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라크모니터팀 보고서 47호(~5월 27일)
목차: [점령] 영국군은 바스라 점령에 실패했다.
[인권] 하디타에서 민간인 24명 학살 벌어졌다.
[국제여론] 아랍민중저항동맹 1차 설립회의 최종 선언문
[점령] 영국군은 바스라 점령에 실패했다.
작성자 │ 지은 (경계를 넘어)
이라크 수도로부터 남동쪽으로 600km정도 떨어져 있고, 예로부터 제 2의 도시라고 불릴 만큼 역사적으로 번창했던 무역항을 가지고 있는 바스라는 또한 이라크 남부 대표적 유전지대로써 중요한 지역이 되어왔다.
이곳은 시아파가 밀집된 지역으로써, 미국의 침공이후 강한 반미 성향을 가진 무크타다 알 사드르 종교적 지도자가 정치적인 세를 크게 떨치면서 점령반대, 다국적군 철수 입김이 높고, 저항운동 역시 치열한 양상을 보이며 전개되고 있다.
한편 영국군대는 이라크 남부 4개의 거점 도시인 메이산(Maysan), 무타나(Muthanna), 디콰르(Dhi Qar), 바스라(Basra)에 8,000명 정도 배치되어 있는데, 그 중에서도 여기 바스라에 가장 큰 규모의 병력인 7천명 이상을 주둔시킨 채 치안 통제권을 관할해 오고 있다.
그러나 영국은 생각보다 쉽게 이 지역의 저항세력을 누르지 못해, 자신들의 점령지 장악에 실패하고 있다. 거의 매일 폭발 사고가 발생해 날이 갈수록 치안상태는 불안정해져 가, 4월부터 5월까지만 해도 100명 이상의 사람들이 종파주의적 표적 공격과 폭발사고로 목숨을 잃을 정도이다.
심지어 지난 5월 6일에는 영국군 헬기인 아파치가 저항세력 로켓에 의해 폭발하면서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비록 민간인 사망자는 없었다 하더라도, 브라운 영국 신임 국방장관은 이 사고로 목숨을 잃은 영국군인들은 ‘꽤’ 된다고 발표했다.1)
공교롭게도 이 사고가 발생하자마자 바스라 군중들은 영국군대를 향해 격렬한 항의를 벌이기 시작했으며 심지어 한 남자가 영국 군인에게 총을 겨누기도 했고, 또 어떤 이들은 화염병까지 던져 영국군 탱크 한 대가 화염에 휩싸이기도 했다. 이 날 바스라는 통행금지령이 내려졌다.
이러한 사태는 엉망진창인 치안과 극심한 빈곤, 실업 상태에 대한 군중들의 분노가 극에 다다랐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들은 현재의 바스라 정치 관리들과 영국군대에게 이 모든 상황에 대한 책임을 지라고 요구했다. 그동안 권력획득에만 눈이 멀은 정부관리들은 영국군이 바스라 민간인 시위대에게 총을 쏘아도 눈감아 주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종파주의적 싸움을 부채질 해 왔기 때문이었다. 여기 바스라 지역에서 거주하던 수니인들은 거의 도망치다시피 이주해 버린 상태이다.
이 곳 주민들은 처음에는 후세인 독재가 무너지는 것을 반겼지만2), 대신해서 점령한 영국군은 자신들의 해방군이 되기는커녕 포로학대, 민간인 구타 등 온갖 인권유린 행위들을 저질러 오히려 그들을 더욱 성나게 만들어 버렸다.
작년에 바스라를 다녀온 적이 있던 이라크 무역조합 북미 대표자였던 Amjad Ali al-Jawahary 씨 설명에 따르면, 당시 바스라는 쓰레기가 산을 이룰 정도였다고 한다. 전기는 하루에 30분 간신히 들어올 지경이었으며, 수도시설 역시 파괴된 채 그대로였다고 전했다. 이는 영국군이 바스라지역에서 민중들을 위한 재건임무는 하나도 수행하지 않았음을 명백히 말해준다.3)
22일, 토니 블레어 총리는 바그다드를 깜짝 방문함과 동시에 공개적으로 철수논의 본격화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는 이라크 새 주권정부 출범에 따른 치안관할권 이양을 언급하면서 그러나 바스라 지역에서의 철수는 위험스러운 요소가 많아서 시기상조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실제 바스라 지역에서 영국의 통제력은 이미 그 힘을 완전히 잃었고, 이라크에 파견되어 있는 영국군 내부 소요만 커졌다. BBC가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지금까지 최소 1000명 정도의 영국 병사들이 탈영을 했고, 점점 탈영을 원하는 병사들의 증가추세는 커져만 가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보니 현재 영국 의회에서는 일개 병사들이 외국 점령 군복무를 거부하는 행위를 금지시키는 법안을 놓고 논쟁을 벌이고 있을 정도이다.4)
뭐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바스라는 인간적인 생존조건들이 모조리 파탄나고 있다. 점령이 몰고 온 현실은 냉정한 것이다. 오죽하면 영국군인들조차 8명 중 1명꼴로 탈영을 하고 있고, 도시 전체는 빈곤과 범죄가 넘쳐나고 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시각에도 바스라에서 폭발사고가 나 사망자가 발생했다는 기사가 오르고 있다.
점령군인 영국군은 영국군대로, 이들과 한통속인 부패한 정부관리와 경찰들은 그들대로, 또한 사주를 받고 마구잡이로 살인을 저지르는 사병대들들은 사병대들대로 바스라를 점점 지상의 지옥으로 만들어 놓고있다. 따라서 바스라 민중들은 점령군 철수를 더욱 강력히 외칠 수 밖에 없다. 이제 영국군은 '철수'하는 것이 아니라 성난 바스라 민중들에게 내쫓기는 것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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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ttp://english.aljazeera.net/NR/exeres/CEB2F3BD-AB5A-40A3-97D1-CD4AB700AF82.htm
2) 1991년 걸프전 직후 반 후세인 봉기에 나선 이들은 미국의 지원을 요청했다가 외면당한 뒤 정부군에 진압돼 수백명이 살해된 적 있다.
3) http://www.aljazeera.com/cgi-bin/review/article_full_story.asp?service_ID=11257
4) http://news.bbc.co.uk/2/hi/uk_news/5024104.stm
1) ttp://english.aljazeera.net/NR/exeres/CEB2F3BD-AB5A-40A3-97D1-CD4AB700AF82.htm
2) 1991년 걸프전 직후 반 후세인 봉기에 나선 이들은 미국의 지원을 요청했다가 외면당한 뒤 정부군에 진압돼 수백명이 살해된 적 있다.
3) http://www.aljazeera.com/cgi-bin/review/article_full_story.asp?service_ID=11257
4) http://news.bbc.co.uk/2/hi/uk_news/5024104.stm
[인권] 하디타에서 민간인 24명 학살 벌어졌다.
작성자 │ 물꽃(이라크평화네트워크)
2004년 11월, 수니파 도시 하디타에서 미 해병대원들이 이라크 민간인 24명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했다. 이들 중 7명은 여성이었고, 3명은 어린이였다. 이들은 자신들의 동료 중 한 명이 하디타 시 도로변에 매설된 폭탄으로 사망하자, 이에 대한 보복으로 테러와 무관한 무고한 민간인에 대한 무차별적인 살상을 자행했다. 이들은 사건 조사과정에서, 사망한 이라크 인들의 숫자를 축소하고, 사망한 이라크 인들이 저항군의 폭탄에 의해 사망했으며, 이들은 단지 자신들에게 총을 쏘는 저항군을 쫓아 이라크 민간인 집에 침입한 것이라고 거짓 진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군 당국은 이전에 단지 15명의 이라크 인들이 테러에 의해 사망했다고 주장했었다. 하지만 사건 후 찍힌 사진들은 9명이 늘어난 24명의 이라크 인들이 처형방식에 의해 살해된 것임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2006.5.27, The Guardian)
미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은 죽임을 당한 무고한 이라크 인들뿐 아니라, 이를 지켜본 아이들에게도 큰 상처를 남겼다. 이번 사건으로 가족 8명을 잃은 12살의 이라크 어린이 Safa Youris는
“미군들이 문을 두드렸고, 아빠가 문을 열기도 전에 아빠에게 총을 쏘았고,
아빠는 그 자리에서 쓰러졌습니다. 부엌으로 피한 저희 가족 모두를
총으로 쐈고, 저만 죽은 척해서 살아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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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증언했다.(2006. 5. 29. CNN)
또한 올해 아홉 살인 Eman Waleed도
“자고 있는데 밖에서 큰 폭발음이 들려 잠에서 깼습니다.
주변에서 폭발이 발생하면 늘 그렇듯이, 아빠는 방으로 들어가 코란을 두고 가족이 안전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나머지 가족들은 거실에서 잠옷을 입은 채로 숨죽여있었는데, 미 해군들이 들어와, 아버지가 기도하고 있는 방으로 들어갔고, 총 소리가 났습니다.
그리고는 거실로 나와, 할아버지를 총으로 쐈습니다. 처음에는 가슴에, 그리고는 머리에, 그리고 나서 저의 할머니를 총으로 쐈습니다. 그러더니 여덟 살 난 제 동생을 보호하려던 다른 어른들을 총으로 쐈습니다, 저는 다리에 총을 맞았고, 제 동생은 어깨에 총을 맞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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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증언했다.(2006. 3.19, Times)
이번 사건은 1968년, 3월 16일, 미군이 수백 명의 무고한 베트남인을 학살했던 밀라이(My lai) 사건에 버금가는 최악의 전쟁 범죄다. 무차별적인 미군의 양민 학살은 아부그라이브 성고문 사건과 함께, 이라크에서 자행하고 있는 미국의 점령의 실상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현재까지 얼마나 많은 이라크 인들이 전쟁으로, 미군의 점령으로 목숨을 잃었는지 제대로 된 통계조차 나와있지 않다.
이 사건이 일어난 것은 지난해 11월이었다. 하지만 지난 3월, 타임즈가 이 사건에 대해 보도하기 전까지, 미 군당국은 이 사건을 거리의 폭발물에 의한 사망사건이라고 주장하며 은폐하려 했다. 이후 논란이 불거진 후에도 이 사건에 대한 진상조사는 더디게 진행되었다.
철저한 진상 규명과, 관련자 처벌을 요구한다. 미군은 지금 당장 이라크 점령을 중지하고, 이라크에서 철수해야 할 것이다.
[국제여론] 아랍민중저항동맹 1차 설립회의 최종 선언문
작성자 │ 정영섭(사회진보연대)
*지난 3월 27일~29일에 이집트 카이로에서 아랍민중저항동맹 설립회의가 있었다고 합니다. 구체적으로 어느 단위에서 누가 참여했는지는 알 수가 없고, 최종선언문을 통해 지향을 파악해 볼 수 있는 정도입니다. 아랍지역에서 이러한 저항동맹을 결성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에 의미를 둘 수 있겠습니다.
아래는 최종선언문을 번역한 것입니다.
(출처 : 브뤼셀 트리뷰널 www.brusselstribunal.org)
아랍민중저항동맹(Resistant Arab People's Alliance) 설립회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