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 비정규직노동자는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고 있다. 용역직, 파견직, 일용직, 계약직 등 이름은 달리하지만 노동자들이 처한 실상은 별반 다르지 않다. 특히 지난해 파견법이 노동법개악을 둘러싼 핵심쟁점으로 자리할만큼 도급ㆍ파견노동의 확산은 자본에 의한 구조조정과 노동유연화 정책을 손쉽게 실현시켜주는 고용형태인 것이다. 이러한 파견법은 노동3권에 대한 침해는 물론이고, 저임금과 중간착취, 상시적인 고용불안을 야기하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분할 등 노-노간의 갈등을 심화시키는 기재로작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비정규직 중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형식적으로 하청회사 소속으로 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원청회사의 사업장에서 원청회사의 생산시설에 투입되 정규직들과 같은 일을 하는 경우가 흔하다. 작업지시도 원청의 관리자로부터 직접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내하청업체의 사업주는 아무런 생산설비도 갖출 필요없이 그저 인력만 공급하면 되는 것이다. 만약 사내하청업체에서 노조가 결성되면 원청은 계약을 해지하고 다른 업체와 계약을 맺으면 그만이다. 이에따라 단체행동권, 단결권, 교섭권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거니와, 최저임금을 겨우 넘기는 저임금을 감내해야 하고 일상적인 해고위협에 시달려야만 하는 것이 오늘날 파견노동자의 모습인 것이다. 특히 조선과 자동차 산업 등 중공업분야에서는 비일비재하던 사내하청이 생산업종으로 점차 확산되면서 불법파견은 이미 심각한 사회문제로 불거졌음에도 불구하고 각 사업장내의 투쟁이 전체 노동자의 투쟁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비정규직, 불법파견, 기륭전자
서울디지털산업단지로 이름을 바꾼 구 구로공단, 하지만 그곳의 노동현실은 개선되지 않고있다. 구인단계부터 노동ㆍ고용형태까지 존재하는 성별에따른 차이 뿐 아니라, 열악한 노동조건과 저임금은 세월이 흘러도 변함이 없다. 더욱 심각한 것은 사업장 규모와 관계없이 파견대상업종이 아닌 직접 생산 공정에 파견노동자를 고용하는 불법파견의 보편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최저입찰제를 통해 파견업체를 선발하는 는 방식은 노동자들의 임금이 삭감될 수밖에 없는 요인 중 하나가 되고있다.
전체 노동자 500명 중 생산직 사원의 7명만이 정규직인 기륭전자의 경우 대규모의 파견노동자를 채용함으로서 파견의 심각성이 드러나게 되었다. 디지털산업단지내에서 위성라디오를 주력으로 생산하는 기륭전자는 노동조합이 설립된 후 작업장 내 조합원들을 향한 감시카메라를 설치하고, 비조합원으로 구성된 '기륭전자를사랑하는모임'이라는 사내 구사대를 통해 노조 와해 작업을 진행하는 등 노조 탄압을 끊임없이 자행해 왔다. 지난 8월 노동부로부터 불법파견 판정이 내려진 후에도 직접고용을 전면으로 거부하고 정규직까지 도급노동자로의 전환을 요구하는 등 부당노동행위가 지속되어왔고, 노동조합과의 성실한 교섭은 진행하지 않았다. 또한 근로계약 없이 채용되었던 파견노동자들에게 노조결성 후 근로계약서 재작성을 요구하면서 근로계약서 작정시에만 임금을 인상하는 방법을 동원하기도 했다. 조합원 64명에 대해 1인당 18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등 노조를 와해시키기 위한 기륭전자의 노조탄압은 악랄하기 그지 없었다. 계약직, 불법 파견노동자의 정규직화와 해고자(계약해지자)의 원직복직, 부당노동행위 즉각 시정 및 중지, 노동조합 인정 등의 요구사항을 관철시키기 위한 조합원들의 50여일이 넘는 생산라인점거 투쟁은 지난17일 공권력 투입을 통한 전원연행으로 일단락되었다. 하지만 파견법이 지속되는 한 기륭전자와 같은 불법파견사업장은 확산될 수밖에 없고 따라서 불법파견과 파견법의 완전철폐를 위한 투쟁이 계속되어야 하는 것이다.
파견법과 여성노동자
파견법 시행 이후, 정부 정책은 파견근로 허용대상 직종을 대폭 확대하는 정책*으로의 전환을 앞두고 있다. 26개 직종에 한정되었던 파견근로의 범위를, 허용되지 않는 제한 직종만을 명시하는 방안으로 변경하고, 규제를 더욱 완화하는 형태로의 방향전환을 시도중인 것이다. 이러한 정책의 변화에 따라 파견근로의 허용 직종이 대폭 확대될 경우 단순 사무, 생산직 등 주로 여성노동자들이 주 대상층인 업무의 경우 파견직화로의 급격한 변화가 예상되는 바이다. 현재 한국사회에서 여성노동자들에게 비정규직은 선택이 아닌 필연적이 상황임을 볼 때, 파견업체는 여성의 노동으로 채워지게 될 것이고, 저임금과 불안정한 노동조건 속에서도 해고되지 않고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벌이를 위해 잔업과 특근을 마다할 수 없게 될 것이다. 근로기준법과 남녀고용평등법이 적용되기 어려운 파견 여성노동자의 경우 부당한 노동조건과 저임금은 늘 감내해야 하는 현실로 남게 될 것은 분명하다. 결국 파견업종의 확대는 여성노동자들에게 불안정한 노동과 삶을 강요하게 되고, 비정규보호법안이라는 허울의 노동법개악이 여성노동자들이 설곳을 점점 빼앗고 있는 것이다. 파견업종 확대의 문제 뿐 아니라, 파견노동자를 2년이상 고용할 시 적용되었던 직접고용 간주조항 역시 2년이 되기 전 계약해지 후 새로운 노동자를 고용하는 것이 당연시 되는 상황에서 직접고용은 파견노동자에게 해당되지 않는 유명무실한 조항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파견법은 파견노동자의 불안정 고용을 일상화 시키고 있다.
이렇듯 비정규노동자의 노동권이 제대로 발현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서 노무현 정권의 비정규법안은 비정규노동자의 권리 보장과 보호를 위한 실질적인 대책이 될 수 없다. 특히 파견법의 경우 자의적인 해고에 지속적으로 위협받는 불안정한 삶이 지속될 수밖에 없고, 노동조합 활동이 보장되지 않는 등 공정한 노동조건이 존재하지 않는 현 상황은 노동의 권리를 누릴 수 없는 노동자를 양산하게 될 뿐인것이다. 따라서 적당한 타협이 아닌, 파견법 완전 철폐를 위한 투쟁이 되어야 한다. 파견법을 통한 자본의 구조조정을 중단시키고, 직접고용의 실현과 노동의 권리 쟁취를 위한 전면전이 필요한 것이다.
*26개 업무에 한하여 파견제를 허용하고 있던 현행 파견법은 건설업, 선원의 업무 등 소수의 업무를 제외한 모든 업무에 파견제를 사용할 수 있도록 입법예고안이 제출되었다. 건설업 등 현행법에서 파견제를 금지하고 있는 업종은 현재도 인력소개소를 통한 불법파견이 자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의 개정안은 파견제의 실질적인 완전 자유화라 볼 수 있다. 특히 26개 허용분야에 포함되어 있지 않던 제조업의 경우 “제조업의 직접생산공정 업무에 대하여는 출산·질병·부상 등으로 결원이 생긴 경우 또는 일시적·간헐적으로 인력을 확보하여야 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 한하여 근로자 파견 사업을 행할 수 있다.”(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 6조 2항)고 명시함으로써 '직접생산공정'업무를 제외한 업무의 경우 파견법의 허용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이는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전환배치와 구조조정 등 제조업 전반에서 파견제의 급속한 확산으로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평화연대 2004년 10월호)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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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평화인권연대 상임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