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2006년 정세전망(I)
현장에서 미래를 제115호
2006년 세계경제 향방은?
- 미국경제의 금융적 팽창과 당면 불안정성
김명록 / 한노정연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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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이 때쯤이면, 청탁을 받는다. 주제는 내년 경제를 예측해보라는 것이다. “주식에서 손을 떼야 될 때가 언제인가”하면, ‘충청도 아줌마’들이 주식에 뛰어들 때와 경제학자들이 주식투자를 시작할 때이다. 경제학자라고 하더라도 이들의 예측이란 매번 틀리기 일쑤이다.
세계경제를 전망하는데 가장 중요한 변수는 미국경제상황이다. 미국이 여전히 세계 최대의 생산물을 내놓고 있으며, 세계에서 가장 많은 주식과 채권을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미국의 파급력은 세계경제의 미래에 중요한 변수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미국경제는 심각한 불균형과 불안정성을 가지고 있다. 그 불안정성의 중요한 원인은 금융적인 형태를 띠고 있다. 이 글에서는 이러한 특징을 포착하여 ‘전망 아닌 전망’을 내놓을 것이다.
1. 금융적 팽창과 의미
경제가 좋아지는가 나빠지는가가 모든 사람들의 뇌리를 지배하고 있다. 주식열풍, 부동산시장의 변화 때문에 일부 사람들이 대박을 터트리지만 그 여파는 노동으로 삶을 살아가는 다수 민중들의 삶을 상대적으로 심리적으로 고달프게 한다. 그들이 새로운 생산물을 만들고 부를 창출하지 않는다면, 결국 그들에게 돌아가는 것은 다수가 노동으로 만들어낸 부일 수밖에 없다. 다수의 노동으로 만들어진 전체 생산물 중에서 점점 많은 부분을 그들이 소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의 소비력은 그들이 가진 ‘자본’그 자체로부터 나온다.
이런 의미에서 생각한다면, 이들의 불로소득은 이미 만들어진 부(소득)를 재편하는 것이다. 이 때 재편이라는 것은 누군가의 소득을 교묘하게 ‘거래’로 위장하여 빼앗아 갔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그것을 재편하는 수단은 부동산, 주식 등 이른바 금융자산(financial asset)이다. 금융자산이 덩치를 키우면서 본격적으로 전 세계를 떠돌아다니기 시작한 시기는 1970년대 이후이고 1980년대 이후에는 확연하게 눈에 띈다.
여기서는 이러한 현상을 금융적 팽창이라고 부르며, 금융적 팽창 때문에 발생하는 소득의 재편과 그것으로 인하여 금융자본(가)들의 소득이 늘어나는 것을 금융적 축적이라고 부를 것이다. 금융적 축적은 생산적 활동이 아니라 금융적 경로(주로 금융자산에 대한 투자)를 통해서 이자, 배당, 자본이득을 얻어 축적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2. 미국의 금융적 팽창의 장기경향
세계에서 가장 많은 빚을 지고 있는 나라는? 자신이 만든 상품보다 훨씬 더 많은 상품을 소비하고 있는 나라는? 모두 미국이다. 이것과 미국의 불안정성은 밀접하게 관련 있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지를 찬찬히 살펴보자.
<그림 1> 1950~2000년 GDP, 자본스톡, 금융자산의 성장현황
(기준 2000년, billion)
<그림 2> 1950~2000년 금융상품별 스톡 현황(기준 2000년. billion)
출처 : 미국 자본순환계정. 단, (1)실물자본스톡은 기업과 가계의 실물자산을 의미하며 국민소득계정(NIPA)참고. (2)금융자산스톡은 미국의 자본순환계정에서 참고. 경상가격으로 기록된 것을 2000년 기준의 GDP deflater를 적용하여 2000년 가격으로 전환시켰음. corporation equity는 주식이고, 재무성채권+정부기관 증권은 정부에서 발행하는 국채와 다른 금융자산(treasury securities)을 의미한다. mortgage는 부동산담보부 채권을 의미한다.
기업이 생산적인 투자를 하기 위해서는 자본을 끌어들여야 한다. 이를 finance라고 한다. 그것의 수단들이 금융자산이다. 그렇다면 기업의 생산적인 투자와 금융자산의 크기는 비례적인 관계를 가져야만 한다. 기업의 설비와 공장 등을 실물적인 형태의 자산(실물자산)이라고 하는데 이것과 주식, 채권 등의 금융자산의 시가총액은 비슷하게 증가되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1980년대에는 확연하게 달라진다. 실물자산이 성장하는 것보다 금융자산이 훨씬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가?
<표 1> 금융자산 시가총액(stock) (기준 2000년 가격, billion)
<표 2> 연도별 평균 발행액 (기준 2000년 가격. billion)
출처 : 미국 자본순환계정
여기서 몇 가지 특징을 알 수 있다.
(1) 금융적 팽창을 이끈 주된 동력 중의 하나는 주식시장의 시가총액이다. 기업이 생산적인 투자를 위해서 주식을 발행해야 한다. 그런데 주식시장이 치솟았던 1980년대 이후에는 오히려 주식의 순발행액이 오히려 마이너스였다(<표 2>의 -60.24를 보라). 순발행액이 마이너스라는 말은, 주식시장에서 주식을 발행하여 자본을 조달하지 않았으며, 심지어는 자신이 발행한 주식을 구매하여 없애버린 경우이다. 곧, 주식이 산업자본에게 자본을 조달하는 기능을 전혀 수행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식시장이 어떻게 팽창할 수 있었을까? 이는 해외금융자본의 유입에 의해서 가능했다. 또한 주식시장의 팽창은 누구에게 이익을 주었는가? 산업자본의 확대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면 주식의 소유자들(즉, 금융자산소유자들)의 배를 불려준 역할밖에 하지 않았으며, 이는 주식을 통한 부(소득, 재산)의 재편을 의미할 뿐이다.
(2) 금융적 팽창을 이끈 또 다른 동력은 재무성 채권과 정부기관들에서 발행한 증권들이다. 국가가 여러 이유로 자금을 조달할 때 국채(채권, 부채)가 발행되는데, 계급적으로 본다면 이러한 정부부채는 국가권력을 채권자들이 장악하도록 하는 수단이 된다. 1980년대 미국 연방정부의 부채가 급증함에 따라 채권자들은 정부에 대해 보다 엄격한 재정 및 금융정책을 요구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되었다. 1980년대 이후 미국 정부의 부채 폭증은 미국실물자본의 위기를 반영한 것이며 동시에 금융권의 위기를 반영한 것이다. 산업자본의 위기로 인하여 발생한 부실채권들과 부동산 붐의 소멸로 발생한 저축은행들의 부실을 해결하기 위해서 미국 재무성에서는 막대한 양의 국채를 발행하였다.
(3) 회사채 시장의 연간거래액은 재무부채권의 2~3일치에 지나지 않는다. 거래가 드문 시장(thin market)으로 알려져 있다. 회사채는 별도로 다루지 않음.
또한 금융적 팽창을 이끈 중요한 변수는 mortgage시장의 팽창이다. 이것의 증가 역시 금융시장의 팽창 즉 금융적 팽창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mortgage는 대다수가 home mortgage로서 가계에서 대출을 위해서 주택을 담보로 해서 발행되는 것이다. 왜 가계는 주택을 담보로 해서 부채를 조달하는 것일까? 이 문제는 가계소득의 현황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종합적으로 현황을 보면, 금융시장을 떠받들고 있는 구성부분은 주식>재무성채권 및 정부기관 증권>가계부채>회사채 순이다. 그리고 최근 20년의 발행액(flow)을 보면, 재무성채권 및 정부기관 증권>가계부채>회사채 >주식 순이다.
3. 빈부격차, 국가에 의한 부채 조달
미국의 노동자들의 실질소득은 1973년부터 지속적으로 하락하였다. 실질소득이란 임금을 이야기 하는데, 1970년대 이후 장기적인 경기불황의 여파로 미국자본은 구조조정 및 정리해고, 노동조합 말살을 기도하였고 이러한 자본의 대응에 대하여 노동계급은 수세적으로 대응하고 패배하였다. 그 결과 임금소득의 지속적인 저하를 감내해야만 했다.
실질소득의 저하에도 불구하고 노동계급의 가계들은 소비수준을 일정정도 유지해야만 했다. 이것은 가계의 mortgage 발행을 증가시키게 된다. 더그 핸우드(1997)는 1983년의 미 연방준비위원회(연준)가 발표한 자료를 인용하여 ‘모든 가계의 절반 이상이 빚쟁이였다’고 언급하였으며, 또한 Robert Pollin은 소득 순위 하위 40%는 소득 감소에 따른 소비지출 부족액을 메우기 위해서 차입한다고 주장한다. 즉 소득의 감소를 메우고 소비를 위해서 부채를 조달하고 있는 셈이다.
노동자계급의 가계에서 진 빚은 이자를 발생시키는데, 이러한 이자소득은 곧 하위계층의 가계에서 금융시장을 통해서 상위계층가계로 흘러들어간다. <표 3>을 보자.
해마다 하위계층 가계에서 상위계층 가계로 흘러들어가는 이자의 총량이 임금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부채조달은 베이비붐세대와 그 후의 세대들이 축적하였던 자신들의 과거 소득(부동산 등)을 금융시장에 내놓음으로써 이를 상위계층 가계에 바치는 꼴이 된다.
이 부채들은 금융시장으로 흘러들어가고 은행들은 이들 부채를 모아서 다시 금융상품으로 판매하기 시작하였다. 이른바, 부채의 유동화 및 증권화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이러한 현상의 본질은 실질소득의 저하 -> 부채조달 -> 부채의 금융자산화 -> 금융시장의 팽창 -> 이자소득에 의한 상위계층으로의 부의 집중이다.
<표 3> 가계의 이자지급 및 이자수입 현황(기준 : 당해연도 경상가격, billion)
출처 : 미국의 국민생산소득계정(NIPA)
또한 주목해야 하는 것은 정부관련 기관에서 발행되는 부채증권의 증가와 그 결과이다. 은행에 돈을 빌려주었던 금융채권자들은 은행이 파산나면서 돈을 잃게 된다. 그런데 국가가 은행의 파산에서 발생하는 손실들을 보존해준다면 금융채권자들의 손실은 발생하지 않는다. 재무성채권 등의 정부관련 기관 채권들은 이러한 기능을 하였다.
1980년대 초반과 후반의 저축대부조합의 위기와 198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반의 상업은행의 위기에 대한 연방정부의 정책들은 모두 이들의 부실채권을 구매하여 다른 은행에게 판매하는 방식(이른바 P&A 방식)을 취하였다.
이러한 방식으로 금융채권자들을 구제해주기 위해서 필요한 자금이 국가로부터 조달되어야 하며 이는 국가부채의 문제로 연결된다.
또한 장기적으로는 이것이 바로 국민 전체의 부담으로 작용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본다면 금융을 통한 또 다른 강탈체계, 부의 이전체계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4. 현재: 세계적 수준의 부채경제
앞에서 보았듯이 국가와 가계에 의해서 점점 많은 부채와 금융자산이 발생된다. 그런데, 이 금융자산의 소유자들은 누구인가? 첫째 미국 내 상위계층들과 이들의 자산을 운영해주는 금융자본들, 그리고 전 세계적으로 활동하는 초국적 금융자본들, 그리고 마지막으로 초국적 산업자본들이다.
특이한 점은 생산적 활동을 하는 산업자본조차 점점 금융자산의 취득에 열을 올린다는 점이다.
<표 4> 비농 비금융 산업자본의 재무계정들
출처 : NIPA
결국, 미국에서 발행되는 부채와 금융자산들은 점점 자본들의 손아귀에 집중되며 이는 국민들 특히 하위계층들의 미래 소득을 강탈하는 수단이 된다. 또한 과거에 이들이 노동의 대가로 축적한 재산들에 대한 강탈수단이 된다. 금융적 팽창은 이러한 부의 재편을 본질로 하는 것이다.
현란하게 움직이는 주가지수와 채권가격의 변동, 부동산 가격의 변동의 뒷면을 장식하는 것이 바로 이러한 부의 재편인 것이다. 물론 이러한 부의 재편과정은 미국 내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1980년대 남미지역의 부채위기는 이점을 잘 보여준다. 이들이 부채를 갚기 위해서 쏟아 부었던 이자는 원금의 몇 배를 상회한다. 이는 초국적 금융자본에 의한 부의 국제적 이전인 셈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국가와 국가 간의 부의 이전이 아니라 국가내의 특정 계급, 또는 계층에 대한 자본일반의 수탈 및 강탈체계가 금융을 통해서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수탈체계는 현상적으로 미국 내로 외국자본이 유입되는 것으로 나타난다. 2001년~2004년 동안 미국 내로 들어간 해외자본은 해외 총저축의 80%에 해당한다. 전 세계의 유휴자본이 미국으로 금융자산을 구매하기 위해 몰려들고 있었다. 이러한 유휴자본의 미국 내로의 흡수는 세계적 수준의 과잉자본에 대한 출구역할을 한다. 산업자본의 생산적 투자로부터 이윤율이 저하되면서 산업자본 및 금융자본들은 점점 또 다른 축적의 논리를 찾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금융적 팽창이다. 금융적 팽창을 통해서 금융적 축적을 진행하는데 그것의 중요한 원천이 이자의 형태이다. 생산적 행위로부터 발생하는 이윤율의 저하상태, 즉 과잉자본상태에 봉착하여 새로운 돌파구를 형성시킨 것이므로 금융적 팽창의 원인은 과잉자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형태에는 명백하게 한계를 가진다. 그것은 이러한 강탈체계로서의 금융적 축적이 더 이상 지탱하지 못하는 경우를 의미한다. 가계의 파산과 빈곤의 심화는 금융적 축적의 걸림돌이 될 것이다. 이미 가계부채의 문제는 한국의 문제만이 아니다. 이미 한국의 금융산업(은행업)의 수익구조가 산업자본에 대한 차입에서 소매금융(가계금융)으로 돌아선지 오래되었고 그 결과 가계부채문제와 가계파산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에도 이러한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5. 결론: 미래를 알 수 없는 진행과정들
정리해보자. 국제자본의 거대한 순환은 이러하다: 세계적인 유휴자본(총저축)은 미국으로 향하고 있다. 미국으로 향한 유휴자본은 주가를 끌어올리고 가계대출과 부동산 붐의 형성에 기여하며, 이자와 시세차익(자본소득)형태로 부를 재편하고 있다. 일부(특히 주식과 부동산)는 버블(그 토대가 취약하므로)일 가능성이 크며 그 나머지는 이자 등의 수익을 먹고 축적하고 있다. 하층계급의 재산과 미래소득을 재편하는 것이다. 부채로 조달된 구매력으로 소비를 유지하면서 미국은 저축을 하지 않는 나라로 전락하게 되었다. 자금을 조달하므로 부채국가이며, 그럼에도 외환보유고를 축적할 이유가 없으므로 부채국가인 채 무역적자를 지속적으로 발생시켜도 아직 별다른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그러나, 미국 내의 가계파산, 주가폭락 등의 문제가 발생한다면, 금융자본의 움직임은 달라질 것이다. 문제는 어디로 갈 것인가? 그리고 미국이 더 이상 과잉상품을 흡수하지 않고 과잉 금융자본을 흡수하지 않는다면, 세계 경제는 어디로 갈 것인가? 부채로 조달되는 미국 경제와 미국경제에 의존하는 세계 경제의 미래는 그 앞날을 예측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