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와 초점/
제4차 6자회담과 북핵 문제: 평가와 전망
배성인 / 한노정연 연구원, 명지대 북한학연구소
“불량국가들의 지도자들이 정신이 나간 자들이기 때문에
억제시킬 수 없다는 개념이야말로 그 자체가 정신나간 것이다.”
- 토마스 프리드만(Thomas L. Friedman)
1. 머리말
지난 10월 17일은 북한의 핵문제가 불거진 지 꼭 3년을 맞이하는 날이지만 어느 때 보다도 희망적으로 보인다. 그것은 지난 9월 2단계 제4차 6자회담에서 공동성명을 통해 큰 가닥을 잡았기 때문이다. 2002년 10월 17일부터 시작된 북핵 위기(?)는 그해 12월 북한이 핵동결을 해제하면서 다음해인 2003년 1월 핵무기비확산조약(NPT) 탈퇴를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물론 미국 내에서는 안보리 회부를 통한 대북제재 실시 주장이 힘을 얻었다.
위기가 고조되는 가운데 이후 북미 관계는 긴장의 연속이었고, 북한은 간헐적으로 핵 억제력을 보유하였음을 선포하거나 그 실체를 보여주기도 하였다. 당시 북한은 계속해서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시사하기도 하였다. 2004년 6월에 열렸던 제3차 6자회담에서는 북핵 문제의 해결 가닥이 보이기도 하였으나 북미 관계는 다시 경색되었고, 부시의 재선으로 인해 2005년 한반도에서 북미간의 군사적 충돌 가능성을 우려하기도 하였다. 그런 상황 속에서 2005년 2월 10일 북한의 핵보유 선언은 뜻밖이었고 혼란스러웠다.
이처럼 북핵 문제가 그 동안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는 본질적 이유는 북핵 문제의 해법을 둘러싼 북미 양국의 대립 때문이다. 북미간 최소한의 상호신뢰 결여는 북미 대화를 어렵게 하고 있다. 북한은 미국이 북핵 문제를 정말 심각하게 받아들여 주기를 기대하고 있지만 미국의 북핵 인식은 평양하고는 다르다. 농축우라늄과 플루토늄을 보는 시각도 다르다. 좀 더 근저에는 핵을 생존의 수단으로 보느냐 아니면 국제테러의 수단으로 보느냐 하는 근본적 시각의 차이가 있다. 미국은 북한을 ‘악의 축’이며 ‘폭정의 전초기지’로 보지만 북한은 미국의 대북 적대시정책이 핵문제의 근원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2005년 7월 9일 밤 북한의 전격적인 6자회담 복귀선언은 북핵 문제 해결에 대한 국내외 기대를 높여졌고 관련 국가들 역시 긍정적인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그 후 6자회담은 7월의 1단계 회담을 거쳐 9월의 2단계 회담을 통해 9·19 베이징 공동성명을 도출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측면에서 본 연구는 2단계로 이루어져 진행된 제4차 6자회담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를 해보고 공동성명에서 나타난 중요한 쟁점중의 하나인 경수로 문제를 중심으로 전망을 살펴보고자 한다.
2. 1단계 제4차 6자회담에 대한 평가
1) 위기의 심화는 대화의 기회
북한의 7월 9일 복귀선언으로 인해 7월 26일부터 8월 7일까지 개최된 1단계 제4차 6자회담은 남한의 적극적인 노력과 북미간의 양보가 선행되었기에 가능했다. 북핵 문제는 지난 4월말-5월초 북한의 핵실험 준비설을 정점으로 대결에서 타협의 국면으로 옮아갔다. 그 배경엔 ‘대북 봉쇄 또는 안보리 회부가 한국과 중국의 동의를 필요로 한다.’는 미국 강경파들의 현실인식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당시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의 방북 구상이 중국을 통해 평양에 전달되었다.
즉 이러한 현실인식은 워싱턴 내 강경파와 온건파의 타협을 가능하게 하였다.
한편 지난 4월 하순 이종석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차장 등의 워싱턴 방문을 계기로 이뤄진 한미간 의견조율이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이를 계기로 6월 11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미국은 6자 회담 재개에서 한국의 주도적 구실을 인정하였다. 물론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작품으로 알려진 부시의 ‘미스터’ 발언도 커다란 역할을 하였다. 『중앙일보』, 2005년 10월 1일 참조.
한국 정부는 이를 바탕으로 정동영 장관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6·17 면담에서 북한을 설득하였다. 즉 전력 200만㎾ 직접송전을 골자로 하는 중대제안을 설명하면서 교착상태의 6자회담이 가닥을 잡기 시작했다. 이어 김 위원장이 6·17 면담에서 밝힌 미국과의 ‘추가협의’ 요구는 정 장관의 방미를 통해 미국 쪽에 전달됐으며, 이어서 북미간 뉴욕 채널이 재가동하고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과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의 7·9 베이징 접촉을 거쳐 제4차 6자회담이 개최되기에 이르렀다. 결국 남한의 결정적인 중재자 역할이 위기의 심화를 대화의 기회로 만든 것이다.
2) 절반의 성공
1단계 4차 6자회담은 13일 동안 진행되었지만 공동 합의문을 도출하지 못하고 일시 휴회를 결정함으로써 절반의 성공에 머물고 말았다. 잘 알려진 대로 북미 양국은 북핵 폐기의 대상, 북한의 평화적 핵 이용 권리 등을 놓고 극명하게 대립하였으며, 그것을 풀기 위해 한국의 대북송전이 제안되었지만 간극을 좁히지 못하고 결국은 휴회하고 말았다. 역시 미국의 입장은 단호했으며, 북한과 미국 양측은 상대방에 대한 극심한 불신을 여전히 견지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결과에 대해서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그랬던 것처럼 이미 예측을 했기 때문에 그리 실망스럽거나 놀랄 일은 아니었다. 처음부터 북한의 6자회담 참여는 절실한 사정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한국과 중국의 설득이 주효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이며, 미국도 회담 재개를 위해 큰 태도 변화를 보이거나 양보를 한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다만 이들은 4차 6자회담에서 구체적 결과물이 나오지 않더라도 6자회담이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회담은 상당한 의미가 있었다. 비록 가시적인 성과를 끌어내지는 못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번 회담이 아무 의미 없었던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몇 달 전까지만 하더라도 상상하기 힘든 북미간의 양자 접촉과 협상이 회담 전체 기간을 통하여 8회에 걸쳐 수시로 이루어졌다는 것은 매우 의미가 큰 것으로 평가된다. 양자 접촉의 활성화는 근본적인 문제 해결의 중요한 기본을 마련하는 것이다. 대화와 협상을 통한 문제 해결의 원칙이 마련된 것이다.
또한 협상내용에서도 상당한 진전을 이루었다고 할 수 있다. 지난 3차례의 6자회담에서는 북한의 핵동결과 미국의 상응조치에 대한 논의로 회담이 진행되었다. 그러나 이번 회담에서는 북한이 핵 폐기 의사를 분명히 했고, 미국은 그에 대한 대가로 다자 안전보장과 관계정상화 수순을 밟겠다고 명확히 하였다. 이는 매우 원론적인 수준의 요구사항이지만 이를 서로 수용하겠다는 합의는 그 자체가 상당히 획기적인 의미를 갖는다.
형식면에서나 내용면에서 상당히 진전된 것이다. 또 북미 양자가 군축협상이나 고농축 우라늄(HEU)문제를 제기 하지 않는 등 양측이 실질적으로 협상 진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도 앞으로의 협상 전망을 밝게 해주고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1단계 제4차 6자회담은 절반의 성공을 거둔 것이다. 하지만 절반의 성공 뒤에는 절반의 실패가 있기 때문에 많은 전문가들은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게다가 3주 후인 8월 29일에 2단계 회담이 재개되어야 하는데, 9월 13일로 미뤄지면서 부정적인 인식이 확산되었다. 하지만 4차 회담이 종결된 것이 아니고 휴회한 것이기 때문에 성과 도출에 대한 강력한 의지가 있다는 것을 올바로 인식했어야 했다.
3. 2단계 제4차 6자회담의 평가
1) 베이징의 잠 못 이루는 밤
6주 만에 열린 제4차 회담은 결국 9월 19일 6개국의 공동성명을 발표함으로써 북핵 문제를 새로운 국면으로 들어서게 만들었다.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원칙과 해법 마련에 성공했으며, 향후 구체적인 이행조치로 가기 위한 발판을 마련하게 되었다. 이번 9·19 공동성명은 지난 2003년 3자회담을 통해 대화를 시작한 후 그 해 8월부터 4차례에 걸쳐 2년 여 동안 진행된 6자회담 최초의 정치적 성과물이다. 이는 지난 2005년 7월 26일부터 8월 7일까지 개최된 1단계 4차 6자회담을 통해서 어느 정도 예견된 것이었다. 당시 채택되지 못한 공동문건 4차 초안에는 ‘북핵 폐기’와 ‘검증', 그리고 미·일의 대북 관계정상화 추진,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등 북한이 원하는 사안을 포함해 6개항을 명시하고 있었다. 초안은 또 평화적 핵 이용권을 포함하고 있으며 북한을 제외한 5개국의 상응조치로 대북 안전보장과 우리 정부의 중대제안인 전력공급, 그리고 공급시까지 중유제공을 동시적·병행적으로 상호조율된 조치에 따라 진행시키는 방안을 담고 있었다. 다만 ‘북한의 평화적 핵 이용 권리에 대한 용인’ 여부가 최대의 걸림돌이 되어 공동문건 도출에 실패한 것이다.
이번 공동성명은 크게 6개항으로 구성되어 있다. 회담 참가국들은 6자회담의 목표를 ‘한반도와 동북아시아 전반의 평화와 안정’으로 제시하고 상호존중과 평등의 정신에 입각하여 한반도 비핵화, 유엔헌장과 국제규범에 의한 관계수립, 에너지 보장 및 경제협력 추진, 한반도 평화체제 및 동북아협력체제 구축 등 한반도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한 4개항의 기조적 원칙과 단계별 행동방식, 차기회담의 일정을 밝힌 2개항에 합의하였다.
이번 공동성명(joint statement)은 외형적으로 종전 회담의 의장요약이나 의장성명보다 높은 수준이며, 법적 구속력은 없으나 정치적·도덕적 구속력이 어느 정도 확보된 불완전한 합의이다. 경수로 문제에 대해 완전한 결정을 보지 못했고 핵의 평화적 이용권 문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는 ‘나름대로’ 이행의 강제성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한반도 비핵화와 동북아 질서재편의 전망을 밝게 해 준다.
무엇보다 내용에 있어서 핵문제 해결 원칙과 방안을 담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번 공동 선언문의 기조는 한반도 비핵화 선언이다. 즉 기존의 북한의 핵포기에서 한반도의 비핵화로 성격이 전환된 것이다. 핵문제 타결의 기준과 원점을 비핵화 선언에서 찾은 것이다. 한반도비핵화선언에서 합의한 남북핵통제위원회의 가동과 한국의 핵시설에 대한 북한의 사찰 및 검증 활동이 가능해져 한반도 비핵화가 실질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정치적 담보가 마련된 점은 주목할 만 하다.
한반도 비핵화 문제만 하더라도 북측이 모든 핵무기와 핵 계획까지 포기하는 결단을 담았고, 미국과 한국도 한반도 내에서 핵무기를 갖지 않도록 했으며, 북한의 핵에너지 평화적 이용권은 물론 경수로 제공도 포함시켰다. 또한 북미, 북일 관계정상화와 경제협력,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등 굵직한 내용들이 망라되었다. 특히 6자의 합의로 타결되었기 때문에 북측의 평화적 핵 이용권 문제와 비핵화 관련 검증 문제의 해결 근거도 비핵화 선언을 토대로 해결될 수 있게 되었다.
둘째, 북핵 문제의 해결에는 대화와 타협밖에 없다는 것을 북한과 미국 모두가 합의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북미 양국이 상호 타협과 양보에 의한 주고받기를 통해 ‘윈윈’(win-win)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는 초보적인 수준이지만 북미간 신뢰형성의 기반이 마련되었음을 의미한다. 또한 북미 양측의 ‘전략적 결단’이 돋보인다. 북미 모두 내부 강경파의 반발을 억제하면서, 외교적 해결로 방침을 정리했다는 의미이다. 이제 북한과 미국은 모두 극단적인 선택을 취하기 어렵게 되었다. 북한의 벼랑 끝 전술과 부시 정권의 선제공격과 같은 강경수단이 구조적으로 제약을 받게된 것이다. 하지만 미국의 대북 서면 안전보장이 NPT, IAEA 복귀를 전제로 한 것이므로, 그 전까지는 여전히 ‘선제공격 독트린’이 유효하다고 할 수 있다.
북한과 미국 모두 일정한 양보를 통해 합의도출을 가능케 하는 적극적 의지를 보인 것이다. 일부 통일운동단체에서 9·19성명을 ‘미국의 대북항복문서’로 평가하고 있지만 오히려 북한의 입장에서는 당장 핵포기를 해야 하는 입장인 반면 미국은 그러한 입장이 아닌 ‘비대칭성’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러한 극단적인 평가는 적절치 못하다.
셋째, 이번 합의는 한반도 평화체제에 대한 협상을 별도로 진행시킨다는 점에 커다란 의미를 둘 수 있다. 한반도 평화체제를 논의하기 위한 별도의 포럼 구성은 북핵 문제가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체제와 연결되어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평화체제 논의를 통해 한반도에 정전협정을 대체하여 평화협정 체제를 정착시킨다면 이는 북미관계 정상화 차원을 넘어 한반도 및 동북아 냉전구조의 해체라는 성과를 내기에 충분하다.
모두가 밝히고 있듯이 이번 합의문은 ‘말 대 말’ 단계에서 ‘행동 대 행동’으로 나아가는 첫 단계일 뿐이다. 또한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큰 틀을 만든 것뿐이다. 즉 북핵 문제는 아직 타결되지 않았으며, 타결된 것은 2단계 4차 6자회담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번 공동성명은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신호이다. 하지만 그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기 때문에 일방적으로 파기될 가능성은 적다.
2) 무엇이 한계인가
이번 공동성명이 북핵 문제 해결의 획기적인 진전이라는 긍정적인 평가가 있는 반면에 성과에 급급해서 억지로 문제를 덮은 미봉책이라는 혹평도 있다. 관점에 따라서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무엇보다 공동성명 내용 자체가 갖는 불완전함을 한계로 지적하고 있다. 정치적인 구속력만 있을 뿐 법적인 강제력이 미흡하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북한의 공약과 미국의 확인을 서로 미봉적으로 교환했을 뿐, 구체적인 실행 로드맵이 없는 점이 이번 공동성명의 가장 큰 맹점이라는 것이다. 공동성명 발표 다음날인 9월 20일 북한이 ‘선 경수로 제공 후 NPT 복귀’ 주장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역시 <조선일보>를 비롯한 일부 보수언론들이 편협한 인식으로 물고 늘어지는 행태를 보여줬다.
공동성명이기 때문에 법적인 구속력이 미흡하다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현재의 조건과 상황 속에서 구체적인 실천 방안들을 마련할 수는 없다. 여전히 북미간 불신은 해소되지 않았으며, 이들의 실천의지 역시 확인된 바가 없다. 지난 1단계 회담을 통해서 충분히 예상하지 않았는가? 이러한 한계를 지적하는 자들은 대부분 베이징 공동성명에 대해서 불만을 갖고 있는 일부 보수/수구 세력들이다. 제5차 6자회담의 과제가 바로 구체적인 실행 로드맵을 마련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소모적이고 불필요한 논쟁 및 비난은 삼가해야 할 것이다.
그것보다는 북한이 강력하게 요구한 핵의 평화적 이용권에 대해 존중을 표시한 내용과 ‘적절한 시점에 북한에 경수로를 제공하는 문제를 논의하기로 합의했다’는 내용이 논리적 모순이며 그 한계를 여실히 드러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반도 평화체제를 위한 방안으로 ‘포럼’을 주장한 것은 미국 등이 평화체제 구축의 당사자로서의 책임을 회피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구속력이 없는 포럼을 통한 길을 모호하게 모색하는 것이 미봉책이 아니고 무엇인가?
북한에게 경수로와 핵의 평화적 이용권은 분리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경수로 제공 문제는 추후 논의 과정에서 최대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적절한 시점’이라는 아주 모호한 표현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적절한 시점이 언제인지, 그 시점이 되면 경수로를 당장 제공하겠다는 것인지가 분명치 않아 논란의 여지를 남겨둔 셈이다.
그 외에 전반적으로 곳곳에 모호한 지점을 남겨 놓음으로써 향후 실천을 위한 구체적 합의가 불가능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던져주고 있다. ‘포기(abandon)’란 표현은 ‘폐기’나 ‘해체’에 비해 애매하고 북한이 주관적 판단이 개입할 여지가 있어 후일 모든 핵시설의 물리적 해체를 원하는 미국과 분쟁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 송민순 차관보가 단어를 둘러싼 해석상의 혼선이 발생한 것과 관련해 “포기한다는 것은 ‘폐기’(dismantle)한다는 것을 포함하고 거기에 추가해서 자기가 갖고 있는 의지라든지 이런 것까지도 다 내포하고 있다”고 강조했으며,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도 “한국말 포기 개념엔 자발성이 포함돼 있으며, 북한이 이 표현을 선호한 것도 그 때문”(『연합뉴스』, 2005년 9월 29일)이라고 강조했지만 향후 논란의 소지가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그리고 대북 에너지 지원과 관련하여 5국간 경비분담 원칙이 기술되지 않은 것도 아쉬운 점이다.
특히 북미 양국의 목표와 요구사이에 존재하는 ‘비대칭성’이 우려를 가중시키고 있다. 북한의 핵무기와 핵 프로그램 포기는 당장 시작해야 하는데, 미국은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에 다양한 핑계와 명분으로 약속사항들을 이해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북한의 9월 20일 ‘선 경수로 제공 후 NPT 복귀’ 주장은 그러한 배경 하에서 도출된 것이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 하지만 9·19성명이 출발점이라는 점에서 풀어야 할 과제가 존재한다는 것으로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렇다면 제5차 6자회담을 통해서 그러한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는 구체적인 실천 방안들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이번 공동성명의 모호성(ambiguity) 모호성은 이번 합의를 가능케 한 주요 수단이었다. 중국은 우선 6개국이 합의할 수 있는 초안을 만들면서 문제의 소지가 될 수 있는 부분들(NPT 복귀 시점, 사찰 대상, 평화적 핵 이용권의 범위)은 모호하게 처리하여 우선 원칙론에 합의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았다.
은 6자 모두의 합의를 도출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불가피한 선택으로 보여진다. 당시 상황에서는 북미가 회담을 깰 수도 없었고 합의 자체를 미룰 수도 없었다. 북한과 미국 모두 국내외적으로 압박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보다는 합의의 불완전성 내지 모호성으로 인한 미국 내 네오콘들이나 북한 강경파, 한국 및 일본 보수주의자들의 불만에 대한 주의가 필요할 것이다.
4. 베이징 공동성명 합의의 주요 배경
1) 미국이 변했다(?)
이번 공동성명의 합의는 미국의 태도 변화가 커다란 공헌을 하였다. 미국의 협상태도의 변화는 2기 부시 행정부의 외교정책 전반의 변화와 맞물려 있다. 부시 집권 2기에 들어서면서 미국은 군사적 수단의 한계를 느끼고, 일방주의를 완화하고 다자주의로 문제를 풀려는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라이스를 정점으로 한 국무부의 전반적 위상 증가와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의 재량권 증가도 한 몫을 했다. 미국 대표단은 보다 실용적이고, 현실적이고, 문제 해결적으로 변한 것처럼 보였다. 미국은 먼저 높은 수준의 원칙을 정한 후 주변국들의 설득과 북한의 양보에 비추어 바(bar)를 낮추는 협상을 하고 있다. ‘북한과 대화하되 협상은 하지 않겠다', ‘양자회담은 없다', ‘경수로는 논의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등 자신이 정한 불문율들을 스스로 폐기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이것은 1기 부시 행정부 때와 사뭇 달라진 협상태도이다. 우승지, “6자회담 평가와 전망: 협상론적 분석,” 미래전략연구원 보고서, 2005.9.26.
또한 협상 결렬로 인한 미국의 중압감, 최근 카트리나와 이라크 전쟁의 후유증으로 인한 부시 정권의 지지율 하락도 큰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아마 악의 축을 무력으로 축출하기가 어렵다는 교훈을 배운 것으로 보인다. 뿐만 아니라, 북핵 문제를 통해서 중국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도도 엿 보인다. 북한을 ‘폭정의 전초기지’에서 중국 등을 겨냥한 ‘민주화의 전초기지’로 전략적 활용이 가능하다는 계산도 깔려있다는 것이다. 조성렬, “‘9.19 베이징 공동성명’의 의미와 전망,”
(통일뉴스 http://www.tongilnews.com/index.asp 2005년 9월 20일)
미국은 최선의 선택이 아닌 차선의 선택으로 중국이 제시한 최종 중재안을 받아들였다. 미국의 입장에서 수용하기 어려운 ‘경수로 제공 논의’와 ‘핵의 평화적 이용에 관한 권리'를 받아들인 것이다. 기존에 고집했던 ‘우라늄 농축 핵 프로그램 포기'와 ‘정확한 절차(sequence)'가 삭제되었다. 또한 ‘적절한 시점’과 같은 표현은 미국의 네오콘이 극도로 싫어하는 애매모호함을 나타낸다. 이번 공동성명은 제2기 부시 정권이 라이스 국무장관 주도하에서 ‘체제 변화'를 추구하지 않고, 외교적 수단을 통한 ’핵 포기'를 정책목표로 정리했다는 의미를 가진다. 일단 미국의 대북정책에 변화가 온 것이다.
2) 북한의 양보와 전략적 선택
미국의 대북정책 변화와 함께 북한의 양보도 큰 몫을 차지했다. 북한이 모든 핵무기와 핵 프로그램을 포기함으로써 미국 등 국제사회와의 관계 개선을 통해 안전을 보장받는 대신 경제를 살리겠다는 중요한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
우선 북한은 경수로 제공 시점의 모호성을 받아들이면서까지 핵 포기라는 전략적 결단을 수용했다. ‘당장’이 아니라 ‘적절한 시기에’, 그것도 ‘제공 합의’가 아니라 ‘제공문제를 논의’하는 데 동의하였다. 또한 북미간 마지막 쟁점이었던 핵 포기의 범위에서도 ‘핵무기 프로그램’의 포기에 국한해야 한다는 기존의 주장에서 물러나 ‘모든 핵무기와 현존하는 핵 프로그램’을 수용함으로써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나아가 ‘핵 군축회담’, ‘한반도비핵지대화’ 주장을 철회하고 1992년의 ‘한반도비핵화 공동선언’에 따르기로 한 것은 북한의 기존 입장에서 보면 대단한 변화라고 볼 수 있다.
북한으로서는 오랜 경제난으로 새로운 돌파구 마련이 필요했고, 내부적으로 7·1경제관리개선조치 이후 개혁개방에 어느 정도 자신감을 갖게 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금년은 선군정치 10년을 맞이하는 해 이고, 10월 10일 당 창건 60주년을 승리적으로 맞이해야 하는 북측 내부의 사정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3) 중국의 주도적인 역할
이번 4차 6자회담은 1·2단계의 형식으로 회담을 진행하였는데, 중국은 전 과정을 통해서 의장국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였다. 중국 대표단에 의하면 1단계 회담 13일간 무려 150차례가 넘는 양자 및 다자 접촉을 가졌고 2단계 회담 일주일 사이 수십 차례 각국 대표단을 오가며 협상을 시도했다고 한다. 『연합뉴스』, 2005년 9월 19일.
중국의 역할은 아주 적극적이었으며 4개의 초안을 제시하는 등 대단히 열성적으로 임했다. 회담이 고비를 맞아 진척을 이루지 못한 상황에서도 지속적인 양자협의를 통해 균형감 있는 4차 초안 수정본을 마련했으며, 결국 참가국 전체가 공동문건을 수용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기여하였다. 미국은 중국으로 인해 북한을 무력으로 제압하거나 다스리기 어렵다는 것을 알았다. 또한 중국의 미국에 대한 설득이 주효했다. 최종 중재안을 마련하면서 중국은 이전에 만들었던 초안에서 쟁점이 되었던 평화적 핵이용 문제(경수로)에만 자구 수정을 하였다. 당초 미국은 공동성명에 경수로 제공에 관한 어떠한 언급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중국이 문제의 표현을 포함한 초안으로 한국, 러시아의 찬성을 먼저 받고, 이것을 미국이 받지 않으면 결렬의 책임은 미국이 지게 된다고 압박하여 결국 양보를 받아낸 것이다. 이런 여러 가지 사정을 감안하면 이번 4차 6자회담이 중국의 외교적 승리라는 평가를 부인할 순 없다.
4) 한국의 적극적인 역할
한국의 적극적 외교 노력도 협상타결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그 배경에는 사실상 남북관계의 복원 및 진전 때문이었다. 지난 5월 이후 북미간 직접접촉이 이루어지고 동시에 남북관계 정상화가 논의되면서 한국은 북한과의 직접 채널 가동을 시작했고 이를 통해 북핵 문제에서도 적극적 역할의 기반을 마련했다.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평양에서 이루어진 6·17 면담에서 정동영 장관은 한국의 이른바 ‘중대제안’을 설명했고 김정일 위원장은 한반도 비핵화 의지를 확인하고 6자회담 복귀 의사를 밝히면서 남북관계 정상화를 약속했다. 핵문제와 관련된 북한의 행보가 초미의 관심사였던 당시 상황에서 한국 정부의 입을 통해 상황 호전의 계기를 마련한 셈이다. 6·17 면담 이후 남북관계가 복원되고 급기야 제4차 6자회담이 개최되기 시작했음은 물론이다. 7월 26일에 개최된 1단계 회담에서도 한국 정부의 적극적 노력은 단연 돋보였다. 북미간 양자회담뿐 아니라 남북미 3자 접촉을 주선하고 중재한 것도 한국이었다. 휴회기간에도 8·15 서울 축전 등 남북관계 진전을 통해 한국은 북한의 태도변화를 설득했다. 다시 열린 2단계 회담기간에서도 동시에 개최된 평양의 장관급 회담 채널을 충분히 가동해 북측 최고지도부에게 노무현 대통령의 메시지를 직접 전달하기도 하는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9월 21일 6자회담 타결 과정과 관련, “뉴욕에 있던 대통령 메시지를 3차례 이상 북한 최상부에 전달해 줄 것을 요청했다”면서 “그때 그때 대통령 메시지가 김정일 위원장에게 보고된 것으로 나중에 들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2005년 9월 21일.
등 북핵 해결을 위한 한국의 노력은 지속되었다.
이와 함께 한국 정부는 미국에 대한 설득작업에도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한국 외교장관과 미국 국무장관 사이의 여섯 차례의 회동이 있었는데, 가장 중요한 계기는 추석인 18일(한국시간) 새벽에 이루어진 한·미 외무장관회담이었다. 40분 정도 소요된 회담이 끝난 직후 라이스 장관은 백악관과 협의에 들어갔으며, 마침내 미국의 긍정적인 입장이 전달된 것이다.
5) 다자간 합의
베이징 공동성명에는 다자 합의이행 보장체제가 작동한다. 과거의 남북간, 북미간 합의는 양자합의로서 일방이 합의를 불이행할 경우, 이를 제재하는 수단이 없거나 미약하였다. 특히, 남북간(1991) 또는 북미간(1994) 관계와 같이 양국간 상호의존관계가 없거나 불신관계 속에서는 약속을 지키는 것에 대한 동기가 매우 미약하다. 그러나 앞으로는 6자합의에도 불구하고, 북한 또는 미국이 약속을 위반할 경우 위반국은 국제적 체면을 잃거나 실질적 불이익을 당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전봉근, “4차 6자회담 공동성명: 평가, 과제, 대책,” 『6자회담 평가와 전망』전문가토론회(민주평통, 2005.9.27).
이 외에 일본의 막후노력도 높이 평가할 수 있다. 최근 군사대국화를 향해서 나아가고 있는 일본은 북한과 어떤 형태로든 국교를 정상화하여 동북아에서의 영향력을 증대하려 하고 있다. 금번 4차 6자회담에서도 일본은 암암리에 미국에게 영향력을 행사하여 공동성명을 도출하도록 하였다. 고이즈미 개인의 영웅심이 한반도 평화에 기여한 것이다.
5. 중요 쟁점, 경수로 제공 문제
1) 북한의 경수로 집착
이번 공동성명의 핵심은 경수로 제공 문제이다. 현재 북한과 미국은 6자회담 공동성명 이후 경수로 제공 시점 이 부분은 베이징 공동성명에서 가장 모호한 부분이다. 미국은 이틀 동안 ‘경수로 논의’가 삽입된 공동성명을 거부했고, 마지막 순간에 경수로 논의가 이뤄질 ‘적절한 시점’에 대해 다른 참가국들의 ‘확인’을 받고서야 서명을 했다고 <워싱턴포스트>는 전했다. 즉 ‘적절한 시점’에 대해서 미국이 정하기로 북한을 제외한 5개국간에 묵계가 있었다는 것이다. 『한겨레신문』, 9월 21일.
을 두고 연일 공방을 벌이고 있다. 북한은 경수로 제공이 먼저라고 주장하고 미국은 북한이 모든 핵무기와 핵 프로그램을 포기하고 NPT 복귀, IAEA 안전조치 이행을 마쳐야 경수로 제공 논의를 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북한이 경수로에 대한 집착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은 해석들이 가능하다. 첫째, 북한은 경수로를 북미 신뢰의 차원에서 생각하고 있다. 북한이 94년도에 제네바합의에서 미국에게 경수로 제공을 요구한 것은 그것을 북미 관계개선을 위한 수단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지금도 유효하기 때문에 제네바회담에서 이미 했던 약속을 지키라는 것이다. 이 경우 경수로는 북미간 신뢰를 위한 상징성의 의미를 갖는다. 둘째, 미국과의 협상과정에서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한 일종의 협상카드일 수 있다. 경수로를 볼모로 삼는 것이다. 셋째, 북한은 에너지 부족 문제를 해결할 유일한 방법으로 원자력 전력생산을 선택하였다. 이에 따라 영변의 흑연감속로 건설을 추진하는 동시에 전기 생산에 보다 효율적인 경수로 기술을 얻기 위해 주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넷째, 북한이 완전한 핵폐기를 원하지 않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경수로 제안을 부분적 핵능력을 보유하려는 북한 의지의 표현으로 보는 것이다. 다섯째, ‘김일성 유훈’이기 때문이다. 김일성 주석 생전에 원자력 발전과 경수로 획득을 위한 국가적 노력이 경주되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경수로 건설은 국가목표 중 하나이며 ‘김일성 유훈’에 해당된다고 볼 수도 있다.
2) 경수로 제공 논의
경수로 제공 논의는 ‘평화적 핵 이용 권리 보장'과 ‘핵무기 및 모든 핵 프로그램 포기'란 두 의제의 절충점으로 평가할 수 있다. 북한이 9월 20일 ‘선 경수로 제공 후 핵포기’를 주장한 것은 평화적 핵 이용권에 대한 최소한의 요건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즉 경수로 제공이 북미간 신뢰조성의 물질적 담보인 것이다. 북한은 생존을 위해서 핵을 포기했지만 생존을 위해서 새로운 조건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북한은 공동성명에서 경수로 문제를 제외하고는 그 동안 6자회담에서 지속적으로 요구한 사항들을 반영한 만큼 미국의 약속 이행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반면 미국은 경수로 제공에 유보적이다. 이처럼 경수로 문제는 초기 합의를 가동시키는데 일차적인 장애물로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경수로에 관한 원칙적인 부분은 북미 양측의 물밑 협상에 따라 타결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구체적인 내용과 관련하여 몇몇 논의가 진행될 것이다. 우선 제공 시기의 문제이다. 북미간 펼치는 ‘적절한 시점’에 관한 공방은 원칙적으로 보면 ‘선 핵 포기 후 경수로 제공 논의’가 타당하다. 하지만 북한의 입장에서는 여전히 북미간 불신이 남아있는 상황에서 이를 쉽게 수용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 문제도 물밑 협상에 의한 타결이 가능할 수 있다. 북한이 ‘선 경수로 제공 후 핵포기’에서 한 발 물러나 ‘행동 대 행동’의 원칙을 근거로 ‘NPT 복귀와 동시에 경수로 제공’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했을 때, 미국이 이를 수용하지 않으면 충돌은 불가피할 것이며, 이는 미국 내 강경파들을 심하게 자극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부시정권의 결단을 통해 미국 내 불만세력을 무마시키고 동시행동을 받아들인다면 북핵문제 해결의 최적의 조건이 될 것이다. 물론 북한이 양보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현재의 6자회담 자체가 다자적 신뢰보장의 틀이기 때문에 북한이 ‘선 경수로 제공’을 굳이 고집할 필요는 없다. 북한이 선 경수로 제공을 고집한다면 국제사회는 핵 포기에 대한 북한의 진의를 의심하게 될 것이고, 경수로가 건설되는 최소 10년 동안은 핵 포기를 거부할 것이기 때문에 한반도의 비핵화는 점점 멀어질 것이다. 그것은 6자회담 관련국 모두의 실패로 귀결된다. 따라서 적당한 시점에서의 타협이 필요할 것이다. 그것은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동시행동의 원칙을 요구하는 것이고, 그것이 여의치 않을 때에는 한국이나 중국의 보증 하에 먼저 NPT체제에 복귀한 후 비핵화 과정의 시작과 함께 신포 경수로 건설을 재개하는 것이다. 그 다음에 비핵화를 완성하고 경수로를 완공하면 된다. 그리고 북미관계 정상화의 단계로 이행하면 되는 것이다.
또한 경수로 제공 여부와 논의를 개시하는 시점이 미확정적이다. 경수로 제공이라는 말 역시 ‘적절한 시점’ 만큼이나 모호하다. ‘제공'을 경수로 설계의 착수로 볼 것인지, 공사의 시작으로 볼 것인지, 완공 후 전력 생산까지를 말하는지 논란이 예상된다. 박건영, “제4차 6자회담의 평가와 후속조치,” 제17회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평화나눔센터 정책포럼(2005.9.27)
북한이 요구한 경수로 지원 방안과 관련해서는 크게 네 가지 방안이 있다. 첫째, 신포 경수로 종료와 한국의 대체 전력 제공, 둘째, 신포 경수로공사 일시 중단과 한국의 대체 전력 제공, 셋째, 신포 경수로 공사 재개와 국제 컨소시엄 운영, 넷째, 또 다른 경수로 제공 등이 있다. 임동원의 ‘21세기 동북아 미래포럼 5차’의 발표 내용. 『중앙일보』, 2005년 9월 24일.
현재로서는 신포 경수로 공사를 재개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다. 물론 북한의 핵에너지 이용 형태가 주변국들로부터 제공받는 경수로가 될 것인지 북한 자체로 건설하는 핵발전소로 될 것인지는 앞으로 진지한 논의와 합의과정이 필요하다. 하지만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의 소요 예산을 한국이 절반 이상을 부담하고 있고, 초기 토목공사가 완료된 만큼 기존 신포 경수로를 완공시키는 방안이 신속한 대안이다. 2005년 8월 말 기준 15억 5900만 달러의 투입 비용 중 한국은 11억 3500만 달러를 부담하였으며, 34.5%의 공사진척을 보이고 있다.
이는 북한을 NPT 체제로 조속히 복귀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현재 가동이 중단상태인 KEDO는 경수로 제공이 약속됨에 따라 재검토, 미국의 방침을 감안하여 형식을 달리해서 재가동해야 할 것이다. 핵발전소 건설 사업으로 돈벌이에 주력하고 있는 러시아가 신규 경수로 건설을 재빠르게 제안했지만 새로운 사업을 전개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다.
이 경우 한국은 대북전력, 중유 제공 등 에너지 지원과 관련하여 효율적인 선택을 해야 한다. 통일부는 최근 열린 국정감사에서 대북 에너지 지원 비용이 향후 9-13년간 적게는 6조5천억원에서 많게는 11조원 정도라고 밝힌 바 있으며, 민간이 추정한 대북 에너지 지원 비용은 13조-19조원이다. 야당은 20조원에 달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정부가 대북전력 지원 발표시 소요 재원으로 경수로 건설자금을 활용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한 만큼 경수로와 전력 모두를 추진하는 것은 입장 번복과 재정부담 과중 등으로 곤란하다. 물론 북한은 공동성명에 전력 지원 안을 포함시켰고 남북이 당국간 채널을 통해서 전력공급 문제를 논의함에 따라 경수로 건설 이외에 남한으로부터 별도로 전력도 지원 받겠다는 속내를 갖고 있는 만큼 정부의 명확한 입장 제시가 필요하다.
대북 에너지 지원과 관련하여 가장 합리적인 방법은 경수로 제공은 5개 국가가 분담, 대북전력은 한국, 중유는 미국이 제공하는 것이다. 하지만 공동성명의 합의 내용과 현실적인 측면을 고려할 때 다른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먼저 대북 전력지원은 한국이 전담하되 정부의 방침대로 ‘제한적 송전’이 효율적일 듯 싶다. 즉 “경수로가 완공되면 전력 제공은 중단한다”는 것이다. 『한국일보』, 2005년 9월 20일. 정동영 통일부 장관도 9월 20일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나와 “제한적 송전”을 거론했다.
정부가 이런 방안을 추진한다면 경수로 건설기간 동안 대북 전력지원이 겹치는 현상을 놓고 부분적인 논란은 있겠지만 전면적인 퍼주기 논란으로까지 확대되는 현상은 막을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경수로 건설 문제에 따른 논란과 비용 문제이다. 경수로 건설 문제에 대한 일부의 우려와 악용가능성에 대해서는 기우에 불과하기 때문에 큰 문제는 아니다. 여전히 일부 보수언론은 경수로가 핵무기 생산의 원천이라고 생각하면서 미국이 경수로 제공 논의를 수용한 것에 대해서 불만인 모양이다. 『조선일보』, 2005년 9월 20일 사설; 『세계일보』, 2005년 9월 20일 사설. 경수로의 가장 큰 특징은 다른 원자로에 비해 핵무기 제조가 힘들다는 점이다. 핵연료가 서서히 연소해 불순물이 많이 끼기 때문에 무기급 플루토늄 추출이 매우 까다롭다. 이 때문에 경수로를 이용해 핵무기 개발을 시도한 나라도 아직까지 없다. 그렇다고 절대 핵무기를 못 만든다는 얘기는 아니다. 궁금한 점은 극도로 의심하고 우려하던 미국이 왜 경수로 제공 논의를 수용했는가 하는 점이다. 이는 북한이 경수로를 ‘국제공동관리’를 제안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경수로의 악용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사실은 정동영 장관이 9월 20일 MBC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서의 인터뷰에서 밝힘으로써 확인되었다.
다만 미국이 지금까지 한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가 북한에 경수로를 제공하는 것을 싫어했다는 것이다. 앞으로도 부시 행정부가 직접 경수로를 지원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하지만 한국이나 일본이 신포 경수로 건설에 대한 자금과 기술을 부담하는 조건으로 동의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 해도 한국에 대한 부담이 너무 크기 때문에 균등하게 분담을 하거나 부담률을 줄이는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현재 신포 경수로는 최소 3조원(약 30억 달러)의 비용을 더 들이면 완공되는 만큼 이를 추진해야 한다. 형식은 향후 한반도의 미래를 고려해서 한국형 경수로가 들어가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물론 북한 현지 실태조사가 선행되지 않아 현재로선 추가 비용이 매우 유동적이다.
그렇다면 나머지 에너지인 중유 지원에 대해서는 이번 6자회담 공동성명 3항의 ‘중국·일본·한국·러시아·미국은 북한에 에너지를 제공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는 원칙에 따라서 지원하면 된다. 여기서 말하는 에너지는 중유를 말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지난 1994년 제네바 합의에서 미국은 북한의 핵동결 대가로 경수로 2기를 지어주되, 완공시까지 전력 생산용 중유를 해마다 50만t씩 북한에 제공하기로 했었다. 그런 측면에서 중유 제공은 미국이 전담해야 한다.
문제는 미국이 과연 이 원칙을 지킬 것인가 하는 것이다. 카트리나로 인해 미 의회가 반대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결국 부시의 결단이 중요하다. 부시가 결정하면 의회가 승인할 가능성이 있다. 또한 일본이 납치문제 해결 전에 에너지 지원을 안하겠다고 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그럴 가능성이 높지는 않은 편이다. 만약 미국과 일본이 국내 사정을 이유로 중유 지원에 어려움을 호소한다면 결국 한국과 중국이 분담할 밖에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 논의한 방식은 현재 정부가 추진중인 대북 에너지 지원 방안과 거의 비슷하다(<표 1> 참조). 하지만 에너지 지원은 식량이나 비료 지원과는 다르다. 식량과 비료 지원은 일부 반대가 있었지만 인도적 차원이라는 점에서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됐다. 그러나 경수로 제공을 포함한 대북 에너지 지원은 매년 수조 원씩 국민이 낸 세금으로 부담하게 된다. 대북 송금 때 현대라는 민간기업이 맡았던 것과 다르다. 통일비용의 측면에서 정부의 선투자 개념으로 봐도 과다한 비용으로 인해 한국의 시민사회가 다소 혼란스러울 것이다.
결국 협상력을 집중하여 일본, 미국의 참여를 유도하는 것이 우리의 부담을 최소화하는 방법이다. 제네바 합의 때 거론되었던 유럽연합의 참여 문제도 배제할 필요는 없다.
<표 1> 정부의 대북 에너지 지원 비용
지원내용
추산치
추가부담 가능성
중유 등
제공
-북핵 폐기까지(3년)
-연 50만t 5개국 균등 분담
1500억원
핵폐기 지연되면
중유제공 기간 확대
대북
송전
-핵 폐기 후 경수로 완공까지(6-10년)
시설비: 1조 7000억원
송전비: 3조 9000억
-8조원
발전용 유가 상승·
북한 현지 공사비 증가
경수로
건설비
-5개국 균등 분담
(200만㎾ 규모 46억 달러 추정)
7000억-1조원
관련국, 한국 부담 확대 요구
총액 최소 6조 5000억
-최대 11조원
+ α(추가비용) + 신포 경수로 청산비
(2억-3억 달러)
출처 : 『중앙일보』, 2005년 9월 23일.
6. 맺음말
제4차 6자회담의 틀과 공동성명은 정치적인 구속력만 있을 뿐 법적인 강제력은 미흡하다. 따라서 11월 시작되는 제5차 6자회담은 행동의 선후를 따지기보다 한쪽이 먼저 행동했을 때 다른 쪽도 약속을 지키게 하는 ‘강제력'을 담보하는 장이 돼야 한다는 과제를 안고 있다.
북핵을 폐기하는 절차와 일정을 담은 로드맵이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총론적 원칙에 합의했으므로 ‘행동 대 행동’으로 옮겨지기 위한 각론의 합의가 필요하다. 즉 핵포기의 구체적 이행 방법, 북미 북일 관계 정상화 과정의 조건과 일정표 그리고 대북 에너지 지원의 규모와 절차 등 구체적인 논의와 협의가 필요하다. 따라서 앞으로 진행될 실무협의와 차기 6자회담에서 각론의 합의를 도출해내는 것도 이번 합의 도출만큼이나 큰 지혜를 필요로 한다.
북한이 막후협상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협상의 모멘텀을 위해서는 6자회담 본 회담 이외에도 북한과 미국의 고위층의 직접 대면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 남·북·미·일간 고위급회담을 토대로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고이즈미의 방북설, 남한의 라이스 미 국무장관 방북 추진설, 김영남 상임위원장의 APEC 초청설 등이 그것을 말해 주고 있다. 그러나 북핵 해결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방법으로 2차 남북정상회담을 우선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정치권을 중심으로 남북정상회담 성사 가능성이 운위되거나 촉구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6자회담 관계국들의 이 같은 움직임 중에서 가장 현실성이 있는 것은 우선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의 방북 추진설이다. 정부는 힐 차관보의 방북이 성사될 경우, 경수로 문제 등으로 갈등을 빚고 있는 북미관계에 긍정적인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한 북한과 미국은 이번 합의의 취지를 존중하면서 미국은 북한에 대한 신뢰를 보여주고 북한도 국제사회의 신뢰를 얻기 위한 합리적인 방안을 찾아야 하는데 바로 이 점에서 우리 정부가 북한과 미국을 적극적으로 설득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북핵 문제 해결을 통한 한반도의 비핵화가 신자유주의 시장질서의 공격을 동반한다는 것이다. 북한의 신자유주의 시장질서로의 편입은 체제유지를 위한 조건이 되어 있고, 그러한 북한을 미국은 중국을 향한 전초기지로써 활용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반도와 동북아에서의 자본의 공격을 막아낸다는 것은 상당한 어려움이 예상된다. 결국 한반도의 비핵화는 전세계 비핵화를 위한 토대이어야 하며, ‘반세계화’, ‘반전반제’의 의제를 중심으로 세계 민중이 연대하고 단결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