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발도 못나가는 민주노조혁신 어떻게 할 것인가
김태연 / 전국활동가조직 준비위 집행위원장
1. 9.19 대의원대회 성원미달로 주저앉은 조직혁신
9월 19일 오후 3시 45분 용산구민회관에서 민주노총 제38차 대의원대회 개회가 선언되었다. 성원 1,036명 중 653명이 참석하여 회의가 성사되었다. 개회 이후 접수한 대의원까지 합치면 700명 넘게 참석했다. 8월 25일 성원미달로 무산된 바 있기 때문에 성사여부부터 주목받는 회의였는데, 비교적 많은 대의원이 참석했다.
그러나 2호 안건을 처리할 때부터 상황이 심상찮게 전개되었다. 9.11 노사정야합으로 끝난 노사정협상 전술파기안으로 ‘모든 노사정 대화를 중단한다’는 수정안이 제출되었고, 이에 대한 표결에 들어갔을 때 재석대의원은 과반수 519명을 약간 넘는 531명에 불과했다. 회의시작 2시간만에 약 200명의 대의원들이 가버린 것이다.
성원이 불안한 가운데 3호 안건인 조직혁신안이 상정되었다. 조직혁신안 중 핵심인 임원직선제에 대해 ‘임원 및 대의원직선제’ 수정안이 제출되어 표결해야 할 상황이 되었다. 그러나 성원부족이 우려되는 상황이었다. 정회를 선포하고, 주변의 대의원들을 불러모으고, 한편으로는 중집회의가 소집되었다. 정회 후 조준호 위원장은 ‘성원이 부족한 상황이다. 제출된 안건 중 이견이 있는 정부보조금 확대수령안과 규약개정 관련 건을 제외한 나머지는 만장일치로 통과시키고, 규약개정사항에 대한 직접비밀무기명투표에 들어가자. 투표 중에 주변의 대의원들을 불러모으면 성원이 될 수 있다’라는 의사진행안을 제출했다. 의장 스스로가 성원이 안됨을 공식확인한 상태에서 대의원들이 편법사용을 결정해야 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결국 의무금인상안에 대한 반대의견이 재확인되자 표결이 선언되었고, 과반수에서 9명이 부족한 것으로 확인되어 유회되었다.
2. 이수호, 조준호 집행부의 조직혁신안 내용과 쟁점
민주노조운동혁신에서 조직혁신으로 후퇴
2004년 3월 1차 중앙위원회에서 이수호 집행부는 강승규 수석부위원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혁신위원회를 구성하고 민주노조운동혁신 사업을 시작했다. 강승규 비리사태로 이수호 집행부가 총사퇴한 후 보궐집행부로 들어선 조준호 집행부는 이 사업을 계승하여 2006년 8월 대의원대회에 조직혁신안으로 제출했다. 재정혁신, 임원직선제, 비정규할당제, 재정투명성강화, 윤리강령 등이 그것이다. 운동노선과 정책, 투쟁, 조직 등 제반 영역에 걸친 ‘민주노조운동혁신’으로 시작했으나, 이미 이수호 집행부 때 ‘민주노조운동혁신’으로서의 무게감은 잃어버린채 ‘조직혁신’으로 축소되었다.
국고보조금수령 확대가 조직혁신?
재정혁신안은 의무금 납부율제고, 의무금인상, 국고보조금수령확대가 그 내용이다. 국고보조금수령확대를 조직혁신안으로 제출한 것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것이다. 사무실 및 사무공간 유지·보수·관리비용, 교육원설립·교육기자재·교육프로그램비용, 중장기정책연구비, 미조직·비정규·실업·이주노동자 상담 및 직업훈련지원사업비, 남북교류협력기금사용 등으로 국고보조금 수령을 확대한다는 것이다.
2001년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서 국고보조금 수령에 대한 격론이 벌어진 바 있다. 수령불가안, 사무실 임대료 수령안, 운영비와 사업비 수령안 중에서 사무실 임대료에 한해 수령하기로 결정되었다. 그 결과는 어떤가? 정부 및 지자체 보조금을 수령하기로 한 총연맹과 지역본부는 물론이고 연맹까지 사무실 임대료를 정부보조금에 의존하는 상태가 되었다. 각급 조직이 조직건설과정에서 조성한 기금은 완전히 소진되어버림으로써, 정부보조금 증액없이 사무실확대는 꿈도 못꾸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재정자립기반이 현저히 약화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운영비, 사업비까지 수령하자는 것은 재정자립을 완전히 포기하자는 것이다. 재정자립약화를 초래할 안을 조직혁신안으로 제출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제출된 의무금 인상안은 당연히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 의무금인상이나 정률제가 민주노조운동혁신사업의 하나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재정의 자주성 강화’를 기본방향으로 하면서, 산별노조체제 하에서 각급 노조조직의 역할과 사업내용을 재정립하고, 그에 따른 재원배분 원칙에 근거해야 한다.
직선제를 둘러싼 쟁점
조직혁신으로 의미있는 부분은 임원직선제와 비정규 할당제이다. 이수호, 조준호 집행부는 줄곳 임원직선제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보여왔다. 혁신안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직선제는 일치감치 뒷전으로 밀려났다가 8000명 선거인단제도를 제출한 바 있다. 대의원대회안건 순회설명회 과정에서 선거인단제도에 대해 집중적으로 문제제기되었다. 직선제 유보의 근거로 제출된 선거관리문제가 선거인단제도에서 그대로 나타날뿐만 아니라, 오히려 선거인단 선거구를 어떻게 할 것이며, 선거인단 구성 후 또 다시 선거를 해야하는 문제 등이 드러났다. 논의과정에서 각 정파별 입장 차이도 미묘하게 드러났다. 차기 민주노총 선거를 앞두고 정파적 이해득실도 작용했을 것이다. 주요 연맹집행부의 교체에 따른 민주노총 대의원구도의 변화가 직선제 선호여부에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민주노총 집행부를 구성하는 범우파연합의 일부 세력은 직선제 반대입장을 끈질기게 표출했다. 결국 조준호 집행부는 전격적으로 2007년 1월 임원선거를 직선제로 한다는 안을 최종 제출했다.
또 하나의 쟁점은 선거권문제였다. 의무금 미납 조합원들의 선거권을 제한할 것인가? 집행부는 제한한다는 원칙 하에 이번 선거의 경우 2000원의 선거기금을 정하고 이를 납부한 조합원들에게 선거권을 준다는 안을 내었다. 그러나 이는 권리-의무 연동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이었다. 논란 끝에 최종안으로 이번 선거에 한하여 9월부터 3개월간 의무금을 낸 조합원들에게 선거권을 준다는 안을 내었다.
의무불이행에 따른 권리제한도 선택할 수 있는 하나의 방안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몇 가지 문제가 있다. 우선 현재의 민주노총 조직운영상 기술적으로 채택불가능한 방안이다. 대부분의 단위노조 조합원들은 조합비 원천공제에 의해 조합비를 납부한다. 거기에는 민주노총 의무금이 포함되어 있다. 단위노조는 민주노총 의무금이 포함된 맹비를 연맹으로 납부한다. 이 경우 여러 가지 사정으로 조합원수 보다 적게 납부하는 경우가 있다. 민주노총 의무금을 최종적으로 내는 연맹에서는 이런 경우가 더 많다. 예를 들어 어느 연맹이 민주노총 의무금을 70% 납부했을 경우 연맹 조합원수의 70%만 선거권을 갖게 된다. 단위노조로부터는 75%의 맹비를 받았다면 차이나는 5%를 해결할 수 없다.
또 다른 예로 어떤 단위노조가 1년중 6개월치의 맹비를 납부하지 못했을 경우 선거권은 50%밖에 받지 못한다. 모든 조합원들이 의무를 50%밖에 이행하지 못했기 때문에 단위노조로서는 할말이 없다. 그러나 그 50%의 선거권을 어떤 조합원들에게 줄 것인가? 가위바위보로 정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 문제에 대한 답은 전조합원들에게 선거권을 주는 것이다. 의무불이행에 따른 권리제한은 직선 임원 외 임원선거, 대의원 및 중앙위원 할당 등으로 가능하다.
또 하나의 논란은 여성할당제였다. 집행부는 위원장, 수석부위원장, 사무총장을 동반출마로 선출하는 임원직선제에서 30% 여성할당제를 적용하여 1명은 여성후보여야 한다는 안을 내었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해서는 재검토가 필요하다. 비록 위-수-사를 동반출마 형식으로 선출하지만 하나의 기관은 아니므로 ‘위-수-사’를 할당제 적용단위로 볼 수 없다.
‘임원-대의원’ 직선제 연동 문제
대의원대회 당일 전교조 대의원이 임원직선제에 대한 수정안으로 ‘임원-대의원 직선제안’을 제출했다. 이 문제는 무산된 8월 25일 대의원대회 당시 해방연대와 새흐름 경향의 ‘직선제추진위’ 동지들이 ‘중대한 문제’로 제기한 바 있다. 대의원 직선제를 실시해야 한다는 데 대한 견해차이는 없었다. 그러나 대의원 직선제없는 임원직선제는 무의미하므로 ‘임원-대의원 직선제’가 연동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다. ‘직선제추진위’ 내의 의견도 일치되지 않는 듯 했다. 임원직선제와 대의원직선제를 분리하여 심의하자는 의견도 있었다. 결과는 9.19 대의원대회에서 전술상 오류로 나타났다. 대의원 직선제 없는 임원직선제가 무의미한 것이 아니므로 두 안을 연동한 수정안은 직선제의 실질적 관철에 도움 되지 못했다. 임원직선제를 먼저 다루고, 의결기관 혁신문제에서 대의원직선제를 다루면 되는 문제였다.
소수자 할당제
의결기관(대의원대회, 중앙위원회)의 비정규할당제가 집행부안으로 제출되었다. 이 자체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노동내부의 소수자보호를 위해 여성할당제에 이어 비정규할당제를 도입하는 마당에 상징적인 수준에서라도 이주, 장애 등으로 소수자할당제를 확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3. 어떻게 할 것인가
2007년 1월 정기대의원대회에서 직선제를 관철해야!
9.19 대의원대회 무산 이후 조직혁신 관철을 위한 임시대의원대회 소집의견이 있었다. 그러나 하반기 투쟁시기로 접어드는 상황에서 설득력을 얻기 어려운 의견이었다.
현재 상황에서 하반기 내에 총체적인 민주노조혁신안을 만들어 제도화하는 것은 어렵다. 민주노조혁신의 일부분이지만 임원직선제가 갖는 의미를 감안하면 이를 현실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한 제도의 변화로 조합원대중까지 참여하고, 민주노조운동의 광범위한 이슈를 다룰 수 있는 것으로 직선제만한 것은 없다. 그것을 통해 조직을 바닥에서부터 재조직하는 효과를 낼 수 있다.
직선제는 1998년말에 민주노조운동 혁신과제로 제출된 이래 1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만약 2007년 1월 정기대의원대회에서 통과되지 못하면 더 어려울 수도 있다. 따라서 1월 정기대의원대회에서 2010년 선거를 직선제로 한다는 규약개정을 반드시 해야 한다. 소수자할당제 역시 마찬가지다. 이를 위해 하반기에 이 과제를 지속적으로 부각시켜내야 한다.
총체적 민주노조운동혁신을 위해
민주노총 출범 이후 노동운동진영에서는 때마다 노동운동위기를 진단하고 그 대안으로 혁신을 주장했다. 주장뿐만 아니라 실재로 혁신사업이 추진되었다. 1998년 민주노총 2기집행부의 혁신위원회, 2000년 단병호-이수호 집행부의 노동운동발전전략위원회, 그리고 이번의 혁신위원회가 그렇다.
그러나 모두 실패했다. 실패의 원인은 무엇일까? 내용의 문제도 있지만 주체의 문제가 가장 크다. 국가 차원의 혁신이든, 노동조합조직 차원의 혁신이든 혁신 주체가 혁신 승패의 절반 이상을 좌우한다. 민주노조운동의 세 번의 혁신사업은 주체로 보면 모두 위로부터의 혁신이다. 밑으로부터의 혁신이 필요한 상황도 있고, 위로부터의 혁신이 필요한 상황도 있다. 심지어 궁정쿠데타 세력이 총칼을 앞세운다 해도 밑으로부터의 혁신기반이 전제되지 않는 한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다. 민주노총의 경우 세 번의 혁신사업 과정에서 현장활동가들에 기반하지 못했다. 혁신은 불가분하게 노동운동 노선문제가 드러나게 마련이다. 혁신 찬반의견이 세력화된다는 얘기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른바 현장파, 중앙파, 국민파로 불려지는 세력이 위로부터의 혁신을 추진했지만, 세 세력 모두 비슷한 노선의 현장활동가들조차 혁신의 주체로 세우는데 실패했다.
아래로부터의 혁신을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올바른 방향이다. 그러나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현되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이지 못하다. 대개는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위로부터의 혁신문제에 대한 비판적 평론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현장활동가들이 혁신을 자기과제로 제출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현장에서 뛰는 운동을 전개하지 않는 한 혁신은 실패할 것이다. 반대로 민주노조운동을 바닦까지 뒤흔드는 대투쟁이 일어나는 시기가 아니라면 일부 현장활동가들만의 주장만으로는 실질적인 변화 즉 관철이 어렵다. 그럴듯한 혁신안을 내고 목소리 높이는데 자족하지 않는다면 노동조합의 올바른 집행력과 결합된 현장운동이 전개되어야 한다.
‘총체적’ 민주노조운동 혁신이 요구된다. 그러나 혁신은 사회나 조직 내의 입장과 세력간 투쟁의 산물이다. 총체적 혁신을 큰 방향으로 제출하여 이정표로 삼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총체적 혁신은 일상적인 혁신으로는 이룰 수 없는 것이다. 혁신이 아니라 ‘혁명’이나 ‘변혁’ 정도로 가능하다. 노동조합운동에서는 87년 노동자대투쟁과 같은 비정규투쟁으로 민주노조운동의 대중적 주체가 변화할 때 그럴 것이다. 실질적인 변화의 관점에서 본다면 총체적인 것 중에서 고리를 잡고 돌파하는 것이 필요하다. 현재로는 그 고리가 직선제라고 본다. 직선제 이후의 고리는 무엇일까? 아마 투쟁의 혁신이 될 것이다. 활동가들은 직선제를 관철하고, 2007년 노동운동체제에서부터는 회피, 관성으로 망해가는 투쟁을 혁신해야 한다. 직선제가 관철된다면 10년 세월이 걸린 셈이다. 투쟁의 혁신도 그만큼의 세월이 걸릴지 모르나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