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호 특집] 대추리에서의 하루 일과
메이짱 (대추리 평화촌 주민)
대추리에서 나의 하루 일과는 아침이 아닌 밤늦은 시간부터 시작된다. 밤늦게 집에 돌아와 방을 따듯하게 하기 위해 아궁이에 장작을 지핀다. 처음에는 장작 피는 법을 몰라 연기만 들이마시며 종이만 태웠지만 이제는 제법 요령이 생겼다. 종이를 돌돌 말아 불을 붙인 후 마른 나뭇가지를 종이 위에 조금씩 얹히며 불씨를 살려나간다. 작은 나무토막부터 시작해서 마지막은 두꺼운 통나무를 집어넣으면 방은 후끈후끈 달아오른다. 이렇게 나는 내일의 아침을 맞이하기 위해 정성껏 아궁이에 나무를 집어넣어야 한다. 밑불감을 손으로 꺾고 차가운 나무토막을 쑥쑥 집어넣는다. 스위치를 돌려 전자식 시스템으로 방을 뜨겁게 하는 기름보일러와는 사뭇 다른 맛이다.
이른 아침 방 안에 선선한 공기가 나를 깨운다. 방바닥은 아직 따듯해 이불에 몸을 몇 번 뒤척였다. 일어나 옷을 챙겨 입고 마당 한 구석에서 볼 일을 본다. 많은 양의 물을 내릴 필요 없이 땅이 흡수하도록 놔두면 된다. 문명사회에서는 더러운 것이 이 곳에서는 땅에게 필요한 양분이 된다. 하루일과의 대부분은 찻집에서 보낸다. 1월11일 대추리 평화촌 기자회견에 맞춰서 하루 전 부랴부랴 만든 찻집이며 찻집이름은 ‘차()한잔 하실래요’이다. 처음에는 석유난로를 구해다 오고 찻집은 찻집 분위기가 거의 나지 않을 정도로 썰렁했다. 게다가 찻집주인은 평소에 차()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으니 차 맛이 오죽했으랴. 게다가 “찻집이 너무 썰렁한데.” “차 맛이 별로야.”와 같은 주민 분들의 진담 같은 농담은 야속하게만 들렸다.
이 사람 저 사람한테 구박 받으면서 보름정도를 버티니 주워온 근사한 오디오와 얼마 전에 설치 한 연탄난로 그리고 점점 채워지는 내부 장식으로 인해 사람들은 이제 찻집에 들어오면 정말 찻집 같다는 말을 하곤 한다. 오늘은 주민들을 위한 특별메뉴로 대추 넣고 끓인 생강꿀차를 달이기로 했다. 집에서 씻어서 얇게 썬 생강과 대추를 넣고 물을 부어 푹 달이기 시작했다. 처음 시도한 거라 잘 될까라는 우려와 함께 몇 시간을 우려 낸 생강차 한 모금을 마셨다. 마시는 순간 퍼지는 생강의 그 매운 맛이 소름을 돋게 하였다. 너무 매울 거 같다는 생각아래 물에 담겨 있는 모든 생강을 건져내고 평화바람 숙소에서 가져 온 꿀을 들이 붓기 시작했다. 꿀과 물을 넣고 졸이고 맛보기를 여러 차례 한 후 다시 몇 시간을 달이니 맛이 제법 났다.
촛불집회 끝나고 문정현 신부한테 칭찬까지 받았다. “야~이거 맛있다.”그 진심성이 어린 감탄형 칭찬이란...내가 이제껏 차를 끓인 것 중에 그렇게 인정받은 차는 처음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다음번에는 더 커다란 냄비에 물을 가득 부어서 생강꿀차를 만들어야겠다. 주민분들이 좋아하실 것 같다. 아참, 찻집에는 항상 찾아오는 단골손님들이 있다. 바로 대추리에 살고 있는 아이들이다. 오늘은 축구를 하고서 떼거지로 찻집을 쳐들어오다시피 와 메뉴판을 들고서 서로 주문을 하는 모습이 재밌었다. 한 놈이 메밀차를 외치니 너도나도 메밀차를 달라고 하는 그 단순함이란...방에 들어가 나름대로 자신들이 생각한 방식대로 차를 마시고 있다는 상상을 하니 웃음이 났다. “차 맛 어때?”라는 말에 “맛있다.”라고 대답을 하니 기분이 좋아졌다. 차는 아직 잘 끓이지 못하지만 찻집주인이 차남기고 간 사람들을 제일 싫어한다는 이유를 조금씩 알 거 같다.
하루를 정리하고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 지감독은 방에서 박장대소를 연거푸 한다. 오늘 오전에 찍은 뮤직비디오 촬영한 것을 본 모양이다. 아침 일찍 촬영독촉전화에 잠을 깨 ‘사랑의 밥줄’이라는 노래로 뮤직비디오를 만들었다. “사랑의 밥줄로 꽁꽁 묶어라...주한미군 떠날 수 있게...” 최대한 선정적이어야 한다는 지감독의 요구에 힘입어 조약골은 머리에 삿갓을 쓰고 한복을 입는 기묘한 풍경을 연출하기도 하였다. 나랑 자두 그리고 동소심은 서로의 몸을 밧줄로 꽁꽁 묶은 채 잡아 당기고 밥사발을 들고 춤을 추었다. 산만하고 난잡하다는 지감독의 지적에 우리는 최대한 무표정을 지으며 절도 있는 율동을 시도했다. 3~4번의 NG끝에 지감독의 OK싸인을 받았다. 이른 아침부터 흘러나오는 음악소리와 모여 든 사람들 때문에 옆집 할아버지가 러닝차림으로 마실을 나오시기도 하였다. 주한미군확장이 예정 된 지역에서 언제 철거를 들어 올 지도 모르는 상황에 이렇게 노래 틀고 춤을 추고 있는 모습이 할아버지에게는 어떻게 비춰졌을까? 노인정에서 한 할머니 말씀이 떠오른다. “웃고 즐겨야 이기지.”
차가운 밤바람을 맞으며 캄캄한 시골길을 터벅터벅 걸어간다. 찻집을 하느라 나무를 줍고 장작을 패는 일을 깜빡했다. 오늘도 라이터에 불을 켜 마당에 널브러진 장작을 주워야겠다. ‘불이 빨리 붙어야 잘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