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힘
이영민 / 철도 노동자
일상의 힘
연정
노아무개가 연정을 품었나 보다. 한나라당, 민주노동당, 민주당 가리지 않고 연정을 하고 싶다 한다. 연정이라는 것은 마음속으로 은근히 좋아하는 것이다. 누구든 알 수 있게 추파를 막 던지면 그것은 연정이 아니고 주책이라는 것이다. 나도 남들 몰래 연정을 품은 일이 많지만 한 번도 그걸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정치생명이랄 것도 없지만 “그 놈 고집하나로 먹고 살더니 이제는 다 되었네. 주책을 떨기나 하고.” 비난밖에 들을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기야 노아무개가 벌써부터 주책바가지가 된지는 오래 되었다. 처음에는 조선일보를 죽도록 미워했다. 온 동네 사람들이 다 알도록 떠들었다. “조선일보하고 절대 타협 안한다. 두고 봐라. 내 언제 한번 아주 절단을 내고야 말지.” 그 바람에 조선일보 사촌인 중앙, 동아일보도 약간 움찔하려고 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이런 식으로 추파를 던지고 있다. “내가 약간 오해를 했나 봐요. 나 그렇게 나쁜 사람 아니에요. 그렇게 위험한 사람도 아니에요. 지난 일은 다 내 잘못이니 지금부터 술도 한잔씩 하며 사이좋게 지내 보자구요.”
노아무개는 이제 3김씨 못지않은 정치력도 갖추었다. 하나 하면 하나요, 둘이면 둘이요. 그이상은 나도 몰라. 하던 태도에서 “노아무개의 의중을 기중 잘 아는” ‘거꾸로 읽는 (정치의) 세계’ 저자이기도 한 유아무개 의원이 “대통령의 뜻은 개헌에 있는 게 아니라 연정”이라고 간접화법을 능숙하게 구사할 수 있게도 되었다. 그러자 “아하, 그렇구나. 그게 바로 그런 뜻이었구먼.” 하면서 마지막 맞선을 본 노처녀처럼(노총각도 있을 수 있겠다. 이런 사족을 달지 않으면 벌떼처럼 공격을 받을 것이다. 여성운동을 하는 동지들에게) 가슴 설레는 사람들도 있다. 이거 참, 주책바가지에 늦바람난 노처녀, 노총각 꼴이다. 그런데 그게 바로 한국노총까지 나서서 노아무개하고 한판 붙어 보겠다고 벼르는 시기에, 명색이 노동자 민중의 대표정당이 그런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연정은 신중하게 품어야 할 것 같다. 칠십 노인네가 되어 ‘죽어도 좋아’ 식의 마구잡이라면 모르되 이런 식이면 노아무개의 정치생명만 더 빨리 끝장날 것 같다. 또라이 소리를 들어도 노빠는 노빠이어야 한다. 한다면 하고, 안한다면 물론 안하고, 하고 싶은 소리는 세상없어도 하고야 마는, 그거 하나로 대통령까지 된 사람이 아닌가? 그런데 이제 와서 조선일보도 좋다. 한나라당도 좋다. 세상의 아무 여자라도 좋으니(노아무개가 남자라서 하는 말이지, 여성을 꼭 지칭하고 싶어서 하는 말은 아니다.) 다 덤벼라. 이런 식이면 망령 났다 소리를 듣기 꼭 알맞지 않으냐? 우리 노동운동이 노아무개를 타산지석으로 삼았으면 좋겠다. 그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으려다 노동자들에게 버림받는 바보같은 노동운동이 되지 말아야 하겠다.
신발
일일주점 표를 사러 갔더니 마침 연좌농성을 하고 있다. 몸싸움이라면 무조건 도망치는 체질이지만 사람이 넷밖에 없어 끼어 앉았다. 도망쳐서 소문나느니 차라리 몇 대 맞기로 작정 한 것이다. 다행히 때리지는 않아서, 그냥 죽치고 앉아 있는데 신발이 눈에 들어온다. “이거 신발이 주인 닮았네. 아주 다 되었어.” 후배 앞에서 한탄하니 “몇 년 신었는데 그래요?” “삼년밖에 안되었는데….” “에이, 삼년이면 바꿀 때도 되었구만.” “신발은 바꾸면 그만이지만 주인은 아주 다 되었네.” 가만 보니 신발 닳은 모양이 희한하다. 뒤축이 비뚤어진 거야 팔자걸음이니 그렇다 치고, 신발 바깥쪽 모서리만 껍질이 벗겨지고 있는 것이다. 아예 벗어들고 요리조리 살펴보니 얼씨구, 신발 안쪽도 발 날이 닿는 곳만 구멍이 나려 한다. “지겨워, 허구헌날 연좌농성이나 하니 신발도 이 모양일세.” 한탄하다 보니 관리자들이 어이가 없는 표정으로 내려다보고 있다. 어이가 없다는 건지, 한심하다는 건지. 대중은 어디 두고 몇몇이 농성하는 이 꼴이 심히 한심스러워 한숨만 쉬다 왔다.
투쟁을 쫓아 헤매는 하이에나?
인력개발원에 쫓아가 데모를 하였다. 해고자, 새마을호 여승무원, 철도 순직유가족이 특채시험을 보는데 적성검사를 보게 되었다. 요식행위로 치를 줄 알았더니 덜컥 네 명을 떨어뜨렸다. 적성검사에서 떨어지면 일단 재검사를 받는다. 재검에서도 떨어지면 특채도 탈락이다. 요령 없는 적성검사관이 성적에 따라 탈락처리하고, 정치력 없는, 그래서 도의적 책임을 져야 하는 원장이 곧이곧대로 보고하고, 본사의 실무자는 “그럼 낙방이지 뭐.” 손발 맞춰 탈락 처리했다.
하여간 관료주의, 탁상행정의 표본이라 할 수 있다. 즉결처분을 해야지, 관료주의에는 즉결처분으로 맞서는 게 약이다. 스스로 알아서 고치는 관료주의란 없다. 플래카드를 맞추고, 피켓을 쓰고, 앞뒤 가리지 않고 인력개발원 운동장에 방송차를 들이댄 다음, 노래를 틀고 방송을 때렸다. “공사와 인력개발원이 산재사고로 돌아가신 동료를 두 번 죽이고 있습니다. 여러분!” “철도에는 한해 20여명의 동료가 산재로 세상을 떠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당직 근무자가 헐레벌떡 뛰어왔다. 그런데 이 사람은 옛날에 함께 차를 타던 선배 기관사 출신이다. “죽은 사람이 형 후배요, 이거 이런 식으로 유족들 생존권을 박살내도 되는 겁니까?” “그러게 말이네. 그런데 밥이나 먹고 데모하는 건가?” 선배는 1분 만에 되돌아갔다. 그 다음에는 부장, 처장들이 줄줄이 나오고 마침내 원장까지 나와서 사정한다. “동네 아파트에서 아침잠 다 깨웠다고 전화 옵니다. 볼륨을 좀 줄여 주시면.” “교육생들이 면학분위기가 흐려진다고 원망합니다.” 이거 반응이 보통이 아니다. 더 신이 나서 떠들었다가 목이 완전히 가버렸다.
현대 중공업 같았으면 어디가 부러졌어도 부러졌으리. 이런 생각도 나고, 인력개발원은 데모가 처음이니 참 엉성하기도 하네. 상대가 한심하기도 하고. 역시 나는 투사인가봐. 조금 떠들었다고 줄줄이 기어 나오네. 엉뚱한 영웅심리에 젖기도 하다가 지방본부에 돌아왔다. 후배간부가 웃는다. “형, 투쟁을 찾아 헤매는 하이에나요? 왜 교육원까지 가서 데모를 해요?” “투쟁을 찾아 헤매는 하이에나”라고? 별로 기분 나쁜 표현은 아닌 것 같다.
개 두 마리
개 두 마리를 키우고 있다. 큰놈은 다 컸다. 스피츠 변종이다. 작은 놈은 한참 크고 있다. 혈통이 모호한(토종개도 아니고 그렇다고 족보있는 개의 후손도 아니다.) 작은 놈은 벌써 큰놈의 두 배쯤 되는 덩치이다. 이놈들 둘이 참 희한한 습관을 가졌다. 낮에는 에어컨 밑에서 온종일 잔다. 밤에는 온 동네를 썰썰거리며 돌아다닌다. 놀다가 마려우면 아무데나 똥을 내갈기는 모양이다. 동네 할머니가 사무실까지 쳐들어와서 엄포를 놓고 갔다. 사무실 밖에서 소리친 것은 헤아릴 수 없다. 개를 매두어라. 지겨워 못산다. 한번만 더 그러면 잡아먹는다. 견디다 못한 후배가 마주 고함을 쳤다. 할매, 동네에 개가 얼만데 우리 개만 가지고 그러느냐. 우리 개가 할매 집 앞에 똥 싸는 거 본적이 있냐? 말 못하는 개라고 너무 그러지 마라. 후배하고 할매하고 치졸한 싸움을 계속 했다. 거리는 이십미터쯤, 마주보며 고함으로 싸우는 것이다. 이거 개들 때문에 쌈 나겠네. 회의를 열었다. 묶어두자. 아니다 불쌍하다. 그러면 밤에만 묶어두자. 밤에 대문 단속만 잘하면 된다. 중요한 문제는 제꺽제꺽 결정을 하는데 개를 묶느냐 마느냐, 모두들 한마디씩 한다. 결론이 나지 않는다.
처음에는 영리한 스피츠가 귀여움을 받았다. 문밖으로 나가 동네에 가서 똥을 누는 탓이다. 작은 놈(덩치로는 더 크지만)은 마려우면 그냥 갈기니까 싸움날 일이 적다. 그래서 요즘은 작은 놈이 귀여움을 받는다. 개들 처지도 새옹지마라는 생각이 들었다.
폐지
지방본부에 폐지가 많이 나온다. 신문, 유인물, 포스터…. 이것을 허리가 구십도로 굽은 할머니가 매일처럼 가지러 온다. 하루는 할머니가 음료수를 사들고 왔다. “할머니, 폐지 팔아 몇 푼이나 번다고 이런 걸 가져와요.” “아이구, 사장님, 지난번에 어떤 늙은이가 종이를 다 가져갔지요. 그거 꼭 저를 주세요.” 몇 번이고 허리를 굽신거린다. “알았으니까 이런 거 사오지 마세요.” “사장님, 이 늙은이가 이거 팔아서 월세도 내야하고…. 꼭 좀 부탁합니다.” 계속 굽은 허리를 굽신거리고, 머리를 조아린다. 드런 놈의 세상이다. 노인들끼리 폐지를 놓고 생존경쟁을 해야 하고, 막내아들이나 손자뻘 되는 젊은 것들에게 머리를 조아려야 사는 세상이다. 나는 늙어서 젊은 것들에게 머리를 조아리지 않을 수 있을까, 할머니를 볼 때마다 우울한 생각이 든다.
고기 또는 개고기
될 수 있으면 고기를 먹지 않기로 했다. 원래 맛있어서 먹는 게 아니고 끼니를 귀찮아하는 성격이다. 내가 몇 백 년을 살겠다고 남의 살을 먹으며 살아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막상 그렇게 마음먹고 나니 고기 맛이 옛날 맛이 아니다. 동생 집에 갔더니 토종개를 삶았다고 자꾸 권한다. 너무 섭섭해 하여 몇 점 집어 먹는데 꼭 체할 것 같은 기분이 되었다. 흑돼지, 한약돼지, 똥돼지, 유황오리, 한방오리…. 온갖 선전을 늘어놓으며 고기를 팔고 있지만 어쩐지 꺼림칙한 기분이다. 선배가 보내주는 불교소식지에 의하면 “가축을 도살할 때 원한을 품고 죽기 때문에 고기에 온갖 독성물질이 생긴다.”고 한다. “고기를 먹으면 성질이 난폭해진다.” “한국 사람은 초식을 많이 해서 장이 길기 때문에, 고기를 많이 먹으면 독소가 발생하여 암에 걸릴 확률도 높다.” 한다. 고기를 거의 먹지 않은 게 한 달이 넘었다. 성질이 많이 누그러졌을 테지, 기대를 하였다. 그런데 엊그제 횡단보도를 건너다가 파란불에 휙 지나치는 자동차를 만났다. “에라, 이 드런 놈아….” 순간적으로 손에 쥐고 있던 담배곽을 자동차 뒷꽁무니에 집어 던졌다. 그럼 그렇지, 니가 고기 좀 안먹었다고 성질이 순해져? 노동조합을 계속 하는 한, 성질 순해지기는 틀린 것 같다는 게 내 결론이다.
선배
선배가 은퇴를 했다. 신세를 많이 진 선배이다. 내가 가장 힘들던 시절, 철도가 가장 힘겹던 때에 지원연대를 만들고자 동분서주한 사람이다. 포기하려다가 도리가 아닌 것 같아 포기를 하지 못하게 한 사람, 그때는 속으로 은근히 원망스러웠다. 왜, 사람에게 신세를 지게 만드나. 신세를 지면 언젠가는 갚아야 하는 건데.
선배는 나보다도 더 외곬수이다. 한번 꼬부라지면 여간해서는 잘 펴지지 않는 사람이다. 그것 때문에 스스로 마음고생도 많이 했다. 남들 마음고생도 많이 시켰을 것이다. 그 선배가 불교에 마음을 두었으니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운동은 의미 있는 일이지만 외곬수인 그 선배에게는 독으로 작용할 것 같다. 불교는 맺힌 것을 풀어주는 교리를 가지고 있으니 선배에게 잘 맞을 것이다. 선배가 부럽기도 하다. 선배는 자기가 가진 에너지를 최대한 운동에 쏟았던 사람이다. 그러다가 평소에 가고 싶었던 곳으로 가는 것을 보니 보기에도 좋다. 선배는 절에 가서 불목하니 노릇을 하겠다고 한다. 나도 선배가 갔던 길로 따라갔으면 좋겠다.
서비스과잉
철도는 골 때리는 것이, 적자투성이에 문제투성이인데도 매년 서비스 대상을 받고 있다. 능률협회인가 하는 단체에서 주는 상이다. 로비를 잘하니까 상을 주겠지. 뭔가 반대급부가 있으니까 자꾸 대상을 주겠지. 하고 마음 편하게 생각하였다. 사실 철도가 능률협회에 두 번인가 용역을 준 일도 있다. 용역 하니까 생각나는 일인데, 옛날 노민추 시절 연맹에 속한 어느 사업장 동지에게(능률협회는 아니다.) “용역결과를 대강이라도 말해 줄 수 없냐?”고 사정한 일이 있다. “그러면 우리 밥줄 떨어진다.”며 단호하게 거부해 씁쓸하던 기억이 난다. 비애를 느끼기도 하였다. 누구에게나 밥줄은 중요하니까 원망은 하지 않았지만.
요즘은 웬일인지 인천 지하철도 서비스 대상을 받았다. 어떤 단체에서 주었는지는 기억할 수 없지만 더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아침마다 게이트를 지나면 “어서 오십시오. 반갑습니다.” 하며 허리를 구십도로 구부리는 역무원들을 만나는 탓이다. 역무원은 그렇다 치고 죄 없는 공익근무요원까지 어깨띠를 두르고 함께 절을 하고 있다. 참 덜 되어 먹은 수작이라는 생각이 든다. 가끔 교육을 가면 “과잉서비스는 노동자의 인격을 짓밟는 짓이다. 뭐하러 억지로 웃게 하고 절을 시키나. 노동조합이 제대로 되어 먹었으면 그따위 짓을 못하게 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때로는 “손님이라고 사람 같지 않은 놈이 시비를 하면 싸울 수도 있어야 한다. 때리지는 말고 열 받으면 이 빌어먹을 놈아. 이렇게 할 수도 있는 게 아닌가? 다 사람이 하는 일인데.” 하고 과격한 주장을 하기도 한다. 철도에도 새마을이나 케이티엑스를 타면 한결같이 절을 한다. 백화점 개점 때도 그렇고, 고급 음식점(전에 대변인 시절 기자 간담회 하자고 했더니 고급 음식점으로 몰려가던 씁쓸한 기억이 있다.)에서도 그렇다. 노동자가 임금노예일 뿐 아니라 최소한의 자존심이나 존엄성까지 저당 잡히는 것이다. 마땅히 노동조합에서 개입하여 바로 잡아야 할 일이다. 그런 점에서 부산지방본부에서 ‘고객서비스 모니터링’에 항의하고 감시에 나선 것은 잘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오염
고집 센 사람들은 모르지만 보통 사람들은 분위기를 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2000년 직선제 공투본 시절, 후배들은 참으로 잘 싸웠다. 팔이 부러지고, 코뼈가 부러지고, 다친 사람이 부지기수로 나왔어도 모두 그렇게 싸우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알았다. 지도부는 철탑에 올라가고, 광고탑에도 올라가고, 부인네들은 굴뚝에 올라가고…. 하여간 그 어떤 탄압과 물리력으로도 끊임없이 솟아오르는 저항의지를 꺾을 수 없었다. 그러던 것이 몇 년 지나지 않아 분위기가 바뀌었다. 싸워봐야 안된다는 분위기, 정부방침은 바꿀 수 없다는 분위기, 적당히 치고 나가다 잽싸게 타결하는 게 현명하다는 분위기, 연대투쟁을 하되 서로 발목을 잡지 말자는 분위기, 사측의 탄압을 유발할 수 있는 과격한 방식은 안된다는 분위기. 이렇다 보니 전에 맹렬히 싸우던 투사들이 허리 부러진 씨름선수들처럼 도대체 기운을 쓰지 못한다. 현장투쟁을 하는데, 나가서 몇 마디 하면 사측의 입장을 대변하냐는 질책을 듣기에 이르렀다. 그뿐이랴, 일개 간부가 되어 회의도 없이 자회사 설립을 구두로 합의해 줬다는 소문이 흉흉하게 돌고, 정규직으로 뽑은 후배들을 인턴으로 발령 내는 데 노동조합이 동의해주는 데까지 이르렀다.
성실한 후배들을 볼 때마다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저 친구가 분위기만 이렇지 않아도 크게 한 몫 할 친구인데. 그렇고 그런 분위기속에서 저렇게 시들시들 시들어 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그런 분위기는 밖에서도 오고, 안에서도 싹이 텄다. 무엇보다 제대로 된 투쟁을 하지 못한 것이 원인일 것이다.
주위를 돌아보아도 비실비실, 현장 분위기는 찬바람만 불고, 누구하나 결기를 보여주는 사람도 없다. 그러면 누구나 맥이 풀려 감히 싸우자는 말을 못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때를 잘 넘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시기에도 싸우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보여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중투쟁이 잘 되지 않아도 그것을 꿈꾸며, 앞장서 게릴라전이라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원래 노동자에게는 투지와 연대, 또는 단결밖에 아무것도 가진 게 없다는 사실을 되새겨 줄 수 있는 사람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모든 투쟁에는 몸을 던지지 않으면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몸으로 보여 주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상의 힘
지금은 확실히 혁명의 시대가 아닌 모양이다. 격동의 세월도 아닌 것 같다. 황석영은 한겨레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일상은 21세기의 화두거든. 나 자신도 감옥에서 발견한 건 일상이야. 모험하기는 쉽잖아. 아무것도 아닌 일상을 축적하는 게 굉장히 힘들거든.” 그와 대담하는 임상수 영화감독의 대답인즉 “제가 쓴 초고를 강남에 혼자 살면서 외제차 타고 다니는 젊은 여성이 읽었는데 이런 이야기를 해요. 너무 올드하다(구식이다?) 하나도 안 슬프다. 주인공은 왜 그런 식으로 사는 거냐. 이 세 가지를 젊은 이십대 여성에게 납득시키는 게 제 관건이고, 납득시키고야 말겠다는 게 제 결심이죠.”
21세기가 혁명의 시대가 아닌 것은 그렇다 치자. “일상의 시기”라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쇠파이프를 들었던 울산 노동자들은 일상을 벗어나 상대적으로 쉬운 모험을 하고 있는 사람들일까? 거꾸로 그들에게는 쉬운 모험보다 지루한 일상이 견디기 어려웠던 것일까? 울산 노동자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일상이 아니라, 하루도 견디기 어려운 생활고와 비인간적인 노동조건이 쇠파이프를 들게 하였다. 울산의 노동자들뿐 아니라 국회 앞 크레인에 올라갔던 노동자들, 40여일씩 단식투쟁을 하던 노동자들, 용역깡패와 처절하게 맞붙어 싸우던 노동자들 모두 일상이 아닌 생활 때문에 투쟁을 선택했던 것이다.
그런데 왜 황석영은 그런 식으로 “쉬운 모험과 아무것도 아닌 일상”을 굳이 대비시켜 말하는 것일까? 이제는 황석영도 ‘객지’나 ‘삼포 가는 길’을 쓸 때와 같은 밑바닥 인생의 입장이 아닌 기득권자의 입장에 서게 된 것일까? 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닐지라도 황석영은 이제 지난날의 치열했던 정신을 아주 버린 것 같은 느낌이다.
임상수의 대답은 더 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강남에서 외제차를 타는 젊은 여성에게 투쟁하는 사람의 사고방식을 납득시킬 수 있다면, 그는 영화감독이 아니라 위대한 혁명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것도 성공한 혁명가로 역사에 길이 남을 수 있을 것이다. 내게는 임상수 감독의 대답이, 강남에서 외제차 타는 젊은 여성에게 영합하겠다는 말로 들린다.
한때 황석영의 글을 읽으며 피 끓는 흥분을 느낀 사람으로서. 한겨레 전면을 차지한 대담을 읽으며 씁쓸한 생각이 든다. 하긴 황석영도 벌써 60이 넘었으니, 그럴 때가 된 것일까?
덧붙여서 - 황석영이 했던 말 “우리끼리 복장도 단속했어. 이 새끼 왜 이렇게 야하게 입어?” 에 은근히 찔리는 기분이다. 그러니까 지금도 그런 식으로 하다가는 되는 일이 없다는 뜻이다. 나는 때를 타지 않는다는 이유로 온통 검거나 회색빛 옷을 걸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신경 쓰기 싫다는 이유로 늘 깍두기처럼 짧은 머리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