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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장 산별 전환과 사내하청노조

‘계급적 단결’, 말만 하지 말고 직가입 문제부터 풀어라!

6월 26일부터 30일까지 현자, 기아, 쌍용, 대자, 대우조선 등 금속 대공장노조들이 동시총회를 통해 산별노조로 전환한다고 한다. 기업별 노조의 한계를 극복하고 정규직 비정규직의 차이를 넘어 계급적 단결을 이뤄내고 노조의 투쟁력을 강화한다는 것이 그 동안 산별 전환의 최대 명분이어 왔다. 이러한 명분 아래 산별 전환이 추진되어 온 뒤편에서는, 그러나 대공장 비정규직노동자들의 고립된 투쟁들이 계속되어 왔다.

사내하청 투쟁의 고립은 이제 지난 얘기가 되나?



그 동안 대공장 사내하청노조들이 자본의 탄압과 고립 속에서 힘겹게 투쟁을 전개해 왔는데, 그렇다면 정규직노조들이 산별로 전환해서 계급적 단결을 통해 이 같은 어려움은 이제 훌쩍 넘어서게 되는 것인가? 근래 3-4년 동안의 비정규직 투쟁 역사에서 빠지지 않는 양상이 하나 있다. 많은 정규직 노조들이 사내하청 투쟁을 외면, 방관하거나 통제하고 심지어 탄압하기까지 하는 계급적 추문들이 그것이다. 산별 전환으로 이런 얘기들이 이제 과거 한때의 에피소드로만 남게 될 것인가?
불행하게도 지금 그런 기대를 하기가 어렵다. 지금 대공장노조들의 산별 전환은 같은 공장의 사내하청노조와 계급적 단결을 이뤄내는 데서 그 어떤 진전의 요소도 찾아보기 힘들다. 예를 들어 현자노조의 경우 이번에 정규직 비정규직 차이를 넘어 같은 공장 울타리 안에 있는 현자비정규노조와 계급적 단결을 이뤄내는 방식으로 산별 전환을 하고 있는 것인가, 아니 최소한 그러한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는가?
현자노조가 산별 전환을 한다면, 금속산별노조 산하에 기업지부로 편제될 예정이다. 금속노조 현자지부가 되는 것이다. 현자 비정규노조도 금속노조로 들어온다고 할 때(현자 아산공장 사내하청지회와 전주공장 사내하청지회는 그 명칭이 말해주듯 이미 금속노조 소속이다), 같은 금속노조 소속으로 있게 될 것이다. 금속노조라는 틀에서는 현자 정규직노동자와 비정규직노동자가 같은 노조 조합원이 될 것이다. 그러나 현장으로 내려오면 양자는 여전히 별개의 조직으로 있게 된다. 정규직 조직과 비정규직 조직, 말하자면 현자지부와 현자 사내하청지회로 말이다. 옷만 갈아입은 채 분리가 재생산 되는 것이다. 이러한 분리를, 같은 금속노조 소속이라는 것이 얼마나 메워줄 것인가? 허울만 단일노조지, 현대자동차 공장에서 비정규직노동자들은 정규직노동자와 같은 ‘금속노조 조합원’이라는 이름 외에는 기존의 관계에서 아무것도 달라지는 것을 느낄 수가 없을 것이다.

현장에서 정규직 비정규직 분리의 벽은 그대로 남아

대공장노조가 산별로 전환한다고 해서 그에 따라 비정규노조와 함께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쟁취하는 ‘산별 투쟁’으로의 전환이 동반될 것이라고 지금 기대할 수 있겠는가? ‘정규직 정서’를 핑계대면서 한 공장 안에 있는 비정규직노동자의 직가입을 불허하고 비정규직 투쟁을 방관해 온 그간의 태도에 대한 반성과 새로운 결의가 이번 산별 전환에 조금이라도 담겨 있는가? 아무도 그렇게 믿고 있지 않다.
상층의 형식 전환이 자동으로 가져다 줄 건 아무것도 없다.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는 오히려 실질적 분리로 고착될 가능성이 더 많다. 애초에 현자노조가 비정규노동자의 직가입을 불허하여 현자비투위가 비정규직 독자노조로 갈 수밖에 없었을 때 이러한 분리의 고착화는 이미 예정되어 있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직가입 불허가 이후 현자노조의 비노조 투쟁에 대한 외면, 통제, 나아가 류기혁 열사에 대한 열사 인정 거부와 같은 작태로까지 이어지는 시발점이 되었다고 할 때 최소한 직가입 문제를 풀 의지조차 없이 ‘계급적 단결’을 산별 전환의 명분으로 내세우는 것은 기만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사실 지금 산별 전환이 계급적 의미에서 긍정성을 갖는 측면은 현실에서 거의 없다. 지도부들이 내세우는 긍정성이 대부분 산별노조의 관념적 이상형에 기댄 약속어음이라면, 부정성은 매우 현실적이고 직접적이다. 노조 관료화와 상층교섭주의만 심화할 것이라는 기간의 우려는 이미 현실로 나타났다. 산별투쟁보다는 제도화된 산별교섭 구조를 안착,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이 작금의 금속노조 모습이라는 것은 모두가 지적하는 바이다.
또한 04년 보건의료노조가 산별규약 10장 2조를 내세워 서울대병원지부의 투쟁을 억압한 사례는 산별노조의 관료화 경향을 생생하게 보여준 대표적 사례로서 결코 우연적이거나 예외적인 현상이 아니다. 오로지 사용자 단체와의 교섭구조를 안착시킬 수만 있다면 현장투쟁은 얼마든지 희생시킬 수 있다는 산별 지도부의 태도는 이후 터져 나온 아래로부터의 비판에 대해 산별 지도부(이들은 애초 대사업장 노조, 즉 대단위 병원노조 지도부들 출신이다)가 아주 공격적으로 일사불란하게 대응하는 일련의 모습들로 볼 때 일시적인 작태의 문제가 아니라 대단히 목적의식적인 것이었다. 관료적 지도부들이 어떻게 산별노조의 제도 형식을 통해 관료주의 ․ 교섭주의를 안착 강화시키는 데 혈안이 되어 있는지를 잘 보여준 사건이다.

현장에서부터 정규직 비정규직이 단일 조직으로 묶여야!

산별 전환이 현 시점에서 긍정성을 갖는 측면이 있다면 비정규직노동자들을 포괄한다는 것인데 그나마도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상층 형식의 차원에 머무르고 막상 현장에서는 정규직 비정규직의 분리를 고스란히 온존시키고 있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따라서 지금 대공장 산별 전환이 최소한의 긍정성이라도 가지려면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직가입 문제를 선결조건으로 담아야 한다. 원하청 구분 없이 현자 사업장의 모든 노동자들,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현자 자본을 상대로 싸워야 하는 모든 노동자들은 단일한 현자지부로 조직되는 산별 전환이어야 한다. 기아, 쌍용, 대자, 대우조선 등도 마찬가지다. 기아차 화성공장 사내하청지회 조합원들, 아니 소하리, 광주공장까지 기아차의 모든 사내하청노동자들이 단일한 기아차지부로 소속되는 산별 전환이어야 한다. GM대우 창원공장 사내하청지회, 그리고 부평공장, 군산공장의 모든 사내하청 노동자들까지를 단일 지부로 포괄하는 산별 전환이어야 한다.
물론 조직 형식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형식적 포괄이 실질적 단결을 보장하지 못한다. 단일 조직으로 포괄되었다고 투쟁에 대한 외면, 방기 현상이 저절로 극복될 걸로 기대하지 않는다. 철도의 사내하청이라고 할 수 있는 KTX 승무지부 투쟁을 고립으로 내몰고 철도본조가 파업을 중단한 것만 보더라도 그렇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KTX 승무원 노동자들이 철도노조에 직가입 하지 않고 독자 노조로 존재하는 편이 더 나았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실질적 단결이 자동으로 따르지 못한다고 해서 단일 조직으로 포괄하는 것에 반대한다는 것은 역으로 조직형식에 과도한 기대를 걸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실질적 단결의 문제는 어차피 투쟁 속에서 일궈내야 할 문제라면, 최소한 조직 형태와 구조에서
정규직 비정규직의 분리를 온존하거나 고착화하는 방식의 산별 전환은 막아야 한다. 현장에서부터 분리의 벽을 허물고 정규직 비정규직이 단일한 금속노조 지부로 조직되는 방식이 아니라면 산별노조는 형식적 차원에서조차 계급적 단결과는 전혀 상관없는 조직이 될 것이다.

사내하청노동자들의 직가입 문제부터 풀어야

그렇다면 이번 대공장 산별 전환에서 정규직 활동가 동지들은 지금 추진되는 산별노조의 관료화, 현장공동화 문제뿐만 아니라 현장에서부터 분리의 벽을 온존시키고 있는 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해 주어야 한다.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직가입을 전제하지 않는 산별 전환은 현장 공동화 문제에 더해 사측의 현장 분할통제의 강화, 노동자의 현장 투쟁력의 약화 문제를 가중시킬 것이다.
산별 전환에서 그나마 계급적 단결의 명분을 충족시킬 수 있는 조건이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직가입인데, 그마저도 거부하는 산별 전환이라면 그것은 철저히 빈껍데기일 뿐이며 정규직노조 지도부들이 내세우는 ‘계급적 단결’은 사기와 기만으로 규정될 수밖에 없다.
6월말까지 산별전환 총회가 한달 여밖에 안 남은 상황이다. 원하청 활동가들은 지금부터 조합원들 사이에서 정규직 비정규직 분리의 벽을 현장에서부터 허물고 실질적인 원하청 단결을 이뤄내기 위한 결의가 조합원 총회에서 이루어질 수 있도록 집중적인 선전선동에 들어가야 한다. 그래서 투쟁하다 해고된 비정규직 조합원들에 대해서도 ‘희생자 구제기금’을 지급하는 것과 함께 동일노동 동일임금 쟁취 및 비정규직에 대한 정규직 단협 적용, 불법파견 정규직화 쟁취를 위한 결의로까지 나아갈 수 있도록 지금부터 현장을 조직해야 한다.
현장에서 정규직 비정규직의 분리를 온존 고착화시키는 산별 전환은 빈껍데기다! 현장에서부터 분리의 벽을 허물고 원하청 단일 조직으로 계급적 단결의 기초를 놓자!


이 민 호 (울산 사내하청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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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 산별노조 , 사내하청노조 , 직가입 , 대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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