁으로 먼저 외화되기 마련이다.
98년에는 그것이 현대자동차이자 만도기계였다. 이 투쟁이 당사자들만의 투쟁이 되어버리면서 정리해고제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에는 노동법 개악안이 현장에 관철될 토대를 마련해버렸다. 지금도 마찬가지로 정부는 공공부문 대책과 우리은행의 사례를 통해서 자신들의 입장을 관철하려고 한다. 그래서 이 문제에 대한 대응이 중요하게 제기되는 것이다.
현재의 무기근로계약은 그 자체로 옳고 그른 것이 아니다. 정부에서 이것을 법안이 갖고 있는 상징적인 의미로 활용하면서 정규직의 양보를 요구하는 카드로 활용한다. 그리고 마치 ‘고용이냐 임금이냐’의 양자택일인 것처럼 우리에게 이데올로기 공세를 취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무기근로계약은 차별금지 조항과 모순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분리직군제를 전제로 한 무기근로계약이 될 수밖에 없다. 즉 예전의 ‘무기근로계약’이란 정규직화의 다른 이름이었던 데 비해서 이제는 노동이 유연한 무기근로계약이 등장한 것이고, 그것이 바로 정규직과 직군이 분리된 무기근로계약인 것이다.
분리직군을 전제로 한 무기근로계약은 자본의 구조조정 도구로 활용되는데, 은행권에서는 그동안 노동자들이 투쟁을 통해서 간신히 막아왔던 성과급제인 신인사제도를 관철하는 방식으로, 공공부문에서는 외주화의 전단계로 활용되고 있다. 이런 맥락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투쟁을 하기 어렵다.
그런데 민주노동당 최순영 의원실에서는 학교 비정규직에 대해서 법안을 제출하면서, 학교 회계직을 별도 직군으로 하여 무기근로계약화하는 방안을 제출했고, 이에 대해서 학교비정규직 노조에서는 강하게 반발을 한 상태이다. 지금까지의 정규직화 쟁취 투쟁을 무력화하는 안이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노동운동진영 안에서도 무기근로계약에 대해 ‘고용이냐 차별이냐’의 왜곡된 논리로 접근하면서, 이 안이 필연적으로 분리직군을 낳으며 그것은 구조조정과 연동된다는 사실을 애써 눈감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우리가 우리은행 사례에 대해 공동대응하면서 새로운 투쟁의 전형을 만들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은 쉽지 않다. 금융권 노동자들이 조직되어 있지도 않고 그런 의지를 가진 지도부도 없으며, 이 투쟁에 대한 지원 구조도 없다. 그런 점에서 우리은행의 사례는 그 한계를 폭로하는 방식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투쟁의 사례를 만들 것인가? 우리은행과 같은 방식으로가 아니라 투쟁을 통한 정규직화를 어떻게 승리로 만들 것인가? 바로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공공부문에서 정부는 어떤 방식으로든 이 법안의 의미를 선전해야 하므로 타협안을 낼 수밖에 없다. 우리가 힘을 갖고 제대로 투쟁을 조직할 수 있다면 공공부문에서 정규직화 쟁취도 가능해진다.
현재 가능한 투쟁 단위는 병원과 철도, 학교 비정규직 등이다. 철도는 이미 무기계약화와 외주화에 대한 계획이 제출되어 있지만, 현재 KTX와 새마을호 승무원 동지들이 투쟁하고 있다. 이 투쟁을 어떻게 발전시키는가가 중요한 문제이다. 그리고 학교 비정규직들의 경우 최순영의원실의 안 등 여러 가지 교란 요인이 있기는 하지만 최선을 다해서 투쟁을 조직해야 할 문제이다.
그런데 여기보다 더 가능성이 높은 곳은 병원사업장이다. 병원에서는 무기근로계약 등이 현실화되기도 어렵고 병원의 특성상 외주화에 대한 반대투쟁도 유리한 측면이 있다. 그리고 단협을 통해서 이미 기간제의 정규직화를 쟁취한 바가 있다. 그러므로 기간제 정규직화의 구체적인 성과를 만들어내야 한다. 특히 자본이 단협을 무시하고 장기계약직에 대해 해고하는 문제에 맞서서 2년 이하자에 대한 계약해지를 금지시키고 정규직화를 하는 등 구체적인 성과를 만들어야 한다.
그럴 때에야 이것이 ‘투쟁을 통해서 현실에서 법안을 무력화하고 정규직화하는 성과’로서 다른 동지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 이 투쟁이 만들어질 때 전선의 성격을 ‘차별이냐 고용안정이냐’로가 아니라, ‘무기근로계약인가, 정규직화인가’로 바꿀 수 있게 된다.
(3) 노동자들에 대한 해고에 공동 대응하자!
장기계약직 노동자들에 대한 해고가 많아지고 있다. 개악된 법안은 아직 시행도 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노동자들을 해고하는 것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7월 1일부터 시행되는 차별시정 조항 때문이다. 문제가 될 소지를 없애기 위해서 장기계약직들을 해고하는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장기계약직들을 개별 계약기간별로 해고해서 해고의 시기가 집중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세 번째로는 아직 자본가들로서도 비정규 법안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이기 때문에 위험부담을 덜기 위한 해고라고 볼 수 있다. 장기계약직의 해고는 단협도 위반한 상태로 진행된다. 서울대병원 등에서 2년 이상자에 대한 정규직화 단협을 쟁취했는데 서울대에서는 장기계약직들에 대해서 임의 해고를 하고 있다.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마찬가지이다. 결국 현장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피해로 이미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 외에 외주화로 인해서 노동자들이 집단적으로 해고를 당하고 있기도 하다. 정부에서는 합리적인 외주화 기준 마련이라는 이름으로 외주화로 인해서 기업의 성과가 크게 나오거나 업무가 외주처리해도 될 만큼의 독자성을 갖고 있는 경우 자유스러운 외주화가 가능하다면서 외주화의 폭을 매우 크게 잡을 의향을 내비치고 있다. 그렇게 되면 이제 공공부문에서 다양한 방식의 외주화는 가속화될 것이다. 외주화와의 전면전 없이는 개별 단위사업장 차원의 대응은 무척 힘든 상황이 된다. 비조합원인 비정규직을 먼저 그 대상으로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벌써부터 유통산업에서 파견노동자들이 확산되고 있고, 간접고용 자체가 중층화 되기도 한다. 이로 인해서 철도 새마을호 승무원이 계약해지 되고 이랜드에서도 기간제 노동자들이 해고된 후 파견으로 전환되고 있다.
그런데 현재 피해자들은 개별로 분산되어 있고 대응이 어려운 조건에 놓여있다. 집단적으로 조직하고 투쟁할 수 있는 동지들은 얼마 되지 않는 것이다. 이 동지들을 조직하기 위한 계획을 세워야 한다. 민주노총에서는 상담센터를 개설한다고 하는데, 상담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피해 당사자들을 조직하고 투쟁을 만들어야 하는 문제이다. 예를 들어 “노동법 개악에 반대하는 모임”등을 만들어서 상담이 들어오거나 해고당하고 고민하고 있는 동지들을 적극적으로 모아나가야 한다.
고려대병원의 사례처럼 자본의 개별적 계약해지에 집단적으로 대응하게 되면 다시 재계약이 될 가능성이 높다. 자본의 입장에서는 지금 당장 계약해지를 하지 않고 재계약을 하더라도 2년 후에 다시 계약해지할 명분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집단적인 대응은 당장의 피해를 모면하게 한다. 이것이 온전한 해결은 아니지만 새로운 투쟁의 주체를 세워서 이후 제대로, 집단적으로 투쟁할 가능성을 만든다는 점에서 중요한 과제이다.
(4) 차별시정이 아닌 치열한 단협 투쟁이 필요하다!
올해의 단체협약이 매우 중요할 것이다. 자본은 올해 단협을 통해서 비정규직에 대한 계약해지나 전환배치, 외주화 등을 적극적으로 하려고 할 것이다. 이에 민주노총 차원에서 대응지침이 마련되어야 한다. 물론 민주노총 차원에서 모범 단체협약안을 만들기는 했으나 이것은 현장에서 벌어지는 구체적인 변화를 막기에는 지나치게 추상적이다. 우선 기간제 노동자들에 대해서는 ‘정규직화’ 원칙을 분명하게 해야 한다. 설령 일부 무기계약화가 되고 힘이 없어서 정규직화를 전면화하지 못한다면, ‘순차적인 정규직 전환 프로그램’을 제안하고 이것이 현실화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안을 만들어야 한다. 임금을 정규직의 몇%로 제한하는 것도 ‘합리적 차별’의 근거가 될 수 있으므로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원칙을 명시하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전환배치, 직무분석에 대한 반대, 외주화를 막기 위한 ‘합의’ 조항을 명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현장에서 힘이 밀릴 수도 있지만 기본적인 원칙을 세우고, 현장에서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하도록 조직해야 한다.
모든 법안이 다 나쁜데 마치 차별시정은 그래도 좋은 것처럼 생각하는 견해들이 혼란을 만들고 있다. 심지어 금융노조 등 특정 노조들에서는 ‘차별시정’을 기획투쟁으로 만들어서 집단제소를 하겠다는 계획도 갖고 있다.
하지만 현재의 구조 안에서 차별시정 절차를 밟는 것은 합리적 차별의 기준을 축적해주는 결과를 낳을 뿐이다. 단 하나도 제대로 된 차별시정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개인들이 3개월 안에 자신이 차별받았다는 것을 증명하기도 어렵겠거니와 설령 차별시정명령을 받았다 하더라도 자본가들은 이에 굴복하지 않고 대법원까지 갈 것이다. 몇 년의 기간이 걸려서 차별시정 결과가 나온다 한들 그 때가 되면 이미 현장은 비합리적 차별이라고 인정받은 모든 조건을 다 변화시켜서 합리적인 차별인 것처럼 변화시켜놓을 것이기 때문에 그 실효는 하나도 없는 것이다.
만에 하나 차별시정이 가능할 수 있다면 모르겠거니와 그럴 가능성이 원천봉쇄 된 상황에서 자본과 정권이 말하는 바 차별의 합리적 기준을 축적해주는 것이라면 오히려 ‘차별시정’ 논리에 대한 과감한 비판과 투쟁이 필요하다. 차별시정위원회에 대한 거부투쟁으로부터 시작하자.
민주노조운동진영은 여전히 법적 문제를 중심으로 사고한다. 조합원들을 설득하고 투쟁을 조직하는 데에 최선을 다하기보다는 이 법안에서 그나마 좋은 점이라도 있는지, 아니면 조금이라도 덜 피해를 당하게 할 수 있는지에만 주목하고 있다. 노동조합이 현장에서부터 치열하게 노동법 개악을 저지하기 위한 투쟁을 해야 하는데 그것을 조직하는 것을 방기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개악 저지투쟁이, 마치 비정규직들만의 것인 양 왜곡되고 정규직들은 지원해주는 것인 양 만들어져왔던 것을 반성하면서 올해의 임단협에서는 노동법 개악을 현장에서 저지할 수 있도록 단협에서부터 정규직화 쟁취, 노동자들에 대한 해고 저지, 비정규직의 고용형태 다변화에 대한 저지투쟁을 힘있게 할 수 있도록 교육하고 설득하자.
4. 노동법 개악 정세에 대응하는 장기적인 과제
노동법 개악 폐기를 선언하고, 피해를 당하는 당사자들을 모으고 투쟁의 전형을 만들어낸다고 하더라도 전선이 대중적으로 확산되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개악안을 인정하지 않고 폐기투쟁을 위한 시도는 계속되어야 한다. 그것은 비정규직을 정상적 고용형태로 만들려는 자본의 기도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미이며, 이후에 다시 투쟁전선을 재조직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이다. 기간제 법안 시행 후 2년이면 다시 기간제 노동자들에 대한 대량해고가 진행될 것이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권리를 확대하기 위해서 우리 투쟁의 힘으로 다시 전선을 대중적으로 확대할 가능성이 생길 것이다. 그 때를 준비하면서 전선을 유지해야 한다.
그리고 노동권을 ‘우리의 권리’로 구체화하고 기획투쟁을 만들어야 한다. 예를 들어 예전에는 부당해고에 대한 대응이 중요했지만 불안정노동이 확대되면 이제는 해고가 아니라 ‘계약해지’가 일반화된다. 부당해고만이 중요했던 시기에 계약해지는 자본에게 정당성을 부여한다. 하지만 ‘안정된 고용의 권리’는 누구에게나 소중한 권리이고, 안정된 노동권을 훼손하는 ‘계약해지’에 맞서서 우리의 권리를 법제화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원청사용자 책임 인정투쟁이나 노동자 개념의 확대 등도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 기획투쟁을 만들고, 이것으로 새롭게 전선을 형성해야 한다.
또한 노동법 개악 이후 고용형태를 다변화하면서 직무 및 임금과 연계하려는 시도가 많아지고 있는데, ‘직무-임금-고용형태’의 연결에 대해서는 노동운동진영의 세심한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다. 자본가들이 계속 주장하고 있는 바 ‘직무급제로의 전환’이 자칫 노동자 사이의 위계를 직무의 분리라는 방식으로 고착화하고, 여기에 다양한 고용형태를 대입하여 고용형태 사이의 위계를 부채질할 수 있는데, 이런 논리에 맞서는 대응이 계획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위계화에 대한 저항이 필요하다. 특히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공동투쟁, 그리고 비정규직의 고용형태를 넘나드는 투쟁을 조직하는 것이 중요하다. 직접고용과 간접고용의 분리, 간접고용에서도 1차와 2차 사이에, 특수고용 중에서도 위장자영인과 비공식부문 노동자 사이에 가로놓인 분리의 선을 걷어내고 전체 노동자의 위계에 맞서는 투쟁의 과제를 도출해야 한다. 이후 민주노조운동은 노동자 내부의 위계를 넘어서는 연대의 틀을 만드는 데에 힘을 쏟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