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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란의 세월



‘붉은 머리 오목눈이’라는 새가 있다. 우리가 흔히 “뱁새가 황새 쫓아가다 가랑이 찢어진다”고 할 때, 그 뱁새가 바로 붉은 머리 오목눈이다. 뻐꾸기가 짝짓기를 하고는 암컷이 이 붉은 머리 오목눈이의 둥지에 몰래 알을 낳는다. 이것을 일러 탁란이라고 한다. 붉은 머리 오목눈이는 뻐꾸기 알을 자기가 낳은 알인 줄 알고 정성을 다해 품는다. 뻐꾸기 알은 부화하자마자 하는 일이, 붉은 머리 오목눈이의 새끼들을 둥지 밖으로 밀어내거나 밟아 죽인다. 이렇게 열흘이 지나면 뻐꾸기 새끼는 붉은 머리 오목눈이보다 덩치가 서너 배는 커진다. 붉은 머리 오목눈이는 뻐꾸기 새끼를 먹이느라고 죽을 고생을 해야 한다. 석 달이 지나면 뻐꾸기 새끼는 온다간다 말도 없이 떠나버린다. 어미 뻐꾸기는 남의 둥지에 알을 낳고도 단 한 번도 살펴보지 않는다. 이렇게 뻐꾸기처럼 자기 새끼를 남한테 죽을 고생을 하며 키우도록 만드는 경우가 인간 세상에도 있다.



노동자 김씨는 현대자동차에 다닌다. 그는 매일 8시인 출근시각에 맞추기 위해 아침 6시에 일어난다. 씻고 밥을 먹고 7시에 출발해서 8시에 회사에 도착 한다(2시간 소요). 오전 노동을 네 시간하고(4시간 소요), 점심시간이 한 시간이다(1시간 소요). 오후 네 시간을 노동한다(4시간 소요). 잔업을 하기 위해 저녁 먹는 데 한 시간이 들어간다(1시간 소요). 그러고는 두 시간 동안 잔업을 한다(2시간 소요). 잔업이 끝나고 집에 가는 데 한 시간이 걸린다(1시간 소요). 내일 노동을 위해 8시간은 잠을 자야 한다(8시간 소요). 노동을 위해 들어간 시간을 합치면 23시간이다. 하루 24시간 중 자신을 위해 쓸 시간은 단 한 시간 밖에 없다. 이렇게 평생을 살아야 한다면 차라리 붉은 머리 오목눈이가 더 행복한지도 모르겠다. 어떤 이는 “그러면 잔업을 하지 않으면 되지 않느냐?”라고 볼멘소리로 물어 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노동자 김씨는 정규직이긴 하지만 잔업, 특근을 하지 않으면 제대로 먹고 살지 못한다. 8시간 노동제가 정착된 지도 백 년을 훌쩍 넘겼지만 현대자동차 노동자 김씨에게는 그림의 떡일 뿐이다. 이 나라 대부분의 제조업 노동자들의 형편이 이와 비슷하다. 만약 노동자 김씨가 비정규직이라면 더 말해 무엇하랴!
공장 밖에는 실업자들이 넘쳐난다. 실업자들은 먹고 살기 위해서라면 훨씬 싼 값에 일할 각오가 되어 있다. 그러니 공장 안에 있는 노동자라 할지라도 일자리가 늘 불안하다. 이 불안감을 이용해 관리자들은 노동강도를 더 높인다. 곳곳에서 과로사가 일어나고, 과로사 예비군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노동자들의 처지가 열악해 질수록 그와 반대로 자본가들의 이윤은 늘어난다. 현대자동차는 매년 1조 원 가량의 이윤을 남기지만 노동자들의 처지는 조금도 개선되지 않는다. 오히려 98년 이후 임금 인상률은 더 떨어지고 고용불안은 더 심해져 왔다.



노동자 김씨는 잔업과 특근으로 야금야금 자신의 죽음을 당겨쓰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에게 “먹기 위해 사는지, 살기 위해 먹는지”라는 물음은 호사스런 질문이다. 노동자 김씨는 노동유연화가 진행될수록 생존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며 경쟁을 해야 한다. 생존의 늪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남을 밟고 일어서야 한다. 경쟁이란 곧, “당신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 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자본주의는 타인의 불행이 내 행복의 바탕이 되는 세상이다. 인간미라든가, 정이란 단어를 가슴 속에서 빼앗긴 지 이미 오래다. 노동자 김 씨는 여전히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긴 하지만, 생산의 도구에 더 가깝다. 차라리 관리자의 지시에 의해서 움직이는 자동인형이라 해야 맞겠다.
노동자 김씨가 다니는 현대자동차에는 일주일에 한 번, 잔업과 특근이 없는 날이 있다. 노동조합에서 매주 수요일을 ‘가정의 날’로 만들었다. 결국 수요일 외엔 모두가 '자본의 날'이 되는 셈이다. 매일 가정의 날이 되기 위해서는 잔업, 특근을 하지 않고서도 원만히 먹고 살 수 있어야 한다. 언감생심 그건 꿈에서나 가능할 법하다. 상황이 이러할진대 이 나라에서 노동자 김씨는 ‘귀족노동자’로 불린다. 정권이 그렇게 부르고, 자본이 그렇게 부르고, 언론이 그렇게 부른다. 아참, 서경석이라는 목사도 그렇게 부른다. 노동자 김씨는 8시간 일해서는 먹고 살지도 못하는 못난 귀족노동자인 셈이다. 올해 임금투쟁이 벌어지면, 대중가요 인기차트엔 ‘귀족노동자 송’이 단연 1위를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노사관계 로드맵이 통과된다면 해고의 완전한 자유화가 이루어진다. 이렇게 되면 뻐꾸기가 붉은 머리 오목눈이 둥지에 탁란을 두 개나 하고 간 셈이 된다. 그 작은 체구의 뱁새는 황새를 따라가지 않더라도 가랑이가 찢어지게 될 판이다. 나는 노동자 김씨에게 궁금한 게 있다. 왜, “8시간 일하고도 먹고 살게 해 달라”고 요구하지 않는지 그것이 궁금하다. 노동자는 붉은 머리 오목눈이가 아니라 인간이라며 싸우지 않는 게 궁금하다. 자본가들이 노동자 김씨를 먹여 살리는 게 아닌데 말이다. 오히려 노동자 김씨가 너비도, 깊이도 잴 수 없는 자본가들의 금고를 채우느라 분주했을 뿐이다. 마치 붉은 머리 오목눈이처럼 말이다. 노동자 김씨는 오늘을 살아가는 노동자들의 모습이다. 이제껏 노동자들이 자본을 키워왔으니, 이제 자본가의 곳간 열쇠를 노동자들이 돌려받아야 한다. 탁란의 세월을 끝장내기 위해선 어쩔 수 없다.


노해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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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 자본가 , 탁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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