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문제에 대한 올바른 독해
배성인 / 한신대 외래교수
1. 수준 이하의 한국정치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 일행의 ‘개성공단 춤’ 사건 때문에 정말 웃기지도 않는 한편의 코미디가 연출되었다. 일행 중 한 명인 원혜영 의원은 국정감사에 참여도 못했고, 국회 국방위는 파행을 겪었다. 북한의 핵시험에 대해서 ‘무력불사’를 외쳤던 한나라당은 ‘호전적’이라는 말에 입에 거품을 물고 목젖이 다 보일정도로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자신들은 미사일 시험 발사 이후에 골프를 쳤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지만, 개성공단 춤 사건은 핵시험 이후라서 용납이 안 된다는 궤변을 늘어놓았다. 미사일과 핵의 차이점이 이렇게 큰 줄은 예전에 미처 몰랐다.
북한이 핵시험을 했는데도 국민들의 이성적이고 냉정한 반응이 거슬린 모양이다. 이들은 우리사회의 안정 유지에 대해서도 ‘안보불감증’이란다. 그렇다면 이들은 안보 과잉으로 인한 ‘전쟁광분증’인가? 이들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정치인(꾼)이다. 그들에게 상식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지만 이제는 정상적이지도 않다. 한미관계나 북미관계도 비정상적인데, 같은 사회 구성원들의 관계가 비정상적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정말 서글프다.
이번 북한 핵시험 국면은 정말 점입가경이다. 지난 7월 미사일 시험발사 국면보다 더욱 시끄럽다. 전 국토가 난리법석, 시끌시끌하다. 북한이 핵시험을 감행한 10월 9일은 방송을 포함한 모든 언론매체가 국민들의 눈과 귀를 봉쇄하였다. 온통 같은 이야기로 도배질했다. 아직도 명확하게 밝혀진 것은 없다. 여전히 핵시험이 ‘뻥카드’라는 얘기부터 핵주권론, 무력불사론 등 별의별 얘기가 떠돌고 있다. 그럼에도 국민들은 냉정함과 이성을 잃지는 않았다. 하지만 가공할 만한 미디어권력에 의해 국민들의 의식이 조작당하는 것은 분노치 않을 수 없다. 국민들보다는 오히려 일부 정치세력들과 운동세력들이 지나치게 정치적, 극단적, 비이성적, 맹목적이다. 그들로 인해 한국사회가 이념적 양극화로 치닫고 있다. 정말 그들의 수준이 의심스럽다.
2. 핵보유국 북한의 미국에 대한 도전
지난 10월 9일 핵시험 이후 북한은 그야말로 국제사회에서 ‘공공의 적’이 되고 말았다. 이와 관련하여 한나라당을 비롯한 보수진영은 북핵 위기론을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 보수언론 역시 “전쟁이 불가피하다면 전쟁을 해야 한다. 전쟁이 무서워 피할 때 우리는 볼모가 된다. 전쟁을 각오하고 나서야 전쟁을 막을 수 있다”(중앙일보, 10.17), “대한민국 진영은 전 세계와 더불어 김정일 숨통 죄기에 목숨 걸고 동참해야 한다”(조선일보, 10.17) 면서 ‘북한체제 붕괴론’을 설파하고 있다. 국제사회 역시 이란 등 일부 국가를 제외하고는 북핵 시험 비판과 대북제재 동참이라는 비슷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번 북한의 핵시험은 그 동안의 북한 핵 보유 논쟁에 종지부를 찍는 의미가 있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북한이 2005년 2월에 핵 보유선언을 했을 때부터 ‘사실상의 핵 보유 국가’가 된 것이다. 이것은 국제사회에서 북한이 핵보유국으로서 인정을 받는 것과는 무관하게 세계에서 9번째의 실질적인 핵보유국이 된 것을 의미한다.
그 동안 미국은 북한이 비록 핵시험을 성공한다 해도 결코 ‘핵보유국’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누차 천명해 왔다.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가 지난 10월 4일 “북한이 핵실험을 하더라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북한에 직접 전달했다”고 밝혔으며, 나아가 “만약 북한이 핵실험을 하면 어떻게든 자동적으로 핵클럽에 가입할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라고 강조할 정도로 부정적이다.
미국에게 있어서 북이라는 존재는 중국의 위협을 방지하는 수단임과 동시에 중국을 위협하는 도구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체제의 변형이 필요한 것이다. 체제 변형의 형태는 체제의 붕괴이거나 김정일 정권의 전복이거나 관계없다. 그것은 동북아에서 미국의 패권유지에 유효한 전술로서의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북아 평화도 미국 중심의 평화 내지 미국이 관리하는 평화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북한이 핵보유국의 위치를 점하게 되면 미국의 이러한 구상은 산산이 부서지게 된다.
그렇다면 북한의 선군사상과 미국의 군사주의가 대응하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의 핵시험은 한반도가 전쟁의 위험에 한 걸음 더 다가갔음을 의미한다. 더욱이 군사전략적 사고방식에 완전히 매몰된 북한과 미국의 지도부 사이에서 진행되고 있는 힘겨루기는 전쟁의 톱니바퀴를 하나씩 하나씩 앞으로 돌리고 있는 것이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과 북한에 대한 체제보장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미국이 이러한 관계를 의도적으로 부정하고 북한에 대해 압박정책을 포함한 악의적 무시정책을 펼 때, 북한에게 다른 대안은 없었다. 현 시점에서 북한 지도부의 안보담론에 따르면, 금융제재는 저강도 전쟁을, 압력의 가중은 전쟁선포를 의미한다. 한반도는 지금보다 더 위험하고 더 폭력적인 ‘물리적 대응조치’의 위협 아래 놓이게 되었다. 아울러 북한의 핵시험은 북한 내부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미국의 대북 압박정책에 맞서 ‘선군정치’의 정당성과 위력을 보여줌으로써 북한 체제의 자신감과 단결력을 높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북한 핵시험이 갖는 중요한 의미는 미국의 주도권에 대한 도전이라는 것이다. 북한이 10월 3일 핵실험 계획을 발표 “절대로 핵무기를 먼저 사용하지 않을 것이며 핵무기를 통한 위협과 핵 이전을 철저히 불허할 것”이라는 성명을 발표했는데, 이것은 역설적으로 안보 위협 해석을 독점하려는 미국의 주도권에 대한 도전이었다. 즉 9.11 이후 지금까지 안보 위협에 대한 해석은 미국이 독점해 왔던 것이다.
3. 북핵 규탄과 민족 사이
이번 북의 핵시험은 북미간 근본적인 상호불신 구조 하에서 9.19 공동성명 이후 지난 1년 동안의 상황이 북한으로 하여금 충분히 핵시험을 선택 강행할 수 있는 조건이었다. 북한은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금융제재 해제를 요구해 왔고 미국과의 직접 협상을 얘기해 왔다. 하지만 지난 7월 5일 북한의 미사일 시험 발사와 유엔안보리결의안이 채택 이후에도 미국은 여전히 금융제재 해제 문제의 분리와 직접 협상 대신 6자회담 선택이라는 기존 입장을 고수하였다. 이러한 상황은 북한에게 핵보유를 한 상태에서 협상하는 것이 여러 가지로 유리할 수 있다는 판단을 가져오게 한 것으로 보인다. 김정일 정권의 궁극적인 목표는 체제의 생존이다. 즉 정권 유지와 미국의 대북 적대시정책 철회를 통한 안전보장이다. 그런데 미국의 정책은 궁극적으로 북한의 붕괴나 정권교체 이다. 더 이상 대화나 타협의 여지가 없는 셈이다. 이런 관계 속에서 북의 선택은 명확하게 이번 핵시험을 통해서 나타난 것이다. 즉 북한 핵시험에 대한 원죄가 미국에게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핵시험은 그 사실관계를 떠나서 1991년 12월 채택한 한반도 비핵화 선언을 파괴하였다. 또한 미국이 구상하고 있는 세계적인 차원의 대량살상무기 비확산체제의 위기를 가져오게 했다. 당장은 이란의 핵개발 시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당장 핵 무장은 아니더라도 대만과 일본을 중심으로 동북아 질서 변화에도 중요 변수로 작용할 것이다. 나아가 국제정세의 변화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렇다고 미국의 원죄설과 핵시험으로 인한 동북아 지형의 불안정을 맞바꿔서는 안 된다. 본말을 전도시킬 의도는 전혀 없다. 다만 북핵을 둘러싸고 진보진영이 내홍에 시달리는 것을 보고 본질을 꿰뚫지 못하고 현상만 분석하는 어리석음에 대해 개탄할 뿐이다.
한편에서는 진보를 표방한 일부 시민운동단체들이 ‘북한 핵시험 규탄’에 열을 올리고 있으며, 다른 한편에서는 민주노동당을 비롯하여 일부 통일운동 단체들의 ‘북핵 용인론’을 둘러싼 논쟁이 가열차게 전개되었다.
북의 핵시험이 동북아 정세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이다. 특히 대만이나 일본이 핵무장 및 군비증강에 대한 욕망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이들은 북한을 명분으로 틈만 나면 자신들의 욕망을 채우려고 눈치를 보고 있다. 이들 국가가 동북아 정세의 변화에 변수로서 작용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핵심이 아니다.
핵심은 미국의 동북아 패권 전략이다. 미국에게 동북아는 정말 중요한 전략적 요새이다. 정치 군사적으로도 그렇고 경제적으로도 커다란 시장이다. 미국의 동북아 패권 정책은 대량살상무기(WMD) 확산 방지 및 효과적인 대 테러전 수행태세 완비, 경제이익의 안정적 확보, 지역 패권국가의 출현방지, MD체제 구축 등이 핵심적이다. 이러한 정책 및 목표 수행에 있어서 대만과 일본은 중요한 협력국가이자 수단인 것이다. 동북아 불안정은 북한에서 발사한 것이 아니라 미국에서 발사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또한 이들 시민운동단체들은 동북아뿐만 아니라 한반도가 결코 ‘비핵화’ 지대가 아니며, 최소한 미국의 이른바 ‘핵우산’ 아래 놓여 있는 지역이라는 사실, 그리고 정부나 미 제국주의조차 결코 부인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어야 했다. 그래서 이번 북핵 실험이 미 행정부내 강경파가 대북 압박 정책의 정당성을 확보하는데 기여했다는 분석은 우연이 아니다.
또한 ‘북핵 용인론’에 대해서도 올바른 인식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싶다. 북핵 문제가 민족문제인 것은 맞다. 그것은 우리 민족의 생존이 달려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각이 너무 좁아서 제대로 볼 수가 없으며 그 이면에 드리워진 형체에 대해서는 더더욱 알 수가 없다. 북핵문제가 동북아 지형이나 나아가 국제질서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하면 민족문제로 보기에 너무 협소하다. 이것은 인류의 문제이고 평화의 문제이다.
한편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세계자본의 흐름에서 보면 민족의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이지만 멀게는 동북아 노동자 민중의 생존문제인 것이다. 북한의 핵자위권에 대해서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지만, 그렇다고 북한의 핵 보유를 인정하는 것은 한반도 평화체제 및 동북아 평화에 커다란 걸림돌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자위권이라는 것이 결국에는 보복수단으로의 가치를 의미하는 측면도 있기 때문에 북한의 핵 보유는 한반도 및 동북아의 긴장강화 또는 새로운 형태의 냉전지대로 형성되는 것이다.
이제 북한을 포함해서 핵 보유국이 9개국으로 늘었고, 잠재 핵 보유국도 40여개 국가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되는 상황에서 북핵 용인론은 동북아를 포함한 전세계를 향해 북한발 핵개발 및 군비증강 확산 국면으로 전개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의 핵 보유가 “한반도의 분단 모순을 해결해 주느냐, 아니면 신자유주의 세계화 속에서 노동자 민중들의 소박한 삶을 지켜낼 것이냐”하는 문제로 들어가게 되면 갑갑해 지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북의 핵시험에 대한 근본적인 책임은 미국이 전적으로 담보해야 한다. 현재 북핵 문제의 해법을 놓고 북미 상호간 공을 주고받고 있다. 이번에는 그 어느 때 보다 빠른 속도로 전개되고 있다. 북한문제는 구조적인 수준의 분석을 통해서 해결책을 모색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변화되는 객관적인 정세 속에서 행위자들의 행태가 커다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북한의 정세분석과 판단이 오류를 범하게 되면 이는 한반도 및 동북아에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미국뿐만 아니라 북한을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으로서는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이 북의 핵보유를 부추기고 있다는 비판을 통해 북이 핵을 보유해서는 안 된다는 간접 비판(고민택, “북의 핵시험과 좌파의 선택(2)”, <참세상>, 2006.10.23)이 가능한 것이다.
4. 북한과 미국, 쌍방향의 동일성
미국에게 북한은 범죄국가이다. 하지만 국제사회에서 북한을 범죄국가로 낙인찍는 미국 역시 범죄국가임이 분명하다. ‘현실 사회주의’ 붕괴 이후 북한은 끊임없이 관계 개선과 생존보장을 요구해 왔지만 미국은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며 일종의 말살 상대로 인식하고 있다.
부시 미 대통령은 지난 8월 11일에 “국민의 번영을 훔치는 도둑체제(kleptocracy)”에 대한 전 세계적 투쟁을 시작한다고 선언하였다. 그러면서 북한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그 주된 대상의 하나임을 밝혔다. 부시 행정부는 이미 북한을 ‘악의 축’, ‘폭정의 전초기지’, ‘범죄국가’, ‘소프라노 국가’, ‘불투명 국가’ 등의 딱지를 붙였다. 이외에도 김정일 위원장을 가리켜 ‘피그미’, ‘밥상머리의 버릇없는 아이’로 불렀다. 이렇게 화려한 어휘력과 수사학을 보면 역시 부시 행정부다움을 느낀다.
북한의 미사일 시험 발사와 핵시험 의도가 미국과의 문제 해결을 위한 압박수단이라는 견해에 대해서는 보편타당하다. 미국에게 북한은 대화의 상대가 아니라 붕괴되어야할 대상이기 때문이다. 북의 전략적 목표는 체제와 정권 유지다. 그 어떤 무엇도 이를 대체할 수 없으며, 그 어떤 무엇도 이러한 전략 목표에 종속 또는 복속된다. 그런데 부시 행정부는 체제변형(regime transformation)이라는 명분 하에 체제붕괴(regime change)의 목적을 버리지 않고 있다. 이러한 미국의 대북 강경책에 대하여 북한으로서 선택할 수 있는 여지는 거의 없다. 그들의 논리대로 ‘말 대 말, 행동 대 행동’의 원칙으로 대응하는 것이다.
개번 맥코맥이 볼 때 북한의 핵에 대한 인식은 “미국의 지속적인 핵공격 위협을 두려운 눈으로 지켜보면서 북한은 핵에 대한 미국식 가치관과 행동코드를 흡수해버렸고, 이것이 북한의 군 중심 사고와 핵에 대한 집착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개번 맥코맥, <범죄국가, 북한 그리고 미국>, 이카루스미디어, 2006). 그리고 북한이 핵 개발 및 시험을 하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즉 지난 50년 동안 세계는 북한이 미국으로부터 직면했던 핵 위협에 대해 무관심했으며, 북한이 강대국이나 쓰는 표현인 이른바 ‘억지력’이라는 것을 개발하기 시작하고 나서야 겨우 관심을 쏟기 시작했다. 이번 북한의 핵시험이 이를 반증하고 있는 것이다.
핵시험은 북한이 쓸 수 있는 최후의 내부 통제수단이 될 수 있다. 핵시험 이후 이어지는 국제사회의 전례 없는 고강도 제재, 미국과 국제사회의 제재를 빌미로 계엄 상태와 같은 분위기를 조성해 내부 반발 움직임을 가차 없이 진압할 수 있다. 국제사회의 압박이 강하면 강할수록 역설적으로 북한의 내부 통제와 결속은 더욱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미국의 이러한 강경한 태도가 오히려 북한 체제를 지속시키는 데 도움이 된 것이다. 미국의 대북 강경책이 북한으로 하여금 생존의 본능을 자극하고 강한 반발력을 만든 것이다.
북한 핵 문제가 국제 이슈화한 1990년대 이후로도 북한 주민들은 미국이 자신들을 ‘악의 축’으로 규정한 것에 대해 극도의 불안을 느끼고 있다. 이 때문에 이미 시효가 만료되어야 할 ‘주체’를 21세기에도 붙들고 지도자를 중심으로 결집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미국과 북한은 적대적 공생관계 또는 상호의존관계이다. 과거 남북이 적대적 상호의존 속에서 공생해왔던 것처럼 북미 관계도 유사한 형태를 띠고 있다.
5. 핵 패러독스와 미국의 실패
핵이 갖는 역설적인 논리는 핵은 핵을 통해서만 억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핵은 그 속성상 가진 나라가 안 가진 나라에 대해 엄청난 비대칭적 우위를 가지게 하는데, 둘 다 핵을 가졌을 경우 소위 ‘공포의 균형’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또한 그 균형이 깨어지면 상호 공멸에 이를 것이라는 공포심에서 절대적 균형으로 진전된다. 어느 한편이 핵무기를 가진 상대방에 대해 핵 공격을 가할 경우 상대방이 핵무기로 보복공격을 할 것이 명백하며, 그럴 경우 핵무기의 속성상 둘 다 공멸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핵무기는 핵무기가 없는 나라에만 사용할 수 있는 무기인 것이다. 핵무기의 정치공학은 핵무기를 보유한 나라들끼리는 공포의 균형을 파괴할 수 없기 때문에 평화적으로 공존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핵 위협은 항상 핵 방어를 야기했다. 즉 핵에 의해서 평화가 지켜지는 것이다. 소련의 위협에 대응한 영국과 프랑스가 그랬고, 사방의 위협에 대한 중국이 그랬고, 그런 중국에 대한 위협에 인도가 그랬으며, 인도에 대해서는 파키스탄이, 미국에 대해서는 현재의 북한이 그랬다. 그렇다면 북한에 대해서는 일본이나 대만이, 일본이나 대만에 대해서는 남한이 그럴 것이 아닌가. 이는 한반도 비핵화나 부시 행정부의 비확산 정책에도 심각한 장애를 초래하는 것이다.
미국은 처음부터 북한의 비핵화를 추동할 진정성이 없었다. 클린턴 정부는 북한의 핵을 실체로 접근 인정하여 레드 라인을 설정, 해결책을 모색하였지만 부시 행정부는 정치적으로 접근하여 레드 라인이 불명확하고 해법 모색도 쉽지 않았다. 그것은 부시 행정부의 ‘악의적 무시를 통한 현상유지정책’ 때문이다. 더욱이 비핵화(denuclearization) 원칙에는 관심이 없고 ‘비확산’(nonproliferation) 쪽으로 방향을 선회하였다. 그들은 비확산이라는 말을 비핵화라는 말로 슬쩍 바꿔놓고 자기들이 마치 비핵화를 요구하는 것처럼 하고 있다. 비확산이란 미국의 ‘핵우산 공약’에는 손도 대지 않고, 북한의 핵무장만 해제하겠다는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는 개념이다. 반면에 북한은 한반도 비핵화 원칙에 대해서 수차례 강조했으며 의지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결국 부시 행정부의 일관된 ‘악의적 무시’ 정책이 대북 정책의 오류를 범한 것이다. 그들의 ‘악의 축’에 대한 과도한 이데올로기적인 집착이 이러한 오류를 범한 것이다. 이성을 상실한 맹목적인 철학이 아닐 수 없다.
북한의 입장에서 미국의 압박으로부터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핵 보복능력을 갖추는 것이라고 판단해서 핵시험을 했다면 미국의 핵 패권 정책은 일단 실패한 것이다. 반면 북한에게는 커다란 이익이 될 수 있다. 비공식적이지만 명실상부한 핵보유국으로서 북한은 미국의 군사적 위협으로부터 확실하게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지금까지 핵무기를 가진 나라에 대해서는 감히 공격하지 못했으며, 이러한 경향이 앞으로도 계속 유지된다고 생각할 때 핵 보유는 미국의 군사적 공격위협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보증수표인 셈이다.
6. 북한 핵의 이중성, 의도하지 않았던 결과
북한은 1980년대 후반에 이르러 미국 핵무기의 억지력을 이해하게 되었으며, 북한 경제의 한계를 올바로 인식하게 되었다. 그것은 미국의 핵 억지력이 한반도의 분쟁을 방지하는 데 커다란 영향을 미쳤으며, 북한 경제가 궁극적으로 남한의 자본주의 체제를 따라 잡을 수 없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북한은 한반도 긴장완화를 목표로 삼았으며, ‘현실사회주의’ 붕괴 이후에는 정권의 생존을 최선의 목표로 선택한 것이다.
그런데 북한의 생존에 대한 위협이 미국이라는 사실은 여전히 변함이 없다. 북한의 핵실험은 근본적으로 미국의 대북적대시 정책에서 연유한다. 정말로 북한은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미국의 핵 선제공격과 ‘악의 축’이라는 맹목적 비이성적 이데올로기를 두려워했다. 북한은 미국의 선제공격 가능성을 확고하게 믿고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한미합동군사훈련 때마다 비상대비훈련으로 맞대응을 한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북한 핵실험의 정치적 목표를 읽을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북핵 문제의 본질은 기본적으로 양자문제이다. 북한은 지난 반세기 동안 미국의 핵 압박과 위협에 직면했었다. 그런데 이를 고려하지 않고 북한이 핵실험을 했다는 현상적 측면에 대해서만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명확한 사실관계가 필요하다. 제네바합의는 처음부터 공화당이 주도한 의회에 의해서 외면을 받았고, 합의를 이행하기 위한 노력도 별로 없었다. 미국은 처음부터 대북 경제제재 해제와 북미 관계정상화에 대한 이행 의도가 없었다. 미국의 책임은 더 크고 무거우며 근본적이다.
북한의 이번 핵실험 강행은 무엇보다 미국의 협상의지가 약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 10월 3일 북한이 핵실험 의사 표명 이후부터 미국은 협상보다는 대북제재에 무게를 두면서 양자 접촉은 외면하였다. 한미정상회담에서 합의된 ‘포괄적 접근방안’에 대해서도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 같다. 지난 7월 5일 미사일 실험 발사 이후 최근까지의 중국의 태도에 대해서도 불만이 많아 보인다.
북한의 핵실험은 북한 내부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미국의 대북 압박정책에 맞서 ‘선군정치’의 정당성과 위력을 보여줌으로써 북한 체제의 자신감과 단결력을 높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김치관, “북한의 핵실험 선택”, <통일뉴스>, 2006.10.9.)
그럼에도 북한의 핵실험이 아직은 성공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물론 이번 핵실험에 대해 “북의 핵시험은 부시행정부의 대북정책이 낳은 쓴 열매이다”라는 프랑스 <르 몽드>지 기사나 “북의 핵정책은 전혀 비이성적이지 않다”(North Korea's nuclear policy is not irrational at all)는 영국의 <가디언>지 10월 10일 기사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러나 북한의 핵은 이중적 성격을 갖기 때문에 다소 위험할 수도 있다. 미국의 위협 내지 미국으로부터의 안보를 사수하기 위한 대안으로서 핵 개발을 했지만 오히려 핵 개발로 인해 북한이 위기에 처해졌다는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금민, “핵파국 시대, 평화주의의 선택”, <프로메테우스>, 2006.10.12). 즉 위기 극복이 아니라 위기 심화의 원인이 된 것이다. 북한이 표면적으로는 미국의 압박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사실상 인민 경제와 사회 내부의 빈곤화로 인한 저항을 예방적으로 차단하는 것이 이번 핵실험의 목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북한의 핵무장은 북한의 인민 경제와 사회 내부를 더욱 빈곤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핵실험을 통해서 인민들이 일시적으로 체제에 통합될 수는 있지만, 이번 핵실험의 결과가 초래할 경제 압박과 각종의 거래 금지 조치는 북한을 더욱 더 내부의 빈곤화 상황으로 내몰 수도 있는 것이다(금민 글 참조). 북핵 국면이 장기화를 띠게 되면 그렇게 될 것이다. 북한 역시 의도하지 않았던 반대의 결과에 대해서 당황할 것이다. 단기적으로는 북한의 핵실험에 대한 자긍심이 위력을 발휘하겠지만 미국의 의도대로 시간을 오래 가져가면 북한의 국제적 고립 심화와 경제적 어려움은 더욱 가중될 수도 있다. 북한 체제내부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힐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7. 노무현 정부의 선택과 6자회담
북핵 문제 해결의 열쇠는 근본적으로 미국이 쥐고 있다. 문제 발단의 원인이 미국에 있기 때문에 해결책도 미국이 갖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미국의 양보와 선택이 필요하다. 하지만 일반적인 측면에서 보면 회담의 성사 가능성이 낮은 것은 사실이다. 북한은 백기를 들지 않고 미국은 협상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향후 상황 전개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어차피 선택은 두 가지이다. 전쟁이냐 협상이냐 인데, 아무래도 협상 쪽으로 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북한이 이제 핵보유국이 되었기 때문에 미국의 입장에서는 협상론에 힘이 실릴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미국은 핵무기 보유국을 적으로 삼아 공격하겠다고 위협한 적이 없다. 미국이 설정한 관계에 따라 이들 나라가 평화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그 어떤 객관적 규정이 있었다는 말도 들어본 적이 없다. 물론 이들과 북한이 다르지만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또한 부시 행정부의 미국 내 상황이 그리 좋은 편은 아니다. 지지율 하락 문제도 있고 이번 11월 7일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에게 패 한다면 대북정책에 대한 부분수정이 이루어질 것이다.
최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차 핵실험 유보’, ‘한반도 비핵화 실현 의지’ 그리고 ‘조건부 6자회담 견지’ 발언에 대해서 미국 측이 협상전술로 봐야 한다면서 평가절하하고 있다. 여전히 미국은 북한의 진정성에 대해서 의심을 하고 있으며,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북한의 “말 대 말 행동 대 행동”의 원칙을 놓고 보면 그리 못 믿을 것도 없는데, 믿으려 하지 않는 것이다. 역시 미국의 대북정책이 실패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이로써 향후 2차 핵시험도 배제할 수가 없게 되었다. 하지만 2차 핵시험을 강행하는 것보다는 지렛대로서의 역할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김정일 위원장의 발언 논란도 6자회담에 들어오는 명분을 만드는 과정일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6자회담 복귀에 대한 명분을 제공해야 한다. 노무현 정부는 6자회담 재개, 궁극적으로는 한반도 비핵화 실현을 목적으로 외교적, 평화적 노력을 경주하여야 한다. 6자회담 무용론과 대북 전면 제재론은 무책임한 주장에 불과하다. 6자회담 재개는 문제 해결의 시작이라는 점에서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북핵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루빨리 6자회담이 재개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와 함께 노무현 정부는 당분간 대북제재가 진행되는 점을 고려해서 대화를 통한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 현 단계에서는 압박과 대화를 병행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 몇 가지 원칙이 필요하다. 첫째, PSI 참여에 대해서는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반대해야 한다. PSI 참여는 한반도에 심각한 상황을 연출할 수도 있다. 둘째, 전술 핵 등 ‘핵우산’에 대해서도 반대의 입장을 표명해야 한다. 주한미군의 평택으로의 확장이전은 ‘핵우산’ 증강을 마무리하는 것을 뜻한다. 부시 행정부가 평화체제가 아니라 정전체제에서 ‘핵우산’ 증강을 마무리한다는 점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셋째, 대북 포용정책에 대해서 그 동안의 정책적 오류를 수정하여 지속해야 한다.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은 유지하는 방향으로 설정해야 할 것이다. 최근 대북 정책과 관련하여 남북화해와 협력을 위해 노력한 소중한 성과들이 무차별적으로 도마 위에 오르고 정쟁화되고 있다. 대북 포용정책은 상황에 맞춰 탄력적으로 조정되어야겠지만 원칙과 기조는 지켜야 한다. 넷째,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가능성이 매우 낮기 때문에 특사파견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최근 거론되고 있는 DJ, 반기문, 박근혜 등 가용인력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일단 추가 핵실험을 막아야 하고 미국에게 직접적·적극적으로(금융제재 해제를 의제로 해서) 북한과의 대화를 요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