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의 월간지 현장에서 미래를

[108호] 산별노조 발상의 전환을 제안한다

특집/ 노동운동 출구를 찾자(2)

산별노조 발상의 전환을 제안한다.

이은숙 / 한노정연 부소장, 편집출판위원장


특집: 노동운동 출구를 찾자(2)
산별노조 발상의 전환을 제안한다


노동운동은 지난 1990년 전국노동조합협의회 출범부터 해서 지금까지 15년 동안 ‘강력한 투쟁체로서의 산별노조 건설’을 과제로 내걸고 산별노조를 추진해왔다. 현재 민주노총 산하 연맹들에서는 조직발전 전망으로서 산별노조가 이제 눈 앞에 한층 가까이 다가온 것처럼 보인다. 어찌됐건 이미 45%에 가까운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산별노조에 속해 있는 상태다. 그동안 수많은 쟁점 속에서 민주노총 산하 연맹들에서는 실제 ‘산별노조’를 건설해오고 있다. 2000년 병원연맹이 보건의료노조를 띄운 것을 시발로 하여 2001년에는 금속연맹에서 금속노조를 띄웠고 그보다 훨씬 앞서서 ‘산별’을 지향하며 ‘과학기술노조’가 탄생하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도 그러한 ‘앞선 경험들’ 속에서 민주노총 각 연맹들에서는 ‘산별노조’가 지향되고 있다. 특히 올 들어서는 공공연맹이 병원, 금속에 이어 ‘산별노조’를 내년 말까지 띄우겠다는 일정 속에 구체적인 경로논의를 본격화하고 있다. 그런데 그간 건설된 민주노총 산하 조직들에서의 ‘산별노조’들과 ‘산별노조’ 건설 추진은 심각하게 재검토되어야 할 문제들이 있다.


1. 15년 동안 빛바랜 ‘산별노조’

지난 1990년 전노협 출범 시 창립선언에서 노동자계급이 ‘산별노조 건설’ 의지를 밝힌 뒤로 15년이 지났다. 몇몇 연맹에서는 산별노조를 건설했고 또 공공연맹에서 또 ‘하나’의 산별노조가 예고되고 있는 지금 산별노조가 현 정세 속에서 그 어느 때보다도 한껏 앞으로 다가서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제는 현장에서 적어도 1990년대까지는 유지돼 왔던 산별노조에 대한 기대감 같은 것이 거의 사그라들고 맥이 빠져 있는 모습들이다. 무엇보다도 큰 이유는 그동안 현장에서 지향해온 산별노조의 상이 그동안의 산별노조 추진 과정들 속에서 점점 빛이 바래온 탓이 아닌가 한다.
15년 전 전노협 창립 당시 그리고 그로부터 10여년 동안 노동자들이 현장에서 지향해온 산별노조는 지금 건설되어 있거나 추진 중인 산별노조들과 같은 것이었는가? 라는 질문에서부터 그 답을 찾아야 할 것 같다.

“기업별 장벽을 넘어, 지역과 업종을 넘어”

산별노조를 결성하고자 했던 초기의 상황은 그대로 투쟁의 산물이었다. 1987년 7~9월 물밀 듯 터져나왔던 “장시간-저임금 철폐”로 모아진 노동자 착취와 억압에 대한 투쟁은, 당시 기업별로 묶여 있던 굴종과 침묵을 깨고, 지역과 전국 단위의 연대로 거침없이 나아갔다. 이러한 투쟁 속에서 조직화의 물결 역시 지역을 골간으로 한 전국 조직으로 이어졌으며 그것이 각 지노협과 전노협이었다. 그것이 지역지부-전국노조로 발전하는 것이 결국은 전노협 운동을 통하여 당시 노동자계급이 열망했던 산별노조의 기본 구상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투쟁을 통해 지역-전국의 연대와 단결을 이루어낸 상태였지만, 조직체는 ‘협의회’ 수준에 머물렀기 때문에 전노협 당시 조직이 명칭 그대로 ‘협의회’ 수준에서 더욱 진전될 수 없었던 것은 당시 조직발전 논쟁과 노동운동 위기논쟁 속에서 일단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요인은 당시 전노협 창립 시 전노협 바깥에 있었던 각 업종연맹(혹은 협의회)들 및 그 대표자들의 협의체로서의 ‘전국업종노조대표자협의회’ 구성, 나아가 이들에 의해 또다른 노조 협의체로서의 ‘전국업종노조회의’(업종회의) 구성이다. 전노협 당시의 조발논의 과정 및 전노협 6년의 기간 동안 전노협과 업종회의는 투쟁에서 사안별 연대 수준에 머물렀고 조직통합은 끝내 이루지 못한 채 전노협 해산과 민주노총 창립으로 이어지게 된다. 당시 조발논쟁과 노동운동 위기논쟁에 대해서는 “산별노조운동의 역사와 현재”, 도서출판 현장에서미래를, 2003을 참조할 것.
투쟁에 걸맞는 조직으로서의 전국적인 단일 조직체를 건설하는 것이 주된 과제였다는 것이다. 이 조직적 과제는 전노협 6년 동안에 미해결된 미완의 과제로서 민주노총으로 바톤 터치 되었다. 전노협 해산 이후 창립된 민주노총은 지역을 한 축으로 하고 다른 한 축으로 업종(산별)을 두는 체계로 조직을 구성하였다. 그리고 나서 이제 꽉 채운 10년, 그동안 업종(산별)연맹을 축으로 한 산별노조건설이 추진되었고, 지금도 진행 중이다.

무엇보다도 그간의 민주노조운동 전개 과정에서 퇴색되어 온 것은 지역을 골간으로 한 노동자 내부연대와 단결의 문제이다. “기업별 장벽을 넘어, 지역과 업종을 넘어” 민주노총으로 모두 모였고, 그럼으로써 ‘기업별 노조의 장벽을 깨고 산별노조를 건설’ 하려고 했지만, 민주노총의 골간 체계는 이미 재정과 조합원에 대한 직접적 조직력을 지닌 업종(산별) 연맹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업종별 연맹체계에 갇히게 된 ‘전국성’

이점이 ‘산별노조’ 조직화와 관련한, 지역을 골간으로 한 ‘전국성’의 문제가 뒷전으로 밀리게 된 정황이다. 민주노조운동에서 1990년대 중반 이후 ‘지역’의 개념은 거의 사라지다시피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3년~2004년 동안 경제특구저지투쟁과 지역 사회복지 쟁취 투쟁을 지역차원에서 벌여낸 경기지역, 그리고 최근에는 충북지역 등 몇몇 지역을 제외하면 실제로 ‘지역’의 투쟁력이나 조직력은 매말라서 갈라터질 만큼 가물어 있는 실정이다. ‘지역’을 중심으로 한 투쟁과 연대를 일상적으로 조직할 수 있는 조직체계는 민주노총의 지역본부들일텐데, 이 지역본부들이 실제로 움직일 수 있는 기반은 지역 차원의 사업을 최우선시할 수 있는 재정과 조직력에서 나온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지역조직들의 실상을 보면 다 아는 사실이지만 실제로 취약한 재정에 허덕이고 있다. 민주노총 ‘합법화’의 너울 속에서 정부의 지원을 받아 사무실 공간을 확보하는 것으로 지역이 유지되고 있는 것이 현실 아닌가.
전국성이라는 것은 지역의 조직력과 투쟁력을 기반으로 하여야 발휘될 수 있는데, 지역의 동력이 이렇게 쇠락해서야 전국성이 제대로 서기 어려운 것은 정한 이치다.
대부분의 연맹들이 지역을 가지고 있고 그 결과가 연맹별 전국성일 터이다. 결국 각 연맹별로 골간이 서 있고 그것을 형식적으로 포괄하는 자리에 민주노총의 지역본부가 서 있는 것이 현실이다.

업종별-연맹별 울타리의 강화 결과 자본별-기업별 장벽의 심화

그렇게 해서 기업별, 지역-업종별 울타리 넘어 질적으로 새로운 노조운동을 꿈꾸었던 민주노총의 운동에서 이제는 조직 차원에서는 지역이 옥상옥처럼 되어버린 지 오래다. 이런 상황에서는 각 지역의 비정규직이 조직으로 설 수 있는 계제가 나오지 않는다. 이것이 민주노총이 “비정규직 조직화”를 주요한 과제로 설정한 지 오래지만 잘 안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노동운동이 제대로 커나가라고 정권과 자본이 내버려두는 것이 전혀 아닌, 따라서 날이 갈수록 정권과 자본의 노동운동에 대한 공격은 날카로운 송곳처럼 파고드는 현실 정세가 엄연한 것이다. 연맹별 체계가 공고화되어 가면서, 그리고 현실 정세에서 벌어지는 자본과 정권의 각종 공세들 속에서, 노조운동은 기존의 노동조건을 지켜내기에도 바쁜 처지에 빠지게 되었다. 비정규직이 늘어나고 있고 정규직이 비정규직화 되어가고 있는 것을 뻔히 보면서도 비정규직과의 연대투쟁을 조직할 수 없게 되는 상황이 바로 그것이다. 이 결과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연대투쟁은 고사하고 정규직간에도 서로 자본의 눈치를 보아가며 싸워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러한 과정은 저 1997년 경제위기를 기화로 폭발적으로 전개된 ‘4대부문 구조조정’ 과정을 거치면서 전면화되었으며, 그 과정 속에서 노동조합운동은 한편으로는 자본의 본질이 노동자와는 완전히 적대적인 관계라는 것을 알게 됨과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신자유주의와 자본에 의한 구조조정의 광풍에 대하여 두려움을 갖게 되었다. “고용불안”에 대해, 그리고 “산업공동화” 운운하는 논리들에 대해, 한 발자욱도 앞으로 나가지 못한 채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이 5년 이상 지속되었다.
그 속에서 연맹별 울타리는 강화되고, 즉 연맹별 각개전투 양상이 더 심화되고, 연맹들 내부를 들여다보면 또 각 기업별 울타리가 강화되는 과정이 그렇게 계속되었다.

그러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달랐다. 마치 현재의 정규직 노동자들이 1987년 이전에 숨죽이고 있었던 것처럼 눌려 있다가 2000년을 지나면서 지금까지 정규직들과는 달리 전국에서 투쟁의 주역이 되고 있다. 하지만 1987년 당시 정규직들이 사업장 단위로 노동조합을 결성하면서 지역-전국으로 조직화를 이어나갈 수 있었던 것과는 달리 비정규직의 조직화가 그렇게 들불처럼 일어날 수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비정규직의 조직화 과정이 꼭 정규직 조직화 과정과 같아야만 한다는 법이 없기도 하지만, 현재의 노동자 대중운동 지형에서는 아직도 비정규직의 조직화는 첩첩산중의 오솔길과 같은 상황이다. 이번 울산플랜트 투쟁에서도 나타났지만 최근 수년 동안 비정규직 노동자 투쟁 속에서 드러난 특징은, 투쟁이 시작되면 매우 폭발적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그러한 투쟁들에 대하여 권력과 자본의 대응도 여지를 두지 않는 강경진압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규직은 ‘노조의 비리’라는 올가미에 착 걸려들어 자정을 요구받는 처지로 전락, 비정규직 투쟁과의 연대를 위한 기본동력마저 위협을 받고 있다.
지금은 비정규직과 정규직이 하나의 대오를 이루어 내는 것이 대중운동 최대의 과제가 되어 있다. 현 시점에서 산별노조 추진은 새로이 발상을 전환할 것을 요청받고 있다.

민주노총 산하 조직 가운데 처음부터 단일노조로서 출범한 전교조를 예외로 한다면, 연맹으로 조직되어 있던 단위 사업장 노조들을 기반으로 하여 산별노조를 추진해온 조직들에서는 아직까지도 기업별 울타리는 완강하고도 도도하게 남아 있다. 사업장 규모가 클수록 그 정도는 심하다.
지금(이라고 할 때는 1987년 투쟁의 연장선에서 2005년 지금을 말한다) 한국에서 산별노의 원형으로 놓을 수 있다면 전교조밖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전교조의 사례는 다른 부문이나 업종들에서 전혀 일반화되고 있지 못하다. 전교조와 달리 작든 크든 기업별노조로 조직되고 그 산별(업종별)연맹체 속에서 산별단일노조를 지향하며 단일노조를 건설한 경우인 과학기술노조를 필두로 한 단일노조들은 여전히 사업장간 장벽을 실감하고 있으며 오히려 기업장벽에다가 업종장벽까지 겹치기로 쌓여 있는 상태다.

‘투쟁성’은 어디로 가고 투쟁의 개념까지 바뀌나?

다음, 투쟁성 문제다. ‘강력한 투쟁’을 위해 산별노조가 필요하다는 데까지는 것은 누구나가 동감하고 내세운 과제였다. 그러나 조직건설과 투쟁이 ‘전국’ 수준에서 함께 간 적은 근 10년 동안 한번도 없었다.

‘산별조직건설’을 앞세우다 못해 정세와 맞물려 진행되고 있던 투쟁들과는 별도로 ‘산별노조건설투쟁’을 배치하고 일정을 때려 박아 그나마 ‘연맹’으로서 수행해야 하고 할 수 있었던 투쟁조차 일구어내지 못한 98~2000년의 금속연맹의 투쟁 경험, 일상투쟁으로부터 산별건설투쟁까지 전통 교과서적으로 ‘조합’운동을 전개한 병원연맹과 의료산업노조의 경험, 사업장노조통합 단일노조를 건설했지만 정부의 예산제약과 성과주의의 그물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사업장간 벽을 허물지 못하고 있는 소업종단일노조들의 경험이 현실 노조운동의 또 하나의 현실을 구성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기업별단위노조→업종노조→산별노조’라는 단계적 경로 설정 속에서 오히려 업종간 장벽의 강화로 인해 ‘산별’연맹이 오히려 내부적으로 더욱 분해되어 기력을 상실하는 과정이 아니었는가.
다른 한편으로는 노조운동에도 연륜이 쌓이면서 조직 체계가 정비되는 등의 성과(?)가 축적되었지만 노동조합이 운동체로서 내부 주체의 역동성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부조직질서를 통해 하부조직을 관리통제하고자 하는 경향도 드러났다.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격차를 오히려 자본측이 걱정(?)하는 수준에 이르렀고, 노동자들 간에는 정규직-비정규직간, 대-소 규모 사업장 노동자들 간의 앙금과 격차가 굵어져온 15년이었다.

자본측이 학수고대할 덩치 큰 종이호랑이

이러한 수많은 문제들을 어디서부터 풀어나가야 할 것인가에 대하여 현장의 활동가들은 심각한 고민에 휩싸여 있다. 정세가 노동자에게 유리한 때라면 큰 투쟁 한방으로 이러한 고민들이 한꺼번에 해결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실 정세는 암울하고 앞은 보이지 않는 대단히 수세적인 때가 아닌가.
이러한 현실에서 민주노총은 ‘사회적 교섭’을 통해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고 믿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작년과 올해를 통하여 거듭 드러나고 있듯이 자본측은 ‘아쉬울 것 없다’는 태도로 노동조합운동에 대하여 계속하여 그물을 던지고 있다. 이미 수년 전부터 내사에 들어가 자료를 쥐고 있었다는 ‘노조 비리’들의 사건화 시점이 왜 하필 요즘인가에 대해서만 생각해 보아도 자본측이 얼마나 현재의 노조운동에 대하여 자신만만해 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문제와 오류를 인정하고 근본적으로 무엇이 잘못돼 있는지를 찾아내 거기에서부터 새로이 출발하는 수밖에는 없지 않은가. 그저 이대로 가다가는 노조 조직이 노동자의 계급적 무기가 아니라 자본의 계급적 무기로 완전히 전락하는 것도 시간문제다.

특히 현 정세를 돌파할 하나의 돌파구로서 산별노조 조직건설이 최후의 배수진처럼 여겨지는 기류도 흐르고 있다. 2007년 전임자임금지급 금지와 단위사업장 복수노조 허용에 관한 노동관련법 조항들이 적용되는 시기가 다가오면서, 지금 산별노조로 가지 않으면 모두 죽는다는 위기의식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최근의 ‘산별건설’ 논의가 그동안 드러나고 지적된 문제들을 그대로 온존한 채 산별노조로 전환되는 것이 더 큰 문제이다. 바로 그러한 조직전환을 자본측은 학수고대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덩치 큰 종이호랑이보다 더 ‘사회적 교섭’ 테이블에서 자본측에게 유용한 것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까지 15년 동안 드러난 문제들을 본격적으로 풀어나가는 발본적 과정이기보다는 ‘단위사업장까지 복수노조 허용,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 관련법이 시행되기로 되어 있는 2007년 시한이라는 강력한 노동정세의 압박을 기화로 구태의연한 기존의 흐름을 정당화 해서는 결코 안된다.

더욱이 ‘산별노조가 만들어지면 비정규-미조직노동자를 조직할 수 있고, 그 결과 조직률 하락을 방어할 수 있고, 그 결과 노동자의 계급적 단결력이 강화될 수 있고, 투쟁도 힘 있게 할 수 있고, 그래서 산업공동화도 막을 수 있고, 고용불안도 막을 수 있고, 노동조건도 향상시킬 수 있을 뿐 아니라 사회적 의제들에 대한 투쟁도 벌일 수 있고…’ 등등의 기대감은 이제 더 이상 신선한 허풍도 아니게 되었다. 구태의연한 허풍으로서 둥둥 떠다니게 된 현실이다. 비정규직은 투쟁 속에서 스스로 조직화하고 있다. 노조운동은 비정규직 투쟁을 제대로 엄호조차 못하고 있는 현실인 것이다.


2. 이것이 산별노조다

“산업별로 조직되는 것이 산별노조 아닙니까?”

그렇다면 현재 ‘산별노조’를 둘러싸고 가장 핵심적인 재검토와 심각한 혁신의 지점은 무엇인가? 무엇보다도 근본적인 문제는 ‘산별노조’에 대한 상이 불분명하다는 점을 짚어야 할 것이다.
현 시기의 산별노조 건설투쟁은 산별노조의 상에 대해 기존 인식틀을 깨고 심각하게 재검토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산별노조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하는 질문을 받으면 여러분은 어떻게 대답하겠는가? 대개는 “산업별로 뭉치는 노동조합 아닙니까?” 라고 대답하거나, 활동가들일수록 “당연한 걸 왜 이런 질문을 한다지?” 하며 거꾸로 질문자의 질문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뜸을 들인다. 그러고선 “계급적 노동운동을 하기 위해서”라든가 “전국적인 전선을 치기 위해서”라든가, 산별노조에 대한 답을 요구하는데 산별노조를 만들고 난 다음에 뭘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뜬구름잡기식의 대답이 흘러나오기 일쑤다. 바로 산별노조에 대한 상이 불분명한 탓이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은 어떤가? 현재 한국에 산별노조가 있는가? 현재 ‘산별노조’를 추진하고 있는 노조조직들이 구상하고 있는 ‘산별노조’는 과연 산별노조인가?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는 동지들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모두 ‘업종노조’이거나 단순 ‘통합노조’들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산별노조라고 애써 생각하려고 변호하더라도 뭔가 미진하다고 단서를 달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산별노조’에 대한 일치된 상은 물론 있다. 바로 ‘계급적 단결과 투쟁의 구심체’라는 누구나가 공감하는 산별노조의 상이다.

그러나 지금의 실태는 어떤가? ‘미조직, 비정규직 노동자 조직화’라는 과제를 내걸고 조직률하락을 방어하고 ‘계급적 단결과 투쟁의 구심’이 되고자 했던, 그 바램은 나날이 퇴색하고 있다. 비정규-미조직 노동자 등 광범위한 불안정 노동자층을 그 ‘산별노조’들이 포괄하지 못하면서 지향은 ‘계급적 단결의 구심’이었지만 ‘불안정 노동자층’의 조직화에 현저한 한계를 드러냄과 동시에 ‘산별노조’가 조직적으로는 각 ‘업종적 특성’을 더욱 강화시키면서 전반적으로 ‘노동자계급 총단결’로부터는 나날이 멀어져 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왜 이렇게 되어왔던 것일까? 산별노조에 대한 잘못된 개념, 더욱이 그러한 잘못된 개념에 입각한 상에 근거했기 때문이다. 허상을 쫓아서 조직을 세우려고 하니 모래 위에 집짓는 격이 아닐 수 없다.

너무나 애매한 ‘산업’이라는 구획

‘산별노조’는 그 이름에 ‘산업’이 들어간 탓인지 그동안의 산별노조 논의에서는 ‘산업’별 구획이 아주 당연한 것처럼 취급되어 왔다. 그러나, ‘산업’이라는 것은 당초 애매한 구획이다. 1차산업, 2차산업, 3차산업 등으로 말할 때도 ‘산업’이요, 금속산업, 정보통신산업 등으로 쓰일 때도 ‘산업’이다. 온갖 직종과 업종이 거의 모두 어우러져야만 하는 건설 쪽에 대고도 건설산업이라고 하고, 예를 들어 건설산업에 포함돼 있는 목재 등에 대해서도 목재산업이라고 쓸 수 있다. 한마디로 말해서 어디건 붙일 수 있는 것이 산업이고 언제든 업종이라고 고쳐부를 수 있는 것이 또한 산업이다. 자동차산업, 조선산업, 설탕산업, 의류산업 등등이 대표적으로 완성품을 중심으로 한 업종 개념의 산업이다. 반대로 부품산업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게다가 자본주의가 발전할수록 그 산업이라는 것도 다종다양하게 확대되어 이제는 산업 아닌 것이 없을 지경이다. 이렇게 산업이라는 개념이 애매하다 보니 산업별 구획이라는 것도 대단히 애매하고 불안정하다. 산업이라고 불리우는 업종들의 경우엔 언제든 자본이 더 이상 지배적으로 투자되지 않게 될 때는 없어져 버리기도 한다.

무엇을 산업이라고 하고 그 산업에 따라 그 산업별로 산업별 노조를 만든다는 것인지에 대해 그동안 너무 당연시하고 더 이상 그 점에 대해서는 논의조차 없었던 것이 현재의 편의적 구획에 따른 산업업종별 노조(연맹)체계이다.

산별노조를 왜 ‘계급적 조직’이라고 하는가?

사실, 노조운동의 발전사를 따져 보면, 노동운동은 산업이건 업종이건 상관 없이 가까이 연대할 수 있는 친밀성 높은 조직들의 집합체였지 그것이 무슨 엄밀한 구획에 의거한 것은 아니었다.

게다가 또한 역사상 애초에 ‘산업별노조운동’이라고 전해내려오는 것은 실상 19세기 말부터의 기계제 대공업의 발흥기에 출범했던 노조운동의 흐름이라고 하는 것이 합당하다. 사실상 토지를 축으로 해서 자연물에 대한 노동과 농업밖에 없었다가 상업이 등장하고 발전했던 시기의 봉건제를 벗어나 자본주의로 이행할 때, 이른바 ‘산업자본가’와 ‘산업’이 출현했고 자본주의가 전일화되면서 모든 것이 ‘산업화’ 되었던 점을 생각할 때, 결국 ‘산업’이라는 것은 자본주의적으로 경영되는 모든 ‘자본주의적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조직체’들이라고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산별노조’라는 것은 실상 ‘자본주의 산업 전체’를 포괄하는 개념이고, 그렇기 때문에 바로, ‘산별노조’는 ‘계급적 조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흔히 산별노조에 대해 ‘계급성’ ‘투쟁성’ ‘전국성’ ‘자주성’을 요건으로 한다고 말하는 것도 바로 이와 같이 ‘산업’을 자본주의의 각 업종들을 통틀어서 놓고 볼 때 성립되는 개념들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오늘날 현대의 노동자계급이 ‘산별노조’라고 말을 할 때는 그점이 누락돼 있다. 그리고, 자본측은 더더욱 그러한 산업의 개념에 대해 누락시키고 있다.

현대의 자본주의의 전개를 보면, 아마도 자본주의가 망하지 않는 이상 계속 남아 있을 분야는 ‘공공부문’일 것이다. 그들이 지배를 위해 언제나 유지보수해야 하는 분야가 그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공공연맹이 있고 공공‘대산별’을 조직하겠다고 하고 있을 때, 공공부문이 흔히 말하는 ‘산업’인가? 거꾸로 질문해볼 일이다.


3. 업종-산별 구획을 넘어 ‘전국 민주노조’로 나가자!

이와 같이 ‘산별노조’에 대한 개념과 상을 전면 재검토한다면, 그런 의미에서 노동조합 조직의 최고 발전태인 산별노조는 당연히 자본주의와 자본가계급에 맞대응할 수 있는 조직체일 것이다. 그 조직의 상은, 현재의 전체 노동자를 하나로 묶어세울 수 있는 조직일 것이다. 말할 필요도 없이, 현재의 업종별 구획들을 털어내서 단 하나의 노동조합으로 대대적으로 조직해 나가는 것만이 진정한 산별노조를 실현할 수 있는 방안이다.
그동안의 노동자 투쟁과정에서 일구어온 성과를 이어 받고 이후의 투쟁과정을 이끌고 노동자계급의 계급적 전망을 일구어나갈 대중조직이 바로 산별노조라고 할 때, 그러한 산별노조는 자본측의 산업내지 업종 구획과 일선을 그어내면서 조직되어야 하고, 그럼으로써 자본과의 강제된 동거, ‘고용안정’이라는 쇠그물로 쳐진 ‘생존의 덫’을 끊어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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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 노동조합 , 노동운동 , 산별노조 , 계급조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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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원노조들은 1998년에 산별노조로 전환하였습니다. 이점 바로 잡아주시길...
    그리고 보건의료노조의 요즘 모습이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2000년을 전후하여 그렇게 바뀐 것이고... 특히 병원연맹 시절 96-97년 노개투 투쟁에도 선도적으로 참여한 바 있습니다. "일상투쟁으로부터 산별건설투쟁까지 전통 교과서적으로 ‘조합’운동을 전개한 병원연맹과 의료산업노조의 경험" 이런 표현은 좀 과하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