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올해 평화협정 정세가 발전하리라는 기대를 갖고 평화협정 실현운동을 힘차게 결의했습니다. 2008년도 평화협정 실현운동의 성과에 토대하여 2009년도에 추진위원 1만 명을 달성해보자고 다짐했습니다. 그러나 부시 정부보다 전향적으로 대북관계에 나서리라 기대했던 오바마 정부는 대북적대정책을 폐기해야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전략적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시간만 허비했습니다. 그리하여 북한은 2차 핵실험을 강행하고 핵무장에 나섰습니다. 유엔안보리를 동원하여 대북제재와 압박에 나서고 선 비핵화를 강변하는 오바마 정부의 태도는 전임 부시 정부시절보다 오히려 후퇴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자아냈습니다.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도 평통사는 미국이 북한과 대화에 나서는 것은 필연이며 결국 북한과 협상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라는 승리적 낙관을 잃지 않았습니다. 드디어 지난 8월, 빌 클린턴 전 미 대통령의 방북으로 2008년 12월 6자회담 결렬 이후 교착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대립각을 세우던 북미관계가 대화로 전환되었습니다. 2009년에 우리는 기층 노동자와 농민, 학생들 속에서 평화협정 실현운동을 전개하자고 결의했습니다. 전국 각지에서 평화협정 실현운동이 전개된 결과 올해 우리는 추진위원 2,860명, 길잡이 10,079명을 조직했습니다. 2008년도 통계와 합하면 11월 23일 현재 추진위원은 총 6,513명, 길잡이는 22,103명이 됩니다.
전국 각지에서 평화협정 실현운동이 전개된 결과 논산, 보령, 공주, 계룡 등 충남지역과 강원도 철원, 전남 강진, 고흥, 곡성, 전북의 남원, 순창 등으로 평화협정 실현운동이 확산되었습니다. 또 평화협정 실현운동의 성과로 부산과 대구에서 평통사가 결성되고 광주전남평통사가 해남을 시작으로 무안, 광주, 나주 등 시, 군단위 평통사로 분화발전되고 있습니다. 특히 수구보수의 대명사로 알려진 대구에서 평화협정운동이 확산된 것은 소중한 성과입니다.
우리는 평화협정 실현운동 과정에서 평화통일운동의 빛과 그림자를 두루 겪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어떤 입장을 가졌든―민족운동계열이든 민중운동계열이든, 각 진영 내의 어떤 정파든―평화협정 실현운동의 대의를 거부하지는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적극적으로 동참하지 못하거나 부정적으로 대하는 사람들도 이 운동의 필요성과 의의에 대해서는 이견을 갖지 않았습니다. 이 실천적 경험은 평통사가 평화협정 실현운동을 통해 진보진영을 혁신하고 단결하도록 하는 데 일조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긍지를 갖게 해 주었습니다. 올 한 해 전개한 평화협정 실현운동을 돌아보면 아직도 이 운동이 대중 속으로 들어가려면 멀었다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정세의 어려움도 있었지만 능력과 조건의 한계도 절감하는 하루하루였습니다. 우리가 보다 더 대중적으로 평화협정 실현운동을 전개하기 위해서는 실무자 위주의 활동 틀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추진위원과 회원 전체의 능력과 조건, 동력이 서로 보완되며 온전히 발휘될 때 비로소 우리는 이 운동을 제대로 전개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진심으로 대중을 믿고 올바른 실천의 한 길을 가면 천형처럼 들씌워진 한미동맹의 고리를 끊어내고 평화협정을 실현하고 통일을 이룰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