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모니터 11호] (4.14~4.20)
이라크 모니터팀은 종전과 철군을 바라며, 이라크의 상황을 지속적으로 알리기 위해 구성된 개인과 단체의 모임입니다. 1주일에 1번씩, 국제여론, 이라크 전황, 경제, 이라크 정치전망, 자이툰과 국내 여론, 인권과 전쟁 비용, 이라크 현지의 목소리 등으로 나누어 그 주의 주요 사건을 전달하려고 합니다. 여러분들께 도움이 되었으면 하고, 맘에 드시는 글은 널리 퍼 날라 주세요. 대신 [모니터팀]이라는 머릿말만 달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사회] 억측과 과장으로 드러난 ‘대량 인질 사태’
평화네트워크 최민
시아파 주민 대량 인질 사태?
지난 주, 바그다드에서 30km 떨어진 도시 마딘에서 수니파 무장저항세력이 사원을 공격하여 최대 시아파 150명을 인질로 잡았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알 자지라에 따르면 이 소식은 지난 주 목요일인 4월 14일 수니파 저항세력의 폭탄 공격으로 사원이 심각하게 파괴되었다는 시아파 지도자의 발언으로 시작되었다. 다음날인 4월 15일에는 복면을 한 무장세력이 차량을 타고 시내를 돌며 시아파 주민들을 체포하고, 시아파가 모두 마을을 떠나지 않으면 인질을 살해하겠다고 위협하고 있다는 내용으로 바뀌었다.
로이터 통신은 4월 16일 오전 기사를 통해 종파간의 갈등이 무장 충돌로 비화될 위험에 처한 바그다드 근교의 마딘에서 60명의 시아파 인질들을 구출하기 위해 이라크 정부가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기사는 또 로켓포와 수류탄 등으로 무장한 사람들이 15대의 차량에 나누어 타고 마을로 들어와 인질들을 체포하기 시작하자 25가구 정도의 주민들이 마딘을 떠났다고 전했다. 로이터 통신은 또 이 지역이 수니파와 시아파 사이의 적대감 증대로 인한 주고받기식 인질극으로 악명이 높았다고 전하면서, 이 지역이 저항세력의 잦은 공격으로 인해 “죽음의 삼각지대”로 불리웠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로이터 통신은 4월 16일 오후 기사에서 한 시아파 지도자는 인질의 숫자가 150명에 이를 것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이라크 정부의 공식 발표는 이보다는 적었는데 보통 35명에서 100명에 이르는 인질이 억류되어 있는 것으로 보고됐다. 16일 밤 미군과 이라크군이 마딘 지역에 파견되었다. 물론 군사작전 이전 정부가 인질범과 평화적인 협상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는 소식도 함께 전해졌다. 17일 오전 이라크 국방부 관리인 하이더 카윤은 이라크 군대가 마을을 기습해 시아파 15가구를 구출하고 5명의 인질범을 체포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진실은 먼 곳에
해당 지역에서 한 종파가 깨끗이 사라질 것을 요구하며 100명이 넘는 인원을 인질로 하고 있다는 소식은 경악할만한 것이었다. 로이터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언론은 일제히 그간 우려됐던 이라크 내 종파간 분쟁이 본격화하는 조짐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17일 이후 전해진 소식은 이와 달랐다.
역시 17일 의회에 출석한 국방·안보 장관 카심 다우드는 “사람들이 갇혀 있다고 보고된 장소 세 군데를 기습했으나 불행하게도 인질을 한 명도 찾지 못 했다.”고 말했다. AP 통신은 4월 18일자 기사를 통해 마딘 지역의 납치 보도가 침소봉대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4월 17일 마딘 지역에 급파된 AP통신의 사진기자와 카메라 기자들은 대규모의 이라크 군과 미군이 도시를 봉쇄한 것을 목격했으나 정작 도시 안에서 대규모 인질극의 흔적은 찾아보기 어렵다고 전해왔다. AP 통신의 카메라맨은 17일 오전(현지시각) 마딘 시가지를 돌아봤는데, 도시 내에서는 찻집에도 손님이 붐비는 등 일상 생활이 평소와 똑같이 이루어지고 있었다고 전했다. 오히려 일요일 오전까지도 북적이던 거리는 군인들이 시내로 진격하자 텅 비어 버렸고 가게들은 문을 닫았으며 7천여 명의 이 마을 주민들은 군사 공격을 두려워하여 집 안으로 숨어버렸다고 한다.
1500명의 이라크 군인들이 투입된 마딘 작전은 결국 ‘인질’과 ‘인질범’을 찾아내지도 못 하고 끝나고 말았다. 성과라고는 고작 4명의 반정부전사를 체포하고 부비트랩이 설치된 차량 7대와 큰 규모의 탄약 집적장을 발견한 것에 그쳤다. 그러나 그 성과마저도 얼마나 진실에 가까운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마딘에 거주하는 아흐마드 알 우바이디는 알 자지라와의 인터뷰에서 “미군이 지원하는 이라크 경찰과 군인들이 18일 오전 7시 쯤 마딘 시 중심으로 들어왔는데, 이 과정에서 저항이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라크 군인들이 주민들의 집을 샅샅이 수색했으나 인질들을 찾지 못 했고, 대신 시민들의 소규모 화기들을 압수해갔다고 진술했다. 자신의 소형 총기도 압수당했다고 했다.
진실이 죽고, 사람들이 죽고
지난 12월 7일 자이툰 부대에서 발생한 총기 사고가 거의 5개월이 지난 4월 13일에야 드러나 충격을 주었다. 이 사고로 자이툰 부대 경계를 맡고 있던 이라크 인이 사망했다고 한다. 이는 파병 한국군이 이라크인을 사망하게 한 최초의 사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국민들은 이 사실을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다. 자이툰 부대 경계를 맡고 있다는 아르빌 지역의 민병대와 자이툰 부대는 어떤 관계를 맺고 있으며, 이 사건을 그 지역 사람들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우리는 알 수가 없다. 또 자이툰 부대나 이라크 상황과 관련된 정보는 대체 어떤 경로를 통해 이곳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전달이 되고 있으며 어떤 기준에 의해 걸러지고 왜곡되고 있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 뿐만이 아니다. 하루에도 수십명이 죽어가고 있는 지금의 이라크처럼 극단적인 상황에서는 ‘거짓’이 더 큰 비극을 불러올 수 있다. 영향력있는 단체로서 미국의 점령 반대 입장을 고수해온 무슬림 학자연합(AMS)의 일원인 압드 알 살람 알 쿠바이시는 알자지라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일로 마딘이 또 다른 팔루자가 되지 않을지 큰 우려를 표했다. 그가 접촉한 마딘 주민들에 따르면 인질범이 없는 것이 확실한데도 마을에 공격이 가해졌다고 한다. 그는 또 이번 작전이 “수니파와 시아파 주민들이 조용하게 함께 살아가던 이 지역에 폭풍우를 일으켜 종파간 대립을 선동하기 위해 계획되었다.”고 비난했다. 만일 이라크 군인들이 마딘에 진입할 때 시민들이 저항했다면, 팔루자 못지 않은 비극이 벌어졌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우리는 그 사건을 수십명의 목숨을 담보로 한 인질극 때문에 일어난 비극으로만 생각했을 것이다. 유언비어가 불러온 헛소동으로 돌리기에는 너무 끔찍하고 무서운 얘기인 것이다. 사실 팔루자에서 벌어진 2번의 ‘군사작전’ 역시 테러범들을 색출하는 데에는 실패했으며 수많은 민간인들을 살해했을 뿐이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 밖에 진실이 있고, 지금 ‘진실’을 밝히고자 하는 것은 목숨을 건 투쟁이 되어버렸다.
[경제] [Al-Ahram Weekly SpecialReport] 전후 2년 이라크의 현실 ①
[번역]대항지구화행동 이대리
"2년 전, 금번주 동맹군의 탱크가 굉음을 내며 바그다드로 들어왔다. 사담의 악명높은 동상의 붕괴는 독재정권의 몰락을 상징하였다. 하지만 2년 동안의 동맹군의 개입은 이라크인들에게 자유를 가져다 주었을까? 정치, 사회 경제등 전 영역에 대해 애널리스트들과 실제 목격자들이 Al-Ahram Weekly에 점령의 대차대조표를 제시해 주었다."
13년 동안 이라크 사람들은 세계체제가 만들어낸 가장 포괄적인 국제적 경제재제 아래 놓여있었다. 이라크 사람들은 국제시장에서 어느 것도 판매하거나 구매하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고, 이라크 기업들은 산산히 부서졌고, 기간시설은 녹이 슬었으며, 가족들은 굶주렸다. 이러한 믿을 수 없는 고통에 유일한 모면책이 UN의 석유-식량 교환 프로그램이었다. 이 프로그램의 재정은 전적으로 이라크 국민들 자신에 의해서 만들어 진 것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 프로그램이 이라크 민중들에 대한 억압을 지속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어왔으며, 그 행정이 부패했다고 문제를 제기했을 때, 그러나 이러한 문제제기는 공허한 메아리가 되었다. 이러한 처참한 상황의 결과로 많은 사람들은 상황을 개선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이라크 정부와)확실한 단절을 할 것을 주장했고, 그래서 상황이 달랐으면 반대의 목소리를 내었을 사람들도 2003년 미국의 침공을 전술적으로 받아들였다. 이 전쟁은 정말 하나의 극한점이었다. 하지만 누가 미국 지배 아래서 상황이 훨씬 더 악화되리라 생각했을까?
믿을 수 없는 일로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지난 2년간 이라크 경제 상황은 나빠지고, 생활조건은 악화되었으며 가난과 어린이 영양실조는 증가하였다. 수많은 이라크 내 비정부기구들에 따르면, 실업률은 65%에 달할 것이라는 추산이 있었고 이라크 중앙통계국은 이를 부인하지 않았다.
세계 식량 프로그램은 이라크인의 4명 중 1명이 무역부에서 배급하고 있는 식량배급으로 연명해 나가고 있으며, 2천600만명의 이라크 인들이 너무 가난하여 의약품과 같은 생활 필수품을 사기 위해 배급된 식량을 되팔아야만 한다고 추산하기도 하였다. 한편 UN 인권위 보고서와 오슬로에 본부를 둔 FAfo 응용사회과학 연구에 따르면 사담 후세인 정권의 붕괴 이후로 어린이 영양실조 비율이 두배에 달해 거의 8 %에 이르고 있다. 마지막으로, 국가 기간시설의 노후한 상태 때문에, 수백만의 이라크 인들이 며칠씩 깨끗한 마실 물없이 살아가야만 하고 있으며, 또한 하루에 단지 4시간 동안만 전기를 사용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때때로 그들의 승용차에 넣을 휘발유를 구입하기 위해 온종일 줄을 서야만 하기도 한다.
국가 전체가 고통을 받아야만 하는 경제운용의 실패에 대해 이라크 정가 부분적으로 책임이 있다 하더라도, 이 문제에 대해 국제사회 또한 일정부분의 책임을 가지고 있다. 정말로 국제사회의 후원자들이 떠들석하게 이라크 재건 노력을 위해 수십억달러를 기부하겠다고 발표하고 있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이 자금의 단지 몇 퍼센트만이 실제로 배분되고 있다. 반면에 실제로 쓰여지는 이 기금의 대부분은 부패한 관리들의 주머니를 채우는 쪽으로 길을 찾고 있다. 예를 들어 얘기하자면, 미국은 이라크내 주요 재건 계획들에 120억불을 지원하기로 약속을 했지만 2004년 말까지 단지2십억불만이 실제 집행되었을 뿐이다. 이라크 정부는 국가 보조금을 절감함으로써 예산의 부족을 보충하려 하였으며, 심지어는 많은 가난한 국민들이 의존하여 연명하고 있는 식량배급을 점차 줄이겠다고 발표하기도 하였다. 2003년 이라크 전쟁의 기획자중 하나이며, 세계은행의 새 대표인 폴 월포이츠는 이제는 유명해진 발언에서 이라크의 경제재건은 이라크의 재정으로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이 발언에서 그가 언급하지 않은 것은 다름아닌, 이 일이 이라크 정부가 자신의 국민들이 굶어 죽는 것을 내버려 둘 때에만 가능할 것이라는 것이었다.
한편, 많은 독립적인 단체들의 보고서는 이제는 이라크에 만연해진 높은 수준의 부패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국제 투명성 위원회는 긴급한 조처가 취해지지 않는다면 이라크는 “역사상 가장 큰 부패 스캔들”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부패는 모든 수위에서 존재하며, 부패한 공무원은 빼돌린 의약품, 의료장비, 석유등을 지하시장에서 팔고 있다. 또한 2004년 7월 발표된 국제고문감시위원회(IAMB)의 회계감사법인인 KPMG에 의해 수행된 회계감사는 석유 자산이 허술하게 관리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 보고서는 석유 채굴에 대한 관리에 있어서의 허점, [동맹군 임시행정처(CPA)]가 맡고 있는 천연자원 관리행정에 있어서 관리의 허점, 이라크의 재정을 집행하는 부서들에 대한 확인된 부적절한 관리, 공개입찰 과정에 있어서 기준의 일탈, 이라크 내각 부서 대신에 CPA가 행한 지출과 관련하여 CPA의 적절치 못한 계약 감시등을 지적하였다. 게다가 지금껏 아마도 가장 놀라운 보고서가 제출되었는데, 이라크 재건에 대한 미국 조사위원회 대표는 이보고서에서 CPA가 이라크를 통치한 14개월동안 8십8억달러의 예산이 간단히 사라졌다는 사실을 폭로하였다. 이 사실은 다음의 질문을 하게 한다 : 점령군 관리들이 자신의 예산을 지키지 못하고 그들의 자금이 빼돌려지는 것을 막지 못한다면, 이라크의 재산에 대해서는 어떠할 것인가?
사실 부패는 현재 이라크 경제 상태를 설명하는 여러 요소들중 단지 하나일 뿐이다. 석유사업 복구의 실패가 다른 주요한 요인이다. 역사적으로, 이라크 석유 생산은 1970년대 일일 3백5십만 배럴에 까지 이르렀으며, 사담이 집권하자 마자 기울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2003년 전쟁이 일어나기 직전의 기간까지 생산량은 일일 2백5십만 배럴까지 안정화 되었다. 전쟁 발발 후 처음 몇 달동안 점령군과 미국 관리들은 낙관적인 전망을 내 놓았다. 그들의 전망에 따르면 생산량은 빠른 시일 내 전쟁 전의 수준을 상회할 것이라고 전망되었다. 그들의 낙관은 고질적인 부패, 재건 자금의 부족, 노동자들의 사보타지등의 결과가 명확해지면서, 점점 최조하였다. 이라크 2004 예산안은 생산량이 평균 1백5십만 배럴에 머물렀으며 2005년에는 1백8십만 배럴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고 밝히고 있다. 반면에 수출자료에서는 지난 두달동안 이라크가 일일 평균1백4십6만 배럴을 수출했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이라크 정부와 점령군 관리들은 이 수치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 이 수치들은 그들에게 그들의 예상이 모순이었음을 인정하도록 재촉하고 있다. 실제로 2004년 12월 22일 이라크 재경부는 “우리는 생산량이 일일 3백5십만 배럴에 이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아마도 2005년 말까지는 말이다.”
석유생산량을 높이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으로, 미군은 이라크 남부 석유저장소의 노동자들에게 폭력적인 대우를 강요해왔다. 노동자들은 항의의 뜻으로 지난 3월말 파업을 벌였으며, 이는 몇몇 미국 관리들을 당황케 하였다. 미국은 이라크 도처에 적을 가지고 있으며, 그들 중 일부는 점령을 패퇴시키는 가장 좋은 길이 이라크 석유 기반시설을 파괴하는 것이라 생각해왔다. 공격은 줄어들지 않고 계속되었으며, 그 결과 키르쿠크를 출발하여 터키를 경유하는 석유수출은 지난 2년동안 거의 가동되지 않았다. 2005년 3월 28일 주요 석유수송관의 수리가 끝났지만, 그 바로 다음날 폭탄공격으로 날아가 버렸다. 정부는 송유관 구역을 지키기 위해 군의 일부를 동원하려 결정했지만 경비대원들이 무장세력을 두려워 하고 있다고 고백하고, 공격이 이루어지자 마자 자신의 자리를 비우고 도망함에 따라 이 노력은 완전한 실패로 돌아갔다.
석유산업의 위기는 재건 프로젝트에 충달될 자금의 부족 사태를 빚었다. 이것은 생활조건이 비참할 정도로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게 될 것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 3월 말, 공공사업부 장관 나스린 바와리는 이라크는 마실물에 대한 수요를 맞추기 위해 매년 2억5천5백만불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공공사업부는 20003년 이래 1억불밖에 받지 못했다고 발표하기도 하였다. 그 결과는 상상하기도 힘들다. : 이라크 인들은 마실물을 정기적으로 공급받지도 못하는 것이다. 중산층 조차도, 바그다드에 사는 가장 부유한 집안에서 조차 종종 상수도 공급이 예정에도 없이 끊기기도 하며, 다시 물 공급이 될 때까지 며칠을 기다리기도 한다. 어떤 바그다드 거주민들은 도시 한가운데 허가받지 않은 우물을 파서 물을 얻기도 하는데, 여기서 수많은 독극물 중독과 배탈의 사례가 발생하기도 하였다. 남부 바스라에서는 콜레라가 발생하였다는 보도까지 있었다. 낙관주의자 였던 바와리는 이 상수도 예산의 차액을 보충하기 위해 국제사회의 후원자들에게 다시한번 호소를 하였지만, 이라크 국민들의 마실 물에 대한 필요는 충족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대다수 이라크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분야, 전기분야의 복구는 전적으로 불만족한 상태이다. 이라크 기술자들은 1991년 전쟁당시 이라크 기반시설에 대해 자행된 믿기 어려운 대량파괴에도 불구하고 한달만에 전력공급을 원래대로 복구할 수 있다고 종종 자랑하곤 했다. 이 전쟁의 황폐화 속에서 남은 것이라곤 거의 하나도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비교해 볼 때, 오늘날의 상황은 쓴 웃음을 짓게 한다. 2003년 전쟁 직전의 시기에, 이라크 전력 기반시설은 평균 95,000MWh를 생산하였다. 이 수치는 전국에 전력을 공급하기에는 충분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적절히 높은 수준이었으며 안정적인 전기 공급이었다.. 2004년 11월부터 2005년 1월말의 기간동안 이라크 전력 기반시설은 단지 평균 80,000MWh을 끌어 모아낼 수 있었으며, 때때로 50,000MWh 이하로 떨어지기도 하였다. 이 결과는 나라 전역에 걸친 심각한 정전사태였으며 어떤 가정은 하루에 4시간 이하로 전기를 공급받고 있기도 하다.
전국의 송전망의 영구적 복구를 통한 파국의 해결대신에, 일시적인 해결 방법, 이라크 이웃나라들로부터 전력을 구매하는 해결방법이 채택되었다. 이는 전쟁이 발발된 직후 2003년에 시작되었으며, 그 당시에는 일시적인 방법으로 고려되엇다. 그러나 그 이후로 이라크는 시리아, 요르단 터키, 이란, 쿠웨이트로부터 전력을 구매하기를 계속하고 있고 현재는 이집트로부터 요르단을 통해 전력을 공급받는 협상이 진행중이다. 또한 2005년 3월 27일 이라크 전력부 장관은 이란으로 부터 34%, 터키로부터 300%이상 전력공급을 늘리는 협상에 들어갓다. 그 결과는 이라크가 사실상 에너지를 수출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전적으로 에너지 수입에 의존적인 나라가 되는 것이었다.
정부관리들이 주요한 문제가 사실상 부족한 재정이라는 사실을 전적으로 승인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점령군 관료들은 종종 끝이지 않는 전력부족사태의 책임이 노동자들의 파업에 있다고 비난해 왔다. 사실상 2004년 8월, 전력과 상수도 프로젝트를 위해 할당되었던 34억달러가 안보 분야로 돌려졌다. 2005년 3월 초, 바그다드 주재 미 대사관 관리들은 암묵적으로 투자의 부족에 유감을 표하고, 여름이 시작되기 전에 새로운 자금이 전력사업에 더 집중되어 투입되어야 한다는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어쨓든 문제는 재정을 여기에서 저기로 전용해 쓰는 문제라기 보다는 태도의 문제이다. 현재의 상황, 이라크 재건을 둘러싼 모든 부패와 사기들 속에서, 더욱 광범하게 이 나라와 관련하여, 정직한 결과를 얻을 것이라는 기대는 어느 누구도 할 수 없을 것이다. 필요한 것은 바로 이미 녹초가 되어 있는 국민들을 즉각적인 필요를 만족시켜주기 위한 이라크 정부의 근본적인 변화이다. 이 변화는 정부에 진정한 대표성을 허락할 것이다.
18~19세기 동안, 세계의 많은 가난한 사람들이 식량문제의 결과로 더 특별히는 빵의 부족으로 많은 상황에서 폭력혁명으로 일어났다.. 오늘날 전기는 없으면 생활을 더 이상 영위할 수 없는 기본적인 필수품이다. 전력 없이는 통신도, 보건체계도, 교육도, 산업도 존재할 수 없다. 이라크 경제가 치료되기에는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있는 듯 하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곧바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이라크 국민들이 현 지배자들과 점령군들을 용서하리라 상상하기 힘들 것이다.
(관련 사이트 : http://weekly.ahram.org.eg/2005/737/sc5.htm)
[인권] 거대한 시체 무덤 발견에서부터 한 인권활동가의 사망소식까지
대항지구화행동 지은
사담 후세인 시절에 저지른 피비린내 나는 학살 현장이 발견되고 있다. 이라크 정부 총리는 이라크 남부 지역에서 발견된 커다란 2개의 무덤 속에는 사담 후세인 치하에서 죽어간 유골 7000구 정도가 묻혀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최근 정부 조사관들이 이 매장지를 찾아가 그 무덤 윤곽을 통해서 추정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가장 큰 무덤 한 곳에는 5000명 정도의 시체가 묻혀 있을 것이라고 보고했다. 이 곳은 바스라 남부 항구도시 근처 사막지대로써, 91년 걸프전 때 시아파가 봉기를 일으키자 후세인 정부가 잔인한 대학살을 저질렀던 곳이다.
이라크 인권 담당자들은 사담 치하에서 최소 육십만명에서 최고 백만명의 숫자에 이르는 사람들이 사라져 버렸다고 말했다. 그러나 올해 이전에 발견된 매장지에 대해서는 아직 발굴 작업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것은 안전상의 위험도 있지만 이 소름이 끼칠 수사 작업을 수행할만한 노동자들 또한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이라크 인권부서 총리인 아민박사는 이 유골들 중 일부는 대량 학살을 저지른 전 바티스트 사람들을 비난하기 위한 전쟁 법정 케이스 건설에 이용될 것이라고 전하면서, 그러나 이 시체들을 발굴하고 확인해 나가는 작업은 희생자 유족들에게 엄청난 고통과 충격을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에 조사관들은 키르쿠크, 술레이마니아, 나시리아 등지에서도 이러한 무덤들이 다량 발견되고 있으며, 또한 이란과 쿠웨이트 국경지대를 따라서도 역시 추가 발견되었다고 전했다.(4월 18일자 dawn 저널)
한편, 지난 16일 바그다드 근처에서 차량 폭탄 공격으로 인해 한 미국인 인권 활동가가 목숨을 잃은 사고가 발생했다. 그녀의 이름은 말라 루지카이며 비정부 기구 ‘분쟁지역 무고한 희생자를 위한 캠페인(CIVIC)’설립자로써 28세의 젊은 나이로 안타까운 죽음을 맞게 되었다. 이번 사고로 차에 함께 타고 있던 그녀의 동료 파이즈 알리 살림(43세)도 역시 사망하였으며, 나머지 5명은 부상을 입었다고 한다.
그녀는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교전 중인 지역 혹은 교전이 끝난 지역을 돌아다니며 죽어간 사람들의 정확한 숫자를 기록으로 남기는 일을 했으며, 민간인 사상자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 미군 정책에 대한 정보 획득과 관련된 일들을 수행해 왔다. 그녀가 바그다드 지역에서 짧은 기간 얻게 된 정보들은 미군이 일으킨 민간인 사상자 수를 정확히 보고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될 것이다.
그녀는 미 정부가 이라크 모든 지역에 대해 미군이 죽인 민간인 사상자 통계를 공개할 것을 요구하는 노력들을 의회에서 펼쳐 오기도 했다.( 4월 18일자 Human Rights Watch/ Truthout 저널)
이라크에서의 어제와 오늘은 전쟁과 학살의 역사에서 오는 고통과 아픔의 연속이다. 후세인에 의해 저질러진 억울한 죽음들이 이제는 미국과 같은 점령군의 치하에서 매일같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번 루지카의 죽음은 이라크 상황이 아직도 혼란의 극치이며, 안정된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없음을 명백히 보여준다. 자살 폭탄공격과 같은 테러행위를 비롯해, 미군과 저항군들 사이의 크고 작은 교전들이 곳곳에서 벌어지면서, 아직도 이라크에서는 무고한 전쟁 희생자들의 죽음이 끝나지 않는 슬픈 현실이 계속되고 있다.
[국제여론] 이라크 국제전범민중법정, 6월 23일부터 터키 이스탄불에서 개최
사회진보연대 정영섭
이라크 국제전범법정(World Tribunal on Iraq (WTI)) 준비위는 4월 13일 기자회견을 통해 오는 6월 23일부터 27일까지 이스탄불 톱카피궁에서 열리는 이라크 국제전범법정 최종 세션의 세부내용을 발표했다. 변호인단에는 데니스 할리데이, 리차드 포크, 스콧 리터와 같은 주요 국제인사들이 포함되어 있고 배심원에는 아룬다티 로이, 찬드라 무샤파, 데이빗 크리거, 프랑소와 후타르 등의 저명한 반전, 대안세계화 운동가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스탄불 최종 세션은 새로운 보고와 증언조사, 이전에 세계 각지에서 진행된 법정의 결과에 대한 조사 등에 이어 6월 27일 판결에 이른다. 23일 저녁에 개막행사가 개최되고 24일부터 26일까지 법정이 열리며 26일에는 이스탄불 시내에서 반전행진을 진행하게 된다.
또한 법정 준비위는 지중해사회포럼 사전회의에서 포럼 참가국들이 이스탄불로 대표단을 보내 줄것과 26일의 행진에 참여할 것을 호소했고 국제반전운동 진영에 참여를 호소하고 있다. 국제전범법정은 런던, 뭄바이, 코펜하겐, 브뤼셀, 뉴욕, 일본, 스톡혹름, 로마, 프랑크푸르트, 제네바, 리스본 등에서 개최되었고 한국에서도 작년 12월에 ‘부시, 블레어, 노무현 전범민중재판준비위원회’가 개최한 바 있다.
이라크 국제전범법정은 이라크 공격을 둘러싼 침묵에 도전하고 이라크 전쟁과 점령에 대한 진실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반전운동이다. 이는 증언, 성찰, 평가의 과정이자 구체적 증거와 반전운동의 성과에 기반하여 민중의 의지로 판결을 내리는 것이다. 또한 이라크 국제전범법정은 지역적 조직들의 수평적인 네트워크로서 함께 활동하는 전 세계적인 운동이다. 이는 2003년 자카르타 평화회의에서 제안되고 시작되어 전세계적으로 확산되었다. 법정들은 전쟁의 불법성, UN의 역할, 전쟁범죄와 미디어의 역할, 문화유산과 환경 파괴, 파병국가의 공범성 등과 같은 이라크 전쟁관련 다양한 이슈들을 조사한다. 준비위의 멜렌 테일런은 “이 법정을 통해 우리는 또한 실제 이라크에서 무슨 일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역사 기록을 책으로 남기고자 한다. 이는 모든 증거들을 포함할 것이다. 현재 소위 국제사회는 이라크에서 무고한 사람들의 죽음에 대해 책임있는 원인과 행위자들을 심판할 능력이 없다. 그러므로 세계의 민중들은 스스로 국제전범법정을 개최할 것이다”라고 했다.
앞서 준비위는 3월 18일부터 20일까지 이스탄불에서 국제준비회의를 개최하여 대략적인 틀을 마련하였다. 전체적으로 평화에 반한 범죄, 전쟁범죄, 반인도주의 범죄, 지구적 영향, 미래를 위한 대안 등의 구조와 각각의 세부사항을 정하였다. 또한 국제전범법정의 핵심 이미지로 ‘관타나모 수용소의 오렌지색 죄수복을 입고 갇힌 부시와 블레어’ 이미지를 잠정적으로 정하는 등 구체적인 준비를 시작했다.
침략전쟁을 일으켜 무고한 민중을 학살한 부시와 블레어, 그리고 그에 동참한 노무현대통령을 비롯한 파병국가의 수반들은 전쟁범죄자로 계속 규탄되어 왔고, 이제 드디어 6월에 전 세계의 민중법정에 회부되는 것이다. 최근 이태리 베를루스코니 총리가 지방선거에서 참패한 주요 이유중의 하나도 높아진 반전여론 때문이었다. 역사와 민중의 심판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중동] 이집트 테러 사건과 키파야 운동
다함께 용욱
지난 4월 11일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에서 자살 폭탄 테러가 발생해서 관광객 3명이 죽음을 당했다. 이집트 보안 당국은 18세 학생인 하싼 라팟 바샨디가 범인이라고 발표했다.
사건 발생 뒤 이집트의 급진 이슬람 단체인 알-가마 알-이슬라미야와 지하드는 자신들이 이 공격과 상관없다고 발표했다.
무고한 관광객을 죽인 행위는 변명의 여지가 없이 끔찍한 일이다. 하지만 18세 평범한 청년이 자신의 목숨을 버리게 된 증오심이 어디서 비롯됐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주위 가족들에 따르면 바샨디는 최근 미국의 이라크 침략과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억압에 크게 분노해 왔다고 한다.
익명을 요구한 이집트 보안 당국의 한 관리는 카이로에서 발간되는 <알아흐람 위클리>에게 “우리는 위기 상황에 처해 있다.”고 말하면서 이 위기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억압에 대한 미국의 무조건적 지지와 이집트 정부의 무능력”에서 초래됐다고 말했다.
그는 “좌절한 젊은이들은 테러 행위가 자신의 분노를 표출하고 잃어버린 긍지를 되찾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믿게 된다.”고 지적했다.
많은 이집트의 민주화 활동가들, 특히 키파야 운동은 무바라크 정부가 이 사건을 빌미로 민주화를 요구하는 반정부 시위와 활동가들을 탄압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알-아크바> 등 친정부 언론들은 최근 시위가 이번 사건에 직·간접적으로 책임이 있다고 공격하고 있다.
키파야의 활동가인 압둘엘라 마디는 “어느 누구도 우리가 최근 획득한 정치적 성과를 빼앗아 가도록 놔두지 않겠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는 “만약 이집트 정부가 그런 개별적 사건을 이용해 계엄법과 정치적 억압을 지속한다면…그것이야말로 테러리즘을 확산시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카피야는 4월 27일에 이집트 내 13개 지역에서 시위를 벌일 예정이다. 만약 이 시위에 지난 몇 주간 일어난 시위처럼 많은 사람들이 참가한다면 툭하면 이슬람 급진주의 ‘테러’를 빌미로 대중의 불만을 억눌렀던 이집트 정부의 상투적인 수법이 바닥이 드러났음이 명백하게 드러날 것이다.
이스라엘의 전략
최근 서방 언론들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로부터 이스라엘의 철수를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언론들의 장밋빛 전망과는 달리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미래는 더 어두워지고 있다.
이스라엘 총리 아리엘 샤론은 가자지구 철수를 선전하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요르단강 서안에서 새로운 정착촌을 건설하고 있다. 3월 중순 이스라엘의 전직 검사인 탈리아 사손이 발표한 보고서는 이런 정착촌 건설에 이스라엘 국가가 직접 개입하고 있음을 명확하게 지적하고 있다. ‘보안 장벽’의 건설도 중단되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새로운 정착촌과 장벽은 동부 예루살렘을 완전히 포위할 것이다. 이것은 예루살렘을 팔레스타인 국가의 수도로 일찌감치 선언해 왔던 팔레스타인인들의 염원에 대한 공공연한 도전이다.
하지만 샤론의 계획은 제대로 된 팔레스타인 국가의 형성을 막는 것 이상이다. 많은 사람들은 샤론이 팔레스타인을 아파르헤이트 시절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반투스탄처럼 만들거라고 지적해 왔지만 그의 계획은 그 이상인 듯 하다.
샤론의 계획이 궁극적으로 성공한다면 팔레스타인은 반투스탄이 아니라 미국의 인디안 보호구역처럼 될 것이다. 팔레스타인인들은 미국 원주민들처럼 인종적으로 사실상 완전히 ‘청소’될 것이다.
샤론은 종교적 시온주의자가 아니다. 그는 세속적 시온주의자이다. 그는 극우 시온주의자들같이 ‘역사적 이스라엘’의 모든 영토가 신성하기 때문에 조금도 양보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샤론의 사고는 매우 전략적이다.
요르단강 서안은 요르단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 샤론은 기회가 오면 팔레스타인인들을 요르단으로 몰아내고 싶어한다. 그러나 가자지구는 이집트의 시나이 사막과 인접해 있다. 이스라엘은 당분간은 이집트와 맞설 생각이 없다. 따라서 샤론은 가자지구에서 철수하는 대신, 이 지역을 사실상 거대한 집단 수용소로 만들어 고립시키고, 요르단강 서안 쪽으로 정착촌과 이스라엘군 초소와 장벽을 확대해 팔레스타인인들을 요르단 국경 쪽으로 몰아 넣으려는 속셈인 것 같다.
4월 19일치 <뉴욕 타임스>에는 샤론이 가자지구로부터의 철수를 3주정도 미룰 계획이라는 보도가 실렸다. 샤론은 실질적인 철수 과정을 진행하기보다는 철수의 어려움과 ‘의의’를 어떤 식으로든 언론에 반복적으로 부각시키려 하고 있다. 전형적인 생색내기다.
그리고 그는 철수 직전까지 가자지구 팔레스타인인들을 조용히 놔둘 생각이 전혀 없다. 4월 9일에는 가자지구 라파의 이스라엘 초소 병사들이 비무장한 팔레스타인 소년 3명을 무참하게 학살했다. 이것은 지난 2월 9일 샤름 엘셰이크에서 한 정전 약속을 어긴 것이다.
샤론의 웅대한 계획에서 팔레스타인 대통령 마무드 압바스는 장기판의 졸에 불과하다. 샤론은 끊임없이 압바스에게 타협을 요구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팔레스타인에서 압바스의 지위를 약화시키는 정책을 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압바스가 팔레스타인 무장단체들로부터 얻어 낸 타협이 과연 지속될 수 있을까?
샤론 정부가 이처럼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에서 동시적으로 긴장으로 고조시키자 이스라엘 지배자 일부조차 우려감을 표시하고 있다. 최근에 전직 이스라엘 국내 정보기관 신베트의 고위 관료는 “예상보다 빨리 제3차 인티파다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