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실리주의의 원조 미국노조운동 위기논쟁1
수년 전부터 미국에서도 노조운동을 둘러싼 논쟁이 진행되고 있다. 노동조합운동에서 실리주의의 원조격인 미국 노조운동은 새로운 전망과 침로를 찾아낼 것인가? 이들의 논쟁과 새로운 모색들 속에서 오늘날 한국노동조합운동에 주는 시사점은 무엇인지를 찾아내는 것은 오욕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노동자계급운동의 고단한 노력 중 하나일 것이다. 노동자 계급운동을 고민하는 현장의 활동가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 - 편집자 주
새로운 통일 협력(NUP):
미국 5개 노조 대표자들의 AFL-CIO '혁신' 시도** "New Unity Partnership: Five Union Presidents Launch Bid to 'Revolutionize' AFL-CIO"(Labor Notes, 2003. 10).
William Johnson과 Chris Kutalik / 번역 박용준. 연구원
미국 노동조합의 전반적 침체 경향의 반전을 도모하고 있는 5개 노조의 대표자들이 노동운동의 대대적 변화를 위한 계획에 착수했다. '새로운 통일 협력'(New Unity Partnership: NUP)이라 불리는 이 시도는 다양한 전략을 편성하고 이 연합체 내부로 운영 기구들을 집중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새로운 기획을 움직이는 기본 아이디어는 미국 노동조합의 도약을 위한 최선의 방법은 무엇인가를 둘러싼 지속적인 토론과 논쟁 과정에서 나온 것이다.
밀도 있는 논쟁
지난 해, SEIU 건설서비스 책임자(SEIU Director of Building Services), Stephen Lerner는 '노동운동 재조직화와 재건설을 위한 세 가지 단계'(Three Steps to Reorganizing and Rebuilding the Labor Movement)라는 제목의 문서 초안을 작성했다.(Labor Notes에 실린 요약문 또는 전문 참조)
Lerner는 오늘날 미국 노동운동이 처한 핵심적 문제는 노동조합 조직률 저하라고 주장했다. "조합 조직률, 즉 전체 노동자, 경제 부문, 업종 또는 노동시장에서 노동조합 가입자가 차지하는 비율은 노동자의 효과적인 협상 능력뿐만 아니라 민간 부문에서 규모 있는 조직화 능력을 확보하는 데에도 결정적인 중요성을 갖는다."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Lerner는 조직된 노동자들이 "수백만 노동자들의 단결을 위한 자원과 지향성을 갖추고 있는 대규모 부문별/산업별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하나로 뭉쳐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기존 조합원과 미조직 노동자들을 새로운 관할 체계로 재편하는 것은 비민주적일 가능성이 있을 뿐만 아니라 실행 자체가 전혀 불가능하다. 그러한 관할 체계를 누가 결정할 것인가? 그리고 조합원에게 그러한 문제에 대한 결정권이 부여될 것인가?
수단
NUP는 그러한 조직 재편을 염두에 두고 있는 듯한데, 대부분의 조합원들은 Business Week 9월15일자 기사를 통해서야 그러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Business Week는 NUP를, '용역업종 피용인 노조'(Service Employees Union, 대표: Andy Stern), 호텔/식당 업종 피용인 조직'(Hotel and Restaurant Employees, John Wilhelm), UNITE(Bruce Raynor), 노동자연맹(Laborers Union, Terence O'Sullivan), 목수노조(Carpenters Union, Doug McCarron) 등이 기획하고 참여한 하나의 '작은 노동 연합'(mini labor federation)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 노조 중 4개 단체는 AFL-CIO에 소속되어 있다. 5번째인 목수노조는 2001년 건설 조합 영역 침범 논란과 기타 관할 체계 문제로 이 연합을 탈퇴했다.
Stern에 따르면, 소속 노조들은 NUP 관련 업무를 담당할 인력들을 임시로 고용할 예정이다. 이러한 인력 충원은 이들의 협력이 비공식적인 논의 단계에서 실질적인 조직적 형태를 갖추는 단계로 넘어가고 있음을 알려주는 신호이다.
NUP의 장기 계획은 아직 명확하지 않으며 2004년 후반이 지나야 알려질 것으로 보인다. 온라인으로 발표된 Business Week와의 인터뷰를 통해, Stern은 AFL-CIO의 급진적 변화는 반드시 필요하겠지만 2004년 대표자 선거 때까지는 강행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새로운 구역
8월6일 AFL-CIO 집행위원회가 열리기 전에 작성된 'AFL-CIO의 변화를 위한 의제(AFL-CIO Agenda for Change)'와 '노동조합의 성장을 위한 협력(Union Growth Partnership)'이라는 제목의 두 문서는 NUP의 기획자들이, 추측컨대 AFL-CIO 및 기타 노조의 개입 없이, 미조직 노동자 조직화를 위해 관할 체계를 재편하는 작업을 이미 시작했다는 사실을 밝혀주고 있다.
제안 내용의 일부는 적절한 내용을 담고 있다. 예를 들어, 목수노조와 노동자연맹(the Carpenters and Laborers)은 건설 부문 내부의 조직화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마찬가지로, 일반 고용인들과 여러 산업을 상대로 하는 교섭 및 조직화 작업에서 참가 노조들을 하나로 묶을 동맹 제안은 반드시 필요하며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다른 제안들, 예를 들어 비식품 판매업종 노동자들을 UNITE로 배속하는 제안은 문제가 될 수 있어 보인다. 전통적으로 판매업은 '식품 및 상업 노동조합(United Food and Commercial Worker)'의 관할로 여겨져 왔으므로, NUP가 의류업 및 직조업 노동조합인 UNITE에게 판매 부문의 상당 부분을 조직화하는 임무를 맡기게 된 정황과 근거에 관한 의문이 발생할 수 있다.
이 노동조합 조직은 또한 영역 침범이라는 방법을 통해 관할 체계 재편을 시도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2002년 작성된 '새로운 노동운동을 향한 노동 파트너와의 협력 방안(Options for Working with Labor Partners toward a New Labor Movement)'이라는 제목의 SEIU 내부 문서에는, 이 국제 조직이 'XX/XXI 조항을 적극적으로 위반(Actively violate Article XX/XXI)'하고 '다른 노조의 관할 부문에서 조직 활동을 수행(Organize in other unions' jurisdiction)'하는 두 가지 행동 방침을 고려하고 있음이 드러나 있다.
AFL-CIO의 중앙집중화
지역 노동 단체에 대한 NUP의 계획 역시 똑같이 문제적이다. 내부 문서에 따르면, 이 협력체는 중앙 노동 위원회들을 '과감하게 통합(drastically consolidate)'하거나 '이들을 주 연합 소속으로 묶는(make them a part of State Fed[erations])' 계획을 논의해 왔다.
AFL-CIO는 CLC의 COO(최고 운영 책임자)를 상근직으로 임명하는 반면, 노동 위원회 대표의 지위는 시간제로 격하할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주 연합과 CLC의 운영 재원은 더 이상 지역 노동자들로부터 직접 충당되지 않고 AFL-CIO로부터 인원 비례로 지급 받게 된다.
Stern은 최근 Business Week에, 부분적으로 '체질적 변화(constitutional changes)'를 통해 AFL-CIO에 '변혁'을 일으키고자 한다고 말했다.
NUP가 AFL-CIO에 권력을 더욱 집중하려 한다는 또 다른 징후는 '변화를 위한 의제'에 포함된 'AFL-CIO의 모든 헌장의 재검토(Review All AFL-CIO Charters)'라는 제목의 항목을 통해 찾을 수 있다. 이 항목은 "모든 소속 조합의 헌장을 검토하여, 위임 받은 관할 영역에서의 실적을 파악하고 AFL-CIO가 승인한 헌장에 따라 노동자들을 대표하고 조직률을 높일 능력이 있는지 확인한다."라고 쓰여 있다.
Lerner는 원래 작성한 글에서, "대부분의 노동조합은 조직화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기에는 너무 약하다."라고 단언했다. NUP의 의제 중 또 다른 항목은 '합병에 대한 찬성'을 확대하는 것이다.
조합 선언(charter)을 검토했을 때 NUP의 기준에 미달하는 조합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 유사하게, NUP 계획에서는 NUP가 '외부적 위협'으로 보고 있는 비교적 소규모의 독립적인 조합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변화를 위한 의제(Agenda for Change)'의 한 단락에는 NUP가 앞으로 해결해야 할 두 가지 '외부적 위협', 즉 반노동조합적인 일할 권리 운동(anti-union right-to-work effort)과 Aircraft Mechanics Fraternal Association에 관한 언급이 있다(페이지 xxx 참조).
또한 NUP 계획에는 AFL-CIO의조직부서(Organizing Department)를 일종의 '전략적 성장 관리부서(Strategic Growth Department)'로 교체하고 AFL-CIO의 교육, 현장 동원, 보건/안전, 시민권/인권 관련 부서를 축소하거나 폐지하는 내용도 담겨 있다.
뜻밖의 동반자
NUP의 의장단은 반노조 성향의 정치인들과 협력하려는 의향을 명백히 드러내왔다. 작년 여름 Stern, O'Sullivan, Wilhelm 등은 동료 노조간부들에게 '자기들처럼 Dennis Hastert의 재선 운동에 1,000달러 이상을 헌금할 것'을 종용했다.
공화당 정치인이자 현재 의회 대변인인 Hastert는 오랫동안 노조에 적대적으로 행동하고 있는 인물이다. 최근에는 노동자의 초과 근무 수당을 삭감하는 예산안이 하원을 확실히 통과하도록 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 인물이기도 하다.
올해 9월 The America Prospect에 실린 글에서 Harold Meyerson은Stern, Wilhelm, McCarron, O'Suliivan 등이 최근 있었던 '공화당 의회 선거운동 분과위원회(Republican Congressional Campaign Committee) 저녁 만찬 자리를 샀다고 지적했다.
현재 NUP는 Karl Rove(부시 대통령의 핵심 전략 참모)와의 면담을 최우선의 정치적 목표 중 하나로 설정해 놓은 상태이다. 그런 한편으로 Stern은 '비즈니스 위크'와의 인터뷰에서는, 2004년 선거에서 부시에게 패배를 안기는 것이 AFL-CIO의 '당면한 주요 역할이며 반드시 실현되어야 한다.'고 말했던 것이다.
밀림의 법칙
레이버 노트 그룹(Labor Notes)은 조직화 전략에 관한 포괄적이고 신중하면서도 열띤 토론을 적극적으로 지지한다. NUP를 뒷받침하고 있는 5개 노조의 지도부는 미조직 노동자들을 조직화하는 최선의 방안에 대해 오랜 기간에 걸쳐 숙고하고 있으며, 그것은 긍정적인 징후이다.
그러나, 현재 이들은 이러한 전략을 구성하는 최선의 방법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5명의 인물이 모여 한 테이블에서 논의하는 방식만으로는 노동운동의 미래를 결정할 수 없으며 그 미래에 누가 포함될지 결정할 수 없다.
조직화 운동(drive)의 특징과 성격은 일단 그 운동이 수행되고 나면 조합의 기능 방식을 결정짓게 된다. 마찬가지로, 현재 진행되는 조직화 논쟁의 성격은 향후 몇 년간 노동운동 전체의 작동 방식을 결정하게 될 것이다.
조직화는 중요한 문제이며 조합원 수 또한 중요한 문제이다. 그러나 이것들은 총괄적으로 노동자의 힘을 결정하는 복잡한 방정식의 두 가지 변수에 지나지 않는다. 민주성, 투쟁성을 비롯한 광범위한 사회적 운동의 지향성 모두가 미국 노동운동의 부흥에 필수적인 요소로 작용할 것이다.
노동운동의 미래에 대한 논의 과정이 많은 주체들이 참여하여 민주적으로 진행된다면 희망을 가질 만한 근거는 있다. 그러나 다양한 주체의 참여를 배제한 채 은밀히 진행되는 방식이라면 결국 밀림의 법칙으로 귀결될 것이다. 규모가 큰 노동조합이 작은 노동조합을 밀어낼 것이다. 그들은 그렇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적, 조직적 기습 행위가 만연할 것이며, 권력을 가진 측의 필요에 맞는 방향으로 조직적, 제도적 변화가 이루어질 것이다.
Labor Notes는 본지에 실린 글에 대한 답글, 비판, 질문을 환영하며 향후 지속적인 논의가 진행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